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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순간들
서늘한 지음 / 늘한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창피하다는 이유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차마 전하지 못한 말들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용기를 내어 전하려고 해도 전할 수 없는 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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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며칠 전 친구에게서 너의 소식을 들었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우린 이미 안녕을 고한지 8개월하고도 2주가 지난 상태라, 그 소식을 전한 친구에게 난 애써 씁쓸한 마음을 숨기고 괜찮은 척 이야길 했어. 꽤 오래되었다고 하더라. 여전히 드문드문 생각나는 너 때문에 힘이 들때도 있었던 내가 갑자기 조금 초라하게 느껴진 순간이기도 했어.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너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간 내가 너에게 잘 해주지 못 한 만들을 많이 해주길 바란 순간이기도 했어.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정말 우연하게 멀리서 너를 봤어. 여전히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향해 맑게 웃어주는 너를 보니, 이제 정말 괜찮아지더라. 정말 너와 난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조금 나도 편안하게 뒬돌아 웃을 수 있게 되었어. 이것 역시 덕분이야.
그동안 고마웠어. 미안했고 그리고 사랑했다.
B. 어버인날을 맞아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갔어. 간 김에 하룻 밤 지샐 요량이었지.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과 식사를 마치고 들어선 내 방은, 십 여년간 주인을 잃어서 그런지 휑하고 낯설었어.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었지만 여전히 잘 정돈된 방을 보니, 괜한 감정이 올라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어. 그러다 책상 서랍장에 있던 낡은 사진첩에서 너의 사진을 발견했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네가 누군가를 찾듯 끼옹끼옹 우는 사진이었어. 엄마를 찾던 거였는나? 아니, 어쩌면 밥을 달라고 하던 때였는지도 몰라. 한창 어미 젖을 물고 있어야 할 시기에 단 돈 몇 만원에 우리 집에 왔거든, 네가. 그런 너를 친구들은 잡종이라고 놀렸지만 그래도 난 네가 좋았어. 양쪽 귀가 달랐지만 내 말이면 어디서든 쏜살 같이 달려와주던 너. 어정쩡하 다리 길이와 몸통 때문에 소형견도, 그렇다고 중형견으로 구분하기가 애매했지만 나에게만은 언전네 응석받이 어린 꼬마가 되던어 내 볼을 핥아주던 너. 그 어떤 강아지보다 주인을 향한 충성심과 사랑이 남달랐던 너를 말이야.
그런 네가 아버지와 산책을 나갔다가 목줄이 풀린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날. 난 밥을 먹다 꺼억꺼억 울며 밥알을 삼켜야 했었지. 재대로 된 사랑 한번 해주지 않고 받기만 했었는데, 그런 순간들이 떠올라 너무 힘들었어.
그렇게 또 아침이 밝았고, 아침마다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나를 깨워주며 인사를 해주던 너의 인사를 더 이상 받지 못하고, 그런 너를 아파트 공원에 묻으며 내가 먼저 안녕을 고하던 날,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어. 그런 너를 잠시 잊고 살았는데, 네 사진을 보자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
안녕, 잘 지내지? 잘 먹고 잘 지내고 행복하게 꽃길만 걸으렴. 착한 나의 동생이었던, 나의 사랑아.
이별은 똑같지 않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은 그 사람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이별은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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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안녕 :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순간들'은 우리가 말하는 안녕이라는 말의 이중적 의미에 의의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 단편 산문집이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 외치는 '안녕'과 이별의 고할 때 읊조리는 '안녕'을 두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그 만남과 헤어짐의 중간에 항상 '안녕'이 있음을 되짚어준다.
하지만 소재를 단순히 애정적 이별과 만남에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동생이나 친구 등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은 이별을 이야기하며 그러한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한 선택 기로에서 놓아야 할 것 -이별의 안녕-과 그것을 통해 새로 얻을 수 있는 것-새로운 안녕- 과 같은 안녕의 순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더불어 만남과 이별을 날씨에 비유하여 봄의 안녕과 겨울의 안녕을 통해 어떤 시간적 순간에도 분명 만나과 이별이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당연히 애정적 문제의 이별과 만남을 고할 뿐이라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한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에겐 생각보다 많은 이별과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안녕의 순간이 있음을.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통해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긴 호흡으로 책을 읽지 못 하거나, 어떤 이별에 대해 숨이 컥컥 막힐 만큼 힘들어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픈 책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