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악플러 큰 스푼
김혜영 지음, 이다연 그림 / 스푼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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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키보드는 과연 안전한가요? 

그리고 어제의 키보드는 어땠나요? 안전했던 가요?


당신은, 익명이란 그림자 뒤에 숨어, 그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타인에게 상처받을 만한 댓글을 적은 적이 없나요?


악플은 아픕니다. 한, 두개쯤이야 웃으며 그러려니 해도, 그게 한꺼번에 훅하고 치고 들어오거나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그 상처가 상당하죠. 마치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받는다고 상상하면 될 겁니다. 어디서 잽이 날아올지 모르고 어디서 킥이 들어올지 몰라, 방어조차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두들겨 맞아야하는 아픔, 그래서 더 아픕니다. 방어가 불가하니까요.


생채기가 나면 그걸 덮을 여력도 없어집니다. 익명에 숨은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기 때문에, 누가 자길 욕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로기 상태에 빠져 더 아픕니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익명 뒤에 숨어 나를 욕하는 것 같은 깊은 우울에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기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기도 하고요.


우리 어린이 친구들을 위한 동화 ‘정의의 악플러’는 악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입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악플이 판을 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이 봐도 무방할 만큼, 쉬운 이해와 예시를 통해 악플의 무서움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공감을 주고요.


책의 주인공은 준하입니다. 준하의 부모님은 서로에게 무관심하죠. 그 모습을 보며 준하는 차라리 부모님이 서로 싸우고 이해하길 바랍니다. 두 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준하의 마음은 아픕니다. 그런 준하에게 태오라는 아이에게 열쇠를 건네받게 됩니다. 이 열쇠는 타인의 마음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신비의 열쇠입니다.


준하는 열쇠를 이용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아이들의 곱절이 되는 덩치와 무서운 얼굴을 이용해 주변인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영운이의 마음을. 준하에게 차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거짓으로 그와 사귄다고 소문내고 다니는 다희의 마음을. 시청률 고공행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스타 한연우의 마음을. 

그리고 그들 속에 자리한 두려움과 약한 마음을 약점 잡아 정의의 악플러라는 이름으로 익명에 기대어 사실보다 더 부풀려 이야기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이 잘못한 만큼 벌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는 준하. 하지만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그를 대해주었던 스타 한연우는 목숨을 잃게 되고 자신을 짝사랑하며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던 다희는 등교거부를 하게 됩니다.


준하는 주변인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볼 수 있는 열쇠로 자신을 시험에 들게 만든 태오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얼른 열쇠를 가져가라고 하지만 그는 한번 건넨 열쇠는 받을 수 없다며 해법을 알려줍니다. 자신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거나 스스로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선으로 열쇠의 힘을 영영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결말은 확정적인 맺음보다는 다소 열린 결말로 끚맺음을 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것이 더 옳은 일일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이제 저는 이 서평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은연 중 했던 가시 돋힌 말들이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아프게 하지 않았을런지요. 같이 반성해보도록 합시다.


오늘, 당신의 키보드는 과연 안전한가요? 

그리고 어제의 키보드는 어땠나요? 안전했던 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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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
김성우 지음 / 쇤하이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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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
“아니 뭐 생각도 안 해보고 대답하시네요. 하하.”
“다시 태어난다면 너희들 셋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어휴, 아들 셋 또 키우시게요?”
“응. 이제는 진짜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거 같아.”
“다음에는 어떻게 키우실라구요?”
“좀 더 크게 키워야지. 크고 넓게.”
“아...”
“엄마가 보고 배우 게 적어서 더 크게 못 키운 거 같아.”
“뭐 이만하면 괜찮죠.”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
“이젠 전보다 세상이 좀 더 크게 보이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이가 차서 멀리 떨어져보고 나니, 문득문득 어머니 글자만 떠올려도 눈물 차오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문자 한 통 제대로 하지 않는 무심한 아들 탓에, 비바람 심한 날엔 혹여 자신의 아들이 기분이 쳐져있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에, 기온차가 심한 날엔 혹여 자신의 아들이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에 먼저 연락을 주시는 어머니 때문에 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건만 어머니는 오늘도 오매물망 아들의 행복 여부에만 관심을 두신다. 그걸 알기에 먼 제주에서 아들 걱정에 밤낮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미어지는 날들이 있다. 스스로를 반성하며 오늘은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드려야지, 영상통화라도 걸어 얼굴이라도 보여드려야지 하다가도 삶에 치여 잊어버리기 일쑤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의 희끗한 머리를 보며 서로가 조금 더 좋은 모습일 때 자주 이야기하고 서로를 돌이켜 보고자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 책 ‘어머니와 나’는 저자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 둘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살펴보며 남긴 지혜의 기록이다.

저자와 그의 어머니는 많은 대화를 통해 각 자가 개인으로 살아온 삶을 공유하며 거기서 얻은 지식들을 공유하고 배운다. 특히 아들보다 오랜 삶을 굳건히 지켜 오신 어머니의 살아있는 지식들은 그 혜안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더불어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드러나는 구절구절에선 내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나는 양육의 좋은 요소로 다양한 경험이나 훌륭한 교육 따위를 떠올렸다. 함께 여행 다니기, 열심히 책 읽어주기 같은 일 말이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에게 무엇을 해 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자녀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베풀어야 할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찰하는 양육을 실천해야한다는, ‘무엇’을 넘어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책은 단순히 어머니가 저자를 키우며 느낀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박한 일상에서 시작한 다양한 주제에 걸맞는 다채로운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302페이지를 읽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고개가 주억거려지고 생각을 다시 해 볼 구절들이 넘쳐난다. 저자와 어머니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항상 좋은 이야기들로 나를 이끌어주던 우리 어머니가 투영되기도 한다. 이야기와 내 사람이 일치되는 순간이다.


인간이 작디작다는 사실을 망각한 이들은 자신을 크다 여긴다. 작은 것들을 멸시한다. 한껏 치켜든 턱, 너희들은 왜 더 커지지 못하느냐며 깔본다. 자꾸만 더 많은 것들을 먹어 치운다. 하지만 그들도 무작정 커질 수는 없다. 때로는 거대한 산이 되려는 야망의 무게를 이기 못해 자기 안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각 자가 작은 존재임을 인정할 때 삶은 커진다. 서로 크다 우기는 사회에서 삶은 초라하고 비루하다. 우리는 그다지 대한할 것 없는, 본디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고, 그래서 괜찮다.


어머니와의 대화 뿐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구구절절 와닿았다.


우린 별 것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서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아웅다웅하는지, 그게 과연 어떤 참 의미들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삶을 살아나가며 거기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번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성공을 한 나 자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으로 그 성공을 가능하게 이끌어 준 ‘노력이 부족한 실패자’ 들 역시 내 관계 안의 중요한 자산임을 인지하라는 부분에서는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시대 진정한 비극은 ‘재능 있는 개인의 열정이 만들어 낸 행복’과 ‘노력하지 않은 이들이 마땅히 견뎌 내야 할 불행’이 스스럼없이 병치된다는 사실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성공을 오로지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으로 그 성공을 가능케 한 이들은 ‘노력이 부족한 실패자’로 불리며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세기의 성공이건 끔찍한 불행이건 그 근원은 사회에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택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예측해서 실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모든 걸 이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만한 종족으로 느껴진다.

 

“어머니의 말을 묻고, 듣고, 옮겨내는 일은 그립다는 말로 덮어버렸던 완료형의 어머니를 진행형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책을 덮은 나는 나의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라는 권경원 영화감독님의 추천사가 와닿는 책이었다.


오늘은 꼭 제주에 계신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쭈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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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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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도 일탈을 꿈꾸지 않는 바른 생활이 어른들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면, 차라리 나는 철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책임진다는 것을 말한다. 혹은 자신의 삶을 결정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를 말한다. 이 소설은 40대가 되도록 여전히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가 자신보다 사랑했던 여성 ‘가오리’라를 만나 느꼈던 감정들과 그 후에 만났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붙여 얼개를 맞춰나간다.

 

앞서 이야기했듯 주인공은 본인의 삶에 대한 어떠한 생각이나 계획이 없다. 새로운 삶을 욕망하고 벗어나고자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박차고 나설 용기는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인구직 시가지를 통해 알게 된 ‘에끌레어 공장’에 우연찮게 들어가, 쉬는 시간 짬짬이 펜팔코너를 뒤지다 알게 된 ‘가오리’를 통해 그의 삶은 변화한다. 삶의 질에 대한 방향성이 틀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해도 다들 잘 살아가니까.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비록 꿈을 이루거나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녀에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적어 보낼 수는 없었다. 봄날 언덕의 아지랑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꿈일지라도 사람은 등에 맨 배낭이 텅 비어있는 경우 앞만 보고 걸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니까. 배낭에 든 짐이 가벼워야 하지만 맨손은 불안하니까. 가망 없는 꿈일지라도 인생길의 동반자로 삼아서 안 될 일은 없으니까.

 

그는 에끌레어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나나세가 매일같이 말하던 철창 없는 교도소를 먼저 출소하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인권 보장에 대한 관심이 없던 시대였던 만큼 그가 새로 들어간 방송국 식자업체에서 그는 무진 고생한다. 언제 업체로부터 연락이 올지 몰라, 기울어가는 경영난 속에서 매일 밤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리며 일을 하다가, 일의 완성을 앞두고 금액을 후려치는 갑질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을병정이 되어서도 그는 열심히 살아간다. ‘가오리’라는 휴게 공간 덕분이었다.

 

내게 달라진 환경은 그리 의미가 크지 않았다. 인간은 현재보다 환경이 악화될 경우 공포감을 느끼듯 좋아질 경우에도 역시 겁을 집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가 일하던 회사는 승승장구하며 커나간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그러한 변화마저 무섭다. 평범한 일상이 깨어지는 순간들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과제가 주어지기에 주인공은 무엇인가 새로 시작되는 상황들이 불편하고 어리숙하기만 하다.

 

남녀 사이에서 내가 볼록이면 상대는 오목인 단순조합은 사실상 없다. 오히려 내가 세모면 상대는 별 모양인 경우가 더 흔하다. 어떤 커플이든 매사 마음이 척척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색한 상황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면 가오리와 난 지금도 이 자리에 함께 있을지 모른다.

 

와중 그의 삶의 휴식처였던 ‘가오리’는 ‘다음 만남에는 CD를 가지고 올게’라는 다소 엉뚱한 말을 하며 그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이 다가왔음을. 초등학교 시절 환락가에서 도시락 배달을 하던 그를 무척이나 귀여워하며 찢어진 교과서를 셀로판테이프로 말끔하게 붙여주었던 스트립걸 나오미 누나나 눈길에 바이크를 타고 달리다 넘어졌을 때 손수건으로 다친 상처를 감싸주었던 야쿠자 형님,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들이비치는 방에서 비록 몸을 팔며 살아가지만 당당하고 밝았던 수와의 만남에서와 같이,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헤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을 전하기 어렵더. 어딘가 굵은 글씨로 헤어질 때 써먹시 위해 근사한 말을 준비해둔다고 하더라도 막상 이별해야 할 상대가 눈 앞에 있으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별의 순간을 오래도록 추억할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별은 그 어디로도 연결되지 않는 문과 같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만남이 SNS라는 공간을 통해 새롭게 이어짐을,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기억이 마주하는 공간에서 다시 시작 됨을 알리며 마무리 된다. 하지만 그 역시도 피상적인 관계의 일련성임을, 우리 모두는 외롭고 고독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러한 피상적인 관계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여전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아이’ 임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이따금 나는 사이버 공간이 숨 막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을 옥죄는 규칙의 존재가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과 SNS로 매일이다시피 인사를 나누지만 정작 그들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상에 놓인 존재들로 보이기도 했더. 모두들 '나, 여기에 있어.'하며 캐릭터를 깜빡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저마다 고독한 존재일 뿐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 고독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1등성부터 6등성까지, 빛의 강도와 크기는 각각 달라도 좀 더 빨리, 좀 더 깊이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다들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아우성을 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야기는 참 잘 읽힌다. 공감할 여지도 충분해보이며 일본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있었을지 납득이 가기도 한다.

 

다만 소설의 번역이 다소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쉽다. 더불어 부잣집에 다니는 학교에 배정되어 3년 내내 유령처럼 다녔다는 이야기와 학기 시작 전 지금은 한 반에 많은 이들로 꽉꽉 차있지만 6개월이 지나면 학생들이 다 나가버려 괜찮을 거라는 선생의 인사가 당연시되는 학교의 특성은 어딘가 이질적으로 보인다.

 

일주일에 한번 씩 트위터에 먼저 연재되어 140자씩 글을 써서 올리다보니 ‘140자 문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이 소설은 이후 웹사이트 등에 내용이 보완되어 연재 끝에 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작가도 아닌 평범한 셀러리맨이 적어내려간다는 건 녹록치 않았을 걸 알기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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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탄생 - 아직도 고양이 안 키우냥?
박현철 지음 / 북레시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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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사랑해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주길 바랄 뿐이다. - 헬렌 톰슨


3년 전, 친구와 함께 살며 2년 정도 고양이 집사로 생활한 적이 있다. 같이 살기로 한 친구가 데려온 고양이들로, 모모(복숭아의 일본어로 복슬복슬한 하얀털이 복숭아의 잔털과 닮아서 붙인 이름)와 링고(사과의 일본어로 단순히 어감이 작고 귀여워서 붙인 이름)라는 이름을 내가 붙여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인간 친화적인 강아지만 키워왔던 내게 있어, 사실 고양이와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영묘하고 위험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강했었기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개냥이들은 그런 초보집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종일관 무릎 위에 올라와 잠을 청하거나 앞다리로 누워있는 내 머리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기 일쑤였다.

   

높은 곳을 좋아하던 두 녀석은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던 컵들을 깨부숴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드는 일이 잦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던 두 녀석은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기 일쑤였는데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해 한참을 찾아다니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영역동물인 두 녀석은 베란다를 통해 한참을 바깥 구경하곤 했는데 강아지를 키웠던 나는 두 녀석이 산책이 하고 싶은가 하는 마음이 일어, 그런 모습이 짠하기만 했다. 그래서 가끔은 두 녀석의 원래 집사인 친구 몰래 그들을 이고지고 –무슨 깡이었는지 끈 한 묶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즐기러 나가는 스릴 넘치는 방황(?)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귀여운 개냥이 두 녀석으로부터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면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감자(작은 볼일)와 맛동산(큰 볼일) 냄새. 두 녀석이 번갈아 들어가며 점령하는 화장실에서 나는 악취는 맡는 즉시 혼절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2분가량 숨을 멈춘 채 녀석들의 화장실을 비워주는데 온 사력을 다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두 냥이 모두 중성화 수술을 받았었는데, 큰 녀석인 모모는 원래부터 조용하고 우아한 품성을 지닌 녀석이라 그런지 조용히 본인의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이 대견하고 예뻤는데 깨방정의 절정체인 둘째 링고는 이틀 여를 이리 쿵 저리 쿵하며 힘들어하고 평소와 달리 조용한 모습에 안쓰럽고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었다. 물론 그 이틀 후에는 더 깨방정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혼나기 일쑤였지만......

   

하지만 원래 집사인 친구의 취업이 결정됨에 따라 두 녀석과 눈물의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요즘은 가끔 연락을 통해 두 녀석의 소식을 전해듣고 있다. 이전까지 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던 그들의 원래 집사는 여전히 책임감이 덜한 사람이라, 나는 항상 문자로 그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 사람들이 고양이를 쉽게 파양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가족의 연을 쉽게 끊을 수 있도록 하자’는 말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신 ‘피치 못할 사정이 잘 생기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자’는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집이 아니더라도 쉽게 고양이를 키울 수 있고, 고양이를 데리고 평소 다니던 곳들을 갈 수 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 「집사의 탄생 : 아직도 고양이 안 키우냥?」 은 나와 같은 초보집사의 좌충우돌 일기 같은 글로, 두 냥이 들과 생활할 때의 감상에 젖게 만들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초보집사에게 필요한 깨알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그가 키우는 성격 다른 두 고양이들의 귀여움을 전한다. 더불어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키움에 있어서는 책임과 이해를 동반해야함을 강조한다. 10년 넘게 함께 살아야 할 반려동물을 입양함에 있어 충분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이 하나하나 이해를 요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집사를 위한, 참 잘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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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도 봄이 올까요? - 결혼 후 엄마가 되기까지, 서투른 초보 엄마의 무한 공감 육아일기
이희정 지음 / 책밥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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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해를 넘기고 나니 결혼에 대한 주변의 잔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거나 외로워지면 하겠지 라며, 지난 칠년 간 미치도록 끈덕지게 붙잡고 늘어지던 관심과 애정을 이제야 다소 놓으신 듯하다.


다만 손자를 보고 싶다는 부모님의 애정 어린 주문(?)은 하나 늘었다. 나 역시도 결혼에 대한 막연한 상황보다는 아이를 낳고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고 싶은 생활은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누리는 내 삶의 즐거움들을 버리고 싶은 마음보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은 철부지 아들은 오늘도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 매일을 투자 중이라 부모님의 이 바람을 당분간은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아 죄스러울 뿐이다. (이 불효자를 용서하옵소서!)


각설하고, 독박육아로 인해 인상이 찌푸려지다가도 딸의 한없는 사랑과 믿음 앞에 무너지는 이희정 작가(본업은 엄마)의 그림 에세이 육아에도 봄이 올까요?’는 갑작스레 생긴 딸로 인해 생기는 에피나 생각들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1장은, 내 또래 쯤 되는 청춘들이면 누구나 느낄 일상의 바쁨과 허무함 등에 대해 공감을 이끈다. 결혼 후에는 결혼 전과 달리 다소 미묘하게 다른 포인트에서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생활형 로맨스를 시작으로, 시댁만 가면 평소 곧잘 하던 것들도 유연함이 없어지고 긴장감이 팽배하게 된다는 시댁 덜덜이는 물론, 쳇바퀴 같은 출퇴근을 반복하며 외치게 되는 때려쳐!, 그리고 여행 전후에 느끼는 감정을 몇 컷 안에서 잘 살려낸 여행에 대한 단상까지, 임신 전의 이야기를 흡사 나 자신이 써내려간 일기처럼 담아 놓았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며 세 번째 퇴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의 감정을 그린 세 번째를 시작으로, 회사에 머무는 동안에는 몰랐던 내 주변의 작은 소음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알지 못했던 곳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낯선 소음을 비롯, 내 아이지만 얼굴만 보고는 누군지 알지 못하겠는 얼떨떨한 상태에서 안겨 받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는 아기와의 첫 만남등의 이야기를 넘어 바쁜 남편을 대신해 육아독박을 담당하며 이해하다가도 혼자만 낳았냐고 울컥울컥 차오르는 화를 쓸어 삼키는 독박에 대하여및 요구하지 않는 끊임없는 사랑을 아이로 받으며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는 사랑받는 일로 끝을 맺는다.


5장에 걸친 짧은 에피들인데다 그림으로 되어 있어 읽기도 쉽고 공감하기 쉬운 내용들을 추려서 그런지 재미있었다. 아직 결혼 전의 내게는 1장의 부분들이 마음에 더 와닿았지만 2장부터 5장을 읽어내려가며 부모가 된다는 일이 참 녹록치 않지만 오롯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행위가 얼마나 신성하고 멋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고 일련의 일들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을 뿐더러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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