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을유세계문학전집 149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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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탈리아 북부의 한 버려진 수도원(빌라 산 지롤라모)을 배경으로 4 명의 부서진 영혼들이 모여들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책을 읽고 오랜 시간 감동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책이 가져다 주는 감정의 무게는 오래도록 그 책의 시선에 머물게 한다.
이른 새벽 동이 터 오를 무렵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5일 정도 이 책을 잡고 있었는데 200페이지를 넘기면서 잠시도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힘들다. 
 
솔직히 책의 첫 부분은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으로 얽혀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며 이야기의 연결을 이해하고 부터는 저자 '마이클 온다치'에 대한 존경심이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이런 방대한 공간의 서사를 다루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부커상 수상작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에 해당된다는 의미가 이런 걸작에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에 나오는 4명의 주인공 중에서 21살 간호사 해나에 대한 궁금증이 소설 처음부터 왜? 라는 질문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화상을 입은 알마시를 끝까지 간호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소설의 말미에서 알게 되면서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사실 이전까지 그녀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에 대한 미안함보다 그녀의 헌신에 눈물이 났다.  
 
해나의 아버지인 패트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선에서 전사했다. 그는 군대에서 복무하던 중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 아버지의 마지막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모두가 떠난 빌라에 그녀를 남겨두게 했다. 
 
영국인 환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모두 그를 두고 떠났다.
해나에게 알마시를 간호하는 행위는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뒤늦은 속죄이자 헌신이었다. 
 
전쟁이 끝나가면서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이동하지만, 해나는 그를 두고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카라바조는 해나의 아버지인 패트릭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며, 해나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가족 같은 존재였다. 
 
친구인 패트릭이 세상을 떠났기에, 카라바조는 그의 딸인 해나를 안전하게 캐나다로 데려가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카라바조는 과거 정보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독일군에게 협력했던 스파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으며, 해나가 돌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환자가 혹시 자신이 쫓던 그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한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화상을 입은 실제로는 헝가리의 백작인 알마시는 사랑하는 연인 캐서린의 시신을 수습하려 할 때 영국군이 그의 이름 때문에 스파이로 체포하면서 삶 자체가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실존 인물인 라슬로 알마시 역시 헝가리 귀족이었으며, 실제로 사막 탐험가이자 고고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작가 마이클 온다치는 이 실존 인물의 '국적을 넘나드는 방랑자'적 기질을 가져와, 전쟁이라는 거대한 국적 싸움 속에서 길을 잃은 비극적인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공병인 킵이 빌라를 떠난 결정적인 계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소식이다. 그는 인도인으로서 영국군에 자원해 폭탄 제거반으로 복무하며 목숨을 걸고 서구의 문명을 지켜왔다. 그러나 원자폭탄 소식을 듣는 순간, 그는 이 전쟁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의 감정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훨씬 복잡하고 비극적인 환멸과 각성에 가깝다.
킵은 서구 열강이 결코 유럽 내에서는 원자폭탄 같은 끔찍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갈색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들에게 망설임 없이 투하된 폭탄을 보며, 자신이 충성했던 서구 문명의 잔인함과 이중성에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국가와 정체성, 그리고 전쟁이 파괴한 사랑을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소설 전체적인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오래도록 마음 속에 여운으로 남는다.
전 세계를 휩쓴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휘말렸던 인물들의 삶을 어떻게 이렇게 환상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킵이 오래 시간이 지난 후 해나를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이 화면으로 다가와 내 가슴에 오래도록 머물러있다.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다. 
 
#잉글리시페이션트 #을유세계문학전집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독서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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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인생 수업 - 세기의 지성이 건네는 24가지 지혜
성기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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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인생수업 
 
러셀에게 진정한 행복은 세상과 인류에 대한 연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러셀은 위대한 휴머니스트다.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극복하고자 애쓴 지식인이다. 
 
나는 그동안 내 마음 속에 어떤 철학자를 품고 있었나?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다.
야스퍼스에게 '실존'이란 단순히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결단'이라는 그 마력에 이끌려 야스퍼스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또 한 때는 내 박사 논문의 주제였던 음악교육철학자 베넷 리머에 심취했던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들에게 품었던 동경은 막연함이었다. 
 
세기의 지성 러셀의 24가지 지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98년 긴 인생사에서  네 번의 결혼을 한 그의 삶은 사랑과 지식과 연민으로 가득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라고 말한 러셀의 문장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러셀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의 사유는 관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세계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적 사유를 읽는 독자는 그의 글을 어려워 하지 않는다. 
 
러셀은 누구보다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한 철학자다. 그는 사랑을 이렇게 예찬한다. 사랑은 '혼자 됨'의 결핍과 불편을 극복하게 해주고,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며, 천국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하여 일과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 정신분석학자 '프롬'의 말처럼~ 
 
러셀은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라고 규정했다. 부부가 큰 행복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결혼은 그런대로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결혼에 환상을 갖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또한 러셀은 '지식'을 통한 행복 찾기를 고민한 철학자다. 그는 지식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이 없는 지식은 파괴적이라고 했다.
부모에 대해서도 부모가 모범이 되지 않으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신뢰는 깨어진다고 했다.  부모도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녀 사랑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소유욕이 침범할 경우 그 사랑은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 말고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나의 목표는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향상 시키는 것이다."
"오직 어제의 나와 경쟁하라" 
 
인간사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러셀은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세상은 불행하다고 보았다.  
 
질투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물 한 방울 주지 않아도 잡초처럼 잘 자라는 것이 질투심이다. 그렇지만 러셀은 질투는 평범한 인간 본성이 가진 특성 가운데 가장 불행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질투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으로 규정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시기심은 살아 있는 자에게서 자라다 죽을 때 멈춘다"고 했다. 
남에 대한 부러움이 질투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남을 쏘려다가 자신을 쏜다"고 말한 맹자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이 책의 저자는 세기의 지성 러셀이 전하는 24가지의 지혜를 다양한 철학자들의 말을 함께 빌려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러셀과 의견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철학적 사유들이 접목된 책이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세기의 지성 러셀과 친절한 대화를 이어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좋은 글귀들이 많아 유독 책에 많은 밑줄을 긋고 읽었던 책이다. 
 
마음속에 러셀이라는 한 철학자가 들어와 버렸다. 
 
#러셀의인생수업 #을유문화사 #교양 #철학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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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소네트집
다이앤 수스 지음, 황유원 옮김 / 김영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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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무언가에 의한 강력한 한 방을 맞은 느낌이다. 
고전적인 소네트 형식을 빌려와 가장 날 것의 인생을 담아낸 파격적인 작품이다.
솔직히 시를 읽는 내내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었던 순간이 셀 수도 없이 많다.
" 도대체 뭐라는 거야?, 무슨 뜻이야?"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언어의 강력한 차용에 매번 놀랐다. 
 
이 소네트집 읽기를 끝내고 '다이앤 수스'에 대한 검색을 여러 번 했다. 
 
이 시집의 원제인 'frank'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시인의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프랭크 스탠퍼드'에 대한 오마주이며,
다른 하나는 '솔직한, 숨김없는'이라는 형용사적 의미다. 
 
한국어판 제목인 '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은 서양의 오래된 속담인
"Wish in one hand, shit in the other, and see which one fills up first"
에서 따왔다.  
 
'아무리 간절한 소망이 있어도, 결국 손에 먼저 만져지는 것은 비루하고 구체적인 현실, 즉 고통, 배설물' 이라는 냉소적이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소네트는 본래 엄격한 각운과 14행의 형식을 가진 귀족적이고 전통적인 시 형식이다. 수스는 이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의 내용을 마약, 가난, 죽음, 성, 질병 등 가장 하류의 언어로 채워 넣었다.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의 삶을 관통한다. 미국 미시간주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자란 유년 시절, 뉴욕에서의 방탕하고 위험했던 젊은 날, 에이즈로 죽어간 친구들, 그리고 홀로 아들을 키워낸 세월이 교차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인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는다. 고통을 전시하기보다, 그 고통이 자신을 어떻게 빚어냈는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프랭크'라는 존재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거침없는 예술적 태도' 그 자체를 상징한다. 
 
시에 대한 평론에서 작가 '요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시라기보다는 어떤 짐승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소네트라는 안전한 철창이 있지만 어쩐지 당장이라도 이 틀을 뜯어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쾌감으로, 나는 숨죽인다. 한없이 연약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이 짐승의 문장에서 낮은 진동이 느껴진다. 으르르르." 
 
이 문장을 읽으며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다이앤 수스의 시는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는 야수 같다. 그 시작은  공포스럽고 과격하지만 그 진흙탕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14행이라는 절제된 형식은 자칫 감정 과잉으로 흐를 수 있는 고통의 서사를 팽팽하게 잡아주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알 수 없는 결핍을 느꼈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그 결핍의 근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시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결핍의 근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돈이 없고, 아버지가 없고, 안정적이 삶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결핍을 슬퍼하는 대신, 그 빈자리를 터질 듯한 은유와 리듬으로 채워나간다.  
 
"한 손엔 소원을 빌지만, 결국 다른 손의 똥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비루한 생애를 향해 그녀는 "그래도 그것이 너의 삶"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를 건넨다. 
 
"소네트는, 가난처럼, 없이도 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한 손에는 소원을 쥐고, 
다른 손에는 똥을 쥐는 거다.
가난은, 소네트처럼, 훌륭한 선생님이다" 
 
시를 읽으며 전통적인 시 형식이 현대적 소재와 만났을 때의 폭발력을 느낀다.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강인한 문장들 속에서 스스로 해방감을 느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내 버리는 폭발력을 감지한다.
 
가장 낮은 곳의 언어로 쌓아 올린 수스의 시에서 가장 높은 곳의 예술적 성취를 마주하게 된다. 
언어가 문장이 되어 강력하게 피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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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 취향과 안목이 부가 되는 희소성의 경제학
윤성원 지음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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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책의 표지에 
'취향과 안목이 부가 되는 희소성의 경제학'이라는 문구를 책을 읽고 나서 이해하게 된다. 
 
보석을 예쁜 것, 비싼 것으로만 소비하는 시대는 지나야 된다는 생각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의 한 부분이라는 작가의 에필로그를 읽었다.
작가의 그 생각이 나 같은 보편적인 사람들에게는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는지 작가는 상상을 못할 것이다. 
 
단지 보석이 경제적 개념의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으며 보석이 시간과 안목을 만드는 자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름다움과 가격!
보석에 이런 경제적 논리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보석의 역사와 함께 내재된 서사가 보석의 가치를 엄청나게 높여준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다양한 경로를 거치며 그 빛을 발하는 보석이라는 존재에 매료되었다. 
 
보석의 가격은 아름다움이나 스펙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타고난 물성, 거쳐온 서사, 거래의 경로가 겹치는 지점에서 보석의 가격은 만들어진다고 한다. 
 
나 같은 일반인이 생의 프레임에서 얼마나 많은 보석을 가질 기회가 있을까? 좌절감에 앞서 보석이 권력과 함께 해 온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은 너무 흥미로웠다. 
 
'보석은 주인보다 오래 산다'는 문구에서 웃음이 나온 것은 한 때 화려한 보석은 황제의 장신구에 사용되었을 거라는 책의 내용을 보며 인간의 허무한 생 앞에 찬란한 보석이 상징하는 다층적인 면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보석의 빛은 신의 영광을 비추는 것이니, 황제가 보석을 착용하는 건 사치가 아니라 의무다" 라고 비잔틴 신학자들은 1,000년 가까이 이 논리로 버텼다고 한다. 
 
전장에서 보석은 한 때 용기의 상징이었다. 흑태자 루비를 투구에 박고 전장에 나간 영국의 헨리 5세는 달려드는 프랑스 기사를 그 자리에서 물리쳤고 전투는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기술이 불러온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탄생!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하 150~250킬로미터 깊이에서 형성되는데 10억 년, 20억 년 이 넘는 시간의 흔적을 품는다.
반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몇 주 만에 자라난다고 한다.
그런데 두 다이아몬드가 똑같다면? !!
하지만 랩그로운이 보편화될수록 천연의 희소성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부의 판도를 바꾼 대항해시대의 보석 전쟁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그런데! 신대륙에 닿은 유럽의 관심은 탐험이 아니라 금이었다는 사실! 
 
급기야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질에 투자를 했다니!
여왕은 해적질에 투자를 한다. 목표는 에스파탸 보물선이었고, 보물선을 나포해서 배 안의 보물을 전리품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여왕은 그 전리품으로 정부 부채를 상환했고 투자자들은 원금의 47배를 회수했다고 한다. 영국은 이 자금으로 해군을 키웠고 몇 년 뒤 에스파탸 무적함대가 영국해협에 나타났을 때 맞서 싸울 수 있었단다. 
 
사실 책을 읽으며 처음 듣는 이름의 많은 보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서와 보증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책은 보석의 역사와 보석의 시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보석 시장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주얼리를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는 소비자의 관심이 확대되었다. 
보석이 특정 지배계층의 영역에 관여한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보석에 투자해서 자손에게 물려주는 상상을 해 보았다.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금'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주변 이야기를 듣고 가끔 누군가는 '금'에 투자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먼 나라 사람 이야기로 간주했다. 
 
알고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그동안 보석은 특정인의 소유물로만 취급했었는데 그러한 개념이 조금 무너졌다. 
 
추정가의 몇 배나 웃도는 낙찰가를 이끌어낸 리처드 버튼이 테일러 버튼에게 건넨 다이아몬드 이야기는 세상의 많은 경제 개념이 화폐의 가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석에 담긴 서사는 유명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석을 건넨 이와 그 이유, 함께 보낸 세월 등의 이력이 누군가의 보석함에 쌓이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무엇이 보석의 가격을 결정하는가?"
이 책은 그 해답을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나는금대신보석을산다 #다이아몬드 #재테크 #보석 #책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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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 릴케와 카푸스 왕복 서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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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릴케와 카푸스의 왕복 서한집을 읽었다. 
 
이 책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시인 지망생인 카푸스가 당대 최고의 시인
릴케에게 보낸  질문들에 대한 응답이다.
카푸스는 자신의 시가 수준이 있는지,
시인의 길을 가야 할지 묻지만,
릴케는 기술적인 비평 대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전한다. 
 
이 서한집에서 릴케가 가장 강조하는 키워드는
단연 '고독'이다. 그는 고독을 피해야 할 외로움이 아니라,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필수적인 공간으로 정의한다. 
 
내면으로의 침잠을 강조하며
"밖을 보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릴케는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는 써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인간에게 가장 값진 것이란 내면 속에
의식할 수 없는 상태로 조용히 도사리다가 
어느 날 영혼 표면에 나타나는 것,
언제나 장대하게 존재하다 가차 없이 출현하는
그 무엇이었던 것입니다" 
 
릴케는 평생에 걸쳐 신중한 작가였다.
자신의 일기나 서신을 출판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릴케는 '서한문'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담았다.
또한 이 편지가 카푸스를 넘어 많은 이의 마음 속으로
퍼져나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편지글에서 릴케는 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실용적인
조언을 하지 않고,  되레 수많은 조건을 정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다.
그리고 그 조건이 지켜졌을 때 예술 작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신은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지금 해서는 안 될 일이겠습니다.
누구도 당신께 조언하거나 도울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요.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따름입니다.
자기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께 쓰기를 종용하는 마음의 기저를
캐 보십시오.
그 기저가 심장 깊숙이 뿌리를 뻗치는지
확인하시고, 글쓰기가 금지 당할 경우
죽을 수밖에 없는지 스스로에게 고해 보십시오" 
 
현대인들은 즉각적인 해답을 원하지만,
릴케는 "해답을 살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삶의 질문들을 품고 살다 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그 해답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 책은 또한 예술적 담론에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 
 
릴케에게 사랑이란 타인에게 몰입하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하고,
경계를 짓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며 함께 성장하는
성숙한 관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서한집이 오늘날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젊은 예술가' 혹은  방황하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이 문장은 성과 중심의 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릴케의 문장은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삶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라는 단호함이 서려 있다. 
 
이 편지글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다.
릴케의 명성에 비해 카푸스의 글들에 대한 저 평가다.
카푸스는 결국 릴케가 기대했던 방식의 위대한 시인이 되지 못했지만
글을 읽으며 카푸스의 글 또한 당시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보편적인 고뇌를 대변하는 부분이 있다.
그의 글이 있었기에 릴케의 조언이 추상적인 담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닿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릴케는 고독을 "당신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라고 표현한다.
이는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를 넘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나를 타인에게서 분리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가
릴케에게는 진정한 고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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