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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볼래요? - 엄마들의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
부너미 기획 / 이매진 / 2023년 2월
평점 :
부너미는 첫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2019)에서 결혼한 여성에게 '나'로 살아가기란 무엇인지 탐구했고,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2020)에서는 '부부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이번에는 영화를 매개로 '기혼 여성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영화는 힘이 있습니다. 고통과 기쁨을 깨닫게 하고, 일상을 벗어난 상상을 하게 하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말하게 하니까요.
- <우리 같이 볼래요?> 들어가며 中
26편의 영화와
영화를 보고 난 '결혼한 여성들'의 이야기 26편이 실려있다.
평소에 책, 영화, 드라마, 심지어 예능을 보다가도 엄마의 시선, 여자의 시선, 며느리의 시선, 워킹맘의 시선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마구 샘솟을 때가 있다. 그때의 감정과 말하고 싶음을 매일 가장 쉽게 만나는 남편과 직장 동료(미혼여성, 기혼남성)들에게 털어놓아보지만 나의 말들이 그들에게 닿지않고 겉도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나의 충만한 이 감정이 왜 그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내던져지기만 할까. 이러한 허기짐은 늘 엄마들과의 수다를 그립게 했다. 때문에 부너미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으로 출간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그저 부러웠다. 얼마나 재밌었을까!!! 얼마나 좋았을까!!!
- 영화 <기생충>을 '선 없음'과 '선 넘음'으로 해석한 글이 신선했다. 영화를 이해하는게 (왜 세계인이 열광하지?) 어려웠는데 다시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더 깊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시부모님의 '선 넘음'이 불편한 사람인지라...
<B급 며느리>를 보고난 작가님의 '각자 인생을 존중하고 공존의 선 긋기를 하면서, 지위로 관계 맺지 않고 존재 자체를 바라보려 노력하면서, ... 그렇게 며느리하고 적당히 잘 지내고 싶다.'(76쪽)는 글에는 그래서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 무려 15년 전 '가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영화 <가족의 탄생>도 궁금했다. 요 근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동은(송혜교)과 그녀의 엄마를 보면서, 행정시스템의 편의에 맞춰진 '가족'이라는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끔찍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 봐버렸기에.
이혼 3년차, '부부는 아니지만 부모니까 양육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진 친구로 잘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도 와닿았다. '같이 살기가 모든 사람에게 좋지는 않다고, 우리가 각자 행복을 찾으며 살아온 시간이 소중하다고'.(43쪽)
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일찍 독립을 시키고 남편과도 각각 집을 얻어서 각자의 공간에서 살고 싶은 꿈이 있다. 자신에게 편안한 방식대로 살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모이고, 그렇게 따로 또 같이-
- "여자들은 치유되지 않아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 범벅이죠." 영화 <툴리>의 대사를 읽으며 바로 내 마음이 컨실러 범벅이라 치유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덮는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잠시 가려지는 것일뿐. 더 아프더라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상처를 내야 다시 새살이 돋을텐데,,, 그 과정을 감당하기가 아직은 두려운 것 같다.
- '신모계 사회'라는 말은 '남성 혈연 중심 가부장제가 영악하게 포장만 바꾼 가짜 신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양육의 주 책임자라는 전제 아래 또 다른 여성인 친정어머니를 양육 대행자로 당연시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141쪽) 라는 글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주입되는 불합리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말뿐인, 허울뿐인 칭찬 말고 돈과 권한을 달라고! 독박 돌봄은 사양하고 함께 나눠 돌보고, 서로 돌보고, 스스로 돌보자고. (143쪽) / 영화 <욕창>
- 지위로 규정된 나를 벗어나서 원래의 내가 돼 생각하고, 질문하고, 읽고, 쓰고, 그리고 마음을 돌보게 하는 공동체, '엄마의 방학'은 내가 애정하는 카페 '엄마의 꿈방'과 닮아 있어서 반가웠다. 한 명 한 명 작은 점들이지만 함께 있을 때 좋은 동료가 되는 사람들은 든든한 비빌 언덕이자 너른 마당이다. (192쪽)
여성의 우정을 다룬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속의 '휘슬 스탑' 카페는 성별, 인종, 나이를 넘어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연대의 공간이 된다. '부너미' 역시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안전한 울타리가 돼주려 노력한다고.(216쪽) 여성들에게는 자기의 고민과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고 지지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꼭 필요하다.
특히 와닿았던 영화 이야기는 <결혼 이야기>와 <벌새> 였다.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시대를 둘러싼 이해가 깊어질 때 비로소 해묵은 감정하고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해준 <벌새>가 고맙다. (126쪽)
<벌새>는 조만간 보기로 하고,,,
시간을 내어 <결혼 이야기>를 보았다.
[찰리하고 있으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모든 일을 포기하고 그 남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 니콜. 삶의 면면을 가족에 맞춰 살아온 니콜은 찰리가 자기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혼을 결심한다. "내가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준 거죠." 이별의 연유를 설명하는 니콜을 보고 가슴이 저릿했다. 57쪽]
결혼하고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은데, 남편은 달라진게 없는 삶. 오히려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것 같은 남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는게 이런 의미였을까. 영화 속에서 니콜이 LA로 가고 싶은 이유를 끝까지 모르는 찰리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시간은 언제나 가족의 스케줄이 침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59쪽)
남편이 100미터를 전력 질주한다면 나는 장애물을 넘으며 달린다. (60쪽)
감독이 된 니콜을 보면서 언젠가 내 인생에도 있을지 모를 통쾌한 반전을 그려본다. 매번 지는 느낌이지만 그 느낌에 패배하지 않도록, 지금은 더 많이 양보하고 종종거릴지라도 천천히 계속 달려가겠다. (61쪽)
언젠가 맞이할 통쾌한 반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사와 육아, 집안일. 그 사이사이 틈을 내어 책을 보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나의 성장을 돕는다.
+++ 영화의 ost 가사가 너무나 와 닿았다. "깊은 상처를 주고 지옥을 맛보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사람." 지긋지긋하다가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그렇게 또 어느날은 좋아서 서로를 향해 웃음 짓는 것. 이런게 부부인가 보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