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물건 -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모호연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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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동물도 아닌, 반려 물건이라니.

이 책을 처음 마주하고 든 생각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반려 물건을 키워본 적은 있는 듯하다.

그리고 힐끗 내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곳곳에 나의 반려 물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를 즐기고 계신

반려 물건의 저자 모호연 작가님을 한 번도 뵙진 못했지만,

왠지 동질감이 든다.

아마도 그건, 아니 확실하게 그건, 저장증일 것이다.

저장증.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절대 미니멀 라이프를 즐길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가엾은 이들의 병명.

방엔 안 쓰는 물건이 함정처럼 숨어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도 이쁘면 집으로 분양해온다.

가격 상관없이 맘에 들면 사 오고,

용도는 같지만 디자인이 다르면 역시나 지갑을 열게 된다.

버리거나 되팔기엔, 언젠가는 쓸 거 같고, 무엇보다 아깝다.

이처럼, 반려 물건에선, 미니멀 라이프를 원하지만 뜻하지 않게 저장증을 앓아 물건을 차곡차곡 모으며 희열을 느끼는 이들에게 물건 모으기의 기쁨을 공유하며

소비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준다!

(읽으면서 나와 같은 부류를 만나게 되어 무척 행복했다)

 

 

반려 물건에서 저자의 반려 물건을 소개받았으니, 그 답장으로 나의 반려 물건을 몇 가지 소개해보겠다.

 

'BRG 김몽스' 각인이 새겨진 세상에 하나뿐인 라미 만년필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나의 탄생일에 친구가 준 생일 선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 부류의 색과 만년필의 아찔한 필기감은

쓸데없는 것도 자꾸 끄적이게 만든다.

그전까진 '동아 스피디볼 0.7'을 즐겨 썼지만,

요즘은 라미 만년필만 들고 다닌다.

이 녀석을 시작으로 만년필 수집이 본격화될 것만 같다.

 

다음은 '파카 조터 샤프'.

겉모습은 볼펜이나 만년필을 연상하게 하지만,

샤프가 확실하다.

'파카 조터 샤프'7년 정도 쓰다가

올해 초에 망가져서 같은 샤프로 또 샀다.

(고장 난 샤프도 아직 안 버렸다)

자그마한 사이즈가 나의 작은 손에 딱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쁘다!

필기구 수집도 즐겨 하지만, 샤프만은 이 친구만 사용한다.

오랜 기간 사용해온 '파카 조터 샤프'에 대한 존중이랄까

'소비 생활을 알려면 고개를 들어 지갑을 보라'

책 중 이런 챕터가 있다.

그래서 내 지갑을 꺼내봤다.

아니나 다를까.

수납공간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나의 카드 지갑엔

카페 쿠폰만 4장이다.

과연 10개의 도장을 다 모을 수는 있을까.

얼마 전에 새롭게 추가된 교보문고 카드도 있길래 집에 살포시 두고 왔다.

(지갑이 터질 거 같아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노트북과 카메라 중, 무얼 살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당시 갈팡질팡의 정도는 햄릿과도 같았다.

(과장이 아니다)

결국 실용성에 무게를 둔 노트북을 샀고,

카메라에 대한 미련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나의 탄생일에 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바로 '코닥 필름 카메라 M35'이다.

'토이카메라'로 불리기도 한다.

아날로그의 기운이 물씬 나는 이 카메라는

27장 정도의 사진을 찍은 후에 인화할 수 있다.

아직 몇 장 찍진 않았지만 인화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나의 반려 물건은

'프라이탁'의 리랜드 가방과 빨간 레고맨이다.

'프라이탁'은 방수포와 안전벨트를 재활용하여 가방을 만드는 리사이클 브랜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굉장한 인기를 몰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파랑과 흰색의 청량한 조합 때문에 저 가방으로 샀다.

참고로 '프라이탁'의 모든 가방은 각자 디자인이 다르다.

가방의 재료가 재활용품이기에

각자 손상의 정도, 색감의 뚜렷함, 색의 조합이 다르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가방인 것이다!

저기 위태롭게 달려있는 빨간 레고맨은

고양 스타필드에 있는 장난감 랜드?에서 샀다.

보자마자 꽂혀서 바로 샀다.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신없이 나의 반려 물건을 소개하다 보니 시간이 훅 갔다.

반려 물건의 저자가 이 책을 썼을 때의 기분을 알 듯하다.

굉장히 기분 좋다.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저장증을 앓고 있다면,

물건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딘가에 죄책감이 든다면,

반려 물건을 읽고 시원하게 물건을 지르자!

당신 혼자만 물건 수집을 광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통장 잔고는 확인하면서 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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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일기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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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족과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기일을 기억해 줄 것이다.” p.123

 

 

대학 강의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한 학기 동안 고대 그리스 철학자 10명 정도의 사상과 기록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철학자를 고르라면 단연 헤라클레이토스가 떠오른다. 헤라클레이토스로 기말 과제를 작성한 이유도 있거니와, 삶의 유한성을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기록이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자만이 강렬한 삶을 산다.” 헤라클레이토스

 

 

나는 언젠가 죽게 된다는 인식이 바로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나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닥칠 일이 아니기에 나중에 생각해봐도 될 일로 생각하고, 언제나 우선순위의 뒤로, 또 뒤로 밀어놓는다.

물론 행복한 일만 꿈꾸기에도 모자를 시간에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썩 반갑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죽는다.'를 항상 염두에 두며 생활한다면, 한 시간, 하루라도 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며, 본인에게 온전해질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매우 모순적이면서도 일리 있는 말이다.

 

 

인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밀알이 더 많은 열매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듯이.” p.59

 

 

백세 일기는 관록이 차야만 가질 수 있는 여유와 관용이 어우러진, 삶의 석양이 찾아든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백세 일기의 저자 김형석 작가의 연세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로 100세이시다. 미역국과 떡국을 100번 잡수셨으며, 계절의 순환을 100번 경험하신 셈이다. 나이가 지혜와 경험의 척도가 될 순 없지만, 백세 일기를 일으니 확실히 연륜을 무시할 순 없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많은 짐을 갖지 않는다. 높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들은 산 아래 남겨두는 법이다. 정신적 가치와 인격의 숭고함을 위해서는 소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유는 베풀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즐기기 위해 갖는 것이 아니다.” p.168

 

 

높은 정상을 향함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갈수록 경사가 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에 가져온 짐을 하나씩 벗어던져야만 한다. 끝내 정상에 도착하고 보면 등에 멨던 백팩과 주머니 곳곳에 넣어둔 비상식량은 어느새 사라져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라져야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청년의 지성을 갖춘 용기는 소중하다. 장년의 가치관이 있는 신념은 필수적이다. 노년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도 있어야 한다. 3세대가 공존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며 사회는 안정된 성장을 누릴 수 있다.” p.230

 

 

한국 사회에서 청년과 장년과 노년 간의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일원이 알고 있을 것이다. 청년은 위 세대를 꼰대로 싸잡아 부르고, 그들의 조언 자체를 거부하고 때론 일궈온 업적을 폄하하기도 한다. 위 세대는 청년을 말 안 듣는 철부지로 본다. 서로 혐오하기 바쁜 세상이다. 동시에 모든 세대는 알고 있다. 청년, 장년, 노년이 공존해야만 사회가 돌아가며, 공존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형석 작가는 백세 일기에서 이 사실을 조언이나 가르침이 아닌, 설득의 어투로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긋이 말한다.

 

 

그리운 고향에 갈 수는 없지만 마음 둘 고향이 있어 감사한 일이다.” p.103

 

 

김형석 작가는 어린 시절을 평안북도에서 지냈다. 이후 탈북하여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인 고향은 그리움과 치유의 공간이다. 하나, 가지 못한다면 이는 상상 속의 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남과 북이 갈라졌기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김형석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백세 일기에서만 봐도 크다고 짐작된다. 그럼에도 김형석 작가는 그리움에 매몰되어 과거에 갇혀 살지 않는다. 고향의 그리움에 대해 말하면서 새로이 찾은 고향이 있음에 감사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탓할 것이 아닌, 일말의 감사를 찾아내는 작가의 태도는 초연함과 건강한 삶의 태도를 일러준다.

 

 

일기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p.7

 

 

기록은 인간만이 갖는 차별화 중 하나다. 인간은 현재 얻은 정보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기록하며, 정보의 축적을 유전자만이 아닌 글과 그림, 음악 등 오감을 통해 체화하게끔 한다. 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나를 적고, 훗날 읽어 회상에 잠기기도 하며, 당시의 사건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일기를 통해 그때의 나를 사랑하게 되고, 그때와는 달라진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 일기에 등장하는 사람 역시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기는 나의 상태를 기록함으로써 즐거운 회상을 가능하게 하며, 다시 읽으면 매우 매우 재밌다.

 

끝으로, 백세 일기는 조언을 겨냥하여 쓴 책이 아님이 틀림없다. 따라서 삶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면 백세 일기가 큰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다. 가볍지만 우습지는 않은 마음으로, 남의 일기를 훔쳐보듯이 읽는다면, 그 방심의 순간에서 응축된 한 세기의 삶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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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사회 - 팬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김수련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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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부터 시들한 봄을 지나, 여름의 경계를 기웃거리고 있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온통 여백뿐이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는 일상을 갈아먹었다. 여름의 열기가 조금씩 느껴져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며, 마스크 없는 외출은 상상할 수도 없다. 때론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음과 일상으로부터의 거리두기가 아닌지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는 사회의 가려진 문제를 직면하게끔 했다. 자본주의의 휘청임, 인종차별 문제, 불평등, 기후 위기 등, 항상 1순위가 되지 못했던 문제를 나름 우선순위의 상층으로 올려놨다.

 

《》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선 코로나를 막기 위해 선잠을 자면서 일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부터 코로나가 우리에게 끼치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 불평등한 세계, 인종차별 문제, 기후 위기 등에 대한 12개의 글이 실려있다. 코로나를 같은 시대에 겪으면서도, 미처 바라보지 못한 관점을 시원하게 집어주고, 코로나가 종식된 후의 미래를 맞이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온전한 신뢰를 보내는 눈빛들 앞에서, 무력한 우리는 만들어낸 자신감을 뒤집어써야 한다.”

p.30

 

감염병이 퍼져 일상이 마비된 시점엔, 의료진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희생에 대한 찬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와 동시에 의료시스템의 허점과 적절한 대처가 드러나기도 하며, 정치계에선 공중보건에 대한 지원계획과 법안을 그제야 입에 올린다. 간호사에게 행해졌던 부당한 대우에 대한 개선을 드디어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은 외신에서도 찬사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드라이브 쓰루 선별 진료소 등 한국의 코로나에 대한 대처를 ‘K-방역이라고 칭하며 한국을 코로나 대응의 모범 국가로 소개한다. 그러나 ‘K-방역을 통한 한국의 성과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 대응 과정에서 국가 소재 병원의 인력 부족 문제, 과도한 개인 정보 공개 문제, 특정 집단 혐오 문제, 평등하지 못한 복지와 보건 문제 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31번 환자를 비롯한 신천지 집단을 중심으로 대구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럼에도 대구 시민들의 뛰어난 시민의식과 대응으로 그 외의 지역으로 거대한 전파를 막을 수 있었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를 등에 업고 온라인을 통해 곳곳에 자리했던 혐오 문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원인이 절대적으로 대구 지역의 문제가 될 순 없지만, 지역 차별적인 발언이 온라인에서 나돌기 시작했으며, 신천지를 규탄함과 동시에 기독교를 묶어 종교 자체를 욕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땐, 굳이 헤드라인에 특정 소수집단을 넣음으로써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했다. 뉴스 댓글 창엔 당연하다는 듯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등장했고, 언제나 높은 좋아요를 받았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이 검사를 꺼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서도 아프다고 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노동체제 때문이고, 힘이 약한 노동자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이름만으로 불평등한 힘의 관계를 뒤집을 수 없다.”

p.18

 

아프면 직장을 쉴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방역 당국의 권고는 새로운 노동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기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p.122

 

코로나는 필수인력과 불필요 인력을 나누기도 했으며, 가택에서도 충분히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동시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의 암울한 단면을 드러냈다. 전염병이 퍼졌음에도, 일을 쉬거나 가택에서 업무를 수행할 처지가 되지 않는 노동자는 당장 필요한 돈과 생활을 위해 건강을 담보로 일을 해야만 한다. 이들에게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의 존재는 새로운 노동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며, 그들의 쉬지 못함을 그렇지 않은 이들이 수혜 입는다. 착취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자본주의는 성립된다.

 

그동안 한국은 80년대 경제성장을 비롯한 자본주의의 찬란한 가능성을 맛봤으며, 믿기 어려울 만큼의 성장을 이뤘고 그로 인해 국민 생활수준이 크게 상승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큰 믿음이 만연하다. 그러나 코로나가 도래한 후, 우린 자본주의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단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난 후, 어쩌면 항상 함께하게 될 수도 있는 이 존재의 등장 이후에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며, 달라지지 않아선 안 된다. 코로나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명분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해도 모두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위태로운 시도들이 이어지면 걱정이 앞선다. 감염병과 혐오가 하나 되면 끔찍한 차별 바이러스가 생성되듯, 민주화와 정보화가 맞닿으면 투명한 절차라는 민주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특정인을 골라내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p.86

 

한국이 코로나를 나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확진자 동선 공개'가 있다. 이는 확진자의 과거 동선을 CCTV, 신용카드 내역 조회, 진술 등을 토대로 역학조사하고, 인접 지역의 주민에게 경고 문자를 발송함으로써 해당 장소를 방문한 주민의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자발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개인 정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한 불만이 번번하게 나왔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나름 잘 지켜질 수 있었던 큰 이유론 사람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건강 문제보단, 동선 공개와 개인 정보 공개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순되게 이태원 사태에 대해선 성소수자 집단의 자발적인 신고와 동선, 개인 정보 공개를 강요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내로남불이아말로 이런 상황 아닐까.

 

각국은 똑같이 받아든 오픈 테스트를 함께 풀려는 협력과 연대의 국제 공조는 하지 않고 저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기 바빴으니, 불안한 개인이 의지할 데라곤 좋은 싫든 제 나라 정부뿐이었다.”

p.81

 

코로나가 중국의 우한이란 지역에서 발생했단 정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종혐오를 터트렸다. 한국인들마저 중국인들을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이라고 욕했고, 국경 자체를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중국을 넓게 보면 아시아고, 한국 역시 아시아에 속해있다. 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에선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의 아시아인을 구별하지 못하며,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에 대한 혐오는 물 흐르듯이 아시아인 혐오로 연결된다. 중국인을 욕하던 우리 역시, 유럽 지역을 가면 중국인과 같은 아시아인이며, 이로 인한 인종차별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물론 코로나 발원에 대한 조사는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며 누구나 궁금해하는 사안이다. 중국이 발원지란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 해서 특정 국가와 인종을 엮어 혐오의 정당성을 성립해선 안 된다. 이는 불필요한 과정이다.

 

코로나는 보편복지의 오류를 알려주기도 했다. 의료 서비스는 빈곤과 부유, 거주 지역, 인종과 국가와 무관하게 모두가 제공받아야 하며,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자 평등해야만 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쪽방 거주민, 장애인, 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은 코로나 대처에서도 불평등을 겪게 된다. 쉽게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할뿐더러,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렵다. 또한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위생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편복지란 말 그대로 보편적이어야 하며, 보편이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함을 일러준다.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보편적이지 못하며, 모두에게 의료 서비스가 적용되지 못하다면 보편복지가 아니다. 코로나는 불평등한 이들에게 불평등을 다시금 씌웠고, 사회취약계층이 존중받을 수 있는 대안을 요구했다.

 

《》

 

어쩌면 코로나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고, 달라진 상황에 나름 적응하며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모두의 뇌리에 전해지기도 했다. 코로나와 같은 인수 공통감염병의 원인으로 무분별한 개발이 지목되었고, 기후 위기에 대한 대처가 성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코로나와 같은 인수 공통감염병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담론이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앞으로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는 공통 위협이기에, 전지구적 협력과 보다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공중보건을 확립해야만 한다. 코로나로 우린 기후 위기, 불평등, 혐오와 차별에 대해 배웠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 곳곳의 허점을 찾아냈기에 다음 위기엔 보다 능숙하게 대처해야만 하며, 그렇지 못하게 되면, 국민 간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갈 것이다. 이번엔 그렇다 쳐도, 물론 그렇다 치기엔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언젠간 다시 도래할 감염병이란 전세계적 전쟁에선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여파가 언제 사라질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라질 것이란 희망을 품고 지금처럼만 온 국민의 협력을 이어간다면, 이번 전쟁에서 역시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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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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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700페이지 가량 되는, 흔히 벽돌 책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책의 두께와 무게에 압도되어 읽을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 페이지의 수와 책의 두께는 책이 주는 경고와도 같다. 읽기도 전에 은근히 쫄게 된다. 그만큼 읽고 난 후의 성취감이 크기도 하며, 반대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활자에 쫓기다가 책장을 덮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어렵다. 책에 등장하는 각종 경제학 용어에 대한 정의 이해가 필수이며, 전공자가 아니라면 읽을 동기가 없기도 하다. 나 역시 비전공자이며 21세기 자본를 베스트셀러 서가에 놓여있는 장식물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21세기 자본의 리커버 특별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참에 읽어나 볼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다. 동기는 언제나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불현듯 떠오르는 충동과 호기심일 때가 잦다. , 이제 비전공자의 리뷰를 시작한다.

 

 

언젠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획득하려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현한 구체적인 제도들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p.688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4‘21세기 자본 규제의 마지막 문장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성장해왔다.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능력주의로 환원되는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상적이고도 현실적인 구호를 달고 지금껏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의 금융위기는 모든 문제의 해답으로 여겨졌던 자본주의의 환상을 천천히 깨부수는 신호가 되었다. 점차 자본주의의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허점이 드러났다. 부의 불평등, 부의 분배에 대한 불평등, 소득 불평등과 같이 자본주의는 갖가지 불평등이란 키워드를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통제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영향력 안에서 자유로워야 할 자본주의가 되려 민주주의를 통제하기까지 한다. 아니, 적어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확실하게 잃었다.

 

21세기 자본를 구성하는 핵심 공식 하나를 알고 가자.

 

r>g

 

풀어서 쓰자면, ‘자본 수익률>경제성장률이다.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여 얻는 수익(임대수익, 이자수익, 배당수익 등)이 생산과 소득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익을 넘어선다는 공식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도 물론 그랬으며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완화될 가능성은 있을지언정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r>g는 결국 부의 분배에 대한 불평등과 부의 집중, 소득의 불평등을 드러낸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번다는 말은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부터 저기 유치원생까지 다 아는 상식이다. 근데 우린 이에 대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인지하고 불만을 품지만, 그들만의 리그, 범접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로 생각하고 애초에 다가갈 수 없는 세계로 본다.

아무리 그래도, 부의 불평등의 정도를 수치로 보게 된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한 2010년의 미국을 놓고 봤을 때, 노동으로 얻는 소득인 노동소득,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노동소득의 35퍼센트를, 하위 50퍼센트가 전체 노동소득의 20퍼센트를 갖는다. 노동소득의 분배 차이가 심각해 보이지만, 이는 자본에 비교했을 땐 양반이다. 자본 소유는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자본의 70퍼센트를, 하위 50퍼센트가 5퍼센트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합친 총소득에선, 상위 10퍼센트가 총소득의 50퍼센트를, 하위 50퍼센트가 총소득의 20퍼센트를 지닌다. 다음은 표로 정리한 것이다.

 

미국 2010년의 노동소득, 자본소득, 총소득의 불평등

서로 다른 집단들이 총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노동소득

자본소득

총소득(노동소득+자본소득

상위 10퍼센트

35%

70%

50%

하위 50퍼센트

25%

5%

20%

 

노동소득에서만 보아도, 상위 10퍼센트가 발휘하는 영향력과 지분이 하위 50퍼센트의 총합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소득에 와선 상위 10퍼센트가 하위 50퍼센트의 14배에 달하는 영향력과 지분을 갖는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합친 총소득은 자본소득만큼의 격차는 아니지만, 상위 10퍼센트가 하위 50퍼센트의 1.5배에 달하는 영향력과 지분을 가지며, 부의 집중과 분배의 불평등의 명확함을 시사한다. 또한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이 항상 소득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한 미국의 2010년을 놓고 본 것이지만, 그보다 불평등의 정도가 낮은 유럽의 2010년도 만만치 않다. 다음은 유럽의 2010년 노동소득, 자본소득, 총소득의 불평등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유럽 2010년의 노동소득, 자본소득, 총소득의 불평등

서로 다른 집단들이 총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노동소득

자본소득

총소득(노동소득+자본소득

상위 10퍼센트

25%

60%

35%

하위 50퍼센트

30%

5%

25%

노동소득과 총소득의 비율은 미국의 2010년에 비교적 불평등의 정도가 낮지만, 자본소득만은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위 50퍼센트의 자본소득이 5퍼센트란 점은 미국과 일치하기까지 한다.

위의 두 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r>g가 역전되는 경우는 없단 것이다. 물론 완화되었던 시기가 있긴 했다. 바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일 때이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이 왔을 때를 제외하곤, 벨 에포크(프랑스의 정치적 격동기 끝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기간,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란 의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r>g는 항상 성립되었고,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여 부가 집중되는 현상은 다시금 심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토마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글로벌 누진세를 제안한다. 글로벌 누진세란 지역, 국가에 제한되어 적용되는 누진세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누진세를 의미한다. 현재의 과세체계는 고소득에 역진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 국가의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가 높을 경우, 고소득자는 높은 과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부를 도피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부의 유출로 해당 국가에 피해를 주기에 결국 국가는 부의 유출을 피하기 위해 고소득자의 부에 대해 역진적 체계를 갖추게 되는 모순을 낳는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로벌 누진세이다. 전 세계적으로 누진세가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고소득자가 해외로 부를 피신시키는 행위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며, 해당 국가에 자본을 붙잡아두는 것과 동시에 늘어난 세수로 국가 재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글로벌 누진세의 가장 큰 목적인 부의 무한 확대 방지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누진세는 고소득자에게 달가운 소식일 리가 없으며, 공격성이 짙은 주장으로 비추어지기에 부를 지닌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울 우려가 크다. 따라서 글로벌 누진세의 세율을 어느 정도로 측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과연 글로벌 누진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 글로벌 누진세를 현실로 도입하기 위해서 어떤 보완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누진세를 적용하는 글로벌 누진세의 이상성을 보완하는 현실적 요소로 토마스 피케티는 금융 투명성을 제시한다. 금융 투명성을 이루기 위한 기술은 현재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실현할 기술은 있지만, 과연 금융 투명성 역시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자본가들이 절대 달가워하지 않을 소식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금융 투명성을 실현하려 한다면 오히려 자산을 미리 은닉하거나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선행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외에도 21세기 자본에선 과거의 프랑스와 유럽의 데이터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과거부터 이어온 부의 불평등을 직시하게끔 한다. 이를 위한 해결 방안으로 상속세와 기부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본고에서 전부 다루기엔 나의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며, 나만의 주관이 확립되지 못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기에 내용 면에 대한 리뷰는 여기서 마친다. 그럼에도 부족함을 알게 된 만큼, 채워야 할 방향과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이자, 21세기 자본서장의 첫문장이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평균을 유지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차별이 필요하며, 양성평등, 부의 분배와 같이 차별 없인 균형을 잡을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차별이 공익을 위함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러나 현재 공익을 바탕에 둔 차별이 남아 있는가? 공익을 뺀, 차별을 위한 차별만이 존재하지는 않는가? 이러한 물음이 생기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태이다. 부가 불평등을 낳으며, 불평등이 또 다른 부를 낳는다. 부와 불평등은 평생친구가 틀림없다. 이 둘은 잉여생산물의 탄생 이후부터 쭉 함께였으며, 단언컨대 앞으로도 함께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관심을 각각 다른 곳으로 돌려 사이를 살짝 멀어지게 할 수는 있다. 떼어놓을 수는 없지만, 거리두기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와 불평등의 거리두기 캠페인을 토마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바탕으로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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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생활 도구 - 좋은 물건을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
김자영.이진주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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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일지라도, 나에게만큼은 오직 하나로 남은 물건이 있다. 다시 사게 되더라도 굳이 특정 브랜드의 특정 물건을 고집하고, 구하기 어렵게 되면, 더 높은 돈을 얹어서라도 구하고자 한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나는 저장증이 있다. 잉크가 다 달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빈 껍데기뿐인 볼펜을 상자에 모아놓고, 언젠가는 쓰게 될 거란 믿음으로 새로운 공책과 문구류를 마구 사들인다. 버리진 못하고 차곡차곡 모으기만 한다. 덕분에 내 방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

때론 물건을 사람보다 더 아끼는 나에게 '좋은 물건을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 월간 생활 도구는 놓칠 수 없는 지름 찬스였다. 월간 생활 도구는 마흔여섯 개의 도구를 열두 달의 흐름에 따라 엮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달에 어울리는 물건을 정하고 추천한다.

이번 글에선 월간 생활 도구에 나오는 물건과 평소에 내가 쓰는 물건을 함께 소개해보겠다!(자랑은 아닙니다.)

 

월간 생활 도구을 읽고, 이 글을 쓴 장소는 마침 엔트러사이트 서교점이었다. 엔트러사이트는 드립과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리는, 수제 중의 수제 카페이다. 마침 월간 생활 도구목차 중 1월에선, 드리퍼와 모카 포트를 소개한다!

 

햇살이 커튼 사이로 힐끔힐끔 들어오는 주말,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 일어나 뻐근한 몸을 기지개로 풀어주고, 상쾌하게 커튼을 친다. 까칠한 햇빛 탓에, 눈을 찌푸린 채 창문을 등지고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곤 미리 갈아놓은 원두를 드리퍼에 놓고, 뜨거운 물을 위에 졸졸 뿌린다. 향긋한 커피향과 따뜻함 김을 놓치지 않고 음미한다.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미각과 후각을 함께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머그잔에 방금 내린 커피를 찰랑거리며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홀짝, 한입 마신다.

 

,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나의 로망이다. 이 로망을 조금이라도 충족하기 위해 나는 모카 포트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는 카페에 자주 놀러 간다. 월간 생활 도구에선 모카 포트를 소개한다. 모카 포트의 재질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나에게 모카 포트를 사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 줬다.

 

3월의 물건 중에선, 연필이 있다. 나는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심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촉감을 좋아한다. 연남동에 있는 '흑심'이라는 연필 가게에서 굳이 연필을 사기도 한다. 이처럼 연필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덕분에 연필은 필통 한켠, 책상 위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월간 생활 도구에선 '파버 카스텔'이란 브랜드를 소개한다. 문구점에서 한창 아르바이트를 할 때, 유독 미술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브랜드가 바로 '파버카스텔'이었다. 연필뿐이 아닌, 색연필로도 유명하기에 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파버카스텔'이 연필의 진하기와 강도를 나누는 H~B의 기준을 처음 세웠단 사실은 '~역시 그렇군'하는 반응을 안겨줬다.

문구류 덕후인 나 역시 연필을 아끼고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최애 필기류는 '파카 죠터 샤프'라고 말할 수 있다. 첫 파카 샤프를 8년가량 쓰다가, 촉이 부러져 얼마 전에 똑같은 모델을 새로 장만했다.(똑같은 모델을 새로 장만했다는 말이 참 웃기다.) 비주얼은 볼펜이나 만년필을 떠올리게 하지만 알고 보면 샤프란 점이 내가 이 샤프를 굳이 찾아 쓰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손이 작은 나에게 만족할만한 그립감을 주기도 한다.

 

9월의 물건 중에선 책갈피가 있다. 가을에 어울리는 물건이다. 월간 생활 도구에서 소개하는 책갈피도 꽤 쓸만해 보이지만, 나는 재빠르게 내 독서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소소문구'에서 산 책갈피를 추천할 것이다! 지금은 문을 닫은 '소소문구 망원소품샵'에서 단돈 1,500원에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자인도 이쁘고 무엇보다 실용성이 어마어마하다. 책이 구겨지지 않으며,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이 녀석 역시 책갈피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우연히 주웠던 책갈피다. 지금은 김민영 시인의 시집인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에 고양이 사진과 함께 끼워져있다. 저 상태로 있는 게 나에겐 의미가 커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잊지도 않는다.

 

이건 억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갤럭시 버즈를 나는 문진으로 쓰기도 한다. 책장과 유인물이 넘어가지 않게 두는 문진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살 정도로 애타진 않기에, 나는 갤럭시 버즈를 문진으로 쓴다.

언젠가 카페에 갔는데, 거기선 조약돌 같은 걸 휴지 위에 올려놓고 문진으로 쓰고 있었다.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이런 돌로 된 문진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게임기, 비누, 램프 등 다양한 물건을 월간 생활 도구에서 소개한다. 소장 욕구가 마구 솟아나는 물건이 개성 있게 소개되어 있는 카탈로그 형식의 책의 절정은 바로 마지막에 있는 인덱스다. 여기선 월간 생활 도구에서 소개한 마흔여섯 개의 물건에 대한 자세한 상품명, 규격 등이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구매하고자 하는 독자에겐 좋은 안내가 될 듯하다.

좋은 물건을 찾고자 하는 독자와 소비자의 손에 월간 생활 도구을 한 권 쥐여주는 것 자체가 좋은 물건을 주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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