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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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제가 뇌과학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그들보다 더 무력하다고 느꼈어요. p.100

 

헨리 마크람은 뇌과학자이자, 자폐 아들을 둔 한 명의 아버지다. 누군가는 그가 뇌과학자이기에 자폐증이 있는 아들에게 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큰 무력을 느낀다.

 

 

자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사회성 결여', '친절하지 않음' 고로 '가까워지기 어려운 존재'로 이어진다. 자폐는 결국 공감능력이 정상인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정신질환으로 인식된다. 필자 역시 자폐를 '사회성 결여'로 인식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이들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헨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폐는 너무 적게 느끼는 것이 아닌, 너무 많이 느끼는 것, 즉 자폐인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닌, 우리에게 그들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사람에겐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란 안경으로 다른 존재를 바라본다. 나의 세계 속에서 어떤 이는 비정상이 되고,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형성한 세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편리한 것은 드물기를 떠나서, 없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낯선 타인과 교류하며, 상대의 아픔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때론 상대의 행복한 일에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이는 선택적으로, 또는 무의식으로 상대의 세계 속에 들어가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한 명의 인간이 상대방을 인식하고, 사회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나타나는 필수적이고도 본능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자폐를 다룬 기존의 저서와 연구에선 자폐인의 '타인의 마음과 정서에 공감하는 능력 결여'에 방점을 두었다. '욕구·신념·의도·지각·정서·생각과 같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 그리고 정신적 상태에 대하여 이해하는 선천적인 능력에 대한 이론''마음이론'을 자폐인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자폐증이 있는 아들 카이를 위해 자폐의 인과와 예방에 대해 연구하며 '마음 이론'을 자폐인에게 적용하는 연구의 오류를 찾아낸다. 자폐인은 타인의 마음과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폐인이 타인과의 시선교류에 서투르고, 인간관계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이들이 일반인 보다 예민하고, 감각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인간관계에서 느낀 좌절과 실패가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변질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상대로부터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져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결국 '마음 이론'은 자폐인이 아닌, 사회에 적용하는 게 옳다.

 

자폐에 대한 편견은 일부 맞기도 하지만, 헨리가 밝혀낸 바와 같이 잘못된 부분이 크다. 자폐인은 상대의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잘 느낀다. 그렇기에 자폐인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우리가 자폐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 우리의 세계에서 자폐인을 오류로 판단하고 그들을 대한다면, 자폐인의 세계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상대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고, 내가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는 단연 자폐인을 상대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적용되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자폐 아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배워 결과를 보이는 헨리의 모습은 학자로서의 위대함과 더불어 부모란 존재의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헨리의 자폐에 대한 연구는 자폐 아들 카이를 위해 시작되었고, 카이의 치유가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카이를 포함한 맣은 자폐인이 도움을 받았고, 자폐에 대한 인식 개선을 효과적으로 이뤘다.

 

헨리는 이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정신질환 사례와 개선 과정을 빅데이터로 집약하여 만드는 가상 뇌인 '뇌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폐를 비롯한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혀내어 예방하고 대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를 읽으며,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행하는 헨리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의 올바른 방향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때론 아들의 이해하기 힘든 언행으로 상처받고, 진척 없는 연구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헨리는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카이를 포함한 자폐인을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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