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15 -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야스다 스즈히토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땐 좋은 추억이었지, 그땐 힘들었지를 회상할 수 있는 것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 15권입니다. 던전에 처음 내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죽을뻔하고, 개의 귀를 가진 수인 모험가에게 토마토라고 신랄한 조소를 들어만 했고, 오늘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늘 목숨을 걸어야 했고,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서 살아도, 그래도 밝은 얼굴을 하며 내일은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 궁상맞고 상처뿐인 용기를 끌어안으며 묵묵히 걸은 끝에 소년이 얻은 건 무엇일까. 다시금 모험을 떠나는 벨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만난 엘프 류와 과거의 망령, 벨에게 있어서 일찍이 없었던 강력한 몬스터와의 전투는 벨과 가련한 엘프를 사지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그와 엘프는 절망을 맛봐야만 했죠.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건만 벨을 기다리는 건...

 

이번 에피소드는 휴식과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소년과 여신이 얻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37계층에서 그만큼 굴렸는데 바로 또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겠죠. 이때까지도 큰 모험이 있으면 다음 에피소드는 휴식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렇다 할 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초심으로 돌아가 등장인물들이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오기 전의 상황과 오고 나서 부닥친 상황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어요. 영웅을 선망하던 벨의 경우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 심취하여 미궁 도시에 오게 되었다는 건 1권에서도 다뤘지만 오고 나서 헤스티아에게 주워지기 전 무슨 일을 당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더랬는데요. 모험가를 꿈꾸고 도시에 입성을 하였지만 촌뜨기를 좋다 하고 받아주는 파밀리아는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사기에 가깝게 돈을 뜯기기는 등,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시골 꼬맹이가 눈뜨고 코 베이고 꿈이 부서져가는 상황을 꽤나 리얼하게 그려 갑니다.

 

헤스티아도 천계에서 내려와 절친 헤파이스토스에게 빌붙었다가 쫓겨난 후 망해버린 교회 지하에 보금자리를 튼 일은 유명하죠. 이때부터 신이라는 작자가 알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냥 할 일 없으면 다시 천계로 돌아갈 것이지 괜히 파밀리아를 만든다고 앙숙인 로키에게 큰 소리를 처가지곤 지나가는 모험가들에게 가입 권유했더니 돌아오는 건 무시와 모멸뿐, 집은 다 쓰러져가고 자식(단원)은 한 명도 없고, 사람(신이지만)은 궁하면 통하고, 궁지에 몰리면 길을 찾는다지만 헤스티아에게 길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3개월이나 빌붙어서 방종만 해댄 그녀에게 벌을 내리는 게 아닐까 싶은데 신(神)인 그녀를 누가 벌을 내릴까도 싶지만 그녀 또한 궁상맞은 나날을 보내게 돼요. 그리고 그날 운명의 만남이...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두 명의 인물 중 한 명인 릴리가 숙원을 이룹니다. 릴리는 고생과 고통과 발버둥이라는 단어와 무척이나 어울리죠.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벨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2권인가 3권인가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는데요. 이번에도 거기에 나왔던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세상이 상냥하지는 않더라도 내게서 모든 걸 빼앗고 고통을 준다면 과연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주변부터가 빼앗는데만 급급한 것에서 어린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느껴가야만 하는 부분은 참 사람을 음울하게만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함정에 빠트리면서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한 꿈을 잃지 않는, 발버둥 치는 모습은 애잔하게도 합니다.

 

릴리가 [소마 파밀리아]를 떠났을 때, 비로소 구원받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레벨 1이었고, 벨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에게 주워졌다곤 해도, 거기에 안주할 그녀가 아니었죠.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는데 [소마 파밀리아]에서 나오고 헤스티아에게 컨버전 되었을 때 폭렙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한 독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실상은 참담함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작가 후기에 보니 작가는 그녀를 키워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재능이 없는,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어도 발버둥 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그동안 보여왔던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작가는 유지하고 싶었나 본데 결국은 담당자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겠다는 양 그녀를 기고만장하게 그려대는 통에 분위기가 상당히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벨의 어드바이저 에이나, 벨프, 류, 하루히메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류'가 벨을 대하는 감정이라 하겠군요. 오지 말라는데도 어거지로 따라와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을 위해 싸워주고, 37계층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 그에게 어떤 감정이 들어야 올바른 흐름일까라고 묻듯이 이야기는 능글맞게 흘러갑니다. 위에서 가장 구원받아야 될 인물이 두 명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는 릴리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류라 하겠는데요. 참고로 이건(릴리와 류) 필자의 주관이니 태클은 사양합니다. 아무튼 엘프 이외에 모든 종족을 배척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마을에서 뛰쳐나와 미궁 도시 오라리오에 왔지만 정작 타종족을 배척하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고립되어 가는 류의 정서불안을 참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히메, 순수함은 때론 폭탄이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며 종횡무진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유쾌합니다. 밤에 아무렇지 않게 벨의 방에 찾아간다던지, 벨프를 천하의 못쓸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던지, 그녀의 성장도 꽤나 눈부신데요. 플로어 전체가 온통 불에 잠긴 계층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결사는 파티가 궤멸되지 않은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할 정도로 그녀의 용기는 대단했었습니다. 벨의 용기를 이어받듯, 무모하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신념, 고난을 뛰어넘은 그녀에게도 한줄기 빛이 내려옵니다. 후위직 특성상 성장이 더딤에도 릴리에 비해 비교적 쉽게 성장하면서 또 한 번 릴리가 얼마나 발버둥계의 대표인지 새삼 알게 되는 대목이 아닐까도 했군요.

 

맺으며, 후기에 보면 작가는 하렘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래서 벨의 둔함을 부각 시켜놓은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호의에 둔한 벨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 히로인들이 속셈과 음흉함이 없는 그에게 모여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동시에 히로인들이 불쌍해지기도 하는 참 씁쓸한 하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들이밀어도 보답을 받지 못하니 이보다 불쌍한 건 없지 않을까요. 물론 이성적인면에선만 그렇고 그 외의 부분에서 많은 것을 받고 있으니, 그래서 류의 감정 변화는 더욱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거의 사랑의 열병을 앓아버리기 시작하는 엘프의... 과연 류는 [헤스티아 파밀리아]로 컨버전 할 것인가가 이 작품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도 싶었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