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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주말동안 퀴어소설 한편을 읽었다.
500페이지 분량이었지만 나의 밤, 나의 새벽을 온통 할애한 덕분에 3일만에 완독하고
주말오전 서평을 쓰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인 '수영장 도서관'의 단서를 찾기 위해 나는 제법 긴 시간 이 책 읽기에 몰입했다.
'수영장 도서관'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동성애자들의 은어(隱語:argot)다.
즉, 어두컴컴한 지하 수영장의 탈의실을 그들은 그렇게 부른다.
그곳에서는 그들만의 은밀한 세계가 존재한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상상하기 힘든 세계를 이 책을 통해 보며 책을 읽는 중간 자주
혼란스러움의 공간에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그 세계의 은밀함에 몇 번씩이나
거부감을 느끼며 책 읽기를 주저했지만, 마지막에는 부커상 수상자가의 독보적인
문체들에 완전히 몰입되어 완독 후의 성취감에 잠시 주말오전의 행복감에 젖어든다.
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퀴어소설 '아름다움의 선'의 작가인 앨런 홀링허스트는
이 책 '수영장 도서관'을 1983년 집필한 이후 1988년까지 출판사를 찾지 못해 고전했다고 한다.
아마도 책의 내용에 여성은 1도 등장하지 않는 남성 동성연애의 이야기가 그 당시
사회적인 상황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agenda 임에 분명했을 것이다.
'수영장 도서관'은 영국 사회 전반, 나아가서는 근대 서구문명과 관련된 큰 문제를
핵심적이고도 섬세하게 성찰하는 작품이다.
20세기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와 동성애자가 겪은 역사와 경험을 구체적이면서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동성애자인 20대 중반의 주인공 윌리엄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공중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80대 노인 찰스(동성애자)를 심폐소생술로 구하는 데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런던 시내 신사 클럽인 '코리'의 회원인 두 사람은 얼마 후 이 클럽 수영장에서
조우하게 되고 찰스는 윌리엄에게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작품은 윌리엄이 찰스의 전기를 쓰기 위해 찰스가 준 자료들 즉, 그의 일기와 윌리엄의
현재 생활을 엮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영국 사회에서의
동성애의 역사, 거기에 스며든 근대 제국주의의와 특권층의 야만적인 사건과 마주한다.
작품의 주인공 윌리엄과 찰스는 영국의 특권층 귀족으로 시대적 이질감은 있지만
영국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 출신이다.
또한, 주인공 찰스와 윌리엄은 현재 영국 왕세자 찰스와 다음 왕위 계승 순위인
그의 장남 윌리엄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 두 주인공들이
영국 지배계층의 서양중심 강자 위주의 세계관을 어느정도 체현하고 있다.
작가가 작품에서 의도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영국 사회를 지속적으로 지배해온 강자와
다수 중심의 세계관과 구조에 대한 각성의 계기를 부여하며 한 동성애자의 경험과
각성이라는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영국 사회, 나아가 서구 근대문명의 근간인 강자와
다수 중심의 세계관과 권력구조를 성찰하게 한다.
주인공 윌리엄은 찰스의 전기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수십년에 걸친 그의 일기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윌리엄의 조부는 현재는 몇 개의 계열사를 가진 대기업의 회장이며 귀족인 백위스경이지만
과거 1950년대는 검찰총장으로 동성애 박해의 최고봉에 앞장섰던 인물로 찰스를
본보기로 감옥에 보냈던 장본인이며 그 덕분으로 귀족이 되고 현재의 특권과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의 부러울것 없는 방만한 현재의 동성애 생활의 배경에 동성애자 박해자였던
그의 조부가 있었다는 아이러니컬한 결말.........
찰스가 백위스경의 손자에게 자서전을 부탁한 의미.........
그의 절친 제임스의 체포.........
그의 미성년 동성애인 필의 외도..........
영국은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인 1983년 이후 동성애자 마녀사냥이 부활하였다.
1984년 이후 10년간 대처의 보수당 정권이 에이즈 유행을 빌미로 1988년 공공기관에서
동성애 장려활동 금지를 규정한 '섹션 28'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시대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동성애자 주인공 윌리엄은 절친 제임스의 체포에
당면하며 막강한 권력 앞에서 성소주자들이 할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직접 부딪혀야만 한다는 사실,
나아가서는 현재의 권력구조에 안주할 수 없다는 연대의식을 통해 실천의지로 이어지며,
동성애 박해로 나타나는 사회구조의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인식과 고민으로 종결된다.
'수영장 도서관'은 익숙하지 않은 남성 동성애의 세계가 다소 충격적인 부담감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중심, 강자 위주 근대문명에 대한 반성과 인간다운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평등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지상의 모두가 공존공영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우리 사회의 노력에 작은 물결이라도
보태주기 바란다는 옮긴이 전승희의 말이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메아리 치기를 바라며
약자의 권리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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