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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평점 :
“지난번에 쓴 글은 절대로 다음번 글을 써주지 못한다.”
처음부터 완성된 글은 없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글엔 빈 원고지 시절이 있는 법이다. (유시민 작가가 청년 시절 항소이유서를 일말의 퇴고 과정 없이 작성했다는 이야기는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일 뿐이다. 몇몇 신화 같은 이야기에 좌절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은 작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원고』의 저자이자 논픽션의 대가인 존 맥피와 같은 수준급 작가에게도 여백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주제를 확실히 정하고 자료수집을 충분히 했더라도 모든 글은 처음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많은 저서를 남기고 글을 썼음에도 매번 글쓰기가 새롭고, 막막한 이유이다. 그럴 때 우린 커서만이 깜빡이는 빈워드창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첫운을 떼지 못하는 그 상실의 순간은 작가에게 큰 고민을 안긴다. '나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는가?'란 슬픈 생각부터 시작하여, 지난번에 쓴 글을 찾아본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보며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하는 과거 부정과 감탄의 순간을 거치고, 이내 '모르겠다. 좀 쉬자.'하며 드러눕는다.
존 맥피 역시 그렇다. 수준급 작가에게도 글쓰기의 첫 순간이 어려운데, 우리는 어련하겠는가. 『네 번째 원고』란 책의 제목처럼 저자 역시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내놓진 못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원고를 거쳐 네 번째 원고가 지나서야 존 맥피에게도 글 다운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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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에서 존 맥피가 말하는 글쓰기는 퇴고, 퇴고 또 퇴고하는 글쓰기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은 덜 익은 감이다. 독자에게 선보이기엔 아직 떫다. 글의 첫 번째 독자인 작가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처럼 영겹의 퇴고를 거쳐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는 말은 첫 번째 원고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조언이 담겨있다. 좋은 글에 대한 욕심과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야말로 작가를 만든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시작이 어렵다. 우선 시작은 가볍게 하자. 때론 원고지 시작에 to. 엄마를 적고 투덜대는 편지를 쓰듯 글을 채워보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도 좋다.(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작문 방법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수집한 자료를 차곡차곡 쌓아보자. 우당탕탕 글을 썼다면 잠시 드러눕고 쉬자. 약간의 텀을 두고 첫 번째 원고를 읽자. 분명 고칠 곳 투성이일 것이다. 그럼 고치면 된다. 존 맥피가 말하는 네 번째 원고를 넘어 다서 번째, 여섯 번째 원고까지, 더 넘어가도 상관없다.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의 연속이야말로 존 맥피가 지향하는 글쓰기다.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튼실한 구조가 튼실한 글로 맺히는 법이다.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플롯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논픽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대략적인 구조라도 있는 글과 아무런 구조가 없는 글은 일관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논픽션 팩트를 전하는 글이기에 독자를 헷갈리게 해선 안 된다. 일관성 있는 글은 독자가 사실을 추측하게끔 하지 않기에 논픽션에 있어서 일관성은 필수 요소이다. 이렇듯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치밀한 구조가 필요하다.
ABC/D는 존 맥피가 제시한 글쓰기 구조 중 하나이다. D가 글의 핵심이고, D를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있는 ABC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A-B-C를 차례대로 거쳐서 D를 쓰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구조 예시 중 하나이기에 모든 글에 해당 구조를 사용해선 안 된다. 글마다 어울리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를 세우기 전에 자료 조사와 주제 선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글의 자유를 얽매는 구조는 없는 것 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논픽션. 다른 말로 하자면 '팩트'다. 이처럼 논픽션은 팩트를 쓰는 글이기에 사실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잘못된 정보가 담긴 글은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라는 기레기의 마인드를 논픽션을 쓸 땐 배제해야 한다. 몇몇 언론이 무책임하게 던지는 '~카더라' 기사 몇 개로 혐오와 분란이 조장되는 한국 사회를 보면 팩트의 중요성이 확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팩트와 비슷한 맥락으로 참조틀이 있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와 인용을 글의 장치로 사용한다. 좋은 글을 위한 좋은 의도지만 때론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학 잡지에서 '제2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00밴드'란 타이틀을 쓴다면 대부분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모를 것이다. 활동한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000의 이마 넓이는 앤드류 잭슨과 같으며 눈빛은 톰 요크를 연상케 한다.'와 같은 비유도 마찬가지다. 인용은 팩트와 더 밀접하다. 필요에 의해 인용구의 일부를 빼거나 추가할 순 있지만 의미가 왜곡되어선 안 된다. 이렇듯 참조 언어와 비유는 필자만 이해할 수 있어선 안 되며, 언어가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이기에 독자의 시대에 맞춰야 한다.
대다수의 작가가 신문사와 출판사, 잡지사 등에 글을 투고할 때 가장 교류를 많이 하기 되는 이는 편집자다. 편집자야말로 작가의 영혼의 파트너다. 작가와 편집자는 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편집자는 글에 많은 영향을 준다. 때론 편집자의 입맛대로 글이 다듬어져 작가 본인의 글인지 편집자의 글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는 '작가가 고유의 패턴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존재이다. 집필에 영향을 줄 순 있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여 작가의 개성을 흩트려선 안 된다.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존중해야 하며 작가는 편집자로부터 글을 지켜내야 한다. 언제나 글의 주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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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여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선별하고 생략하는 과정이다. 대리석을 깎아내는 조각사와 가지치기를 하는 정원사의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무엇을 쳐내고 생략할지 고민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거친 글이야말로 잘 써진 글이다. 『네 번째 원고』에서 말하는 '네 번째 원고'도 다르지 않다. 네 번째 원고의 핵심인 퇴고는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아닌 것을 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밑의 인용을 덧붙인다.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의구심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지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