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 러너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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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

p348 - 당신이 뭔데? 기껏 스파이 주제에. 당신이 신의 사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망할 놈의 세상이 당신 거야? 변태 새끼처럼 배드민턴으로 잘생긴 남자들을 홀리고 다녀놓고. 그렇게 꼴려 쫓아다니더니, 이제와서 러시아 스파이로 몰아? 꼴린 놈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물론 우아하다.

우아하게 크고 작은 곡선 도로를 회전하고, 시종 긴장을 유지하게 만드는 기술적 암시들은 재치있다. 가볍게 넘어가는 작전의 발걸음에서도 대가임을 증명하는 스파이의 요령이 섬세하고 풍부하게 담겨있다.

p22 - 《스펙터》 지난 호를 들고 있으라는 지시였는데, 재고를 도매상에 반품한 후라 지역 도서관에서 한 부 훔쳐야 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쉰이고 은퇴를 자연스레, 여유있게 내다보는 내트는 다 허물어져 가는 분국 '헤이븐'의 분국장으로 발령받는다.

영국이 뭔데? 기껏 영국 주제에. 영국이 신의 사자라도 되는 줄 알아? 이 망할 놈의 세상이 영국 거야?

클럽에서 만난 배드민턴 도전자 에드가 쏟아놓는 브렉시트에 관한 불만과 사표를 낸 정보국 부하 플로렌스가 뱉어내는 촌철살인(!)의 농담반진담반의 악담을 모아놓으면, 88세의 저자가 저무는 시대에 활약했던 영국 정보국 기획전문 고급요원(agent runner)이자 남편과 양육자와 사회의 일원인 내트를 통해 '빛났었었던 영국'이 정작 지켜야 하는 이상으로서의 현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내트가 마지막에 내리는 결정, 작전이 혼자가 아닌 부인 프루와의 합작이어야만 했다는 것은 감상 넘어 어떤 감회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p.s. 슈베르트 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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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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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p223 - 그리하여 이 실에서 저 실로 미끄러져 이동한다. 그녀 주위에서 도시들이 피어나고 썩어 간다. 별들이 숨을 거둔다. 대륙이 이동한다.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종말을 거둔다.

시간의 가닥을 타고 시공간을 넘어 작전을 수행하는 '레드'와 '블루'는 각자의 진영을 대표하는 전사인 동시에 호각을 다투는 라이벌인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편지를 작전 지역에 남기는데...

나무의 깊은 데서 시작하는 나이테, 찻잔 속 찾잎, 천의 매듭, 청구서의 잉크 자국, 용암의 빛이 언어가 되고 편지가 되는 극적인 은유로서의 이 장치만으로도 소설은 아름답고 충만하다.

우람한 나무의 나이테가 자라는 시간 동안 그 겹겹에 쓰여진 편지는 상상만으로도 깊은 영감에 사로잡힌다. 인간 시대가 뚫고 온 수많은 사건들과 수천 개의 시간선은 잃기도 하고 갖기도 한 무수히 많은 시대의 경우의 수를 가리키며, 그 시간선에 레드와 블루가 서로에게 남긴 서신의 형태는 인간이 공명해온 자연의 아우름을 길어올린다.

p - 나는 하늘을 길게 가르며 불로 글씨를 쓸 거야. 너의 상승에 어울리는 곤두박질이 되도록.

SF의 '시간 전사'들이 타임 패러독스를 관통하고 진영을 초월해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다소 순식간에 진도(?)가 나간다. 그리하여 이 소설이 약간이나마 짧아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신들은이렇게시간전쟁에서패배한다 #아멜엘모흐타르 #맥스글래드스턴 #장성주 #황금가지 #thisishowyoulosethetimewar #amalelmohtar #maxgladstone #sf소설 #로커스상 #휴고상 #네뷸러상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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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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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463 - "여자 요원들은 공식 직함이 없잖아요."

1944년 런던 특수작전국의 엘레노어는 여성으로 구성된 작전팀을 건의하고 재가를 얻는다.

1946년 뉴욕의 그레이스는 기차역 벤치 아래서 누군가 놓고 간 가방에서 열두 명의 소녀들, 앳되면서 전투복을 입은 여성들의 사진을 보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사진을 들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p228 - "그건 사진의 소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뜻이예요."

이민자들을 돕는 프랭크와 일을 하는 그레이스는 그 가방이 엘레노어, 엘레노어 트리그라는 여성의 것임을 알게 되는데...

2차 대전의 격전이 벌어지는 속에서 프랑스로 잠입한 여성 특수요원들의 자취를 그린다는 데서, 여성을 부속품으로 취급해온 역사를 다시 써 온 #라듐걸스 #체공녀강주룡 #키르케 같은 작품들과 큰 궤를 같이 한다.

소설만으로 이 '팀'이 실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전시에 노동자로 전장의 간호사나 암호 분석가, 스파이, 레지스탕스, 저격수로 활동해온 여성의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같은 역할, 더 열악한 조건에서 산화한 여성의 임무와 역사를 또다른 여성이 발굴하는 소설의 구성은 저자의 전작이나 진보하는 역사의 발자취를 증언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있으나, '로맨스'를 피하지 못하는 서사는 다소 아쉽다.

물론 로맨스 그 자체를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과 분리하는 그레이스의 결정은 바뀌어가는 시대에 부합하지만, 그레이스가 미스터리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로맨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 역시 조금 아쉽다.

#사라진소녀들 #thelostgirls #pamjenoff #팜제노프 #정윤희 #잔출판사 #도서출판잔 #잔 #미국소설 #제2차세계대전 #미스터리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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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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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쌓아올린 하나의 시리즈가 지속될 때 발견할 수 있는 좋은 효과들이 첫 책보다는 두번째 책에서, 두번째 책보다는 세번째 책에서 더 구체적이면서 두꺼운 파장으로 다가온다.

p47 - 예를 들면 '좌약'을 <앉다>, <약>이라고 통역해서 잘못 이해한 농인이 약을 '앉아서 먹으려 한 일'은 통역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사법 통역을 주로 했던 아라이의 영역이 의료 통역(산모), 개인 통역(연예인), 지역 비표준 수어 통역에까지 확장돼서 농인 세계를 더 넓게 살펴준다.

더욱이 이번 권에선 미유키(청인)와 결혼한 아라이(CODA) 사이에서 히토미(선천성 농인)가 태어나고, 미유키의 딸인 미와(SODA, 농인 자매를 둔 청인)가 이루는 가족 형태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서로에게 일으키는 감정의 흐름이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은유한다.

이제껏 쌓은 서사의 두께가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네 개의 에피소드마다 느껴진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다.

농인 양친을 둔 아라이가 미유키와의 사이에서 농인인 2세가 태어날까 걱정하는 것, 청인인 미와가 자신처럼 양친의 관심에서 소외되는 것, 조카인 쓰카사(농인)의 방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되는 것 등은 날카로울 정도로 실제적이다.

자연스레 의료와 응급 서비스, 회사 생활에서 분리되어 심하게는 치명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장면을 실제 사례에서 참고했다고 한다.

실은 주변에서 농인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누구의 외면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장애의 다면성, 농인과 수화에 관한 책이라면 앞으로는 이 시리즈를 기억하고 말 할 것이다.

색스 박사의 책보다 면밀하다.

#통곡은들리지않는다 #마루야마마사키 #최은지 #데프보이스 #용의귀를너에게 #황금가지 #추리소설 #농인 #수어 #수화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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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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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9 - 이것이 이번 사건의 복잡한 부분이다. 청각장애인이 체포될 경우 통역을 포함하여 펠로십이 지원에 나서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다만 본건의 경우는 피해자 역시 청각장애인이다.

뿔로 소리를 감지하는 용.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다는 용龍의 귀耳는 농聾을 의미한다.

코다(농인 양육자의 청인 자녀)인 아라이 나오토가 수어통역사를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났다. 농인을 사취한 농인의 취조에 참여하게 된 아라이가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NPO 직원의 살해사건과 양육자에게 불합리한 자녀의 장애책임을 묻는 '정육학'에 기조를 둔 사립학교 설립이 서로 엮이면서 미스터리의 전개가 이뤄진다.

에이치, NPO 피해자, 정육학, 정치인 등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얽히는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고전적이기는 하다. 정격의 이야기가 현대 미스터리로서는 신선하지 않지만, 시리즈로서 서사와 농인 사회가 겪는 안팎의 갈등 구조를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데는 충분한 장점이 되어준다.

아라이가 전직장 동료였던 미유키와 동거를 시작하고, 미유키의 딸 미와(9)와 미와의 학급 친구이자 함묵증을 앓는 에이치에게 수어(일본수화)를 가르치며 농인이 세계와 겪는 불화의 미시적인 지점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동시에 언어의 의미를 조망하는 것은 교훈적이면서 감동적이다.

간단한 수어는 배울 필요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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