웨이 파인딩(way finding)의 서막은 지하 1층에서 로비로 연결되는 길에서 시작되었다.
병원의 지하 주차장에서 로비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상지관 쪽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실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금방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하나는 구건물인 성모관과 연결된 부분인데, 방화문을 열어 놓아야만 엘리베이터실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특히 지하 1층에서 로비로 연결되는 부분은 가장 빠른 길이 되어야 하는데, 기존의 입구는 워낙 복잡하고 미로 같아서 이용자의 머릿속에 물음표만 잔뜩 떠오르게 만들었다.

“입구의 방화문은 안이 보이는 유리 방화문으로 교체. 입구 쪽 벽 일부에 개구부를 만들고 유리를 넣어 환한 이미지 조성. 불필요한 갈림길의 문을 모두 없애고 로비로 향하는 계단이 바로 보이도록 동선 조정.”

로비 바로 아래에서 벌어지는 공사이므로 철저한 공사 보호막이 준비되었다.
계단이 직통으로 이어지도록 크레셔로 주말에 벽을 철거해야 했다.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1층 지상 주차장까지 공사 소음이 들렸다.
물론 환자들의 동선을 생각하여 진행되는 필수적인 공사이지만, 소음 때문에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벽이 부서질 때마다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부원장 신부님도 걱정하시며 말없이 지켜보셨다.



공사 보호막 안은 7월의 찜통 더위와 먼지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기계로 벽을 조금씩 깨서 담는 인부들의 머리는 땀과 콘크리트 먼지로 허옇게 변해 있었다.
초조하게 진행되던 철거 작업이 끝나니 로비에서 지하출구로 가는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장막 때문에 이용자들이 돌아서 다녀야 했구나.’


여기에 계단을 놓아 내려가는 길을 만들어야 했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미리 제작해 놓은 철제 틀로 계단 기초를 세웠다.
그 위에 기존의 바닥과 같은 계열의 화강석으로 계단판을 마감하고, 주물로 장식한 난간을 설치하였다. 벽 군데군데에는 성모 사진과 풍경 사진을 걸고 조명을 배경에 비추어 지루함을 없애고 활기찬 분위기의 출입구를 조성하였다.  

공사 보호막이 제거되고 출입구가 개방되던 날, 모두가 진심으로 좋아했다. 처음에 공사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 팽배해 있던 것과 달리, 그 후로는 다음에는 어디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특히 이번 출입구 공사는 환자에게 빠르고 정확한 동선을 제공하고 웨이 파인딩을 지원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고, 이를 통해 병원의 이미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길트기 작업이 시작되면서 짐 정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하 1층에서 로비로 연결되는 통로 공사의 성공에 힘입어 일반검진센터와 영상의학과에서 공간을 양보해 주었고, 덕분에 일직선 통로가 확보되었다.

사실 이런 결정은 상부의 지시와 압력이 없으면 진행되기 어렵다. 특히 종합병원과 같이 대등한 부서들이 많은 경우에는 협의와 타협에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 리모델링에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전 성모병원의 경우 그러한 상부의 지시 없이도 각 부서에서 이해와 협조를 해 주어 공사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사에서 새삼 대니와 프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이다. 특히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니는 아직 총각처럼 보이지만 네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병원 식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친절한 사람이다. 사실 이들이 없다면 주말 공사가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요즘 웬만한 회사가 주말 휴무를 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3D직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처럼 주말에 일해야 하는 경우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철거된 콘크리트를 버리는 작업은 대니와 프란이 도맡아 하고, 묵묵히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젊은이인 박 목수가 가벽을 만들 곳과 모양을 넣을 곳을 구별하며 작업하였다. 지하 통로는 연회색의 무광 타일과 유광 타일을 한 줄씩 넣어 무늬를 만들었고, 로비로 연결되는 통로와 마찬가지로 간접 조명을 이용하여 꽃 그림을 실사로 간간히 넣었다.
 



이렇게 완성된 지하 통로는 직접적인 기능을 넘어서 다음 공사의 활성화를 예고하고 궁극적으로 성모병원의 발전과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효과를 보였다.
 


예전 장례식장 자리로 통하는 유일한 길에는 보가 머리 위로 지나가서 160센티미터 정도의 여성도 고개를 숙여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공사 초반부터 병원장 신부님은 구조 보강을 해서라도 통로를 확보하기를 바라셨는데 장례식장도 신축 이전된 마당이어서 옛 터를 리모델링하고 주요 통로를 공사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되었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보는 위층의 응급실과 로비를 연결하는 통로의 경사면을 받치고 있는 보 가운데 가장 끝부분인데, 건물 증축시 다른 슬라브타설을 위한 기능이 있다고 판단되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구조 보강을 통해 절단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단, 소방 라인과 전기 배선 라인도 보와 같은 높이로 위치해 있으므로 이들도 함께 높여 연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구조 보강은 보를 자른 부분에 탄소 섬유재를 접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탄소 섬유재는 종이 한 장 두께에 실오라기 같은 금속이 얇게 눌려 있어서
과연 이 자재가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술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험악하게 자리해 있던 보를 없애니 내 마음까지 후련해졌다. 더 이상 장례식장의 어두운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고, 경사로 아래에 직원들의 편의시설과 탈의실, 운동장이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또 다른 설렘이 다가왔다.
암흑으로 가득했던 지하는 넉넉한 공조 배기 시스템으로 쾌적한 공기가 순환되고, 밝은 조명과 이국적인 실사 이미지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이는 타협과 이해로 진정한 만인의 통로를 구축한 작업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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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설 2016-06-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