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환상의 그림갈 18 - 세계가 나를 싫어한다,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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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작가가 상당히 급발진 하기 시작하네요. 파라노에서 나온 이후 사실 이야기가 좀 질질 끈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요. 아마 작가도 이점을 우려했는지 이번에 그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들을 단숨에 진행 시켜기 시작합니다. 가장 많이 진행시켜 주길 바랐던 것은 바로 주인공 하루히로와 메리의 관계죠. 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순수하다는 느낌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안타까운 커플이 아닐 수 없었어요. 특히 작가는 은근히 19금적 요소와 NTR 같은 느낌도 소량 넣은 듯한 전개를 보여줘서 조마조마했던 적도 많았죠. 여담으로 이런 전개에는 주로 '시호루'가 담당했었지만요. 아무튼 단순히 이런 전개만이 아니라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세계에서 주인공도, 메인 히로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런 마음을 진행 시키는 건 사실 사치에 가까웠죠.

이번 18권을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전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주인공 하루히로와 메리와 관계를 정립하지 않아 좋게 말하면 순수한 마음들이라고 하겠고, 나쁘게 표현하면 지지부진이었는데요. 이걸 이번 18권에서 진행시켜 버립니다. 밑바닥 찌끄래기 인생을 살면서 연애라는 감정은 사치에 가까웠던 이들에게 있어서 뭣보다 축복받을 일이 일어나죠.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꿈도 희망도 없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동안 리뷰에선 별로 다루지 않았지만 '메리'가 안고 있던 복선을 몽땅 회수하면서 이야기는 종막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루히로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요.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의의에 괴로워하는 메리를 달래주며 고백을 하고 메리는 받아들입니다. 이거 큰 스포일러 아니야? 하시겠는데 이건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그동안 참아왔던 마음의 반동, 한번 터진 마음은 붓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이 진행이 되어 이제 둘이 떨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고, '란타'가 대신 직설적으로 표현해 줄 만큼 이야기는 척척 진행이 되어 가죠. 이런 장면들은 온통 시궁창뿐인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꽃과 같은,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알게 되죠. 이런 흐름은 사망 플래그로 이어진다는걸요.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메인 히로인이라고 살려두지 않고, 히로인이 아니라고 살려두진 않습니다(남자도 마찬가지). 아무리 호감 가는 히로인이라도, 얘는 살려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철저히 부서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죠. 메리는 예전에 한번 죽은 몸입니다. 그 몸에 어떤 존재가 깃들면서 되살아나죠. 그리고 이번 18권에서 전율을 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메리는 줄곧 하루히로를 좋아했고, 그의 등은 그녀의 안식처나 다름없었습니다. 오르타나 지배자' 진 모기스'의 명령으로 드워프족을 만나러 가는 하루히로 일행은 오크와 언데드 대군이 드워프족을 포위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 오크는 정말로 강합니다. 인간은 그냥 단체로 썰려 나가요. 오르타나를 궤멸 시키고 주인공 하루히로의 스승을 죽인, 지금 그들은 드워프족의 씨를 말리려는 중이죠. 어찌어찌 드워프 왕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나 여기도 뭐 꽉 막혀 있습니다. 왕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데... 자, 하루히로 일행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드워프 위정자들이 하루히로 일행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들어도 이미 늦었지만. 그래서 이야기는 절멸을 향해 달려갑니다. 저 위에서 이미 사망 플래그 뿌려지기도 했고요.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 예정된 절멸을 피해 도망가는 이들을 막아서는, 마치 바퀴벌레 찌부러뜨리듯 다가오는 오크 전사와의 싸움에서 하루히로 일행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나식 쓰러지고 하루히로가 쓰러지는 걸 보게 된 '메리'는.... 옛날 함께 사선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어느 마을에서 생명이 사그라지기 직전 메리는 하루히로에게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히로는 출발하기 전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에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었습니다. 하루히로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섰을까요. 꺼내기 싫었던, 메리는 '메리' 안에 깃든 어떤 존재를 깨웁니다.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하루히로의 마음. 이번 18권 부제목인 "세계가 나를 싫어한다"라는 의미, 그 의미가 공포로 체현되기 시작하면서 전율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메리는 더 이상 메리가 아니게 되는 걸까. 조금은 이야기를 급발진 시키고는 있지만 감히 말해봅니다.

이번 18권은 이때까지 읽은 수많은 라노벨중에 가장 슬프다는걸. 그리고 가장 안타깝다는걸.

맺으며: 큰 스포일러 안 하며 리뷰 쓰려니 이야기가 두루뭉술해졌군요. 아무튼 누구라도 먼저랄 거 없이 서로의 온기를 찾아 손을 맞잡으려는 하루히로와 메리의 감정이 정말로 애틋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가는 이런 마음들을 과장되지 않게 담담히 풀어가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이런 마음들을 그동안 피우지 않고 이번 18권에서 단숨에 폭발 시키는 바람에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동안 보고 싶었던 장면들이었던 것이라 마음은 후련해졌군요.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고, 작가는 희망을 품게 하면서도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능력 또한 발군이죠. 그러니까 "하루히로는 매리와 맺어졌나?" 그렇게 간단히 끝날 리 없잖아요.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19권으로 넘어가고, 필자에겐 혈압을 안겨주었군요. 특히 작가 후기 뒤에 나온 짤막한 이들의 경과보고는 충격 그 자체였고요. 결국 하루히로와 메리에게 있어서 이건 끝이 아닌 시작....

리뷰를 하루히로와 메리에 집중하긴 했습니다만, 작가가 집필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동안의 사물 표현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드워프족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에서 오는, 어둠 속에서 느끼는 미지의 정체에 대한 공포를 소름 돋게 잘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란타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같은 진정 어린 인생 조언도 새겨들을만 했고요(란타는 외전에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죠). 드워프들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하프(혼혈)에 대한 처우 등은 현실미는 보여줬군요.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하프(혼혈)의 처우는 대단히 안 좋은데, 여느 판타지에선 하프엘프라든지 하프 드워프, 하프오크등은 귀엽다거나 그런 설정인 반면에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못하며, 학대와 괴롭힘의 대명사로 되어 있어요. 그 때문에 절멸로 이어지는, 나와 다름에서 오는 차별은 결국 나의 발등을 찍는다는 교훈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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