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내 세계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4 - 신벌의 짐승, Novel Engine
사자네 케이 지음, neco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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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런 말까진 안 쓰려 했는데 주인공의 머리가 좀 모자라 보입니다. 주인공은 원래 살고 있던 세계가 덮어쓰기 당해서 동일 세계이자 다른 세계 즉, 평행세계로 넘어가게 되었죠. 거기서 주인공은 원래 세계에 있던 인간족 영웅 '시드'가 평행 세계에도 있을 거라 여겨 찾아서 누가 세계를 덮어쓰기 했나,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나를 조사하고 있었는데요. 자,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은 원래 세계는 진짜 원래 세계가 맞나? 원래 세계도 누군가에 의해 덮어쓰기 당한 거 아닐까? 답은 맞다지만 아직까진 주인공은 모른다. 이쪽 평행 세계로 넘어와 악마족, 만신족(엘프), 성령족(슬라임)과 교류하면서 보아온 주인공의 시각에 이들이 정말로 인간족을 멸망 시킬 정도로 호전적으로 비쳤는가? 답은 '아니다'죠. 물론 주인공이 건너 오면서 그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불가침조약도 맺고 공통의 적이 생겨서 손을 잡기도 하고 시한을 둔 휴전을 성립 시키기도 했지만 그 이후 이들 환수족을 뺀 3종족은 주인공 일행에게 상당히 호의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3종족과 평화 협정을 맺고 일시적 휴전을 이끌어낸 주인공이 남은 환수족(수인)을 찾아가는 내용인데요. 환수족은 3종족과 다르게 상당히 호전적으로 특히 환수족을 이끄는 영웅 '라스이에'는 이때까지 주인공이 만난 그 어떤 적보다 강하여 상당히 고전하게 되죠. 근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이세계 즉, 평행 세계의 진실을 '라스이에'에게서 듣게 됩니다. 그동안 주인공이 간과했던 내용들로서 결국 주인공의 원래 세계도 덮어쓰기 당한 세계일 거라는 기정사실이 투하되고, 그 덮어쓰기를 하는 흑막이 존재함을 '라스이에'에게서 듣습니다. 덮어쓰기 하는 흑막은 1권부터 나온 복선이긴 하지만, 이번에 명확하게 드러나는데요. 결국 여기서 진실이 뭐냐면 주인공의 원래 세계에서 인간족을 뺀 4종족은 피해자라는 소리입니다. 흑막에 의해 자신들의 존재가 말살되고 봉인되었거든요(아래에서 설명). 주인공은 평행 세계에서 다른 종족들을 만나 인간과의 융화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고 환수족과 더블어 나머지 3종족과 손을 잡고 흑막을 깨 부셔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라스이에'는 인간족을 믿지 못하고 있고, 그 이면엔 주인공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인간족 영웅 '시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의 세계에서 인간족만 살아남았다는 의미는 영웅 시드에 의해 환수족 포함 4종족은 전멸했다는 뜻이고, 여기까지라면 전쟁에서 패했으니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 여길 수 있지만 그 영웅 시드가 흑막에 놀아나고 있었다면? 결국 환수족 입장에서는 절망 속에 죽어 갔다는 소리죠. 그걸 뒷받침하듯 주인공은 앞서 이쪽 평행 세계에서 영웅 '시드'라 자처하는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가 가진 인간 우월 이념을 보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주인공은 '라스이에'에게 들은 정보를 취합해 가장 이로운 해답을 도출해야 하잖아요? 누가 진짜 적인지. 그런데 해결할 머리 회전은 고사하고 흑막을 불러내 사태(덮어쓰기)를 해결하려는 '라스이에'를 막아서는 기행을 터트려 버립니다.

물론 라스이에가 너무 호전적이라 막을 시간이 부족했고, 주인공의 머리 회전율은 작가가 이렇게 의도를 했으니까 그럴 수는 있겠죠. 그것으로 인한 흥미도를 이끌어 내고, 적(에너미)이지만 말은 새겨듣자 같은 메시지도 던지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말을 새겨듣지 않은 주인공은 원래 세계에는 있지도 않은 새로운 종족 제6종족과 싸워야 하는, 가스통 들고 용광로에 뛰어드는 형국을 맞이하게 되죠. '라스이에'는 주인공에게 흑막을 처치해서 덮어쓰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고를 분명히 했고, 그 경고를 무시한 댓가는 세계 멸망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영웅 시드만 찾아대고 3종족과 소풍이나 다니며 덮어쓰기를 해결할 의지는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없었던 게 확실하군요. 뭐 '라스이에'는 갑자기 등장하자마자 주인공 일행을 죽이니 마니 하며 주인공과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으니 주인공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교섭력과 이해력을 보여주지 않은 시점에서 뭔 변명을 한들....

사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라스이에'를 만난 시점에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집필하면서 이점을 간과한 거 같더군요. 되레 라스이에를 없애야 될 적으로 인식시켜 버립니다. 흑막을 없애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고, 주인공보다도 강한 라스이에를 이때까지 히로인들을 구워삶았듯이 구워삶으면 그보다 든든한 아군도 없을 텐데 왜 이런 설정으로 가는지 모르겠군요. 뭐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런 흐름이 식상하긴 합니다. 이렇게 흘러갔다면 필자는 또 따지고 들었겠죠. 작가 입장에서는 뭐 어떡하라는 심정일 테고요. 그래서 그런지 라스이에의 성격을 상당히 극단적으로 만들어 놨는데요. 흑막을 불러내기 위해 희생을 얼마든지 치를 태세고 그 희생은 유사 세계 덮어쓰기를 단행하여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전이를 말하는 것이었고 주인공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막아야 되는 사태였죠.

맺으며: 아무튼 세계 덮어쓰기의 전말이 완전히 공개되었습니다. 결국 흑막은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싶었던 것이고 인간 포함 5종족(이번에 새로 1개 종족 추가해서 6종족)은 희생양이었을 뿐이라는 게 밝혀졌고요. 거기에 주인공이 시드의 목적을 간과하고, 라스이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세계 멸망이라는 테크를 타게 되었습니다. 좀만 빨리 알아차렸다면 어쩌면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야 겨우 알아차리고 고함이나 치는 꼬라지라니... 정작 이걸 해결해야 될 인간 영웅 시드는 흑막에 놀아나는 등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어지는군요. 그건 그렇고, 자잘하게 납짝 엘프라느니 히로인들의 만담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원래 인간과 적대 관계였던 엘프녀는 백치미를 동원해 메인 히로인 자리로 치고 올라왔고, 주인공에게 자기(엘프녀) 약점이 될 수 있는 총알을 만들어주는 기행까지 엘프녀를 보고 있으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할까요. 싫은 게 아니라 꽤나 흥미롭죠. 슬라임 양의 귀여움도 독보적이고요. 이건 진짜 보고 느껴 보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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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공간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 인간이 있군요.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면 논리적으로 설명 할 일이지 원색적인 비난만 한다면 자기 인성이 개차반이라는 걸 알리는 것 밖에 더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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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치트가 너무 최강이라 이세계 녀석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만. 8 - J Novel Next
후지타카 츠요시 지음, 나루세 치사토 그림, 김경훈 옮김 / 서울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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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 능력이 너무나 사기스러워서 밸런스 붕괴를 일으켰고 결국 내용이 너무나 황당하여 나무야 미안해로 귀결되어버린 비운의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인공의 말 한마디 "죽어" 하나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원령(유령)이든 그게 핵분열의 원자든 심지어 중력까지 죽여버리니 이보다 황당한 능력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표면적이고 진짜는 따로 있죠(아래에서 설명). 그래서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주인공은 이세계로 전이되면서 능력을 받은 게 아닌, 원래 지구에 있을 때부터 '즉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태어날 때부터 '순수한 재앙'으로서 어느 종교에 신(GOD)으로 떠 받들여지던 존재였죠. 인간의 모습이어도 속은 인외의 존재로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는 듯이 상대를 죽여버리니 지구 측에서 보면 사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유아 때 길을 잃어 종교단체 밖으로 나왔던 때고, 그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주인공은 감옥 같은 지하 시설에 감금당하여만 했죠.

이렇듯 작중 지구는 여느 이세계물처럼 평온한 지구의 모습이 아니라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일족도 있고, 주인공과 비슷한 인외의 존재(유령, 천사등 인외의 것들과 로봇 등등 온갖 것들 다 나옴)등 지구 자체가 이세계라는 듯한 설정을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세계스럽다고 개그적인 밝은 모습이 아니라 상당한 오컬트를 자랑하죠. 외전에서 주인공이 기거하는 지하 시설에 끊임없이 잠입하려는 인외의 존재나, 거주구에서도 존재하는 인외의 무엇 등 괴기 공포물의 한 장르를 보는 듯한 게 특징이죠. 그런 분위기의 정점에 있었던 주인공을, 참고로 지구에서 주인공은 핵폭탄 맞은 적도 있나 봅니다. 그런 주인공을 이세계로 소환해서 풀어 놨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이세계 전이에서의 일들이 너무 강렬하여 원래의 이야기가 퇴색되는 바람에 이 작품이 평가절하 당하는 게 아닐까 해서 상당히 안타깝다고 할까요. 그나마 '아사카(주인공에겐 엄마와 같은 존재)'와 메인 히로인 '토모치카'가 있었기에 주인공이 통제되고 있는 것이지, 순수한 재앙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로 접근한다면으로 이 작품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8권은 여전히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현자의 돌을 모으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같이 소환되었던 반 친구들은 대부분 사망해버렸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것들도 이제 한두 명만 남고 다 리타이어 되어 갑니다. 참고로 이세계만 오면 어째서 다들 쓰레기가 되는지 주인공 반 친구들도 능력을 얻자마자 거의 다 인성 파탄자가 되어 버렸죠. 1권에서 능력을 받지 못한 주인공 포함(애초에 주인공은 지구 때부터 즉사 능력 보유) 4명을 드래곤 밥으로 남겨두고 도망가 버렸던 것만 봐도. 그러니 이런 작품이 그렇듯 그런 인성 파탄자들이 주인공을 깔보는 건 당연하고 그러다 전부 골로가는 패턴으로 이어졌었습니다. 이제 이런 설정은 식상하지만 주인공이 워낙 사기적이어서 개연성을 부과하려고 이렇게 반 친구들의 성격을 파탄자로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이세계 소환 원흉인 현자들도 그렇고(주인공에 의해 궤멸), 여신도 주인공에게 깝죽거렸다가 두 명 중 하나는 개념이 소실되어 영원한 잠에 들어 가야만 하는 등 이세계 쓰레기 청소에 일등공신이 있다면 바로 주인공이겠죠.

이제 이런 것들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까 했더니 본격적으로 인외의 존재들을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이 세상 모든 치트물 주인공을 한대 모아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같은 실험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도 그렇지만 그 외의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강해서 판타지의 정석 용사 따윈 지나가는 개만도 못한 취급이었고, 사랑과 정의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마법 소녀도 나왔고, 마블에서 나올법한 영웅들 같은 능력자들이 엄청 나오죠(물론 진짜 마블 영웅들이 나온다는 건 아님). 이번에도 이젠 범우주적으로 놀고 있는 살인귀와 해적들, 우주를 몇 개나 품고 있는 인외등 정신이 아찔해질만한 존재들이 등장하죠. 그래서 적정선이라는 브레이크는 없고, 때론 주인공에 의해, 때론 지들 마음대로 능력을 휘두르다 지들끼리 싸우며 등장하자마자 골로 가는 등 마치 항아리에 여러 독충들을 넣어놓고 싸우라는 것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죠. 여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인공에게 리타이어 되고 그러자 여신에 의해 봉인되었던 존재들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자신들을 통제하던 여신이 죽자 사도들까지 이 세상 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날뛰면서 이세계는 멸망이라는 테크를 타버리는 게 이번 8권의 이야기입니다. 그 중심에 주인공이 있는 건 덤.

맺으며: 위에서 조금 언급하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능력은 수동과 자동 겸용입니다. 그래서 더 괴랄 한데, 자동일 때는 보통 상대가 보내는 살의에 반응할 때이고 그 즉시 즉사 능력이 발동되어 상대는 어디에 있든 반드시 죽고 말죠. 그게 초상적이든 추상적이든 가리지 않는 게 무엇보다 지독하다고 할까요. 지구에서 주인공의 능력을 너무나 두려워해 어느 나라에서 핵을 주인공에게 날렸지만 주인공은 원자 자체를 소멸 시킴으로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죠. 이렇듯 너무나 사기적이어서 밸런스 붕괴를 일으키지만, 사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능력에 중점을 두면 안 되고 그에 부산 되는 이야기들, 가령 어떻게 하면 주인공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실험적인 이야기들에 주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능력이라도 틈은 있기 마련이고, 이걸 찾기 위한 악당들의 노력을 볼 수 있죠. 물론 살의를 비추지 않으면 친구도 될 수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끌어안고 자라면 못 자잖아요?

사실 오컬트적인 분위기라고는 했지만 이세계로 넘어가면서 개그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상식을 벗어난 언행을 하면 히로인(토모치카)이 바로잡아주는 태클은 볼만한데요. 이번에 현자의 돌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거쳐 인간의 아기로 변해가자 기겁하며 쉭쉭~ 저리 가라는 듯 손짓하며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주인공 보고 다 하라는 장면들은 꽤나 웃겨 줍니다. 그런 히로인을 보고 있으면 보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주인공)와 같이 있다는 것, 조그마한 살의만으로도 주인공의 능력이 자동 발동해서 바로 상대는 즉사해버리는 상황임에도 같이 붙어 다니는 그녀의 강심장(이라기보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지만)은, 어쩌면 주인공을 인간으로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도 싶었습니다. 아사카와 더블어 주인공의 개념(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자 곧 주인공의 약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언제나 같이 붙어 다니고 주인공은 자신만이 아닌 그녀에게 보내지는 살의에도 반응해 상대를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걸 보고 이골이 났는지 만담으로 이어내는 히로인도 대단하다는 걸 느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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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연의 성자 2 - L Novel
마사미티 지음, 이코모치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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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아무래도 1권을 다시 읽어봐야 할 거 같은 2권입니다. 사실 1권은 시빌라(히로인)의 복선이 너무 노골적이었고, 거기에 넘어가는 주인공이 어리숙하게 보여 좋게 보이질 않았거든요. 거기다 정통 추방물의 계보를 이어가듯 파티에서 쓸모 없어진 주인공이 쫓겨나는 구조는 여느 추방물과 비슷한 흐름이어서 식상한 부분도 있었고요. 하지만 1권 중후반부터는 여타 작품에서는 잘 없는 요소를 넣어 흥미를 끌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죠. 가령 뒤늦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한 '에미(히로인)'의 분투는 그야말로 희생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초중반까지의 이야기들이 클리셰 덩어리라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버려서 반전 시키기엔 늦어버렸지 않나 하는 그런 느낌도 있었군요. 그래서 2권을 구입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언급해 보자면 1권 클리셰적인 부분만 견딘다면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를 볼 수 있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사실 1권에서 받은 이미지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될 거 같았는데 의외로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건 어딘가 모르게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줄여서 내청코)"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판타지를 제1 장르로 하고 있지만 그걸 기반으로 해서 청춘 러브 코미디를 그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청코와 완전히 같다는 뜻은 아니고, 그만큼 한창 청춘을 구가하는 나이대에 맞게 풋풋하고 애틋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인데요. 가령 사망 플래그나 다름없는 선물 이벤트도 준비했는데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이죠. 그리고 겨우 주인공과 만나 화해하고 합류하게 된 '에미'의,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라 그녀에게 성기사(직업)로 있게 해주는 원천이 되고, 그런 '에미'의 마음을 보게 된 주인공의,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최고위 마법을 쓸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래서 '에미'를 보고 있으면 내청코의 '유이' 같은 느낌을 어느 정도 받게 합니다. 좋아해서 곁으로 왔지만 내색은 못하는, 지금의 관계가 파탄날 지 몰라 속으로만 마음을 키우고 그 마음이 너무 커져서 파탄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그런 아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아직 주인공과 합류하지 않은 '자넷(히로인)'은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내 의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유키노' 같은 성격이 강했군요. 가장 흥미로운 건 내리는 비를 사람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부분인데 완성도 높은 시를 보는 듯했습니다. 주인공에게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마음, 소꿉친구 '에미'를 응원하는 마음, 홀로된 마음을 표현한 부분들은 구구절절해서 이 작품 유일하게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군요. 이 작품 최대 키 메이커인 '시빌라'의 경우는 그냥 '잇시키'가 성장하면 이럴 것이다는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와 싸울 때 90%는 말로 죽일 정도로 독설을 날리고 깐족거리는데 당하는 쪽은 멘탈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어쨌거나 저런 이야기들만 있으면 내청코 만큼이나 흥미진진했을 것이고 몰입도는 더욱 높았을 것이나 이 작품의 제1 장르가 판타지다 보니 이쪽에 많이 집중합니다. 시빌라+주인공+에미가 파티가 되어 던전에 들어가고, 유기적으로 협조하며 던전 최하층에 있는 마왕을 쓰러트리는 이야기를 주된 골자로 잡고 있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에미의 마음은 터질 거 같이 커지고(어릴 때부터 키워온 거라 개연성은 있음), 시빌라는 그걸 올바르게 잡아주는 등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거 같기도 했습니다. 최강의 조합으로 던전을 클리어하는데 아무런 문제점은 없고, 그래서 청춘 러브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빼면 솔직히 좀 지루합니다. 그래서 고아 소녀 한 명을 투입해 개연성을 높이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죠. 겸사겸사 놀러도 다니고, 선물이라는 이벤트도 벌어지고 그러다 마음은 더욱 커지고,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공은 상당히 둔하군요. 지키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게 호감인 줄 모르는...

맺으며: 일단 러브 코미디 측면에서 보자면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겠습니다. 이 부분 그러니까 러브 코미디 분량만큼은 표현력에 있어서 내청코를 뛰어넘지 않을까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비를 사람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대목은 정말 대단했습니다(물론 필자 주관적이지만요). 여기에 '하치만'의 독백까지 더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런 기특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어쨌거나 판타지 부분은 100점 만점에 30점을 주겠습니다. 마왕을 쓰러트리는 과정이 나무 지리멸렬합니다. 던전 난이도가 높거나 마왕이 워낙 강해서 질질 끄는 게 아닌, 이 세계 모험가들은 꿈도 못 꾼다는 던전 하층에서 위기감 없이 널널하게 다니고, 기껏 만난 마왕은 성격이 급해서 주인공 일행을 기다려주지 않고 놀러나다니고(이것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반복됨), 그걸 또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기 취미에 심취한 귀족 같은 마왕이 꼴불견이라며 적대 운운하는 주인공은 약간 마이너스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시빌라의 진짜 목적이 참으로 궁금해진다고 할까요. 어둠의 여신으로서 주인공을 권속으로 만들려고 하는 느낌은 있는데, 마왕이 복선 띄우기도 했고요. 근데 그런 거 치곤 정성을 너무 많이 들이고 있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고 조언해 주고 힘까지 줘서 주인공이 주인공으로서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줘놓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그래서 가스라이팅이 보다 쉽게 먹혔는지 주인공은 완전히 시빌라를 철석같이 신뢰하게 되었죠. 이걸 노리나 싶기도 합니다만, 아직 복선은 없군요. 아무튼 보통 이런 장면들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동료를 신뢰하고 주인공을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느낌보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마치 '리빌드 월드'의 히로인 '알파'를 보는 듯했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주인공을 보살펴주고 자기 말 듣게 조절해서 내(알파)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게 '시빌라'에게서도 엿보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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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르테니아 전기 1
호리 료타 지음, bob 그림, 송덕영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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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요즘 구입할 것도 없고, 재고(읽을거리)도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별생각 없이 구입한 작품입니다. 알아보니까 일본에서는 21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3권 이후 소식이 없군요.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열심히 읽어 봤습니다. 일단 내용은 이세계 전이를 다루고 있고요. 주인공은 학교 옥상에서 밥 먹으려다 소환 당하고, 도착한 곳은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세계였습니다. 보통 이런 소환이 이뤄지면 으레 나오는 말이 용사여 마왕이 어쩌고저쩌고, 이 세계가 위기이니 뭐니 지들이 알아서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주인공 보고 열정페이를 하라고 등 떠미는 세계가 정석이잖아요. 근데 그런 건 식상했는지 마왕은 애초에 없었고, 사람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명언을 탄생 시키려는지 소환한 주체는 주인공을 노예로 만들어 전쟁에 써먹을 생각 만땅이지 않겠습니까. 하필 소환된 세계는 일본으로 치면 전국시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국가 간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세계 전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용사가 되어 이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닌, 도망자가 되어 전란에 휩싸이고 궁극적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개고생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수물 하고는 조금 다른, 소환 주체가 추격해오면 잡아 족치고, 전장에서 만나면 싸우고 뭐 그런 이야기 같더라고요.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매일 아침마다 진검으로 승부하는 실전 무술을 전수받았고, 주인공 덩치는 드웨인 존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람하여 일단 기본적인 패시브는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환 직후 노예 목걸이를 걸려던 영감과 일단의 기사 무리들을 쉽게 제압해버리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죠.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은 탈출한답시고 너무 철두철미하게 일처리를 하는 바람에 영감과 기사들을 몰살했다는 것이고, 영감은 나라에서 굴지의 영향력을 가진 정치가이자 마법사였다는 것에서 주인공은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1권은 성(城)에서 탈출 후 이웃나라로 국경 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안타까웠던 건 라노벨계 이세계 물 역사가 상당히 길 텐데도 왜 같은 이야기들을 넣어 놨을까 입니다. 그러니까 이세계 물정을 알아보고, 길드에 가서 모험가로 등록하고, 모험가로 활동하기 위해 여러 물품을 구매하는 틀에 박힌 이야기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현대 일본과 비교해서 위생문제 등을 언급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거라 생각이 들었군요. 그나마 차별을 두려는지 현실의 은행 시스템을 적용해서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신선했습니다. 다른 좋은 점으로는 길드 마스터와 안면을 튼다든지 실력 보자며 뒷마당에 가서 결투한다든지 길드 여직원과 눈 맞는다든지 이런 건 없어서 좋았는데요. 이세계에 신문물을 퍼트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건 주인공 몫이 아니군요. 소환은 꾸준히 이어져 그중에 누군가가 이세계에 신문물을 퍼트리고는 있나 봅니다.

그리고 약간 비평해 보자면요. 주인공은 자기가 살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긴 하지만, 무의미한 살생을 이어간다고 할까요. 갑자기 이세계에 소환 당하고 대뜸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전장에 나가 싸우라고 하면 누구라도 화낼 테죠. 그러니 주인공이라고 화내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 죄를 물을 거면 소환 주체인 당사자들만 없애면 되지, 탈출하려고 큰 상처를 입은 것처럼 연극 중인 주인공을 걱정해 주는 선량한 병사와 의사까지 죽이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물론 얼굴이 알려져 탈출할 때 특정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는 개연성을 심었지만 어차피 국경도 봉쇄되었고, 추격자가 엄청 많이 붙은 시점에서 붙잡히는 건 시간문제였거든요. 거기다 얼굴 알려지는 걸 꺼린 주제에 마을 옷 가게에 들어가 옷을 구매하는 건 또 뭔가 싶더군요. 성에서 탈출할 때 병사의 옷을 빼앗아 변장했고, 변장한 채로 마을에서 옷 가게에 들러 옷을 사 가면 특정되는 건 시간문제인데 이걸 간과하나? 근데 추격자는 이걸 간과함.

모험가로 첫발을 내디디며 열심히 의뢰 수행 중에 노예 자매 둘을 구해서 수하로 두는데, 이것도 좀 개연성이 부족했군요. 하필 주인공이 가는 길에 노예꾼 마차가 있었고 하필 도적떼가 노예 자매를 겁탈하려 하고 그걸 주인공이 구해주고 구해주니까 주인님 코스, 거기에 구해준 은혜도 모른 채 오만하고 거만한 노예꾼 돼지는 하늘나라로 보내주는 건 덤이고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클리셰적인 이야기를 넣으니까 라노벨의 인식이 안 좋지 않아 싶더군요. 물론 작가는 운명의 만남 같은 이야기를 쓸려고 했겠죠. 은연중에 그런 이야기도 있고요. 뭐 사실 이 작품이 연재되었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이 작품도 사실 이세계 전이의 물계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합니다. 다만 국내 정발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식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요.

맺으며: 아무튼 1권을 읽으면서 왜 3권에서 정발이 끝났을까 하는 걸 찾아봤는데 결국 발매 시기가 늦어 그렇지 않나 싶었습니다. 내용은 정석적이고 클리셰적인 이세계 전이 +@로 주인공 먼치킨(이건 어릴 때부터 수련 해왔다는 개연성이 충분했지만)은 이제 식상하거든요. 그렇다면 차별점을 두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 차별점은 주인공은 도망자 신세라는 것과 머리가 상당히 비상하다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투와 전술면에서 꽤 그럴싸한 모습을 보이죠. 근데 할아버지에게서 실전 무술은 배웠지만 전술은 언제 배웠데? 같은 개연성 부족이 생기고, 어떻게 보면 참 희한한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그 외에는 문화적 관점이 있군요. 현실에서 어떤 나라의 풍습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대립이 생기듯,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소환해서 노예로 부리려는 것 또한 풍습에 지나지 않다는 것, 그래서 그 풍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호 존중이 없는 이런 설정은 선과 악을 명확히 해서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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