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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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스펙트럼은 “작지만 확실한 고전”이란 구호로 숨겨진 혹은 누구나 아는 명작을 독자가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게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문학과 지성사의 고전 시리즈다.

현재까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 사뮈엘 베게트의 『첫사랑』,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등이 출간되었으며, 앞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필자는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중 『모자』를 읽어보았다.

『모자』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낯선 작가일 수 있지만, 아마도 그의 다른 작품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모자』에 수록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죽음, 불면증, 파멸, 자살 등에 대한 고찰을 한다. 1인칭 혹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대상의 우중충하고 침침한 면을 나열하고, 내면의 불안이 들끓는다. 「두 명의 교사」 속 교사는 인생의 전부와 불면증을 떼어놓을 수 없으며, 결국 불면증 없인 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 「모자」에선 끊임없이 자살을 염두하지만, 결단력 없음으로 자살을 무기한 보류한다. 이와 달리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에선 끝내 자살을 성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면을 보면, 『모자』를 우울한 침전물만이 흥건한 글이라고 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자』 속 등장인물들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호기심이란 이중적인 감상의 대상이다.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어렴풋이 살고자 하는 욕구를 죽음의 두려움을 통해 드러낸다. 반복되는 불면증과 두통으로 고통받을 때면, 죽음의 메타포인 밤의 숲으로 회피한다.

이들에게 죽음과 파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공간의 이동뿐이다. 문을 모조리 닫은 채 어두운 방안에 몸을 숨기기도 하며, 밤 마다 숲으로 달려간다. 현실도피의 정도는 꿈에서부터, 자살로까지 극명하게 나뉘기도 한다.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란 목적과 그 수단인 암흑에 휩싸인 공간은 일관된다.

고향과 자연은 문학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자』에서 베른하르트가 말하는 고향은 유아기에 느낀 고통의 원천이며 자연의 대명사인 숲은 치유를 가장한 가학의 장소다. 등장인물들은 회피의 목적으로 숲을 곧장 찾지만, 막상 숲에 도착하면, 이들은 반복되는 고통의 기억을 산책하게 된다. 이렇듯 『모자』에선 고향과 자연의 인식에 대한 역전과 죽음과 파멸에 대한 독특한 고찰이 반복된다.

비록 책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만큼은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된다. 이번 문지 스펙트럼 서포터즈에선 『모자』만을 읽었지만, 이외의 다른 고전과 앞으로 문지 스펙트럼에서 출간 될 고전 역시 찾아 읽을 예정이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문학과 지성사에선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했는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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