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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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제가 뇌과학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그들보다 더 무력하다고 느꼈어요. p.100

 

헨리 마크람은 뇌과학자이자, 자폐 아들을 둔 한 명의 아버지다. 누군가는 그가 뇌과학자이기에 자폐증이 있는 아들에게 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큰 무력을 느낀다.

 

 

자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사회성 결여', '친절하지 않음' 고로 '가까워지기 어려운 존재'로 이어진다. 자폐는 결국 공감능력이 정상인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정신질환으로 인식된다. 필자 역시 자폐를 '사회성 결여'로 인식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이들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헨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폐는 너무 적게 느끼는 것이 아닌, 너무 많이 느끼는 것, 즉 자폐인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닌, 우리에게 그들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사람에겐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란 안경으로 다른 존재를 바라본다. 나의 세계 속에서 어떤 이는 비정상이 되고,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형성한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편리한 것은 드물기를 떠나서, 없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낯선 타인과 교류하며, 상대의 아픔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때론 상대의 행복한 일에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이는 선택적으로, 또는 무의식으로 상대의 세계 속에 들어가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한 명의 인간이 상대방을 인식하고, 사회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나타나는 필수적이고도 본능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자폐를 다룬 기존의 저서와 연구에선 자폐인의 '타인의 마음과 정서에 공감하는 능력 결여'에 방점을 두었다. '욕구·신념·의도·지각·정서·생각과 같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 그리고 정신적 상태에 대하여 이해하는 선천적인 능력에 대한 이론''마음이론'을 자폐인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자폐증이 있는 아들 카이를 위해 자폐의 인과와 예방에 대해 연구하며 '마음 이론'을 자폐인에게 적용하는 연구의 오류를 찾아낸다. 자폐인은 타인의 마음과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폐인이 타인과의 시선교류에 서투르고, 인간관계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이들이 일반인 보다 예민하고, 감각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인간관계에서 느낀 좌절과 실패가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변질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상대로부터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져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결국 '마음 이론'은 자폐인이 아닌, 사회에 적용하는 게 옳다.

 

자폐에 대한 편견은 일부 맞기도 하지만, 헨리가 밝혀낸 바와 같이 잘못된 부분이 크다. 자폐인은 상대의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잘 느낀다. 그렇기에 자폐인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우리가 자폐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 우리의 세계에서 자폐인을 오류로 판단하고 그들을 대한다면, 자폐인의 세계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상대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고, 내가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는 단연 자폐인을 상대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적용되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자폐 아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배워 결과를 보이는 헨리의 모습은 학자로서의 위대함과 더불어 부모란 존재의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헨리의 자폐에 대한 연구는 자폐 아들 카이를 위해 시작되었고, 카이의 치유가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카이를 포함한 맣은 자폐인이 도움을 받았고, 자폐에 대한 인식 개선을 효과적으로 이뤘다.

 

헨리는 이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정신질환 사례와 개선 과정을 빅데이터로 집약하여 만드는 가상 뇌인 '뇌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폐를 비롯한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혀내어 예방하고 대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를 읽으며,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행하는 헨리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의 올바른 방향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때론 아들의 이해하기 힘든 언행으로 상처받고, 진척 없는 연구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헨리는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카이를 포함한 자폐인을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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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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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스펙트럼은 “작지만 확실한 고전”이란 구호로 숨겨진 혹은 누구나 아는 명작을 독자가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게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문학과 지성사의 고전 시리즈다.

현재까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 사뮈엘 베게트의 『첫사랑』,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등이 출간되었으며, 앞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필자는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중 『모자』를 읽어보았다.

『모자』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낯선 작가일 수 있지만, 아마도 그의 다른 작품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모자』에 수록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죽음, 불면증, 파멸, 자살 등에 대한 고찰을 한다. 1인칭 혹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대상의 우중충하고 침침한 면을 나열하고, 내면의 불안이 들끓는다. 「두 명의 교사」 속 교사는 인생의 전부와 불면증을 떼어놓을 수 없으며, 결국 불면증 없인 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 「모자」에선 끊임없이 자살을 염두하지만, 결단력 없음으로 자살을 무기한 보류한다. 이와 달리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에선 끝내 자살을 성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면을 보면, 『모자』를 우울한 침전물만이 흥건한 글이라고 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자』 속 등장인물들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호기심이란 이중적인 감상의 대상이다.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어렴풋이 살고자 하는 욕구를 죽음의 두려움을 통해 드러낸다. 반복되는 불면증과 두통으로 고통받을 때면, 죽음의 메타포인 밤의 숲으로 회피한다.

이들에게 죽음과 파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공간의 이동뿐이다. 문을 모조리 닫은 채 어두운 방안에 몸을 숨기기도 하며, 밤 마다 숲으로 달려간다. 현실도피의 정도는 꿈에서부터, 자살로까지 극명하게 나뉘기도 한다.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란 목적과 그 수단인 암흑에 휩싸인 공간은 일관된다.

고향과 자연은 문학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자』에서 베른하르트가 말하는 고향은 유아기에 느낀 고통의 원천이며 자연의 대명사인 숲은 치유를 가장한 가학의 장소다. 등장인물들은 회피의 목적으로 숲을 곧장 찾지만, 막상 숲에 도착하면, 이들은 반복되는 고통의 기억을 산책하게 된다. 이렇듯 『모자』에선 고향과 자연의 인식에 대한 역전과 죽음과 파멸에 대한 독특한 고찰이 반복된다.

비록 책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만큼은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된다. 이번 문지 스펙트럼 서포터즈에선 『모자』만을 읽었지만, 이외의 다른 고전과 앞으로 문지 스펙트럼에서 출간 될 고전 역시 찾아 읽을 예정이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문학과 지성사에선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했는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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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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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르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아들 도키오를 읽어보라고 답하면 된다. 그 정도로 아들 도키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집대성이다. 아들 도키오는 타임슬립이라는 SF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부정을 추리물로 녹여낸다. 이렇게만 나열하면 굉장히 난잡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온갖 식재료가 조화롭게 섞여 그 이상의 시너지를 내는 요리 같다. 술술 너무나도 잘 읽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엔 브레이크가 없다. 한 번 집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보게 된다.

 

 

아들 도키오는 희귀병에 걸린 아들 도키오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 다쿠미를 만나 사건을 해결하며 다쿠미에게 깨달음을 주는 줄거리다. 아들이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난다는 타임슬립 형식은 영화 너의 이름은을 떠올리게 한다. 타임슬립이란 주제로 차별화를 주는 작품은 읽고 보는 이로 하여금 확실한 각인을 준다. 아들 도키오는 필자에게 확실한 각인을 줬다.

 

도키오는 시간이 갈수록 근육이 쇠퇴하고 의식이 흐려져 이른 나이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다쿠미는 도키오의 아버지다. 도키오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 다쿠미는 아내 레이코에게 도키오를 20년 전에 만난 적 있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20년 전의 다쿠미는 툭하면 직장에서 잘리고 한탕 크게 해서 돈 벌 생각만 하는 망나니였다. 다쿠미는 자신이 번듯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를 과거 자신을 버린 친모로부터 찾는다. 덕분에 다쿠미는 매사에 부정적이며 일이 잘못되면 자신을 버린 친모 욕부터 시작한다. 여느 때처럼 욱하는 성질로 직장 상사를 패고 실직한 다쿠미는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거기서 과거로 돌아온 아들 도키오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다쿠미는 도키오를 보고 이유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그들은 함께 돌연 사라진 다쿠미의 여자친구 지즈루를 찾으며 온갖 사건에 휘말린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쿠미는 친모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그녀에 대한 증오를 없앤다. 다쿠미가 번듯한 인간이 되는 데엔 도키오가 큰 역할을 한다. 도키오는 젊음이란 이유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과거의 다쿠미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다쿠미에게 태어난 것 자체로서의 축복을 일깨워준다.

 

 

우린 태어난 것 자체에 감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탓을 하며 세월과 젊음을 낭비하기엔 삶은 그럭저럭 아름답다. 삶의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든, 삶의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보든, 행복한 순간은 항상 스며들어 있다. 아들 도키오는 주어진 삶에 한탄만 하는 과거의 다쿠미와 비록 죽음을 앞뒀지만, 태어난 것 자체에 감사를 느끼고, 이를 아버지 다쿠미에게 전하고자 하는 도키오, 그리고 도키오로 하여금 변하는 다쿠미를 통해 주어진 삶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중 하나를 단언하여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들 도키오에서 말하고자 하는 따뜻한 삶에 한에선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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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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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쓴 글은 절대로 다음번 글을 써주지 못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글은 없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글엔 빈 원고지 시절이 있는 법이다. (유시민 작가가 청년 시절 항소이유서를 일말의 퇴고 과정 없이 작성했다는 이야기는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일 뿐이다. 몇몇 신화 같은 이야기에 좌절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은 작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원고의 저자이자 논픽션의 대가인 존 맥피와 같은 수준급 작가에게도 여백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주제를 확실히 정하고 자료수집을 충분히 했더라도 모든 글은 처음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많은 저서를 남기고 글을 썼음에도 매번 글쓰기가 새롭고, 막막한 이유이다. 그럴 때 우린 커서만이 깜빡이는 빈워드창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첫운을 떼지 못하는 그 상실의 순간은 작가에게 큰 고민을 안긴다. '나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는가?'란 슬픈 생각부터 시작하여, 지난번에 쓴 글을 찾아본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보며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하는 과거 부정과 감탄의 순간을 거치고, 이내 '모르겠다. 좀 쉬자.'하며 드러눕는다.

존 맥피 역시 그렇다. 수준급 작가에게도 글쓰기의 첫 순간이 어려운데, 우리는 어련하겠는가. 네 번째 원고란 책의 제목처럼 저자 역시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내놓진 못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원고를 거쳐 네 번째 원고가 지나서야 존 맥피에게도 글 다운 글이 나온다.

 

 

 

네 번째 원고에서 존 맥피가 말하는 글쓰기는 퇴고, 퇴고 또 퇴고하는 글쓰기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은 덜 익은 감이다. 독자에게 선보이기엔 아직 떫다. 글의 첫 번째 독자인 작가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처럼 영겹의 퇴고를 거쳐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는 말은 첫 번째 원고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조언이 담겨있다. 좋은 글에 대한 욕심과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야말로 작가를 만든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시작이 어렵다. 우선 시작은 가볍게 하자. 때론 원고지 시작에 to. 엄마를 적고 투덜대는 편지를 쓰듯 글을 채워보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도 좋다.(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작문 방법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수집한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보자. 우당탕탕 글을 썼다면 잠시 드러눕고 쉬자. 약간의 텀을 두고 첫 번째 원고를 읽자. 분명 고칠 곳 투성이일 것이다. 그럼 고치면 된다. 존 맥피가 말하는 네 번째 원고를 넘어 다서 번째, 여섯 번째 원고까지, 더 넘어가도 상관없다.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의 연속이야말로 존 맥피가 지향하는 글쓰기다.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튼실한 구조가 튼실한 글로 맺히는 법이다.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플롯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논픽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대략적인 구조라도 있는 글과 아무런 구조가 없는 글은 일관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논픽션 팩트를 전하는 글이기에 독자를 헷갈리게 해선 안 된다. 일관성 있는 글은 독자가 사실을 추측하게끔 하지 않기에 논픽션에 있어서 일관성은 필수 요소이다. 이렇듯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치밀한 구조가 필요하다.

ABC/D는 존 맥피가 제시한 글쓰기 구조 중 하나이다. D가 글의 핵심이고, D를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있는 ABC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A-B-C를 차례대로 거쳐서 D를 쓰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구조 예시 중 하나이기에 모든 글에 해당 구조를 사용해선 안 된다. 글마다 어울리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를 세우기 전에 자료 조사와 주제 선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글의 자유를 얽매는 구조는 없는 것 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논픽션. 다른 말로 하자면 '팩트'. 이처럼 논픽션은 팩트를 쓰는 글이기에 사실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잘못된 정보가 담긴 글은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라는 기레기의 마인드를 논픽션을 쓸 땐 배제해야 한다. 몇몇 언론이 무책임하게 던지는 '~카더라' 기사 몇 개로 혐오와 분란이 조장되는 한국 사회를 보면 팩트의 중요성이 확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팩트와 비슷한 맥락으로 참조틀이 있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와 인용을 글의 장치로 사용한다. 좋은 글을 위한 좋은 의도지만 때론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학 잡지에서 '2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00밴드'란 타이틀을 쓴다면 대부분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모를 것이다. 활동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000의 이마 넓이는 앤드류 잭슨과 같으며 눈빛은 톰 요크를 연상케 한다.'와 같은 비유도 마찬가지다. 인용은 팩트와 더 밀접하다. 필요에 의해 인용구의 일부를 빼거나 추가할 순 있지만 의미가 왜곡되어선 안 된다. 이렇듯 참조 언어와 비유는 필자만 이해할 수 있어선 안 되며, 언어가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이기에 독자의 시대에 맞춰야 한다.

 

대다수의 작가가 신문사와 출판사, 잡지사 등에 글을 투고할 때 가장 교류를 많이 하기 되는 이는 편집자다. 편집자야말로 작가의 영혼의 파트너다. 작가와 편집자는 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편집자는 글에 많은 영향을 준다. 때론 편집자의 입맛대로 글이 다듬어져 작가 본인의 글인지 편집자의 글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는 '작가가 고유의 패턴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존재이다. 집필에 영향을 줄 순 있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여 작가의 개성을 흩트려선 안 된다.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존중해야 하며 작가는 편집자로부터 글을 지켜내야 한다. 언제나 글의 주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여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선별하고 생략하는 과정이다. 대리석을 깎아내는 조각사와 가지치기를 하는 정원사의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무엇을 쳐내고 생략할지 고민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거친 글이야말로 잘 써진 글이다. 네 번째 원고에서 말하는 '네 번째 원고'도 다르지 않다. 네 번째 원고의 핵심인 퇴고는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아닌 것을 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밑의 인용을 덧붙인다.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의구심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지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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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 여행 - 노잼 일상,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을 위한 작지만 알찬 여행
지콜론북 편집부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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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우린 화창한 봄날의 나들이를 잃어버렸다. (내 봄 내놔 엉엉) 답답한 마스크는 어느새 몸의 일부분이 되었고, 사람 모인 공간엔 가기 꺼림칙하다. 그렇다고 좌절해선 안 된다! 당장은 떠날 수 없겠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사람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쯤! 언젠가는 반드시 올 그날을 기다리며 우린 억눌린 놂에 대한 욕망을 터트려야 한다.

그리고 보다 잘 놀기 위해서! 그날을 위해서 치밀하게 놀러 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게 될 그날을 계획하기에 반차여행만큼 지금 같은 시기에 알맞은 책은 없을 것이다.

 

 

반차여행에선 서울부터 시작하여 경기 북부, 남부에 위치한 숨겨진 힐링 스팟들, 혹은 이미 명소가 된 장소를 지역 별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안내해 준다. 주말엔 갈 엄두가 안 날 만큼 사람이 붐비고, 웨이팅이 기본인 명소를 갈 수 있는 방법. 뭐가 있을까? 연차? 아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거다. 반차! 반차를 내고 평일 오후 2시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당당하게 주말엔 사람 많아 갈 엄두도 안 나는 카페를 가는 상상. 웨이팅은 걱정할 필요도 없이, 빈 테이블에 둘러싸여 속삭이듯 들리는 백색소음에 둘러싸이는 힐링. (쓰면서 상상했는데 벌써 행복하다.) 이것이야말로 반차를 내고 떠나는 여행의 묘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아직 덮치지 않은 지역부터 젠트리피케이션이 점령한 지역까지, 모두의 취향을 아우를 수 있게 반차여행에선 다양한 명소를 소개한다. 서울에서 녹음의 우거짐을 느끼고 싶다면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과 강남구에 있는 식물관PH! 미니멀한 문구와 소품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마포구의 오브젝트와 성동구의 오르에르를! 반차를 던지고 평일 한낮에 서울 중심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다면 종로구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보안여관을!

반차여행엔 너무나도 다양하고 매력 있는 장소가 많다 보니 하나하나 다 나열할 수가 없다... 목차를 보며 이미 가본 장소와 가고 싶은 장소를 체크하는 재미도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필자는 반차여행에 소개된 마포구 지역의 모든 명소를 가봤다! 그리고 수원에 소개된 명소는 플라잉수원을 제외하고 전부 가봤다!

 

 

여행은 계획 단계에서 가장 행복하다. 아직 몸은 가지 않았지만, 계획 속 명소에 발을 딛고 있는 상상을 하면 웃음이 실실 샌다. 지금 당장은 떠나지 못하더라도 코로나가 종결되는 날을 꿈 꾸며, 반차여행를 뒤적이며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점찍어 놓는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계획을 현실로 옮기게 될 때 보다 높은 만족도의 반차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빨리 놀러 가고 싶다면!!! 지금의 불편을 조금 감수하고 거리두기에 적극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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