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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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1

"우리는 최후통첩 따위는 하지 않는다. 명령을 내리면 상대가 복종할 뿐."

빛의 신 '이템파스'를 대리하는 '이라메리' 일족이 다스리는 세계관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장편데뷔작으로 2010년 작이다.

#부서진대지 3부작(2015~)이 굉장히 은유적이고 미스터리한 데서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비교적 친절한 설명조로 시작하고 진행된다.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판타지 정치 소설.

자극적이고 여성주의 서사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의 배경은 '부서진 대지'와 이어진다.



계급이 낮은 국가 '다르'의 후계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후계자에서 내쫓긴 키네스의 딸인 예이네가 주인공이다. 키네스가 마흔에 독살로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아라메리의 수장인 데카르타는 손녀인 예이네를 세번째 후계자로 지명하며 소환한다.

아라메리의 주성인 '하늘궁'에서 지내며 사촌이자 후계자 후보 시미나, 릴래드와 경쟁하는 보름 정도의 시간이 소설 속 이야기다.

이템파스와의 경쟁에서 져 아라메리의 노예가 된 밤의 신 나하도스와 그의 2세들이 예이네에게 접근하고, 예이네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낀다.

신을 부릴 수 있는 아라메리 수장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과 암투, 모친의 죽음 뒤에 도사린 음모를 추적하든 예이네, 그리고 이템파스에 패하고 수백년 동안 족쇄에 잡힌 나하도스 일족이 예이네를 통해 벌이려는 해방을 향한 수싸움이 흥미진진하다.

#다섯번째계절 로 시작하는 '부서진 대지' 시리즈에서 비친 시적인 문장들의 전형은 이미 여기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를 향한 절망적인 시선은 이 시리즈가 덜 한 인상을 받았으나 나머지 두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낼지 모르니 보류.

각 사건의 비밀을 해소하는 결말의 절반은 다소 성급해 보이지만 세계관 자체를 탄탄하게 구성하기 때문에 결말로 인해 전체가 소진되지 않는 것이 강점이자 매력이다.

동시에 결말을 통해서 스스로 만든 이 세계를 와장창 부셔버리는 저자의 결단력은 굉장하다.

p.s. 아라메리의 순혈주의는 신라 #골품제 를 떠올리게 하는데, 골품제가 더욱 결벽적, 집착적이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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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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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수사시리즈 여섯번째 이야기는 슈루즈베리의 수도원이 아닌 겨울의 브롬필드 수도원을 거점으로 펼쳐진다.


왕과 황후가 대립하는 내전 상황에서 수도원을 향해 피난 중이던 위고냉 남작가의 남매가 실종된다. 이들과 함께 있던 힐라리아 수녀와 함께.


피난을 돕다가 강도의 습격으로 부상을 당한 엘리아스 신부를 보살피기 위해 출장 나온 캐드펠은 수색에 참여해 둘째 이브를 찾아 돌아오는 길에 냇가에서 얼음덩이와 함께 얼어붙어 버려진 젊은 여성의 시신을 발견한다.


미스터리로 읽다보니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 시리즈는 내내 내전 상황 중이었고 외곽인 슈롭셔는 비교적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던 것이다.


위험을 자초하는 정부 덕에 이 소설 속 '난리'가 전보다 훨씬 더 와닿는다.


주거지가 위험에 처해 피난길에 올랐다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조력자가 살해당하고, 성범죄에 노출되고, 무력감에 정신을 놓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연이은 부상자들의 처치를 하는 캐드펠의 모습을 통해 쓸모있는 응급처치 지식을 얻는 건 덤이지만... 전쟁이 가져오는 생활의 파산 자체가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결론은 사건의 해결과 모종의 희망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이미 깨지고 망가진 삶들의 부스러기가 잔해가 되어 여기저기서 밟힌다.


다소 기독교 친화적인 소설이지만 신의 공백을 발견하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성경적 경구가 등장할 때마다 종교적 무력감은 더 강조된다.


특히 표지의 눈 그림은 이 소설의 이중적인 시선, 혹은 모순적인 면 등을 다양하게 변주하는데, 언제 한 번 펼쳐놓고 보고 싶다.


하나 더 말한다면,

캐드펠 수사가 30년 전 참전했던 십자군 전쟁에서 사생아를 만들고 떠난 이야기를 반복해서 미화하는 듯한 장면들은 아쉽다. 기분만 내고 튄 캐드펠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생고생을 겪은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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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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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본능적으로 교묘하게 움직여 자기들 사이에 숨겨주는 것이 이들 사이의 불문율인지, 아침기도 시간 교회에 모인 환자들 모두가 조슬린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를 감춰주었다.
자신을 에워싼 이들 대부분이 몸 어딘가에 상처를 지닌 채 절뚝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문득 지금까지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숙연한 마음이 압도해오는 것을 느꼈다.

문장이 아름다운 것과 글이 아름다운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소설.

사건이 해결되는 종착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권위와 힘이지만, 미스터리와 억울한 누명이 풀리는 실마리는 낮은 데서 시작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동체를 다루면서도 말이 아닌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미스터리니만큼 트릭이 중요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특정인의 탁월함이 홀로 반짝이는 경우 필연적으로 명암이 짙어지면서 시리즈의 무게중심도 흔들린다.

주인공 캐드펠의 재능과 경륜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캐드펠은 회전축 역할을 하며 진실의 단서를 끌어들이는 것에 가깝다. 각자가 만든 진실의 조각이 있는 것이다.

계절이 다 가기도 전에 다시 살인이 벌어지는데, 이번엔 후견인인 숙부 부부에 의해 정략 결혼을 해야하는 상속녀의 나이 많은 예비 신랑이 결혼식 당일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말이 누군가 설치한 밧줄에 걸려 낙마한 것.

부당한 결혼과 부당한 결혼생활의 서막을 예고하는 풍습의 단편들은 썩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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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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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은 1편에서 1년 후의 이야기로 베드로의 탈옥을 기념하는 '성 베드로 축일' 전야부터 셋째날까지 나흘 동안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현재 캐드펠 수사의 나이 59세... 🥲

#캐드펠수사시리즈 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미스터리인데, 이야미스나 일상의 근거리를 차용하는 현대 미스터리와는 다르게 불안감을 자극하지도 않고, 900년이라는 시간 상의 거리는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견지하게 도와준다.

더불어 기싸움을 하려는 듯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가짜 꼬리였다는 식의 반전의 골짜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과 반전의 반복을 피한 덕에 서사와 캐드펠의 인간적 면모, 주변 인물들(귀여운 마크 수사나 라둘푸스 신임 수도원장, 휴 베링어 등)이 각기 어떤 역할을 하며 극에 어떻게 긍정적 에너지를 끼치는 지도 보다 면밀하게 바라볼 수 있다.

다 읽고나면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은 듯 속이 편안하다.

4편은 슈롭셔에서 축일을 맞이해 큰 장이 열리고, 꽤 큰 손인 '브리스틀의 토마스'가 살해 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외숙을 잃은 에마가 외숙의 비밀을 가진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1편에서 보여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정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싸움에 휘말린 것.

p257 - "이보게.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네." 마크 수사를 지켜 보던 캐드펠이 말했다. "작년 여름 마을에서 아흔다섯 명이 죽었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그저 편을 잘못 들었다는 이유로 죽은 게야."
(중략)
"작년에 죽은 아흔네 명도 그랬어." 캐드펠은 타이르듯 말했다. "그리고 아흔다섯 번째 사람은 살해당했지. 우리가 보는 정의라는 것도 부서져 나온 조각일 뿐일세. 이 조각들을 가능한 한 잘 보관하고, 찾아낸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세상은 스스로도 속한 인간들에게도 번민을 일삼고 때론 막막한 벽을 세우기도 하지만 각자 해야할 바를 지키며 살아보자는 이 의미는 얼마나 소중한지...

결말부에서 더 많은 죽음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에마의 발언은 이 소설이 미스터리로서 갖춘 격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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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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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독초로 유명한 #투구꽃 을 의미한다.

세번째 이야기는 수도원에 장원을 바치고 조용하고 평안한 노후를 보내려는 거베이스 보넬이 독살 당하면서 벌어진다.

수도원 옆 거처에서 부수도원장이 보낸 요리를 먹고 쓰러졌는데, 독으로 쓰인 약품이 캐드펠 수사가 치료용으로 만든 것으로 범인은 사실 초반에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과 이 소설이 더 큰 시리즈로 발전하기 위해 빌드업 되는 주변인물들이 이번 편의 핵심 포인트라고 해야하나.

1, 2편에서 계속 바뀌던 캐드펠 수사의 조수역으로 새처럼 지저귀는(?) 마크 수사가 첫 등장을 하고 부수도원장은 수도원장이 벌이는 고도의 정치술(!?)에 발목을 잡힌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상속법 차이나 문화적 차이가 상세히 드러나면서 #웨일스 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한다. 더불어 12세기 잉글랜드와 정치적 분리가 상당히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

죽은 거베이스의 부인은 캐드펠이 젊은 시절 결혼을 약속했던 인물로 등장한다. 풍운아였던 캐드펠의 과거상이 전체 시리즈로 보면 좀 일찍 밝혀지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나이 든 캐드펠에 대한 연민이나 나이듦에 공감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맞아...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60이면 얼마나 고되려나...'

3권은 좀 더 큰 이야기로 발전하리라는 기대감을 준다. 다음 이야기에도 이어질 새로운 인물이 둘 등장하는데, 수도원 내부 사건(!?)을 기대하게 하는 만큼... 이미 쫄깃해진다.

참 신기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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