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
김성우 지음 / 쇤하이트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어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
“아니 뭐 생각도 안 해보고 대답하시네요. 하하.”
“다시 태어난다면 너희들 셋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어휴, 아들 셋 또 키우시게요?”
“응. 이제는 진짜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거 같아.”
“다음에는 어떻게 키우실라구요?”
“좀 더 크게 키워야지. 크고 넓게.”
“아...”
“엄마가 보고 배우 게 적어서 더 크게 못 키운 거 같아.”
“뭐 이만하면 괜찮죠.”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
“이젠 전보다 세상이 좀 더 크게 보이니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이가 차서 멀리 떨어져보고 나니, 문득문득 어머니 글자만 떠올려도 눈물 차오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문자 한 통 제대로 하지 않는 무심한 아들 탓에, 비바람 심한 날엔 혹여 자신의 아들이 기분이 쳐져있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에, 기온차가 심한 날엔 혹여 자신의 아들이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에 먼저 연락을 주시는 어머니 때문에 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건만 어머니는 오늘도 오매물망 아들의 행복 여부에만 관심을 두신다. 그걸 알기에 먼 제주에서 아들 걱정에 밤낮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미어지는 날들이 있다. 스스로를 반성하며 오늘은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드려야지, 영상통화라도 걸어 얼굴이라도 보여드려야지 하다가도 삶에 치여 잊어버리기 일쑤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의 희끗한 머리를 보며 서로가 조금 더 좋은 모습일 때 자주 이야기하고 서로를 돌이켜 보고자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 책 ‘어머니와 나’는 저자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 둘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살펴보며 남긴 지혜의 기록이다.

저자와 그의 어머니는 많은 대화를 통해 각 자가 개인으로 살아온 삶을 공유하며 거기서 얻은 지식들을 공유하고 배운다. 특히 아들보다 오랜 삶을 굳건히 지켜 오신 어머니의 살아있는 지식들은 그 혜안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더불어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드러나는 구절구절에선 내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나는 양육의 좋은 요소로 다양한 경험이나 훌륭한 교육 따위를 떠올렸다. 함께 여행 다니기, 열심히 책 읽어주기 같은 일 말이다.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에게 무엇을 해 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자녀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베풀어야 할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찰하는 양육을 실천해야한다는, ‘무엇’을 넘어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책은 단순히 어머니가 저자를 키우며 느낀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박한 일상에서 시작한 다양한 주제에 걸맞는 다채로운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302페이지를 읽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고개가 주억거려지고 생각을 다시 해 볼 구절들이 넘쳐난다. 저자와 어머니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항상 좋은 이야기들로 나를 이끌어주던 우리 어머니가 투영되기도 한다. 이야기와 내 사람이 일치되는 순간이다.


인간이 작디작다는 사실을 망각한 이들은 자신을 크다 여긴다. 작은 것들을 멸시한다. 한껏 치켜든 턱, 너희들은 왜 더 커지지 못하느냐며 깔본다. 자꾸만 더 많은 것들을 먹어 치운다. 하지만 그들도 무작정 커질 수는 없다. 때로는 거대한 산이 되려는 야망의 무게를 이기 못해 자기 안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각 자가 작은 존재임을 인정할 때 삶은 커진다. 서로 크다 우기는 사회에서 삶은 초라하고 비루하다. 우리는 그다지 대한할 것 없는, 본디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고, 그래서 괜찮다.


어머니와의 대화 뿐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구구절절 와닿았다.


우린 별 것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서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아웅다웅하는지, 그게 과연 어떤 참 의미들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삶을 살아나가며 거기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번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성공을 한 나 자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으로 그 성공을 가능하게 이끌어 준 ‘노력이 부족한 실패자’ 들 역시 내 관계 안의 중요한 자산임을 인지하라는 부분에서는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시대 진정한 비극은 ‘재능 있는 개인의 열정이 만들어 낸 행복’과 ‘노력하지 않은 이들이 마땅히 견뎌 내야 할 불행’이 스스럼없이 병치된다는 사실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성공을 오로지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으로 그 성공을 가능케 한 이들은 ‘노력이 부족한 실패자’로 불리며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세기의 성공이건 끔찍한 불행이건 그 근원은 사회에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택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예측해서 실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모든 걸 이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오만한 종족으로 느껴진다.

 

“어머니의 말을 묻고, 듣고, 옮겨내는 일은 그립다는 말로 덮어버렸던 완료형의 어머니를 진행형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책을 덮은 나는 나의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라는 권경원 영화감독님의 추천사가 와닿는 책이었다.


오늘은 꼭 제주에 계신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쭈어야겠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