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연금술사의 점포경영 1 - S Novel
이츠키 미즈호 지음, 후미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장르: 판타지, 백합, 여성향

현실에서 "사"자가 들어간 직업이면 일단 성공한 사람이라고 봐야겠죠?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천하장사 등등... 이걸 판타지에 빗댄다면 어떤 직업이 있을까요. 마법사, 검사, 기사 이런 직종이 있겠지만, 사실 이런 직종은 돈을 많이 번다는 이미지는 아니죠. 뭐 모험가가 되어 일확천금을 노리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직종은 뭘까, 이 작품은 그 대답을 보여주죠. 바로 연금술사 되겠는데요. 서양 판타지에서 연금술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 듯, 보석을 만들고 호문쿨루스를 육성하는 조금은 신비주의라면 일본 판타지에서 연금술사의 이미지는 어찌 된 일인지 골렘이나 지형을 바꾸는 연성과 재료를 모아 포션 만들기가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이 작품도 그런 이미지에 따라 포션이 메인이 돼요.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사라사'가 연금술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시골에 점포를 열고 포션을 팔아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연금술사는 국가에서 엄격히 통제 중으로 아무나 도전은 가능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종이죠. 10명이 도전에서 1명만이 자격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연금술사 자격을 얻으면 앞으로의 인생을 탄탄대로나 다름없어요. 마치 현실의 공무원처럼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거든요(근데 이젠 아니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 주인공은 15살 나이에 자격을 취득해서 시골에 내려가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본의가 아닌 스승의 농간에 빠져 희귀 재료 셔틀이 된다는 것이군요. 원래는 왕도에 남아 다른 선배 연금술사의 제자나 직원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더 성장하려고 했어요.

왕도에서 한 달이나 걸려 시골에 도착한 주인공을 반겨준 건 허름한 가게였죠. 이제 이걸 수선해서 번듯한 가게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서 포션을 팔고, 숲에 채집하러 오는 모험가(채집자)들에게서 재료를 매입하고 포션을 파는 등 현실 의학계에 빗대 보자면 인턴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업의가 된, 어쩌면 15살에 벌써 인생 승리자가 되었죠. 물론 연금술사 자격을 따기 위해 5년이란 시간을 고생이란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노력했고, 억척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개업하는데 필요한 밑천을 장만해야 했으니 그 과정은 참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폐해로 동년배 친구는 하나도 없고, 아는 사람이라곤 아르바이트하며 자신을 가르쳐준 상점 사장이자 스승인 '오필리아' 한 사람뿐이랍니다.

이제 성공한 삶을 살며 느긋한 슬로라이프를 즐기는 걸 보여주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요.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인데요. 이제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편하게 놀고먹는 인생, 이익률이 높으니까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벌 수 있다 등등 돈 독 오를 대로 오른 주인공이 눈을 희번뜩 부라리고 돈을 긁어모으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죠.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바라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려 줍니다. 물론 사업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를 감안해야 되는 건 있지만, 가령 포션 한 병에 500 레어(화폐 단위)짜리가 있어요. 여기서 빈병을 가져오면 반값에 판매해 준다고 하니까 250 레어에 판매 중이죠. 근데 마진이 200 레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정상가(500 레어)에 판매하면 마진율은 90%라는 건데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경제관념으로 접근해야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재료 매입해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품과 리스크에 따른 손해를 감안해서 이익을 붙여야 하는 동시에 누구나 구입(그래도 누구나 구입 못함)이 가능한 가격을 책정해야 되는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죠. 이렇게 가격을 책정해도 구입 못하는(가격 때문에)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면 시장이 붕괴(저번엔 공짜로 해주더니? 같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들이라 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다곤 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생명 중시보다는 이익과 시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비영리와 영리의 차이를 이 작품이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걸 느꼈군요.

이 작품의 단점은, 아가 자기 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둘째치고 주인공이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공이나 연성하는데 실패하면 매입한 재료가 몽땅 날아가니까 그에 따른 손해가 발생한다는 리스크만 볼 뿐, 그 리스크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만 하죠. 희귀한 재료라면 이해는 가겠는데 재료를 비교적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상처 치료 포션조차 리스크가 있다며 높은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통제 중이라지만 보다 폭넓게 누구나 이용 가능한 포션의 개발은 등한시한 채 말이죠. 1권 이후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1권에서 이런 모습들은 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런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일 수 있을 테니,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이라고 해야겠군요.

맺으며: 초반엔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고 해놓고, 실제로 그렇게 벌고 있으면서도 정부가 통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나 나름대로의 성장하기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득권자 같아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가지 못한 자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초반에 자신은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 성장하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에 배치(背馳)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꼬여가다 보니 놀고먹을 수 있다라고 해놓고, 결국 구입할 돈 없는 사람은 죽으란 소리와 같은, 수지 타산이 안 맞다고 말을 바꾸는 설정으로 이어지고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좀 어이가 없어요. 특히 완전히 수전노가 아니라는 듯, 돈 계산만 하는 건 아니라는 듯, 친구가 된 '로레아'에겐 한없이 베풀기도 하는 등 약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다는 것에서 질이 더 안 좋게 느껴졌군요.

사실 필자는 벽난로가 있는 서양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주인공이 처음 시골 낡은 가게로 내려와 그 가게를 바라보며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다 같은 부품 마음과 설렘을 보여주지 않을까 했습니다(주인공의 첫마디가 이건 너무하잖아!!).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밤에는 불 피운 벽난로가에 앉아 '로레아(서브 히로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낮에는 만화 '카페 알파(일본명: 요코하마 매물 기행)'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서정적이 되는 그런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기대가 있었던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뭐 완전 딴판이라고 해서 비판하거나 회의적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마음의 성장과 변화는 하지 않은 채,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연구를 하면 좋으련만 그저 자기 합리화하며 그러지 않는 현실 기득권 같은 모습에 약간 실망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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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환상의 그림갈 18 - 세계가 나를 싫어한다,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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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작가가 상당히 급발진 하기 시작하네요. 파라노에서 나온 이후 사실 이야기가 좀 질질 끈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요. 아마 작가도 이점을 우려했는지 이번에 그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들을 단숨에 진행 시켜기 시작합니다. 가장 많이 진행시켜 주길 바랐던 것은 바로 주인공 하루히로와 메리의 관계죠. 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순수하다는 느낌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안타까운 커플이 아닐 수 없었어요. 특히 작가는 은근히 19금적 요소와 NTR 같은 느낌도 소량 넣은 듯한 전개를 보여줘서 조마조마했던 적도 많았죠. 여담으로 이런 전개에는 주로 '시호루'가 담당했었지만요. 아무튼 단순히 이런 전개만이 아니라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세계에서 주인공도, 메인 히로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런 마음을 진행 시키는 건 사실 사치에 가까웠죠.

이번 18권을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전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주인공 하루히로와 메리와 관계를 정립하지 않아 좋게 말하면 순수한 마음들이라고 하겠고, 나쁘게 표현하면 지지부진이었는데요. 이걸 이번 18권에서 진행시켜 버립니다. 밑바닥 찌끄래기 인생을 살면서 연애라는 감정은 사치에 가까웠던 이들에게 있어서 뭣보다 축복받을 일이 일어나죠.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꿈도 희망도 없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동안 리뷰에선 별로 다루지 않았지만 '메리'가 안고 있던 복선을 몽땅 회수하면서 이야기는 종막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루히로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요.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의의에 괴로워하는 메리를 달래주며 고백을 하고 메리는 받아들입니다. 이거 큰 스포일러 아니야? 하시겠는데 이건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의 반동, 한번 터진 마음은 붓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진행이 되어 이제 둘이 떨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고, '란타'가 대신 직설적으로 표현해 줄 만큼 이야기는 척척 진행이 되어 가죠. 이런 장면들은 온통 시궁창뿐인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꽃과 같은,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알게 되죠. 이런 흐름은 사망 플래그로 이어진다는걸요.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메인 히로인이라고 살려두지 않고, 히로인이 아니라고 살려두진 않습니다(남자도 마찬가지). 아무리 호감 가는 히로인이라도, 얘는 살려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철저히 부서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죠. 메리는 예전에 한번 죽은 몸입니다. 그 몸에 어떤 존재가 깃들면서 되살아나죠. 그리고 이번 18권에서 전율을 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메리는 줄곧 하루히로를 좋아했고, 그의 등은 그녀의 안식처나 다름없었습니다. 오르타나 지배자' 진 모기스'의 명령으로 드워프족을 만나러 가는 하루히로 일행은 오크와 언데드 대군이 드워프족을 포위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 오크는 정말로 강합니다. 인간은 그냥 단체로 썰려 나가요. 오르타나를 궤멸 시키고 주인공 하루히로의 스승을 죽인, 지금 그들은 드워프족의 씨를 말리려는 중이죠. 어찌어찌 드워프 왕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나 여기도 뭐 꽉 막혀 있습니다. 왕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데... 자, 하루히로 일행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드워프 위정자들이 하루히로 일행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들어도 이미 늦었지만. 그래서 이야기는 절멸을 향해 달려갑니다. 저 위에서 이미 사망 플래그 뿌려지기도 했고요.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 예정된 절멸을 피해 도망가는 이들을 막아서는, 마치 바퀴벌레 찌부러뜨리듯 다가오는 오크 전사와의 싸움에서 하루히로 일행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나식 쓰러지고 하루히로가 쓰러지는 걸 보게 된 '메리'는.... 옛날 함께 사선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어느 마을에서 생명이 사그라지기 직전 메리는 하루히로에게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히로는 출발하기 전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에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었습니다. 하루히로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섰을까요. 꺼내기 싫었던, 메리는 '메리' 안에 깃든 어떤 존재를 깨웁니다.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하루히로의 마음. 이번 18권 부제목인 "세계가 나를 싫어한다"라는 의미, 그 의미가 공포로 체현되기 시작하면서 전율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메리는 더 이상 메리가 아니게 되는 걸까. 조금은 이야기를 급발진 시키고는 있지만 감히 말해봅니다.

이번 18권은 이때까지 읽은 수많은 라노벨중에 가장 슬프다는걸. 그리고 가장 안타깝다는걸.

맺으며: 큰 스포일러 안 하며 리뷰 쓰려니 이야기가 두루뭉술해졌군요. 아무튼 누구라도 먼저랄 거 없이 서로의 온기를 찾아 손을 맞잡으려는 하루히로와 메리의 감정이 정말로 애틋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가는 이런 마음들을 과장되지 않게 담담히 풀어가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이런 마음들을 그동안 피우지 않고 이번 18권에서 단숨에 폭발 시키는 바람에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동안 보고 싶었던 장면들이었던 것이라 마음은 후련해졌군요.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고, 작가는 희망을 품게 하면서도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능력 또한 발군이죠. 그러니까 "하루히로는 매리와 맺어졌나?" 그렇게 간단히 끝날 리 없잖아요.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19권으로 넘어가고, 필자에겐 혈압을 안겨주었군요. 특히 작가 후기 뒤에 나온 짤막한 이들의 경과보고는 충격 그 자체였고요. 결국 하루히로와 메리에게 있어서 이건 끝이 아닌 시작....

리뷰를 하루히로와 메리에 집중하긴 했습니다만, 작가가 집필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동안의 사물 표현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드워프족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에서 오는, 어둠 속에서 느끼는 미지의 정체에 대한 공포를 소름 돋게 잘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란타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같은 진정 어린 인생 조언도 새겨들을만 했고요(란타는 외전에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죠). 드워프들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하프(혼혈)에 대한 처우 등은 현실미는 보여줬군요.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하프(혼혈)의 처우는 대단히 안 좋은데, 여느 판타지에선 하프엘프라든지 하프 드워프, 하프오크등은 귀엽다거나 그런 설정인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못하며, 학대와 괴롭힘의 대명사로 되어 있어요. 그 때문에 절멸로 이어지는, 나와 다름에서 오는 차별은 결국 나의 발등을 찍는다는 교훈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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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 로드가 되는 여관 1 - Novel Engine
이나리 류 지음, 카토 이츠와 그림, 조아라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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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 주의, 매우 안 좋은 평이 있습니다.

장르: 블랙 코미디, 이세계 전생, 먼치킨, 하렘

노블엔진에서 발매된 신작으로 "블랙 코미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표지 보면 아시겠지만 부제목으로 ~레벨을 초월한 전생자가 여관에서 새내기 모험자 육성을 시작한다네요~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이세계 먼치킨을 다루고 있어요. 주인공은 전생자로서 그의 능력은 세이브와 로드라고 하는데, 콘솔 게임에서의 그 기능이 맞습니다. 세이브를 해놓고 죽었을 때 세이브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능이죠. 주인공은 이걸로 능력을 키우죠. 여기서 무서운 점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능력치를 잃지 않고 로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0의 경험치를 얻고 죽어서 로드를 해도 10의 경험치는 그대로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먼치킨 양산). 두 번째는 세이브&로드가 가능하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싸울 수 있다는 것인데요(반자이 돌격). 단순히 좋잖아?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초보 모험가에게 세이브 시키게 하고, 죽으면 로드해서 다시 시작하게 하고, 이렇게 죽자 살자 육성해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얼핏 보면 좋은 일 하잖아?라고 할 수 있죠.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작품에 보면 판타지에서 초보 모험가의 사망률은 끔찍하다고 하니까요. 요컨대 무한으로 살아나게 해서 수련하게 하고 그에 따라 성장하는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의 교육 방식이 사이코 패스급이라는 거고, 중도 포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로 절벽에 뛰어내리라 하고, 피통 키운다고 볶은 콩 먹고 위장이 터지고 숨이 막혀 죽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콩 먹고 죽는 사람이 이 작품에 있어요. 세이브했고, 죽으면 로드하면 되니까 괜찮데요. 여기까지 언급하면 이건 뭐 아포칼립스급 재앙이라고 느끼실걸요.

필자는 이 작품이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내용인가 했습니다. 그야 여우 수인이 화사하게 그려진 표지와 시놉시스는 그런 착각을 불러오기 충분했거든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웬 사이코패스 시키가 웃는 얼굴로 사람을 재앙의 구렁텅이로 밀어 놓고 있지 뭡니까. 사이코패스도 비유적이 아니라 그 자체라는 건데요. 예로 히로인 로렛타가 그의 교육을 받으며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죽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농담으로 치부해버리죠. 대련 중이든 교육 중이든 사람을 진짜로 죽여요. 그래놓고 로드하면 되니까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상대 스테이터스를 다 까발려 창피를 주면서 배려의 차원을 난 거짓말을 못하니까로 포장을 하죠. 이렇듯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성격에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요. 이는 개그를 위한 포장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할까요.

그리고 잘난 채 레벨은 또 어찌나 높은지, 난 강합니다. 레벨은 1이지만 세계 최강입니다. 이 세계 사람은 평생 던전 하나 제패할까 말까지만 나는 50개나 제패했습니다. 나에게 맞는 무기와 방어구가 없습니다. 요약하면 난 흉기 그 자체랍니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절벽에 뛰어내려서 죽음을 극복하세요(수십 번 죽임). 배 터지고 숨 막혀 죽을 때까지 볶은 콩 먹어서 피통 키우세요. 주먹으로 1초에 몬스터 6마리 잡으세요. 도망은 용납 못하고 나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당히 극단적이죠. 죽음은 극복했지만 마음이 망가집니다. 이미 그를 거쳐간 많은 수련생들이 마음이 망가졌죠. 거기에 주인공은 입만 열었다 하면 해대는 잘난 채를 길이로 환산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도 할걸요? 알아듣지 못한 말을 해놓고 왜 알아듣지 못하냐며 남 탓합니다. 진짜 실미도를 넘어선 광기가 느껴진다고요.

말은 또 얼마나 싸가지 없게 하는지.

???? 왈: 이렇게 하다간 죽을 거 같은데?

주인공 왈: 그런데요? <- 이걸 입에 달고 삼

필자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당신(주인공)은 칼 맞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칼을 맞고 살지요~"

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단순히 개그 픽션이니까 웃고 넘어가야 될까요. 일부는 넘길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 너무나 큰 문제점을 안고 있어요. 로드하면 되니까 죽어도 되고, 죽여도 죄가 안 된다는 논리, 게임은 정신에 나쁘니까 하면 안 돼!식 고리타분한 꼰대 기질로 언급하는 게 아니라 이게 정식 발매되었다는 것에서 상당한 충격을 먹었군요. 그래놓고 사실 주인공은 엄청 착하고 남을 위한다는 포장은 포장대로 다 해놓고, 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초반에 읽으며 주인공 시키 분명 전생전에 분명 방구석 폐인일 거야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중후반에 언급이 되더라고요.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해서 평범한 사람은 죽어도 못하는걸, 자기 기준을 적용해서 왜 못할까라고 의문을 가지는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인가?라는 고찰하기까지 했군요.

맺으며: 사람은 죽을 위기를 넘겨 강해진다고 하죠. 그러나 이 작품은 죽음으로부터 강해지는 걸 표현합니다. 일단 기본이 죽어서 공포를 극복하고, 경험을 살리라 조언하죠. 문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에 볶은 콩을 먹어 배 터지고 숨 막혀 죽으라는 게 제정신인가 싶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는 제외됩니다. 개그로 치기엔 너무 살벌해요. 설명을 통해 이해를 얻기 보다, 설명은 하나도 안 하고 왜 안 하는데? 왜 이해를 못 하는데?로 주인공 기준으로 이 상황을 당연시해버리니 어찌 된 일인지 필자의 정체성에 의문까지 오더라고요. 어릴 적 어른들이 만화(이 작품은 라노벨이지만)를 보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이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군요. 개그로 받아들이기에 필자의 나이가 너무 많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상식과 윤리는 이 작품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아무튼 먼치킨 요소는 다 들어가 있습니다. 먼치킨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환장할 작품이죠. 기본적이 되는 주인공 레벨 1 먼치킨, 부인은 수인이고, 노예 소녀(종업원으로 기용 중), 길드장하고 친구 먹고, 여왕과 베프 먹고, 자기는 와이프만 본다고 그러지만 주변은 온통 여자들뿐이고(심지어 길드장도 여자), 그리고 상냥해. 방구석 폐인들이 바라는 요소는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반대로 말하면 필자와는 아주 상극이 되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웬만하면 좋게 쓰려고 했는데요. 쓰다 보니 출판사에서 고소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 진짜 본 리뷰는 정말 순화해서 쓴 겁니다. 본 작품을 출시한 출판사 작품 중에 비교를 하라면 '외톨이의 이세계 공략'을 들 수가 있겠군요. 필자는 이 작품(외톨이) 리뷰하면서 2권은 발매 해선 안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이 작품(세이브&로드 여관)에도 적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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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뉴 게이트 4 - 04. 푸른색의 옛 성지
카자나미 시노기 지음, 김진환 옮김 / 라루나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왕족, 그것도 왕녀의 침실에 대검이 날아와 벽에 박힌다면 어떤 소동이 일어날까. 왕녀는 누가 날 죽이려고 그러나? 하면서 경비를 강화하고 범인을 찾아 3족을 멸하는 게 판타지에서 정석이잖아요. 비단 판타지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칼이 날아와 꼽힌다면 난리 나겠죠. 아무튼 아닌 밤중에 홍두깨 당한 왕녀는 어떤 반응을 내놨을까. 보통 라노벨에서 왕녀의 이미지는 두 가지죠. 음침한 히스테릭과 무지한 성녀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한 가지 더 해서 이 작품에서의 왕녀는 상당히 호탕한 성격으로 글쎄 이 대검을 자신에게 보낸 프러포즈로 보고 이 검을 보낸 장본인을 찾아 나서요.


이번 이야기를 한 구절로 표현 하라면, 이 검이 너의 것이냐? 너의 이름은?


또다시 히로인이 늘었습니다. 간간이 나오는 서브 히로인까지 합치면 이제 세는 것도 지겨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히로인들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은 언젠가 칼 맞을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주인공은 히로인들에게 별 감흥이 없다는 거죠. 메인 히로인 '슈니'는 연애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주인공에게 점점 얀데레가 되어 가고 있고요. 두 번째 히로인인 '티에라'는 은근히 호감을 보이지만 언제나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어이없어 합니다. 사실 슈니보다 티에라와 티키타카 하는 게 더 재미있는데 요즘은 잘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에 제2왕녀가 합류하게 되는데 다른 히로인들이 보면 부러워할 일들을 만들어 가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러브 코미디 연애물인가 싶지만, 일단은 이 작품의 본질은 판타지 먼치킨이고 하렘은 그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요. 목적과 수단을 헷갈려선 안 돼요. 하렘 뽕빨물을 싫어하는 필자가 아직 하차하지 않고 보고 있다는 건 그 방면에선 아직은 양호하다는 소리랍니다. 아무튼 제2 왕녀는 자신의 방에 날라든 대검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다가 주인공의 짓이라는 걸 알아내죠. 보통 이런 판타지에선 그런 주인공을 자신의 수하로 삼거나 천하게 여기거나 얕잡아 보는 등 암 걸릴만한 행동을 하곤 하는데 이 작품의 왕녀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왕족답지 않는 털털함과 호탕한 성격으로 주인공을 떠보긴 하지만 굳이 강요는 하지 않는, 그러나 약간 호전적인 성격으로 주인공과 대결을 원하는 무인 기질을 보이죠. 이때까지 이런 왕녀는 없었다 싶을 정도로 배려가 넘치고, 자신을 낮추고, 그러면서 은근히 주인공을 남편으로 삼으려고 공공연히 이 나라의 포러포즈 관습(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칼을 선물)을 들먹이며 어필하는 게 귀여울 정도인데요. 다만 일러스트는 전혀 귀엽지 않아서 약간은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귀여움은 유즈하(아무리 생각해도 네이밍 센스 꽝)의 몫이니까 넘어가고, 왕녀는 이렇게 만난 주인공과 대결을 청하게 되죠. 그리고 머나먼 여정을 떠납니다.


이번 4권의 이야기 대부분은 왕녀와 연결되어 있는지라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요. 주인공과 옛 성지에 떨어져 귀환하는 여정 속에서 주인공도 애먹는 몬스터와 마주하고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싸우려 하고,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뭔가 찾고, 휘두르는 칼이 몬스터에 생채기도 못 내는데도 그래도 주인공의 발을 붙잡지 않으려고(나 좀 구해줘 같은) 최선을 다하고 내 말 들어 같은 억지를 부리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한 위정자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한마디로 발암적 요소가 하나도 없는, 하렘의 교본이라고 하면 좀 오버스럽고, 하렘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런 하렘이 환영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군요.


맺으며: 이거 메인 히로인 '슈니'의 자리가 위태로울 정도로 왕녀의 성격이 올발라서 상당히 흥미로운 4권이었습니다. 거기에 여느 라노벨 히로인들처럼 개연성 없이 호감도가 올라가는 게 아닌, 함께 사선을 넘어오며 서로 의지하고 그에 따른 신뢰를 거치며 조금씩 호감도를 키워가는 게 상당히 좋아요.  물론 주인공이 왕녀를 보호하며 왕녀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하고 그에 따른 상대가 자신을 이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걸 인지 못하는 고자 같은 모습을 보여서 좀 답답한 게 있지만, 이번 4권에서 주인공은 왜 타인의 호감을 거부하는가에 대해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결국 기믹에 지나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이번 4권은 새로운 적 '데몬'이 등장하면서 먼치킨이 퇴색되고 이제 사선을 넘나드는 싸움이 될 거라는 암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질 나쁜 놈들도 등장하면서 조금씩 흥미도를 올려가고 있어요. 다만 몬스터와 싸우면서 기승전결이 좀 아쉽습니다. '해치웠나?' 같은 전형적인 사망 플래그를 세우면서 부활한 몬스터와 2차전 들어가며 질질 끄는 게 좀 있어요. 그리고 좀 사족으로 써보자면 멍석을 깔아주면 하다못해 고스톱이라도 치든가 작가가 전연령가를 목표로 해서 그런가요. 후반 은근히 왕녀가 어필해오는데 동인지 같으면 뭔 일 터져도 벌서 터졌을 일을 주인공은 냅다 걷어차버리니 이보다 불쌍하고 어이없는 주인공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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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결 1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퐁칸 ⑧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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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그럼 그렇지 본편인 14권(完)까지 다 읽어본바로는 겨우 완결 시켰다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는데 이렇게 빨리 새로운 후속편을 내줄리 있나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결(結)-은 DVD&BD 특전으로 수록된 어나더(another) 단편집들을 엮어서 만들어낸 0.5 외전 형식입니다. 시간상으로는 본편 9권 겨울방학 막 시작된 시점이고요. 1권은 크리스마스를 거쳐 신년 새해 참배와 유키노시타 생일까지입니다. 이미 본편에서도 다뤘던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이들 3명의 마음을 보다 적나라하게 밝혀 주어서 본편은 조금 두루뭉술하게 끝나버린 관계를 보충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데요. 가령 유키노시타가 하치만에게서 슈슈(머리 묶는 고무줄 비슷 한 거)를 선물 받고 정신을 못 차린다든지(본편에 있던가 가물가물), 그런 유키노시타를 바라보는 유이가 하치만과의 관계를 도로(다가갈 수 없는 벽)로 비유하면서 옛날부터 좋아했다는 독백 등 다소 소름 돋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본편이 유키노시타의 마음을 표현했다면 -결-의 내용은 시놉시스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이'의 마음을 조금 더 대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유키노시타의 팬이라면 다소 안 좋은 감정이 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장면들이 다소 보입니다. 가령 겨울방학이 되고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하치만은 방 청소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여전히 방구석 폐인 같은 면모를 보여주다 에라 모르겠다 영화나 봐야지 해서 나갔더니 제일 처음 보이는 게 '유이'란 말이죠. 그 뒤를 둘(유이와)이서 찍은 스티커 사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며 다가오는 유키노시타가 있어요. 자, 여기서 연결성이 생깁니다. 유이는 대뜸 유키노시타에게 자신들의 원래 볼 일은 제쳐두고 우리도 같이 영화 보자고 하죠. -결-에선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유이의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해 참배에서도 먼저 하치만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가자는 장면에서 하치만이 우물쭈물하자 유키노시타를 지렛대로 삼아 그를 불러내는데 성공하죠.


근데 돌이켜보면 유키노와 하치만은 연결성이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둘은 성격상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학교같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외에는 연락조차 잘 안 할 테죠. 결국 이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게 유이의 역할이고, 유이가 빠지게 되면 둘(하치만과 유키노)의 관계는 성립이 되지 않는, 어쩌면 본편의 엔딩은 유이가 존재함으로써 성립이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결-에서는 보다 유이에게 다가가게 하는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는데, 문제는 스무스하게 진행이 되지 않는, 읽다 보면 왠지 처절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어요. 하치만이 건네준 슈슈의 색에서 유키노는 분홍색, 유이는 하늘색, 이 색이 의미하는 게 무얼까는 대충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마음에 보다 가까운 색은 아무래도 분홍색이 되겠죠. 이를 뒷받침하는 게 하치만은 철저한 계산 끝에 골랐다는 대목이 있어요. 이미 하치만의 마음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유이는 포기하지 않으려 하죠.


주변은 다 아는데 본인만 갈팡질팡,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줘야 용기를 내는 청춘 드라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장면이 있어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오리모토'와 유키노의 생일 문제로 얽히게 되는 '하루노'를 통해서 하치만은 마음을 강요받죠. 여기서 하치만이 둘 다 마음에 없었다면 뭔 궤변이냐고 일축했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에서 언젠가 마음을 정해야 한다는 걸 알아가요. 동생 '코마치'에게서는 아침 드라마 되지 않게 처신 잘하라는 독설을 듣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힛키'코모리 주제에 정말 잘 나가는 인싸가 아닌가 싶죠. 언젠가 등에 칼 맞는 날이 온다면, -결-의 내용이 유이로 향하는 날이지 않을까요. 분명 그 칼은 유키노의 손에 쥐어지게 될 테고요. 아니면 DVD&BD 부록으로 제공될 때 엄청나게 욕먹은 작가가 도서로 내면서 수정했을 수도 있겠죠. 유이는 계속해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등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유키노는 팬돌이에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맺으며: 뭐랄까 여전히 작가의 숨은 표현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가령 유이와 하치만과의 관계를 도로에 비유하는 대목이나, 슈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그 의미를 독자에게 깨닫게 하는 것, 오리모토로 하여금 지금의 하치만이 안고 있는 마음을 대변 시키는 것, 무슨 일이든 유키노와 연결시켜 그녀를 지렛대 삼아 하치만과 인연을 만들려는 유이의 처절함, 배려심이라고는 태어날 때부터 갖다 버린 오리모토를 투입 시켜 이들(하치만, 유이, 유키노)의 관계는 싸구려가 아니라 것등 본편보다는 다소 약하지만 외전 치고는 꽤나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전으로 내면서 좀 순화하거나 고쳤더라면 좋았을, 그동안 능구렁이였다면 이번에 검은 과부거미로 변신한 '하루노'의 활약은 많은 안티팬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유키노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독단 전횡은 나의 말을 거부하면 물어버리겠다는 식이어서 반감이 상당했었군요.


그건 그렇고 사족으로 좀 더 언급해보자면, -결-의 의미는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한자로는 結를 쓰고. 뜻은 맺다.입니다. 일본어로는 유이로 발음되고요. 결국 유이로 끝맺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필자는 유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라면 처절함을 들겠습니다. 미우라 패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유키노와 어울리고, 걸핏하면 유키노와 팔짱을 끼려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무리에서 뒤처지니까 같은, 자신이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주변은 날 두고 갈 거라는 강박관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백조는 물에 떠 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휘젓는다고 하죠. 그건 결코 우아하지 않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 거 같기도 하네요. 이번 -결-에서도 유이는 그런 면모를 보여줍니다. 유키노에게 더욱 들러붙고, 하치만과 만나면 하치만을 우선시하고, 그를 불러낼 구실을 만들고, 같이 있을 구실을 만들어 가죠. 아마 이 끝은 DVD&BF 제공본처럼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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