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중환자실 공사를 진행한지 벌써 2년이 흘렀다.
2007년 의료평가기준에 의거하여 중환자실의 침상 간 간격과 환자 수에 맞춘 개수대 문제 등이 전면 개정되어 병원 측에서는 오래된 제1중환자실을 6층으로 배치하여 2년 전 새로 리모델링한 중환자실 근처에 현행법에 맞춘 새 중환자실을 만들고자 한다.







의식이 거의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많은 환자들이 조용히 누워있다.

침상 간 커튼 사이에 상반신을 모두 드러낸 채 흐느끼면서 간호사에게 무언가 이야기 하고 있는 한 명의 환자 이외에는 너무도 조용할 뿐이다. 이것은 환자가 무엇이 필요할지가 아닌 의료진이 환자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가 가장 빨리 요구되는 공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수동적인 환자가 가장 넓은 시각으로 관찰되어야 하기에 침상들과 스테이션의 배치와 감염과 중증환자들이 머무르는 격리실의 위치가 동선계획의 가장 큰 주안점이 된다고 하겠다.


다시 6층의 2년 전 리모델링한 제1중환자실로 향하였다.
공사 당시부터 우왕좌왕 하다 결정된 1차출입구의 자동문은 개선1순위로 거론되었다. 이는 중환자실 특성상 면회시간 이외에 출입을 금하는 통제구역의 첫 관문의 도어가 자동문이여서 안쪽에서 통제하지 않을 경우 쉽게 보호자가 출입할 수 있는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콘솔베드의 높이가 너무 높아 창문을 가로질러 설치되는데 이에 창문 안쪽부분의 청소 문제가 용이하지 않다는 문제점 등 크고 작은 개선안들이 공사 전 고려되어야 할 내용들이기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어본다.

이제 공사할 현장을 둘러보면서 도면에 체크한다.
뚫려 있어야 하는데 이유 모를 답답함...
둔탁한 기둥들이 공간의 정 중앙에 일렬로 세워져 있는데 이를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실별 및 침상들을 배치해야 하는 아쉬움에 도면에 연필로 기둥들에 의미 없는 먹칠만 해 대면서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느 한 곳 정해짐 없이 도면이 스테이션의 방향과 격리실의 위치를 동서남북으로 하여 배치를 집합에서 짝짓기 하듯 그려나가 보지만 번번이 회의 때 퇴짜이고 나 역시 맘에 안 든다.

벌써 시작된 회의에 다소 늦게 들어가니 새 중환자실의 주인이 될 이 팀장은 홍조를 띤 얼굴로 종이를 들고 설명 중이다. 실무자 입장에서 배치한 도면인데 비록 스케일감은 없지만 지금껏 진행되었던 도면들과 다르게 격리실을 배치하여 본 것이다.



눈이 확 뜨였다.
그러면서도 말 못할 자존심도 상하고 말았다. 고민 끝의 실마리를 풀 것 같은 속 시원함과 동시에 실무자가 직접 배치하여 본 침상의 위치들을 왜 지금까지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모처럼 만의 카리스마 신부님의 그동안 고민시던 모습에서 화기가 도는 듯 하고 계신데 나는 그저 무덤덤하게 “설계팀과 도면 스케일대로 맞춰 보고 다시 협의하는 것이 낫겠네요.” 하며 후 미를 던지고 성급히 회의를 끝내고 말았다.



제2 중환자실 공사는 한 달 후에 진행된다. 이 책이 완성되어 출간 될 즈음이면 끝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제 2중환자실은 2년 전 제2중환자실의 개선점을 보완하고 또 실무자 측에서의 편이와 환자 및 보호자간의 개인적 동선을 최대한 배려한 최선의 공간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왜냐하면 이는 디자이너의 주도 하에 건물의 현실적 제약의 조건만을 가지고 설계한 것이 아닌 그 곳에서 24시간 생활하며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여 이를 고민하고 계획한 애정 어린 공간이기에 말이다.
디자이너로서 그 공간에 대한 유 경험의 디자인설계자였기에 예전보다 더 이상적인 장을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은 결국 그 곳에서 살며 머무르는 사람들이 작은 생활의 경험 하나하나를 토대로 한 공간 만들기에 비한다면 그것은 자칫 겉멋일 뿐이며 타성일 수밖에 없다.
가장 기초적이며 본능적인 경험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충실히 뒷받침되어지는 설계가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면 회의 때에 단지 내가 먼저 생각해 내지 못하고 실무자 측에서 배치한 실별 위치를 토대로 도면을 만들었다는 자존심 상함의 나의 얄팍했던 생각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이 순간 또 한 번 뒤돌아본다. 지금껏 이 자리에 내가 오기까지 공사 하나하나에 손길이 닿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서로 부딪치며 때론 도와가며 협의하던 실무당당들의 마음과 의지가 모아졌기에 여기에 내가 있고 소중한 공간들이 탄생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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