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땅 따먹기’ 120년 - 식민지에서 제국으로
김용일 지음 / 이다미디어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인류 역사에서는 세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유럽 문명의 뿌리를 이루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 유럽 대부분 및 중동,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면서 지중해를 내해로 만든 로마, 극동에서 동유럽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면서 동과 서의 교류를 촉진한 몽골 등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776년에 건국된 비교적 '신생' 국가입니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한 미국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미국의 땅 따먹기 120년' 에서는 미국이 어떻게 영토를 늘려왔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에는 엄연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처음 와봤다고 해서 아메리카는 '발견' 한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탐험가와 무역상들이 왔으며 이후에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메리카에도 유럽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세운 식민지처럼 아메리카도 식민지였는데 같은 유럽인으로서 차별이 심해졌기 때문에 점점 자신들은 유럽인이 아니라 아메리카인이라는 자각이 생겨났고 결국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식민지 초기에는 주로 이주민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민이 늘어나 독립을 할 당시에는 벌써 13개의 주가 있었습니다. 북동부에 위치한 이 주들은 오늘날에도 미국을 이루는 핵심 지역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무척 넓지만 13개 주의 서쪽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빈 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건국 당시의 땅만으로 충분하였지만 점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땅이 부족해졌는데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루이지애나는 미국 영토를 2배 이상으로 확장한 커다란 사건이었네요. 현재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한 주이지만 과거 프랑스 왕 루이의 이름을 딴 루이지애나는 미시시피 강에서 로키 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프랑스는 아메리카의 루이지애나를 관리할 여력이 없어서 미국에 팔았는데 미국은 루이지애나 획득을 통해 태평양까지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네요.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거대한 서부 영토를 추가로 획득한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고 하와이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면적이 되었습니다. 알래스카를 매입할 당시에는 쓸모없는 땅을 샀다고 하면서 이를 주도한 수어드의 이름을 따 '수어드의 냉장고' 라고 놀렸지만 현재 알래스카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지하자원이 발견되면서 미국의 보물이 되었네요. 태평양에 자리하고 있는 하와이 역시 태평양을 관할하는 미국의 주요 군사기지이면서 관광지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토 야욕은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였지만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초반부터 그린란드를 매입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든다고 하였고, 베네수엘라의 내정에 간섭해 대통령을 체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동과도 전쟁을 벌이면서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가 되는데 미국의 모든 주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허나영 지음 / 비에이블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에 따라 어떤 그림을 보면 좋을지 저자의 그림 이야기 기대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허나영 지음 / 비에이블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예전에 고흐나 피카소 등 유명 화가들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갔었습니다. 딱히 미술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이름을 들어본 화가라서 갔었는데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네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배울 때에는 작은 책으로 보다보니 그림이 얼마나 큰지, 붓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실제로 그림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그림도 있었고 두터운 붓터치도 보면서 마치 화가가 막 그림을 완성하고 붓을 내려놓은것 같았네요. 이제는 어떤 전시회에 갈까 고민이 될 정도로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주말마다 고민이 됩니다.


어떤 그림은 유명하다고 하지만 막상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어떤 그림은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지나치지만 나에게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에서는 그날 그날 날씨와 기분에 따라 저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가장 감정적으로 끌렸던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호퍼는 미국 화가로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마다 왠지 모를 고독감이 느껴지네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에서는 늦은 밤 집에 가지 않고 바(Bar)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 일을 끝낼때면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지만 어떤 날은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가 있네요. 그런 때는 조용한 바에 들어가 독한 술을 한 잔 시켜놓고 마시고 싶어집니다. 혼자 있어서 고독하지만 그 시간이 꼭 고독하지만은 않은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니 오늘 밤에는 바에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위스키 한 잔 따라놓고 마셔야 겠습니다.


미술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그중에는 살아있을때 인정을 받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화가도 있고, 전혀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이름이 알려진 화가도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에서 화가로서 절정의 위치에 올랐고, 귀족들의 의뢰를 받으면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낭비벽이 있어서 돈을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계속 돈을 벌때는 모르겠지만 전성기가 지나면서 그림 의뢰도 끊어졌네요.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한데 나이에 따라 얼굴이 바뀌는 것을 보면 각각 인생에서 어떤 시기를 보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쓸쓸한 말년을 맞이하였지만 그래도 현재에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어떤 그림을 보면 무척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어떤 그림은 마음이 불편하네요. 특히 죽음이나 불안을 다룬 그림은 피하고 싶은 현실이기에 더 불편합니다. 뭉크가 그린 '절규' 는 각종 영화나 포스터 등에 패러디되면서 친숙한 이미지이지만 그가 남긴 글을 보면 그때 얼마나 불안한 상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뭉크는 어렸을때 어머니를 잃은 데다가 몇 년 후에는 어머니처럼 돌봐주던 누나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번 사랑에도 실패하면서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았네요. 그래서 뭉크의 그림을 보면 슬프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 속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자신이 감동을 느끼면 좋은 그림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뛰어난 그림이지 않을까요. 이러한 그림에 감정을 담아서 보니 그림이 새롭게 느껴지는데 저자의 그림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대학로 -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음의 거리 대학로가 조선시대 성균관 시절에는 어떤 분위기였을지 궁금하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대학로 -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혜화에 있는 대학로라고 하면 왠지 낭만이 느껴집니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 크고 작은 연극이 올라가는 소극장들, 각각 개성있는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청년들 등 마냥 걷기만 해도 좋을것 같아요. 대학로 근처에는 많은 대학이 몰려 있어서 이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대학로라고 불리게 되었네요. 대학로에는 지금은 이전을 하였지만 서울대가 있었고, 더 멀리로는 조선의 고등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교육 기관이어서 별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성균관은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성균관을 둘러싸고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었네요. '조선의 대학로' 에서는 성균관 및 성균관 바로 옆의 반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개국을 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성균관을 세워 체계적으로 양성하였습니다. 고려가 개성에서 학교를 운영할때 잡무를 하던 노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한양으로 오면서 성균관 옆에 자리를 잡아 반촌이 생겨났습니다. 반촌에 사는 반인들은 한양에 와서도 개성에서 쓰던 말을 그대로 쓰고, 반인들끼리 결혼을 하면서 자식을 낳는 등 마치 국가 안에 있는 또다른 국가 같은 느낌이었네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반촌 안으로 숨어들어도 성균관이라는 특성상 형리들의 출입을 금했다고 하니 정말 유대인들끼리 모여 살았던 게토를 연상케 합니다.


반인 사람들은 오직 성균관을 위해 존재하였습니다. 애초에 개성에서도 교육 기관을 위한 노비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한양에서 같은 역할을 하였는데 성균관 사람들이 반촌에 기거하면서 숙식할때 도움을 주었고,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의 하숙집 역할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하숙 관계가 아니라 유생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쏟아부었기에 만약 유생이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당당히(?) 그동안의 지원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였습니다. 막 관리가 된 유생들은 돈이 없으므로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네요. 반인들은 상업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고 하니 인재에 대한 계산도 빠른것 같아요.


반인들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고 유생들의 하숙집 역할을 하였다고 해서 지식 수준까지 낮았던 것은 아닙니다. 성균관은 고등 교육 기관으로 학문에 대한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반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반인 중에서도 학문에 뛰어난 사람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이 쓴 시로 엮은 '반림영화' 는 반인들의 문학 수준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분의 한계상 관리로 등용되기 어려웠지만 만약 과거 시험에 제한이 없었다면 반인들 중에서도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충분히 나왔을것 같아요.


조선의 전성기에는 반촌의 역할이 중요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국력이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성균관이 무너지자 결국 반촌도 해체되었네요. 지금은 과거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대학로를 중심으로 주변이 크게 바뀌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대학로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주말에 시간이 되면 혹시 남은 흔적이 있는지 한번 걸으면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