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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결 1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퐁칸 ⑧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그럼 그렇지 본편인 14권(完)까지 다 읽어본바로는 겨우 완결 시켰다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는데 이렇게 빨리 새로운 후속편을 내줄리 있나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결(結)-은 DVD&BD 특전으로 수록된 어나더(another) 단편집들을 엮어서 만들어낸 0.5 외전 형식입니다. 시간상으로는 본편 9권 겨울방학 막 시작된 시점이고요. 1권은 크리스마스를 거쳐 신년 새해 참배와 유키노시타 생일까지입니다. 이미 본편에서도 다뤘던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이들 3명의 마음을 보다 적나라하게 밝혀 주어서 본편은 조금 두루뭉술하게 끝나버린 관계를 보충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데요. 가령 유키노시타가 하치만에게서 슈슈(머리 묶는 고무줄 비슷 한 거)를 선물 받고 정신을 못 차린다든지(본편에 있던가 가물가물), 그런 유키노시타를 바라보는 유이가 하치만과의 관계를 도로(다가갈 수 없는 벽)로 비유하면서 옛날부터 좋아했다는 독백 등 다소 소름 돋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본편이 유키노시타의 마음을 표현했다면 -결-의 내용은 시놉시스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이'의 마음을 조금 더 대변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유키노시타의 팬이라면 다소 안 좋은 감정이 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장면들이 다소 보입니다. 가령 겨울방학이 되고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하치만은 방 청소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여전히 방구석 폐인 같은 면모를 보여주다 에라 모르겠다 영화나 봐야지 해서 나갔더니 제일 처음 보이는 게 '유이'란 말이죠. 그 뒤를 둘(유이와)이서 찍은 스티커 사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며 다가오는 유키노시타가 있어요. 자, 여기서 연결성이 생깁니다. 유이는 대뜸 유키노시타에게 자신들의 원래 볼 일은 제쳐두고 우리도 같이 영화 보자고 하죠. -결-에선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유이의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해 참배에서도 먼저 하치만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가자는 장면에서 하치만이 우물쭈물하자 유키노시타를 지렛대로 삼아 그를 불러내는데 성공하죠.
근데 돌이켜보면 유키노와 하치만은 연결성이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둘은 성격상 가만히 내버려 두면 학교같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외에는 연락조차 잘 안 할 테죠. 결국 이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게 유이의 역할이고, 유이가 빠지게 되면 둘(하치만과 유키노)의 관계는 성립이 되지 않는, 어쩌면 본편의 엔딩은 유이가 존재함으로써 성립이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결-에서는 보다 유이에게 다가가게 하는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는데, 문제는 스무스하게 진행이 되지 않는, 읽다 보면 왠지 처절한 느낌을 지을 수가 없어요. 하치만이 건네준 슈슈의 색에서 유키노는 분홍색, 유이는 하늘색, 이 색이 의미하는 게 무얼까는 대충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마음에 보다 가까운 색은 아무래도 분홍색이 되겠죠. 이를 뒷받침하는 게 하치만은 철저한 계산 끝에 골랐다는 대목이 있어요. 이미 하치만의 마음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유이는 포기하지 않으려 하죠.
주변은 다 아는데 본인만 갈팡질팡,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줘야 용기를 내는 청춘 드라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장면이 있어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오리모토'와 유키노의 생일 문제로 얽히게 되는 '하루노'를 통해서 하치만은 마음을 강요받죠. 여기서 하치만이 둘 다 마음에 없었다면 뭔 궤변이냐고 일축했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에서 언젠가 마음을 정해야 한다는 걸 알아가요. 동생 '코마치'에게서는 아침 드라마 되지 않게 처신 잘하라는 독설을 듣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힛키'코모리 주제에 정말 잘 나가는 인싸가 아닌가 싶죠. 언젠가 등에 칼 맞는 날이 온다면, -결-의 내용이 유이로 향하는 날이지 않을까요. 분명 그 칼은 유키노의 손에 쥐어지게 될 테고요. 아니면 DVD&BD 부록으로 제공될 때 엄청나게 욕먹은 작가가 도서로 내면서 수정했을 수도 있겠죠. 유이는 계속해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등 바지런하게 움직이고, 유키노는 팬돌이에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맺으며: 뭐랄까 여전히 작가의 숨은 표현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가령 유이와 하치만과의 관계를 도로에 비유하는 대목이나, 슈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그 의미를 독자에게 깨닫게 하는 것, 오리모토로 하여금 지금의 하치만이 안고 있는 마음을 대변 시키는 것, 무슨 일이든 유키노와 연결시켜 그녀를 지렛대 삼아 하치만과 인연을 만들려는 유이의 처절함, 배려심이라고는 태어날 때부터 갖다 버린 오리모토를 투입 시켜 이들(하치만, 유이, 유키노)의 관계는 싸구려가 아니라 것등 본편보다는 다소 약하지만 외전 치고는 꽤나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전으로 내면서 좀 순화하거나 고쳤더라면 좋았을, 그동안 능구렁이였다면 이번에 검은 과부거미로 변신한 '하루노'의 활약은 많은 안티팬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유키노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독단 전횡은 나의 말을 거부하면 물어버리겠다는 식이어서 반감이 상당했었군요.
그건 그렇고 사족으로 좀 더 언급해보자면, -결-의 의미는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한자로는 結를 쓰고. 뜻은 맺다.입니다. 일본어로는 유이로 발음되고요. 결국 유이로 끝맺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필자는 유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라면 처절함을 들겠습니다. 미우라 패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유키노와 어울리고, 걸핏하면 유키노와 팔짱을 끼려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무리에서 뒤처지니까 같은, 자신이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주변은 날 두고 갈 거라는 강박관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백조는 물에 떠 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휘젓는다고 하죠. 그건 결코 우아하지 않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 거 같기도 하네요. 이번 -결-에서도 유이는 그런 면모를 보여줍니다. 유키노에게 더욱 들러붙고, 하치만과 만나면 하치만을 우선시하고, 그를 불러낼 구실을 만들고, 같이 있을 구실을 만들어 가죠. 아마 이 끝은 DVD&BF 제공본처럼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