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의 주인님 3 - S Novel
히구레 민토 지음, 팀에스비 옮김, 나포 그림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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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질서가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 제3탄입니다. 아직 사회라는 개념의 이해가 부족한 어린 학생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1천 명이나 이세계로 전이되었습니다. 그래도 문명인답게 어떻게든 질서를 잡고 살아가려 했지만 힘의 논리에 입각해 카스트가 정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요. 카스트는 곧 힘의 질서가 되며, 제일 아래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건 당연한 것이라는 양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 그러던 어느 날 힘이 있는 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봉다리 핫바지로 지내던 어중간한 놈들에 의해 쿠데타가 이어지고 질서는 붕괴해버립니다. 카스트 제일 아래에 있던 주인공 '마지마 타카히로'는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죠. 가만히 있는 놈을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자라 죽이려 하니 여기가 지옥이요 기절했다 눈을 뜨니 슬라임이 나를 잡아먹고 있네.

 

아라크네 '거베라'와의 사투는 주인공 타카히로와 릴리 그리고 목각인형 로즈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날 산장에서 모든 걸 잃고 허무만이 남아 살아도 산 게 아니었던 '카토 마나'의 개입으로 어떻게든 사태는 진정이 되었군요. 그리고 거베라는 그녀(카토)의 사실적인 묘사 한방에 나가떨어지고 실의에 빠진 채(필자의 각색이 조금 들었음)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주인공의 권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이 몬스터라는 든든한 아군을 맞이한 타카히로 일행은 다시 인간들 군대가 보였다는 북쪽으로 여정을 시작하는데요. 거베라와 더불어 여우 몬스터와 씨앗 몬스터도 권속으로 들이는 등 조금식이지만 전력을 늘여가게 되죠. 그리고 인간과 엘프로 이뤄진 기사단에 콜로니 붕괴 때 간신히 살아남은 학생들과 만나고, 그들과 합류해 이세계인들의 요새로 향하는데요.

 

여기서부터 환장 파티가 시작됩니다. 콜로니 붕괴 때 어중이떠중이만 살아남았고, 그럴 그릇도 되지 않는 학생들을 용사라 부추겨 마물을 같이 퇴치하자는 이세계 사람들, 이에 학생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동조하기 시작하고요. 콜로니에서 서로 죽이는 아포칼립스를 연출했던 이들이, 그릇도 되지 않는 주제에 좋다고 떠드는 모습에 기가 차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주인공은 그런 놈들에게 몰매 맞고 죽을뻔하였죠. 주인공 타카히로는 용사가 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 불신에 빠져 권속들과 조용히 살아가기만 바랄 뿐이죠. 일단 이세계와 여타 정보를 얻기 위해 요새에 머물지만, 처음부터 그랬는데 나중이라고 달라질까, 어린 엘프 소녀를 겁탈하려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차 요새의 공기는 불온하게 퍼져 갑니다.

 

 

모든 인간들은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기로 했던 주인공 타카히로, 아라크네 '거베라'와의 일전에서 절체절명의 순간 거베라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움의 향방을 갈랐던 '카토 마나'의 존재로 인해 주인공이 안고 있었던 신념이 조금식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것에서 믿어볼까?로 조금은 마음을 열었지만, 마치 유일 신(神)을 믿는 중세 시대 종교처럼 마물은 인간의 적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 이세계인들에게 주인공은 그들의 적이나 다름없었어요. 왜냐, 마물을 권속으로 부리고 있으니까요. 정령을 부리고 있는 엘프들조차 마물 편이라며 반역자라고 몰아붙이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었죠. 이렇게 극단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세계인들도 무턱대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마냥 마물과의 전투는 날로 격화일로였는데요.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남은 길은 무얼까. 그는 카토 덕분에 인간 불신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했죠. 콜로니 붕괴 때 살아남은 친구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인간들과 조금식 더 어울려갑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권속인 릴리는 주인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을까. 언젠가 우리와 헤어지고 인간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릴리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그에게 전합니다. 인간들과 떨어져 모든 게 부족한 숲속에서 우리와 생활할 것인가, 다는 못 믿겠지만 그래도 주인공을 위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인간세계도 나쁘지 않으니 이대로 인간들 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여기서 주인공을 위하는 릴리의 내면을 비추는 장면들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무직전생'이라는 작품도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충실히 비추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 않을까 싶군요. 필자가 말주변이 없어서 표현할 길이 없는데 애달픈 게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명, 진히로인(필자 주관적) '카토 마나'가 있습니다. 콜로니가 붕괴되고 어떻게 빠져나와 산장에 몸을 숨겼지만 뒤따라온 남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당해야만 했죠. 사설이지만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의 심리를 카토를 통해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어요(비하 아닙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을 봤다 하면 실신해버릴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절망에 먹혀 마음을 닫아버린 그녀, 오직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만 마음을 열었지만 그것도 곧 끝이라는 그녀, 카토는 목각인형 마물 '로즈'와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거베라와의 싸움에서 둘은 마음을 열었죠. 로즈가 주인인 타카히로를 바라보는 마음을 알아버린 카토는 진심으로 그녀(로즈)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로즈를 응원하면서 정작 자신의 행복은 잡지 않는 카토, 모든 걸 불태워 버리고 만지면 바스러질 거 같은 그녀의 내면들을 비추는 대목에선 정말 먹먹해지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군요.

 

세 가지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무지몽매하고, 자기만 알고,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학생들을 용사로 부추겨 마물과 싸우게 하려는 이세계인들, 주인공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릴리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카토 마나와 로즈의 애잔한 관계, 특히 세 번째 카토 마나와 로즈의 에피소드는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구간입니다. 카토 마나의 내면과 심리를 정말 리얼리티 있게 표현해놨어요. 그날 산장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마음이 망가지다 못해 그대로 사라져버릴 거 같은 심리 묘사는 릴리 에피소드와 더불어 혀를 내두르게 하죠. 오직 자신을 구원해준 단 한 사람 주인공을 향한 연심만으로 움직이고 그것이 없어졌을 때 그녀에게 있어서 남는 건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인 물음은 라노벨에서 다룰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였군요.

 

맺으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주변을 깎아깎아내리고 주인공을 치켜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통 나쁜 놈들 일색인 세상에서 상처받은 주인공이 마음의 문을 닫고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히로인과 만나고 자기를 따라주는 사람(여기선 권속)들과 맺어지는 것, 흔한 클리셰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필력으로 모든 걸 말해줍니다. 필자의 저주스러운 필력이 이럴 때 통탄스러운데, 릴리와 카토와 로즈가 보여주는 심리와 내면은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사실 몬스터와 인간이 맺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혐오스러운 점도 있는데요. 하지만 작가는 인종차별은 좋지 않다는 것마냥 인간의 마음으로 접근해서 그들도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역설하는 게 아닐까 했군요. 점수를 주자면 일단 3권 기준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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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5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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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면 그땐 좋은 추억이었지, 그땐 힘들었지를 회상할 수 있는 것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 15권입니다. 던전에 처음 내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죽을뻔하고, 개의 귀를 가진 수인 모험가에게 토마토라고 신랄한 조소를 들어만 했고, 오늘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늘 목숨을 걸어야 했고,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서 살아도, 그래도 밝은 얼굴을 하며 내일은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 궁상맞고 상처뿐인 용기를 끌어안으며 묵묵히 걸은 끝에 소년이 얻은 건 무엇일까. 다시금 모험을 떠나는 벨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만난 엘프 류와 과거의 망령, 벨에게 있어서 일찍이 없었던 강력한 몬스터와의 전투는 벨과 가련한 엘프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그와 엘프는 절망을 맛봐야만 했죠.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건만 벨을 기다리는 건...

 

이번 에피소드는 휴식과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소년과 여신이 얻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37계층에서 그만큼 굴렸는데 바로 또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겠죠. 이때까지도 큰 모험이 있으면 다음 에피소드는 휴식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렇다 할 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초심으로 돌아가 등장인물들이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오기 전의 상황과 오고 나서 부닥친 상황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어요. 영웅을 선망하던 벨의 경우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 심취하여 미궁 도시에 오게 되었다는 건 1권에서도 다뤘지만 오고 나서 헤스티아에게 주워지기 전 무슨 일을 당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더랬는데요. 모험가를 꿈꾸고 도시에 입성을 하였지만 촌뜨기를 좋다 하고 받아주는 파밀리아는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기에 가깝게 돈을 뜯기기는 등,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시골 꼬맹이가 눈뜨고 코 베이고 꿈이 부서져가는 상황을 꽤나 리얼하게 그려 갑니다.

 

헤스티아도 천계에서 내려와 절친 헤파이스토스에게 빌붙었다가 쫓겨난 후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 보금자리를 튼 일은 유명하죠. 이때부터 신이라는 작자가 알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냥 할 일 없으면 다시 천계로 돌아갈 것이지 괜히 파밀리아를 만든다고 앙숙인 로키에게 큰 소리를 처가지곤 지나가는 모험가들에게 가입 권유했더니 돌아오는 건 무시와 모멸뿐, 집은 다 쓰러져가고 자식(단원)은 한 명도 없고, 사람(신이지만)은 궁하면 통하고, 궁지에 몰리면 길을 찾는다지만 헤스티아에게 길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3개월이나 빌붙어서 방종만 해댄 그녀에게 벌을 내리는 게 아닐까 싶은데 신(神)인 그녀를 누가 벌을 내릴까도 싶지만 그녀 또한 궁상맞은 나날을 보내게 돼요. 그리고 그날 운명의 만남이...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두 명의 인물 중 한 명인 릴리가 숙원을 이룹니다. 릴리는 고생과 고통과 발버둥이라는 단어와 무척이나 어울리죠.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벨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2권인가 3권인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는데요. 이번에도 거기에 나왔던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세상이 상냥하지는 않더라도 내게서 모든 걸 빼앗고 고통을 준다면 과연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부터가 빼앗는데만 급급한 것에서 어린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느껴가야만 하는 부분은 참 사람을 음울하게만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함정에 빠트리면서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한 꿈을 잃지 않는, 발버둥 치는 모습은 애잔하게도 합니다.

 

릴리가 [소마 파밀리아]를 떠났을 때, 비로소 구원받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레벨 1이었고, 벨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에게 주워졌다곤 해도, 거기에 안주할 그녀가 아니었죠.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는데 [소마 파밀리아]에서 나오고 헤스티아에게 컨버전 되었을 때 폭렙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한 독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실상은 참담함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작가 후기에 보니 작가는 그녀를 키워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재능이 없는,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어도 발버둥 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그동안 보여왔던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작가는 유지하고 싶었나 본데 결국은 담당자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겠다는 양 그녀를 기고만장하게 그려대는 통에 분위기가 상당히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벨의 어드바이저 에이나, 벨프, 류, 하루히메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류'가 벨을 대하는 감정이라 하겠군요. 오지 말라는데도 어거지로 따라와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을 위해 싸워주고, 37계층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 그에게 어떤 감정이 들어야 올바른 흐름일까라고 묻듯이 이야기는 능글맞게 흘러갑니다. 위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인물이 두 명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는 릴리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류라 하겠는데요. 참고로 이건(릴리와 류) 필자의 주관이니 태클은 사양합니다. 아무튼 엘프 이외에 모든 종족을 배척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마을에서 뛰쳐나와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왔지만 정작 타종족을 배척하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고립되어 가는 류의 정서불안을 참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히메, 순수함은 때론 폭탄이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며 종횡무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유쾌합니다. 밤에 아무렇지 않게 벨의 방에 찾아간다던지, 벨프를 천하의 못쓸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던지, 그녀의 성장도 꽤나 눈부신데요. 플로어 전체가 온통 불에 잠긴 계층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결사는 파티가 궤멸되지 않은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할 정도로 그녀의 용기는 대단했었습니다. 벨의 용기를 이어받듯, 무모하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신념, 고난을 뛰어넘은 그녀에게도 한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후위직 특성상 성장이 더딤에도 릴리에 비해 비교적 쉽게 성장하면서 또 한 번 릴리가 얼마나 발버둥계의 대표인지 새삼 알게 되는 대목이 아닐까도 했군요.

 

맺으며, 후기에 보면 작가는 하렘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래서 벨의 둔함을 부각 시켜놓은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호의에 둔한 벨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 히로인들이 속셈과 음흉함이 없는 그에게 모여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동시에 히로인들이 불쌍해지기도 하는 참 씁쓸한 하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들이밀어도 보답을 받지 못하니 이보다 불쌍한 건 없지 않을까요. 물론 이성적인면에선만 그렇고 그 외의 부분에서 많은 것을 받고 있으니, 그래서 류의 감정 변화는 더욱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거의 사랑의 열병을 앓아버리기 시작하는 엘프의... 과연 류는 [헤스티아 파밀리아]로 컨버전 할 것인가가 이 작품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도 싶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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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오라토리아 11 -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외전,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하이무라 키요타카 외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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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본편 11권에 해당하는 다이달로스 거리 공방전은 벨을 위시한 [헤스티아 파밀리아]의 처절한 노력 끝에 [제노스] 무리들을 던전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부터는 외전 오리지널 이야기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로키 파밀리아]를 위주로 해서 미궁 도시 오라리오의 붕괴를 막기 위한 이블스 잔당과의 전쟁을 그리게 되는데요. 1천 년 전 미궁 도시 오라리오가 건립될 당시부터 던전(미궁)에 매료되어 자신도 던전 제작이라는 망집에 사로잡힌 다이달로스부터 시작하고 그 자손들 대대로 만들어진 인조 미궁 크노소스, 거기에 둥지를 튼 이블스 잔당과의 1차 전투는 [로키 파밀리아]에게 적잖은 피해를 안겨 주었죠. 그리고 지금 2차 전쟁이 시작되려 합니다.

 

아이즈는 고뇌한다.

 

마물은 없애야 되는 것이라고, 마치 살기 위해 밥을 먹는 것에 의문을 나타내지 않듯, 인간에게 해(害)만 되는 마물은 없애는 거라고 줄곧 그렇게 믿고 살아온 소녀에게 들이밀어진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힐 정도로, 그날 다이달로스 거리에서 인간의 지성을 가진 마물 [제노스]들을 보호하며 자신(아이즈)에게 칼을 겨누는 소년(벨)에게서 소녀는 어떤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사람을 잡아먹어야 할 마물들이 정작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인간과 똑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지금까지 가슴에 품어왔던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그렇기에 그녀는 고뇌합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냐, 그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그 해답을 다름 아닌 소년에게서 찾게 되는 그녀는 어떤 결단을 내립니다.

 

핀은 총력전을 구상한다.

 

[로키 파밀리아]의 수장 '핀', 한때 릴리를 노리며 로리콘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왔던 그는 파룸 종족 특유의 조그만 몸을 가졌으며 동시에 나이 40을 넘어 아직도 장가를 못간 노총각입니다. 미궁 도시를 구하겠다고 1차 크노소스 공략전에 임했다가 대패를 당하고 물러나야만 했죠. 괴인 '레비스'와의 일전과 죽는 것에 의문을 느끼지 않는 이블스 잔당의 자폭 공격은 그에게 많은 단원을 잃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에 설욕전 겸 2차 소탕전을 감행하기로 하는데요. 이번엔 1차 때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양 지식을 총동원해서 작전을 입안하고 다른 파밀리아까지 끌어들이며 의욕을 보입니다. 이런 훌륭한 사람인데 어째서 아직도 노총각이냐고 생각했더니 그의 곁에 '티오네'가 있었군요. 핀에게 있어서 두통거리이자 만악의 근원. 둘이 애 낳아봐야 아마조네스 밖에 태어나지 않는데...

 

흑발의 엘프는 사망 플래그를 뿌린다.

 

외전 7권 표지모델이기도 했던 '피르비스', 그녀는 [디오니소스 파밀리아] 소속으로 엘프이면서 흔치않는 흑발의 소유자이죠. 첫 등장 때 결벽증이 있는 이 작품의 엘프 중 단연 으뜸 결벽증을 보여주겠다는 것마냥 온몸을 옷으로 빈틈없이 치장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하였는데요. 같은 엘프이며 역시 결벽증을 앓고 있는 레피야는 가터벨트와 절대영역이라는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피르비스는 정도가 좀 심했죠. 그런 피르비스와 레피야의 첫 만남은 서먹서먹, 가까이 오면 찔러 버리겠다는 고슴도치마냥 날선 반응을 보였던 그녀(피르비스)에게 레피야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들이밀어 친구 먹기에 성공했었습니다.

 

오늘부터 1일이다. 이 뒤는 일사천리, 이 작품이 동인지로 만들어지고 제일 먼저 소재로 쓰일 인물이 있다면 피르비스와 레피야가 아닐까 할 정도로 둘은 백합을 만들어 갔었죠. 졸지에 레피야에게서 버림받은(?) 아이즈, 이번에 크노소스 공략이 확정되면서 피르비스 또한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략이 들어가기 전, 피르비스는 레피야에게 어떤 말을 건네요.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언급 못하지만 대부분이 사망 플래그이고 개중엔 그녀(피르비스)의 정체와 관련된 복선이 조금 투하되죠.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만날 때부터 과할 정도로 피부를 보이지 않는 피르비스의 용태가 조금은 의문이었는데 여기에 그 의무이 조금 더해집니다.

 

회수되는 사망 플래그

 

작전 개시일, 크노소스 공략에 임하는 [로키 파밀리아]와 그외 중소 파밀리아 연합은 개떼같이 몰려 가요. 그리고 매우 순조롭게 공략을 해가죠. 너무나 쉽게 진행되는 것에 위화감이 있을 정도로요. 필자가 본편보다 외전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본편에선 느낄 수 없는 긴장감과 긴박감 그리고 처절하리 만치 플래그가 회수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필력도 감히 말하지만 본편보다 더 좋다고 생각 중이군요. 순조로운 출발을 시기하듯 점차 시리어스로 몰아가는 작가의 능력이 좋아요. 본편은 낮은 곳에서 갑자기 위로 치솟는 진행이라면 외전은 완만하게 곡선 그래프를 그려가는 느낌이죠. 순로로운 출발 뒤에 모두가 어떤 인물의 손바닥 위에 놀아났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분위기는 반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회수되는 사망 플래그(이건 12권 리뷰에서 언급해보겠습니다.).

 

맺으며, 역시나 본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박진감이라고 해야 할지, 외전 특유의 대규모 전투에서 보여주는 긴박감은 여전히 눈길을 끕니다. 특히 어느 힐러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군요. 하지만 인터넷 속어로 충공깽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번 이야기가 딱 그렇습니다. 중간중간 플래그를 심어대길래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후반에서 망설임 없는 진행은 혀를 내두르게 하더군요. 특히 레피야와 피르비스의 관계는 그동안 참 애틋하게 하였는데요. 이번에 그 정점을 찍어 주면서 참 씁쓸하게 합니다. 거기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라며 추리를 가미 해놓은지라 몰입도도 상당히 좋았군요. 후반을 읽다 보면 아!! 그때!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마지막으로 드디어 벨의 마음을 십분 알아주는 아이즈랄지 앞으로 둘의 관계가 정립되는 계기가 되는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재미없는 리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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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가 되고 싶다며 도시로 떠났던 딸이 S랭크가 되었다 3 - L Books
모지 카키야 지음, toi8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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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가 온 동네를 쏘다니며 자신의 아버지는 [적귀]라는 이명을 가진 실력자라고 떠벌린 덕분에 나이 40이 넘은 아버지는 죽을 맛입니다. 젊었을 적 고향을 뛰쳐나가 모험가가 되었지만 얼마 못 가 한쪽 다리를 잃어버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아야만 했죠. 고향을 버린 놈, 한쪽 다리가 없는 반푼이라는 조소 속에서 아버지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다시 마을에 받아들여졌지만 이미 나이는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덧없는 인생에서 그나마 위안이었던 건 숲에서 주운 딸내미가 있었다는 것, 딸내미는 말썽 하나 안 부리고 무사히 성장하였고 이내 자신을 따라 모험가의 길을 들어섰던 딸은 어느덧 S랭크라는 아무도 무시 못 할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런 딸내미에게 지금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는데요.

 

고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안젤린의 동료 아넷사와 밀리엄 또한 고아원 출신이죠. 작중 표현은 안 되어 있지만 으레 판타지같이 중세 시대를 표방한 작품에서 아이가 버려지는 건 흔한 일입니다. 안젤린 또한 숲에 버려졌었고, 그녀의 아버지 벨그리프가 주워다 길러 주었죠. 아이가 버려지는 세상입니다. 정상적인 개념을 가진 아이라면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의 은혜를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지 않을까요. 어느덧 아버지 나이 42살, 아버지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안젤린은 노년을 쓸쓸하게 보낸다는 느닷없는 생각이 들어 엄마를 붙여준다면 그나마 덜 쓸쓸하겠지? 하며 신부 후보를 찾아 나섭니다. 모험가를 하며 인연이 닿은 여성들을 만나 우리 아버지 괜찮은데 만나볼래? 선 볼래? 내 엄마가 되어 줄래? 이러고 다녀요. 그런데 녹록지가 않습니다. 내 마음속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인데 어째서 아무도 몰라줄까.

 

그 시점, 아버지는 뭐하고 있냐면요. 딸내미의 걱정과는 반대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귀족 3자매의 구애를 받고 있고, 딸내미가 방방곡곡 쏘다니며 [적귀]라는 이명을 퍼트리는 바람에 한수 배우고자 도끼 전사가 찾아와 눌러 앉아요. 새장 속 새가 되고 싶지 않다며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망나니 엘프 공주를 찾기 위해 노엘프(노인)가 그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 노엘프 또한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엘프 공주가 제 발로 찾아오겠지 하며 눌러 앉아 버리는군요. 그리고 3명(벨그리프, 도끼 전사, 노엘프)은 의기투합하여 마을 사람들과 술잔치를 벌이고 대련을 하며 세상사 무엇이 걱정이냐는 듯 껄껄거리는 인생을 만끽하죠. 그리고 그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일명 교과서적으로만 살아가는 엘프 공주는 숲에서 마왕과 대치중이었습니다.

 

 

다시 안젤린의 시점, 엄마 찾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어떡하나 싶은 심정으로 밤길을 걷는 그녀에게 이전에 보르도(아버지에게 어프로치 중인 귀족 3자매가 사는 곳)에서 언데드 사건을 일으켰던 '샤를로테'라는 10살짜리 소녀와 '벡'이라는 소년을 다시 만납니다. 어떤 인연이 있어 보르도에 들렸던 부녀(父女)에 의해 격퇴는 되었으나, 여기서 또 만나게 되는군요. 이에 또 싸울래?라며 으르렁거리는 안젤린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찾고 있는 엄마는 보이지 않는데 인연이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동생을 둘이나 얻게 되다니 세상사 참 모를 일입니다. 마왕을 부활 시키려는 사교의 꾐에 넘어가 사기와 사람들이 죽을 정도로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소녀 샤를로테, 보르도에서 자신을 탓하기 보다 감싸주었던 아저씨(벨그리프)를 만난 계기가 그녀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불러온 것일까. 그때 [적귀]의 전설은 허구가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었던 아저씨.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지어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샤를로테의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아니면 교황청에서 추기경을 할 만큼 권력자였던 아버지가 권력 다툼에 밀려나 딸을 살리고 죽어버린 것에 원한을 잊지 못해 나쁜 길로 들어선 그녀에게 동정심이 일어난 것일까. 보르도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큰 사건을 일으킨 이들의 목을 당장에라도 처야 되건만 안젤린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는 듯, 샤를로테와 벡을 보호하며 이들을 노리는 자객으로부터 지켜나가기 시작하는데요. 사를로테와 벡이 사교를 배신한데다 교황청이 전(前) 추기경의 딸인 샤를로테가 정적의 구심점이 되어 자신들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거죠. 이에 안젤린은 졸지에 두 곳에서 보내오는 자객과 대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신념을 가진 그녀를 꺾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다시 아버지 시점, 망나니 엘프 공주가 위기에 빠집니다. 마왕을 죽여서 명성을 얻겠다며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교과서적인 배움만으로 본질을 꿰똟지 못하는 우둔함만 가진 그녀는 기어이 목이 떨어질 위기에 처하게 돼요. 그리고 개입하는 아저씨, 또다시 객식구나 늘어납니다. 목숨이 구해지고도 엘프 공주는 큰숙부가 되는 노엘프의 가르침은 귓등으로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만 피워대니 이거 참, 여기서 아이들의 우상 벨그리프가 나설 차례군요. 말을 안 듣는 아이는 때려서라도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전해주며 겉으론 온화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너 그러다 객사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아무리 망나니 엘프 공주라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도끼 전사와 노엘프에 이어 엘프 공주까지 객식구로 들어오며 아저씨의 삶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왕이라는 복선은 안젤린에게 세 번째 동생을 안겨주는데...(이 부분은 4권 리뷰에서 다시 언급해보겠습니다.)

 

맺으며, 제목 때문에 가벼운 이야기가 아닐까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데요. 말씀드리지만 절대 가볍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리어스같이 무거운 게 아니고 이야기 구성이 알차다는 뜻인데요. 우선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사물에 대한 표현력이 우수하고,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개성을 잘 표현하고 있죠. 안젤린의 아버지 사랑이라던지, 이번에 샤를로테의 진심 어린 참회는 가슴을 먹먹하게도 합니다. 벡의 꼬인 성격은 괴롭히고 싶어 하는 누나의 심정이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을 들게 하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처럼 샤를로테를 동생처럼 귀여워해 주는 안젤린의 풀어진 미소는 훈훈하게도 해주고요. 망나니 엘프 공주의 신랄한 말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번 에피소드 테마는 마왕보다는 귀여움이 아닐까 했군요. 샤를로테라든지... '미토'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이야기를 교차 시키는 작가의 능력입니다. 아버지 시점과 딸의 시점을 따로 진행 시키면서 점차 이야기가 맞물려가고 하나의 가능성에 도달 시키는 능력이 대단히 좋아요. 이것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었군요. 마왕의 존재를 두고 아버지와 딸의 활약을 따로따로 진행 시키면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진행 방식은 몰입도를 상당히 올려줍니다. 물론 이야기가 방대해지면서 산만해질 수 있으나 이건 기억력의 문제일 뿐, 아무튼 이전부터 그래왔지만 마왕의 존재가 좀 더 명확해지면서 안젤린의 정체 또한 명확해지는 에피소드였습니다(이거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언급). 그리고 젊었을 적 아버지의 첫사랑은 또 다른 만남을 예약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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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나는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 8 - L Books
CHIROLU 지음, Kei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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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일담, 외전 형식입니다. 라티나가 사라지고 그게 마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버린 데일이 마왕 소탕전을 끝내고 겨우 찾아낸 반려라는 오픈 엔딩으로 끝낼 수 있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작가가 집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후일담인데요. 만화와 더불어 웬만한 작품들 대부분이 오픈 엔딩으로 끝내거나 작가가 중도에 도주해버려서 미완으로 끝나는데 반해 이 작품의 작가는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할 수 있죠. 사실 뭐 오픈 엔딩으로 끝난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독자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고 여운을 남게 함으로써 두고두고 회자시킬 수 있는 수단이 오픈 엔딩이기도 하니까요.

 

데일에 의해 재앙의 마왕이 쓰러지면서 마인족들은 인간들과의 교류를 희망하고, 라티나의 언니 크리소스는 마인족을 이끄는 왕이 되어 인간들의 나라 라반드국(데일과 라티나가 소속된 나라)과의 교류를 위해 찾아옵니다. 어릴 적 그렇게 해어지고 다시 만난 동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과의 재회,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왕으로써 정치적인 소임을 다하기 위해 라반드국을 찾은 크리소스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동생만을 바라보는 팔푼이가 되어버립니다. 그에 두통을 느끼는 데일, 한때는 남자 같은 이름의 크리소스라는 단어를 듣고 데일은 라티나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닐까 하고 오해를 해버리기도 했었죠.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하는 것, 그러나 작가는 그걸 살리지 않는다.

 

라티나의 절친 클로에가 결혼식을 올립니다. 어릴 적 라티나에게 불합리를 가했던 선생을 두고 볼 수 없어 교실을 뒤집어 엎었던 말괄량이 소녀가 라티나를 냅두고, 살아오면서 인연이 더 많았을 남자 소꿉친구를 냅두고 먼저 인생의 승리라는 레일 위에 안착해버립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언제까지고 꼬맹이 시절에만 묶여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마냥 시계는 거침없이 앞으로 흘러 가요. 이것은 라티나에게 있어서 이별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메시지가 아닐까 했습니다. 인간보다 몇 배는 오래 사는 그녀(라티나)에게 있어서 친구들이 나이를 먹고 하나둘 없어진다는 두려움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작가는 그걸 살리지 못하는군요. 일언반구도 없어요. 아쉬웠던 게 이 부분이었군요. 나만 놔두고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버리는 불안, 그걸 감싸주는 데일이라는 극적이고 드라마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이 작품 자체가 워낙 가볍다 보니 그런 우중충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저 현재라는 시간을 보고 느끼고 자기 삶을 찾아가는 친구에게 축복을 하고,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살아 가려 하죠. 사람은 살아가는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라티나의 차례가 찾아옵니다. 어릴 적 일족에게서 버림받았던 그녀는 기댈 곳을 찾아 손을 내밀었고 그걸 받아준 소중한 사람과의 결혼.

 

작가는 또다시 배신을 때린다.

 

음... 배신이라고 하기엔 어패가 있습니다만. 이 작품 자체가 가볍다 보니 심각한 이야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요. 한마디로 라티나가 결혼한다는 걸 알게 된 [친위대]의 반란은 속된 말로 깨는 것이었습니다. 1권 때는시리어스 하긴 했지만 이후부터는 사실 이런 분위기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요정 공주를 보살피는 모임] <- 이것만 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죠. 아무튼 이 미친 모임이 일으키는 어떤 행위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스포일러라서 언급은 힘들지만, 남정네들만 우굴거리는 소굴에 여자애 하나 떨궈 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 유사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라티나가 마법 소양이 뛰어나 공격과 방어에 능통하다지만, 자신이 일하는 식당 단골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건 라티나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반대로 그 남정네들도 자신들의 마음속 히로인인 그녀에게 손을 댄다는 건 있을 수 없었습니다만.

 

그렇기에 이 작품이 얼마나 가벼운지 잘 나타내는 것이고, 그렇기에 유괴하다시피 한 걸 장난으로 치부해버리는 대목에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는데요. 더욱 문제인 것은 라티나의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군요. 아무 의심 없이 남자들을 따라가는 건 현실의 교육과 반대되는 내용이 아닐까라고 한다면 필자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요. 작가도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어떤 일을 위해 라티나도 친위대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에서 이거 북 치고 장구치고, 병 줬다가 약 줬다가 혼자서 다 해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군요. 또 쓰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가볍다는 걸 새삼 알게 된 장면이었습니다.

 

맺으며, 1권이 발매되고 키잡물이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긴가민가했었는데 사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데일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키잡물이라기보다 라티나의 독점욕에서 시작된 키잡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일족에게서 버려지고 아빠는 객사해버리고 천애 고아가 되어 오늘내일하는 현실에서 자신을 주워주고 길러주고 많은 것을 알려주는 이가 있다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불행한 과거를 가진 아이가 커서 가족을 맞아들일 때 하는 행동은 두 가지라고 하죠. 가족을 끔찍하게 보살피거나, 똑같이 불행한 과거를 걷거나. 라티나는 전자가 되었죠. 이미 어느 정도 나이가 찰 때부터 데일에 대한 독점욕을 보이기 시작했고, 좀 더 커서는 질투심까지 탑재하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데일을 권속으로 삼은 것도 이 독점욕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버림받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그녀가 자신을 보살폈던 데일을 특별히 여기는 건 당연한 것이었죠. 그래서 한때 데일은 도망 다니기도 했고요. 이번에도 데일은 아버지로서 그녀를 보내주려 했다는 대목이 있으니 뭐, 아무튼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발이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좀 그런가요. 애초에 라티나 이외에 이렇다 할 히로인이 없었으니 처음부터 이렇게 되었을 운명이었겠죠. 그건 그렇고 1권 이후 일러스트레이터를 바꾼 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느낌을 받았군요. 특히 라티나의 절친 클로에를 그린 일러스트는 꽤 잘 뽑혔습니다. 그리고 진엔딩, 누구나 바라는 이런 엔딩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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