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의 스승님 7 - L Novel
미츠오카 요 지음, 김보미 옮김, 코즈믹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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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자는 새끼를 벼랑에 떨어트려 올라온 놈만 키운다는 비유적인 말이 있습니다. 자, 이걸 이 작품에 등장하는 렘르실 제국에 빗대어 보자면요. 황제에게 아들 둘에 딸이 하나 있어요. 다음 보위를 남매 중 한 명에게 물려주긴 해야겠는데 나라 사정이 개판 5분 직전인 겁니다. 마물과의 대전으로 국내 사정이 피폐한데다 옆 나라는 마물과의 전쟁도 끝났겠다 우리 전쟁하자며 깔짝대지 국정을 이끌어가야 될 관리직 귀족 놈들은 사리사욕에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으니 황제가 보기에도 이것들 참으로 노답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마누라를 전쟁터에 보내서 죽게 만들어 놓고 그 공로를 가로채서는 의기양양 권력을 독식하는 후작 나부랭이도 눈에 거슬리고, 아들 놈 하나는 방구석 폐인 배불뚝이같이 생긴 것도 울화통인데 마마보이 기질까지 보이니 나라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황제도 골방지기를 자처해버려요. 국정은 그나마 유식하고 올바르게 성장한 장남 '알프레드'에게 모두 맡겨 두고요. 그런 황제의 근심은 모른 채 나라는 더욱 썩어가기만 했죠. 거기에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고 후작 나부랭이 아들 놈이 엄마 죽인 원수가 지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트럭 핸들을 엄한 곳으로 돌려서는 어디 이세계에 갈 놈 없냐고 두리번거리다 목표물 발견하고 돌진을 하니 그게 주인공 '윈'이었다라는 말씀. 뭔 뚱딴지같은 말이야고 해도요. 필자가 이 작품을 읽고 느낀 점 그대로 썼을 뿐이랍니다. 아무튼 저 위에서 사자 새끼를 언급 해놓고 엄한 소리만 늘어놓는다고 하실 텐데, 어쨌건 내가(황제) 국정에 무관심하면 자식들이 알아서 치고받고 싸우다 누군가는 이기겠지. 이긴 놈에게 황위를 물려주면 되지 않을까 해서 내란에도 개입하지 않았더랬죠.

 

그게 나라를 팔아먹을 놈이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할 녀석이든. 하지만 황제의 기쁜 오산은 마왕을 토벌한 용사 레티와 그녀의 스승 윈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란으로 권력의 향방이 정해져 가는 가운데 황제는 자신의 앞에 누가 있는지 보게 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장녀 '코넬리아'와 그녀의 종사 '윈', 그 자리에서 황제는 주인공 윈이 어지러운 시국을 넘어 난세의 영웅이 될 그릇이 되는지, 그리고 장녀 코넬리아가 황족으로써 걸맞는지 시험에 들어가면서 사자가 새끼를 벼랑이 떨어트려 올라온 놈만 키운다는 비유적 말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하죠. 자식들이 280여년 제국 역사를 이끌어갈 인물에 걸맞는가. 그런데 황제의 기쁜 오산인 주인공 윈의 존재 덕분에 국내의 어려운 사정들이 해결되어 간다는 것.

 

자, 황제의 시험에서 정답을 도출한 자식은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주인공 윈의 입장은 어떻게 변화 할 것인가.

 

사실 내란이든 귀족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 등은 아무래도 좋아요. 황제가 자식들에게 뭘 바라는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우매하게 행동했던 후작 나부랭이의 자식이라든지. 이 작품의 관심사는 오로지 주인공과 히로인의 관계라 할 수 있군요. 밑바닥부터 올라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과 자신이 안주할 장소를 제공해준 주인공을 사모하여 옆에서 같이 걸어 가려는 히로인의 관계. 철이 들 때부터 누구에게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던 히로인은 주인공을 만나 처음으로 인간다운 정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건 필연이라는 듯 연결이 되어가는 장면들은 참으로 애틋하게 하죠. 자나 깨나 그만을 생각하고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강해지는, 그래서 용사를 조종하려면 남자를 수중에 두면 된다는 말까지 나오며 이들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였습니다만. 그런 일은 없었군요.

 

맺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는 완전한 엔딩에 속하긴 합니다만. 조금 더 에필로그 장면을 그려 줬으면 좋았을 텐데 오픈 엔딩으로 끝나버리니 뭔가 허전하군요. 그래도 마왕을 무찌른 용사의 미래상을 보여준 것으로는 이 작품만 한 게 있나 싶은데요. 힘을 가진 자를 차지하기 위한 내분이라든지 용사라는 새로운 마왕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다 못해 길을 떠나는 칙칙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하는 미래를 택한 것에서 훈훈한 감동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용사 레티의 질투하지 않는 마음을 들 수가 있군요. 자신의 목줄을 쥐려면 누굴 사로잡으면 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어요.

 

바로 주인공 윈이죠. 용사 레티가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그(윈)이는 평민으로써 힘이 없어요. 귀족들이 그를 수중에 넣고 명령이나 협박을 통해 용사를 움직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을 소유하면 용사를 손에 넣는 거나 다름없게 되는 상황에서 나보다 그(윈)의 자유를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곁엔 또 다른 히로인 황녀 '코넬리아'가 있었습니다.

 

6권에서 다소 설정에 구멍을 보여주긴 했지만, 무난하게 끝났군요. 조금 아쉬웠던 건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면에서 그를 조금 더 굴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내란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키워가고 궁극적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영웅이 누구인가를 되새기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역시나 신(神)을 개입 시킴으로서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설정은 좀 아닌 거 같았군요. 내란의 주모자 등 흑막에 대해서도 급하게 끝을 맺어 버리고, 좀 더 어리석은 자들 가령 레티의 큰언니나 이번에 등장하는 오빠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카타르시스라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계급을 뛰어넘은 사랑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꽤 수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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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의 스승님 6 - L Novel
미츠오카 요 지음, 김보미 옮김, 코즈믹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하세요.

 

 

 

 

얼마 전 외국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고 겉돌고 따돌림당하더래요. 그래서 의사에게 갔더니 천재의 소질이 보이니 그쪽 방면으로 공부 시키면 어떠냐는 소견을 듣게 돼요. 엄마는 그 길로 아이가 원하는 공부와 틀에 맞는 교육을 시켰어요. 강요가 아니라 아이의 뜻에 따라 아이의 틀에 맞춘 결과 그 아이는 10대 초반에 미국 굴지의 대학 입학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죠. 여기서 시사하는 점은 어른이 바라보는 천재라는 틀에 아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춘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 비유하자면 히로인이자 용사 '레티'를 들 수가 있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천재의 기질을 보였으나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엔 그저 기행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레티는 집에서 겉돌고 무시당하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죠.

 

그녀의 천재 기질을 주인공 '윈'이 본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배려를 해주었죠. 그리고 그녀는 10살에 용사라는 천재로 각성해서 암울했던 세계를 구원했습니다. 자, 여기서 그녀를 천재(용사)로 이끈 건 누구일까. 그 누구도 아닙니다. 그저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윈은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잡아주었을 뿐이죠. 어린 나이에 한창 보호받아야 될 그녀가 외로운 길을 걸을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가족이 아니라 주인공 '윈'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 이것입니다. 힘들 때 곁에 누가 있었는가. 만약 레티의 집에서 그녀의 행동을 기행이라 치부하지 않고 그녀의 눈 높이에 맞는 틀에 맞춰서 교육을 시키고 배려를 해주었다면 분명 역시 용사의 길을 걸었을 테죠. 또한 집안과의 사이도 돈독해졌을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꼭 지나가고 나서야 후회를 합니다.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는데 손을 들어봐야 노빠꾸일뿐이죠. '메이비스 공작가(家)'에서 레티의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버스에 애를 혼자 태워 보내놓고도 버스를 붙잡기는커녕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그때는 몰랐겠죠. 장녀 '스테시아(레티에겐 큰언니)'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레티의 아버지는 그때 버스를 붙잡을 걸 그랬다고 되뇌어 봐야 이미 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클라이후드루프 후작가(家)' 장남 '제이드'가 촉발한 국가 전복 시도는 내란이라는 결과를 낳아 버렸습니다. 레티의 큰언니 스테시아는 자기도 어린 레티를 업신여겨놓고 그녀가 용사로 각성하여 누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시기를 해버립니다. 그녀(스테시아)는 우둔함의 결정체를 보여주죠.

 

그래서 제이드의 속임수에 넘어가 국가 전복에 발을 들이밀어버립니다. 그것이 국가와 가문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걸 모른 채, 우둔한 장녀를 보며 레티의 아버지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 레티의 기행을 곱씹고 멀리한 걸 탓하듯이 어린 레티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아버지는 깨달아 가요. 우둔한 건 장녀가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그렇기에 가문은 멸족하겠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난을 피한 레티가 있는 한, 핏줄이 끊길 일 없을 거라는 자조 섞인 말 밖에 할 수 없는 모습에서 많은 걸 깨닫게 해줍니다. 사실 이렇게 길게 쓸 만큼 레티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아요. 수십 쪽에 불과한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저 위에서 아이를 대학에 입학 시킨 엄마처럼 우둔함 보다 현명함을 선택했다면 분명 미래는 바뀌었을 거라는.

 

이번 이야기는 창세신과 동등하다는 파괴신을 현현시켜 세계를 다시 쓸려고 했던 '사라 페롤'이 남긴 유산을 둘러싼 최종편입니다. '사라'는 얼핏 보면 세계를 멸망 시키는 마왕과도 같은 존재지만, 그녀의 시작은 어느 왕국에서 왕의 증손녀를 보필했던 시녀에 지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왕의 몸에 마왕이 깃들면서 왕국은 멸망의 기로에 섰고, 그녀는 증손녀를 안고 어떤 마도사와 함께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였죠. 그때 그녀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며 절망을 느꼈고, 차라리 세계를 다시 만들면 이런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들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1차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래서 같이 탈출한 마도사가 만든 금단의 기술을 훔쳐 파괴신을 현현 시키려 했으나 용사 레티에 의해 저지 당하고 말아요.

 

마왕과는 별개로 또 다른 지역에서 마왕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질뻔한 걸 레티가 저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가 생전에 했던 어려운 사람 구제라는 업적은 그녀를 성인(聖人) 반영에 오르게 했고 레티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생전 업적을 기려 치부는 감춰 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실험에 희생되었음에도, 그녀의 의지 자체가 궁극적으로 세계를 새로 만들어 어려운 사람 구제라는 선에서 입각한 것인지라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좋게 끝나나 했지만 그런 그녀가 남긴 파괴신 현현에 관련한 유산들을 노리는 자가 당연히 나오기 마련일 것입니다. 사라가 남긴 세계 구제라는 의지보다 오로지 '파괴신'에만 현혹된 사람. 이번 이야기는 그 사람과 싸우는 이야기인데요. 용사 레티에게 걸리면 그 누가 되었든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뒤집고 전투는 새로운 양상을 띄워 가요.

 

사실 이렇게 끝나면 정말로 좋을 거라 필자는 생각하였습니다. 버스 떠나고 나서야 손드는 멍청이에 대한 교훈과 시녀로써 본분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분골쇄신했던 시녀의 숭고한 정신은 작품의 질을 올리는데 이보다 좋은 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주재를 놓고 마치 용두사미처럼 세상 살다 이렇게 답답한 작품은 또 있을까 했던 게 이번 6권이군요. 사라의 유산을 노리는 악당 마도사가 나와요. 제도에서 유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죠. 마도사 본분에 입각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데 정도의 길을 걷기보다 사도의 길을 걸으며 남이사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전형적인 악당인데요. 이놈이 노리는 사라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레티는 맞서가죠. 여기서부터가 답답함의 정수를, 고구마를 트럭째 싣고 와서 들이붓습니다.

 

분명 일도양단할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빤히 바라보고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파괴신이 현현하면 마왕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텐데 사라의 유산을 노리고 유적으로 들어가는 악당을 뒤쫓아 빨리 붙잡아야 되건만 입구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뭔 이야기를 그리 해대는지 모르겠고, 뒤따라 잡아서도 바로 전투에 들어가기보다 악당이 하는 말 다 듣고 각성하는 거까지 다 관람한 끝에 '저 사람, 엄청난 힘을 얻었어'라니요. 용사가 되더니 자신감 만땅입니까? 사실 여기까지는 용사와 악당 간 서로 대화가 끝나기 전이나 변신이 끝나기 전에 치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기다려준다는 클리셰라 치부할 수 있어요. 문제는 그런 행위 때문에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레티와 윈은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했다가 그냥 칼질 한 번으로 끝났을 상황에서 궁지에 몰려 가요.

 

더욱 문제는 일찌감치 전투에 돌입했다면 궁지에 몰릴 일도 없었고, 괜히 똥폼 다 잡고 그러다 엑스트라도 아니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거예요. 자신들의 행동에 반성의 기미는 없다는 것, 여행의 길동무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중요한 사람이 죽었는데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사람 맞나? 이 얼마나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란 말인가요. 그래놓고 주인공 '윈'은 죽은 사람 되뇌며 레티와 싸우고 싶었던 거 아님? 이러고 있습니다. 참고로 레티는 정말로 궁지에 몰려서 죽을뻔하였고요. 거기에 죽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엑스트라 또한 자신을 도우러 오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애도하는 말 한마디 없고 뜬금없이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작가가 제정신인가 싶더라고요.

 

맺으며, 주인공 윈과 히로인 레티를 보고 있으면 이선희 가수가 부른 '인연'이라는 노래가 생각 납니다. 특히 인연이라는 노래를 가미해서 만든 드라마 '다모'의 뮤직비디오(유튜브에서 검색)와 이 작품과 연관해서 읽으면 감성을 엄청 자극하죠. 인연이 맞닿아 그 사람만을 생각해가는 과정이 참 애잔하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레티가 딱 그렇죠. 주인공 윈을 바라보는 레티의 시선. 정말 이 여운이 끝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까지 보면 정통 판타지에 순정을 넣은 수작인데 중반을 넘어서부터 속칭 발암적인 전개는 이 모든 여운을 다 말아먹어 버립니다. 악당 마도사와의 전투씬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도로 처참함 그 자체였군요. 상대의 실력이 허접해서 처참한 게 아니라 전개 자체가 허접해서 처참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전개로 서적화할 마음이 생겼는지 작가와 출판사에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악당이 저기에 들어가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빤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몇 번이고 무찌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뭔가의 사연도 없으면서도 하지 않은 것, 레티라면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아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행위, 그리고 결정적으로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 여담으로 쓰지만 콘솔이든 온라인이든 게임상에서 전투 전에 그러하듯 상대와 말을 주고받으며 상황상 단계를 밟아 가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빤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저지할 수 있었는데 왜 가만히 보고 있는가. 그로 인해 사람을 죽게 만드는가. 작가가 문제인가? 다음 7권이 마지막이어서 다행이랄까요. 이런 작품을 왜 여태껏 봐왔는지 필자 자신도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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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2 - J Novel Next
아이자와 다이스케 지음, 토자이 그림, 한수진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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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분명 경고 했습니다.

 

 

 

죽음이냐 실험으로 고통 밖에 없는 삶이냐, '악마 빙의'라는 저주에 걸려 가족으로부터, 일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한번 발병하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며 끝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 악마 빙의란 그 옛날 디아볼로스 마인(이하 마인)을 무찌른 용사의 후예라는 증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후손들이 어째서 버림받는 처지가 되었는가, 모든 것은 [디아볼로스 교단](이하 교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치료법이 있었음에도 교단의 조작질로 마치 이교도의 마녀처럼 낙인이 찍혀 발병자들은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어요. 죽음뿐이라는 절망만 가득한 미래,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희망에 찬 미래가 주어진다면, 저주가 치료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물음. 이구동성으로 구해진 이 목숨 허튼데 쓰지 않고 오로지 정의로운 곳에 쓰겠습니다.

 

성격이야 어떻든, 정말로 구해주고 싶어서 구해준 것도 아니고, 사람 목숨 따위, 오로지 어둠의 실력자 외엔 관심조차 없었던 그(주인공)가 그저 흥미 본위로 주물럭거리다 치료가 되어버린 악마 빙의라는 저주. 그 첫 번째 해택자 '알파'로부터 시작되는 [셰도우 가든]은 665명이라는 발병자들을 끌어모아 희망을 빛을 선사하였습니다. 665명이라는 숫자의 발병자 모두가 언급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하나의 뜻으로 똘똘 뭉쳐 있죠. 악의 축인 교단을 처단하는 것. 그저 주인공이 설정 노름으로 갖다 붙인 이야기가 진짜로 존재했고, 세상을 타락으로 몰아가는 악의 축을 무찌르기 위해 '알파'를 위시한 [셰도우 가든] 네임드들은 어둠 속에서 활약을 해갑니다. 주인공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놀이로만 치부할 뿐, 자기가 중2병에 빠져 있다고 다 그런 줄 아는지 관심이 없는 분야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 중이죠.

 

아무튼 전편에서 '가짜 [셰도우 가든]'에 의해 학교가 반파해버려 부득이 내려진 방학을 맞아 빈둥거리고 있었던 주인공 시드, 그런 그에게 부하에게서 한가하면 성지로 오라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그동안 주인공 설정 노름에 지나지 않았던 '마인'의 정체 일부가 공개됩니다. 그 옛날 세상을 혼돈으로 몰고 갔던 마인은 용사에 의해 쓰러졌고, 그 신체 일부가 성지에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마인의 정체를 둘러싸고 실은 나쁜 놈이 아니었을 거라는 복선을 낳기 시작하는데요. 자, 가령 이세계가 매트릭스의 세계관이라 칩시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누군가에 의해 설정된 세계에서 누군가를 나쁜 놈이라 정의하고 타도해야 될 대상이라고 정한다면 만들어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걸 믿을 수밖에 없게 되죠. 왜, 그렇게 주입받고 살아왔으니까.

 

실상은 그게 아닌데 말입니다. 세상에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간단합니다. 세상과 분리시키면 돼요. 세상을 매트릭스의 세계로 만들면 되는 것이죠. 이 작품에 빗대면 악마 빙의라 할 수 있어요. 원래는 용사의 후예라는 증거인데 어느새 이교도의 마녀 같은 존재로 몰려 있죠. 아직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필자는 마인(디아볼로스)도 '재액의 마녀 아우로라'의 등장으로 이런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담 무엇 때문에? 그것은 힘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 마인의 힘을, 그리고 용사의 힘을, 사실은 스포일러라서 언급 안 하려 했습니다만. 용사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밝혀져요. 마인의 힘을 보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실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용사들. 교단이 저지르고 있는 짓은 마인의 재림이 아니라 그 힘을 원하는 것. 즉, 악마 빙의는 용사 실험의 잔재라는 뜻.

 

사실은 디아볼로스의 정체는 아무래도 좋아요. 일단 주인공은 그런데 관심이 없거든요. 그저 알파를 위시한 [셰도우 가든] 네임드들이 다 알아내고 자신들의 인생을 파탄 내버린 교단을 없애야 한다는 일념을 안고 불철주야 노력을 해가죠. 그리고 여기에 또 한사람 '로즈 오리아나', 주인공이 다니는 마법학교(아마도)의 대표로서 주인공이 입학하자 화려한 환영인사를 해주었던 그녀는 주인공을 만나면서 졸지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돼요. 전편에서 가짜 [셰도우 가든] 사태 때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죽을뻔한 걸 주인공이 구해줬습니다. 하지만 잡몹으로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비굴한 퍼포먼스에 속아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호감을 느낀 것이죠. 이후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사차원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개그 캐릭터로 나가나 싶었습니다만.

 

'로즈 오리아나'는 좀 안타까운 캐릭터입니다. 개그 캐릭터가 아니라 희극의 여주인공으로써, 주인공 시드를 만나 그의 힘에 취해 동경하게 되면서 왕녀로써 나아가야 될 길과 자신이 좋아하는 길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왕녀에게 내려진 숙명 과도 같은 정략결혼 문제라든가에서 직진 밖에 없는 인생 때문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을 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거기에 교단의 암약으로 인한 자신의 나라의 암울한 미래는 그녀의 마음을 좀먹어 가는 모습은 안타깝게 하죠.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잡는다는 것은 정말로 이렇게 처절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요. 교단은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오리아나는 무력한 자신을 한탄하기 보다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녀는 [셰도우 가든] 666번째 말단 대원으로 들어가면서 좀 더 시드에 대해 알라 가려 합니다. 사실 주인공의 중2병적인 장면 때문에 분위기 다 깨긴 하는데 오리아나 에피소드만 놓고 보면 참 처절한 인생이란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두리뭉실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게 한스럽군요.

 

맺으며, 뭐랄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지는 관심 없어를 표방하는 주인공 때문에 기껏 분위기 잡아놓고 다 깨버리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학원의 무신제라는 검무 대회에서 쪼렙으로 출전해 실은 초보존에서 노는 고렙이랍니다의 정석으로 보여주는 통에 얄미운 정도를 넘어서고요. 누구에겐 인생이 걸려 있는 대회에서 기분을 내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해서 깽판 치는 모습이란. 그래도 디아볼로스 마인 관련으로 '재액의 마녀 아우로라'의 의지를 받드는 모습이라든지, 오리아나가 제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모습이라든지에서는 조금의 정을 느껴지기도 했군요. 놀이로 치부해도 이성까지 다 팔아먹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꽤 뭉클해지는 장면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으면서 부하가 일궈놓은 상회에 쳐들어가서뜯는 건 좀,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면 재액의 마녀 아우로라와 오리아나의 에피소드 덕분에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습니다. 아니었다면 한 4점쯤? 2권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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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3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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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숲에서 주운 여자애를 지켜주고 맺어지고 싶다는 일렴 하에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 수저 몇 개나 보장받은 미래를 걷어차 버리고 흙수저의 길을 걸었던 소년의 말로. 귀족인 자신과 평민인 그녀, 우리가 맺어지는 건 까마귀와 까치가 맺어지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세계에서 나는 어떤 결단을 내려가야 할까. 소년의 대답은 '그렇다면 내가 평민이 되어 주지.', 결론: 망했어요.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하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세상 진리를 대놓고 거부했던 소년에게 남겨진 것은 혐오의 시선과 그토록 좋아했던 여자애는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결말만이 남았어요. 원래 이러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집에서 평민이 되도록 곱게 놓아주지 않자 세상 온통 소문 날 정도로 망나니 짓을 좀 한 게 뭐가 대수라고, 사실은 어둠의 세계에서 좋은 일도 많이 했단 말입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냐고요. 아마 소년은 몸져 누웠다가 그대로 세상을 하직한 게 아닐까요.

 

결과 현실의 주인공(이름 안 나옴)이 그의 몸에 빙의한 것이고요. 이세계는 [슈야 마리오넷]이라는 애니메이션 속, 애니메이션의 진짜 주인공은 나름대로 핸섬가이 슈야. 그런 세계에서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오크와 헷갈릴 정도의 돼지 몸뚱아리면서글플 겁니다. 거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받는다면요. 이세계에서 나의 평가는 어떨까. 집안을 걷어 차고, 약혼녀도 걷어차고, 귀양살이 하라고 들인 학교에서조차 망나니 짓으로 나의 평가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자, 소년에게 빙의한 주인공(이하 데닝)은 이제부터 무얼 해야 할까. 그에게 남은 것은 숲에서 주은 여자애 '샬롯'만이 있습니다. 아직 다른 남자에게 가기 1년 전의 현재, 지금까지의 오명을 벗고 평가를 올려 소년의 꿈이었던 여자애 샬롯과 맺어지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뭘 하긴요. 죽도록 뛰는 수밖에요. 원래 처음부터 그런 놈이 아니었으니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는 걸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망국의 공주 '샬롯', 대규모 마물의 공격으로 나라가 망해버린 비운의 나라에서 어떻게 도망쳐 나왔지만 노예 상인에게 붙잡혀 오늘내일하던 것을 데닝(소년)이 구해줬습니다. 이후 데닝은 그녀의 정체를 숨기며 자신의 종자로 만들어 지내길 10여 년, 바람의 대정령의 가호를 받고 있음에도, 빛의 마법에 뛰어난 소질이 있음에도 빛의 정령에게 무시당해 마법을 못 쓰는 비운의 히로인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도 불철주야 마법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소용이 없어요. 공작가(家)의 3남의 종자로 발탁되어 그에 맞는 실력을 보여줘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월급은 자꾸만 깎이고 궁핍한 삶 끝에 급기야 학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처지라면 이보다 불쌍한 히로인이 있을까요. 그런 그녀의 환경을 개선해줘야 될 데닝은 좋아한다면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어쨌거나 그런 이들에게 이번 3권은 터닝 포인트입니다. 내(데닝)가 얼마나 너(샬롯)을 좋아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지.

 

근데 길이 험하다. 다리스(데닝이 사는 나라)의 차기 여왕이 될 왕녀 '카리나(표지)'의 등장, 전편에서 데닝을 사자 우리에 집어넣고도 영웅 탄생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했던 그녀가 마법 학원으로 찾아옵니다. 그러곤 데닝에게 시종을 맡으라고 하는데, 잊었수? 당신 덕분에 자신감 과잉 민폐 왕녀 '알리시아'는 두 번째 납치를 당해서 죽을뻔하였는데 말이죠. 자칫 옆 나라와 전면전 일어날 수 있었는데 돈으로 입 싸악 닫게 하다니 수완이 장난 아니구려. 근데 여긴 뭐 하러? 학원 근처에 던전이 생겼는데 탐색 좀 같이 하잡니다. 이 작품은 세상 온통 민폐만 끼치는 사람 밖에 안 나와요. 겉으로는 사근사근, 본모습은 방구석 폐인, 권력구도라든지 귀족 간 알력이라든지 차기 여왕이 될 사람이 그런 건 안중에도 없이 데닝가(家)와 앙숙인 추기경이 주최하는 가디언 시험이라는 사자 우리에 데닝을 처박는 것도 그렇고, 이건 뭐 칼만 안 들었지 저승사자가 따로 없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왕녀인데,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데닝가(家)라도 왕녀를 홀대할 수는 없죠. 말은 교류라지만 학원에 뭐 하러 왔는지도 모를 방구석 폐인 기질의 왕녀를 어르고 달래고 하는 사이에 우정은 싹트고 이런 사람 처음이야를 되뇌며 데닝만 바라보는 왕녀의 눈빛이란. 왕녀가 품고 있는 진짜 마음, 애초에 어디서부터 그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마법 학원에 온 것도 던전 탐색은 구실일 뿐 그가 보고 싶어 달려왔다는 걸 조금만 읽어봐도 알겠던데,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그를 마음에 들었는지 하는 개연성이 없어서 그저 하렘 만들기 일환인지. 거유가 보고 싶었던 작가의 소망이 글로 나타난 것인지. 권력 싸움 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파란만 잔뜩 불러다 놓고 난 갈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왕녀를 매도하는 거 같은데 사실은 '마음 터놓고 마주할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타는 왕녀'라는 게 그녀의 본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서 혐오를 받는 데닝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

 

아무튼 다시 샬롯으로 넘어가서, 이대로 지내다간 정말로 월급을 못 받게 되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귀족 데닝가의 종자 주제에 마법 하나 제대로 못 쓴다는 게 말이 되나. 데닝이 어거지로 그녀를 종자로 만들지 않았다면 더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그렇기에 인정을 받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은 처절 하디시피 합니다. 전편에서 도적들과의 전투를 힘 하나 못 쓴 주제에 발에 걸려 넘어진 도적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날름 주워서 내 전리품이라고 하니 그녀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비참하고 뒤가 없는지 알 수 있죠. 사실 그녀는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쓰면 안 돼요. 정령에게 무시당하는 이유가 다 있는데, 요리를 시키면서 레시피를 줬는데도 완성품은 지옥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듯한 음식이 그녀의 마법이란 말이죠. 그걸 알고 있기에 데닝은 말리지만 뒤가 없는 샬롯 입장에서는 강경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발암적인 강경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발버둥이라는 것에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죠.

 

자, 그런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다가오는 크나큰 존재. 이들에게 터닝 포인트가 될 존재, '검은 드래곤'의 등장, 지금은 멸망해버린 샬롯의 나라를 지켜주었던 수호신의 등장으로 어째서인지 샬롯은 대위기를 맞아갑니다. 단언컨대 여기서부터가 이 작품의 진짜배기라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여자를 지킨다는 것,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남자가 위기에 처한 여자를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세상 모두를 놀라게 하며 감히 우러러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드래곤을 상대로 주인공이 보여주는 힘은. 다르게 표현하면 중2병이라고도 하는데 뭐 이건 넘어가고요. 왕녀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에 순응하듯 데닝의 종자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 식당에서 허드렛 일을 하고, 인정받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고, 그렇지만 드래곤에게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나서는 강심장, 자신감 과잉의 어느 민폐 왕녀와는 다르게 용기를 부여잡고 일어서는 히로인이란.

 

맺으며, 이 작품보다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요. '넌 요리하면 안 돼'라고 주위에서 뜯어말리는데 자신은 자신의 실력에 전혀 의문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샬롯), 자신감 과잉으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다가 된통 당하는 캐릭터(알리시아), 방구석 폐인에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똥을 마구 흩뿌리는 캐릭터(카리나), 하나도 아니고 만나는 캐릭터마다 너는 내가 지킨다라며 플래그 팍팍 세워가는 난봉꾼(데닝), [슈야 마리오넷]에서 진짜 주인공이어야 할 '슈야'는 왕녀 카리나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보여주는 인간군상극은 정말 눈물을 쏘옥 빼놓을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2권에서 자신감 과잉 왕녀 때문에 혈압 올랐던 게 말끔히 해소되는 에피소드랄까요. 드래곤에 맞서는 데닝에게서는 닭살이 돋지만 소년물 치고는 괜찮은 연출이 아니었나 합니다. 뿅가지 않을 히로인은 없을 정도의 연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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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전생 8 - 이세계에 갔으면 최선을 다한다, Premium Extreme Novel
리후진 나 마고노테 지음, 한신남 옮김, 시로타카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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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좀 심합니다. 그리고 악평과 비평(말이 좋아 악평과 비평이지 거의 욕), 성(性)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으니 이 작품의 팬이신 분들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루데우스는 15살이 되었습니다. 전생에서 방구석 폐인으로 지내다 이세계로 넘어와 마을 사람 A도 아니고 적당한 귀족 계급에 모험가로써도 썩 나쁘지 않은 실력과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스무스하게 지낼 수 있는지 하는 처세술도 배웠는지라 전이 사건만 없었다면 전생에서 못다 이룬 인생을 살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된다는 격언처럼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한 번은 죽으면서 다음 생에선 올바르게 살아야지 했어도 방구석 폐인질 하던 성격이 어디 가겠습니까.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마인드로 인해 타인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고, 그로 인해 첫사랑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한번 실수를 통해 뭔가를 배우는 게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렇지 못했죠. 결국 첫사랑이 왜 떠났는지 파악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병을 얻고 맙니다. '발기부전'이라는 병을, 통칭 ED...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나이에 ED는 심각하죠. '사라'를 만나 1년 몇 개월 만에 두 번째 어른의 계단에 오르나 했는데 서질 않으니 맺어질 수가 있나.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겠죠. 그래서 엘프녀 '엘리나리제'가 엄마 소식을 들고 왔을 때도 그렇게 반갑지가 않았어요. 그보다 엄마 생각은 아예 없었다는 것마냥 엘리나리제가 언급한 록시의 소식을 반기는 모습이란. 아무튼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엄마의 소식, 모험가를 하며 인지도를 올린 이유가 뭘까. 무뢰한들에게 욕설과 비아냥을 들어도 굽실굽실 거리며 저자세 일관이었던 이유는 대체 뭐였나. 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런 엄마의 소식을 접했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못 갑니다.' 아버지와 록시가 엄마 찾아간다고 하니 내가 안 가도 되겠지. 그보다 내 ED가 더 걱정인데 어떡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필자 나름대로 여러 작품을 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주인공은 정말 처음이군요. 그리고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마법 대학에서 주인공을 특별생으로 입학 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갈까 말까. 록시도 졸업했다는 그 대학에 구미가 당기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모처럼의 기회이지만 엄마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기특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아직 ED는 고쳐지지 않았는뎁쇼. 한껏 성인의 매력을 발산하는 엘리나리제와 한 침대에서 자도 서질 않는 중증 ED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 밤, 꿈에 인신(히토가미)이 나타나 마법 대학에 가라고 합니다. 이놈 만나서 잘 된 꼴은 좀 있었지만 용신 올스테드를 만나 죽을뻔한 게 누구 때문인지 그새 까먹고 ED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감언에 놀아나서 엄마보다 ED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폐륜. 눈이 녹았으면 엄마를 찾으라고. 냉큼 대학으로 달려가서 입학할게요라니 엄마가 이 모습을 본다면 참 서글퍼 할 겁니다. 엘프녀 엘리나리제도 그를 따라나서는데, 이제사 쓰지만 '엘프녀' 엘리나리제의 성욕은 정말 대단합니다(이후 이유가 밝혀지지만). 세상 모든 남자들을 다 잡아먹고 있는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주인공 루데우스 어릴 적 소꿉친구 '실피'라는 쿼드 엘프 소녀가 있었어요. 마을에서 괴롭힘당하는 걸 루데우스가 구해주었죠. 이후 아버지(파울로)가 둘을 떨어트려 놓기 전까지 루데우스는 실피를 사육하다시피 하였더랬어요. 얼마나 심각하면 개방적인 아버지가 뜯어말릴 정도이니 말 다했죠. 그렇게 자신(루데우스)이 없으면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둔 실피도 전이 사건에 휘말려 사라졌는데 이놈은 찾을 생각도 안 했어요. 한두 번 회상하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록시에 한참을 못 미쳤고 생사조차 확인 안 하는 인성은 참, 그런 실피는 뭐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외전 형식으로 간간이 얼굴을 비춘 그녀는 전이 사건에 휘말려 왕성에 떨어졌고 거기서 왕녀 '아리엘'에게 주워져 종자로써 생활하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 뒤 왕녀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도착한 게 마법 대학, 종자인 실피도 따라갔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줄곧 키워온 마음이 있습니다.

 

위에선 사육이라고는 했지만 루데우스의 성격이 원래 그런 놈이니 그렇게 비쳤을 뿐 그는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죠. 특히 마법 쪽으로 세상에서 몇 없다는 무영창까지 가르쳐 주면서 전이 사건 이후에도 그녀로 하여금 제 몫을 다하게 해주었습니다. 마을에서의 괴롭힘당하던 자신을 구해줬고 살아갈 힘을 줬는데 아무리 어리더라도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겠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행방을 쫓고 마법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손을 쓰고, 그리고 만났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순간일까요. 하지만 실피의 시점은 9권에서 나오는 관계로 8권에서 그녀의 마음이 돌출되는 장면은 없습니다. 자, 과연 루데우스는 실피를 알아볼까. 전이 사건이 있은지 5년이나 지났고 실피도 많이 성장을 하였습니다. 머리색이 바뀌고, 선글라스도 쓴 실피를 그는 알아볼까.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실피는 어릴 적 목소리 그대로 일터, 자기 가르쳐준 마력 파장을 못 알아볼 리는 없을 터.

 

근데 이 미친놈(루데우스)의 머리에는 온통 ED와 록시 밖에 없어요. 엄마를 나중으로 미룰 정도인 ED는 마음을 갉아먹고, ED 만큼이나 심각한 록시 앓이는 급기야 그녀의 이름을 따서 신흥 종교를 만들 지경에 이릅니다. 그가 만든 신단(불교로 치면 불단)에는 그녀의 팬티가 올려져 있고, 그는 록시의 팬티를 바라보며 아침으로 제사를 지내는 열혈 신도를 자처하고 있죠. 이 정도면 병원에 가봐야 되지 않나요. 주로 작가가요. 아무튼 주인공 루데우스의 머리엔 실피라는 단어는 지나가는 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 알아볼 리가 없죠. 실피는 성장한 그를 단번에 알아보는데, 물론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로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능력 제로는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닐까 싶군요. 사실 이런 부분은 방구석 폐인이 괜히 된 게 아니라는 현실적인 측면도 있긴 합니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뀐다면 방구석 폐인이 되지는 않았겠죠.

 

아무튼 입학을 하고 보니 말이 특별생이지 문제아들을 격리 시키는 수준이잖아. 같은 반이 된 수족(수인) '리니아' 와 '프루세나'는 왕녀 아리엘과 싸우다 실피에게 된통 당한 문제들이고, 루데우스가 리랴와 아이샤 찾으러 갔을 때 인연이 있었던 '자노바'를 여기서 다시 만나는데 그는 괴력의 소유자로 친동생을 찢어 죽인 전력이... 이런 애들과 학원 라이프라니 복도 참 지지리도 없어요. 참고로 자노바는 리제로에 나오는 페델기우스를 많이 닮았더군요. '신의 아이'라는 뭔가 앞으로 한가락 할 운명을 타고난듯한데 실상은 피규어를 사랑하는 오타쿠로써 루데우스에게 피규어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괴짜. 그리고 남학생 하나 더 있지만 패스하고요. 아무튼 ED를 치료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지만 도통 나오는 게 없어요. 여전히 엘리나리제는 남학생 사냥에 몰두하고, 자노바의 피규어 제작 실력은 참담함 그 자체이군요.

 

맺으며, 주인공 루데우스는 좋은 말로 하면 운명에 따라 길을 걷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장기짝이 되어 놀아난다고 할까요. 인신(히토가미)의 조언으로 리랴와 아이샤를 찾는 등 나름 좋은 점도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될게 아무 조건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하죠. 인신(히토가미)이 예언 비슷하게 조언하며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가 무얼까. 용신 올스테드가 인신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격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뭘까. 생각을 포기한 주인공은 알리가 없죠. 이번 마법 대학 입학도 인신이 가라고 해서 간 거긴 한데, 애초에 아무리 명성을 쌓았다지만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한 모험가에게 입학 초대장을 보낸 이유가 무얼까. 단순한 학원이 아니라 세계 굴지의 대학에서, 이런 걸 생각 안 하는 주인공은 정말 좋은 말로 하면 넉살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생각을 포기한 머저리가 되겠죠. 전생까지 합치면 나이 50살이나 되어 의문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는, 작가가 일부러 이렇게 진행을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을 안 하는 것인지.

 

이 작품은 영화로 치면 분명 1천만 이상 관객을 모을만한 소재이긴 합니다. 뭔가가 시작될 거 같은 퍼즐을 조금식 모아가는 치밀한 각본과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 등은 몰입도를 상당히 높여주죠. 사실 필자도 다른 작품은 한 권 읽는데 며칠 걸리는 반면에 이 작품은 하루도 걸리지 않아요. 그만큼 몰입도에서 우수한데 어째서인지 재미보다 반감이 더 큰지 이해가 따라가주지 않는 희한한 작품이랄까요. 다른 작품에서도 성(性)적인 이야기나 하렘등 아랫도리 사정이 나오고 이 작품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아마 이런 기분은 위에서 서술한 몇몇 구절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여기에 위에서 언급하는 걸 까먹었는데 내로남불 같은 주인공의 성격도 한몫하지 않나 싶군요. 아버지 파울로의 여성 편력은 혐오하면서 자신은 여자들과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던지, 이번엔 ED 고친답시고 양아치녀 두 명을 잡아다 성추행 하는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튼 사실 필자가 느끼는 이 모든 게 설정에 기인한 것인지라 열을 내봐야 필자만 손해이긴 하죠. 세상엔 이런 작품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으니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뭐랄까 총평을 하자면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고기쌈에 매운 고추를 넣어 강호동에 주는 것처럼 뱉기는 아깝고 먹자니 괴로운 그런 부류라고 할까요. 계륵하고는 조금 다른. 8권에서 하차하려다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생각에 뒤로도 몇 권 더 구매를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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