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용사는 복수의 길을 웃으며 걷는다 7 - L Books
키즈카 네로 지음, Sinsora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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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매우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 하세요.






기껏 집에 보내줬더니 왜 또 돌아오고 그러세요. 마왕을 무찔러 달라고 성녀 '메테리아(이하 성녀)'는 다른 세계(지구)에서 용사(카이토, 이하 용사)를 소환했더랬죠. 근데 이 mi친늠이 죽이라는 마왕은 안 죽이고 글쎄 사랑에 빠져서는 소꿉놀이나 하고 자빠졌으니 배알이 단단히 꼬여 버려요. 나아가서 성녀는 어디서 어떻게 호감을 안게 되었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을 정도로 용사 앓이를 해버리죠. 그러나 1회차 인생 때는 성녀라지만 별다른 권력이나 힘도 없었고, 표면적으로 마왕 무찌르러 싸돌아 다니느라 바쁜 용사에게 접근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순혈주의 왕녀 '알레시아(이하 왕녀)'가 용사를 달달 볶아대도, 망둥어(왕녀)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용사 일행이었던 아무개씨들에게 의해 1회차 용사가 비명횡사할 때도 그저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2회차 인생입니다. 성녀는 이번에야말로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용사를 현실 세계(지구)로 보냈다가 나중에 다시 소환하려 했는데요. 그런데 현실로 돌아간 주인공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 등가교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내놓아야만 하죠. 용사를 이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일 필요할까. 마력(생명), 성녀는 자기가 한 짓을 용사가 용서해줄 거라 생각한 것일까. 현실 세계에서 용사에게 남은 건 여동생 '마이'와 친구 '유토', 다른 사람은 용사를 이세계로 소환하기 위한 재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선 눈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실종 사건과 사건 때 출현한 마법진으로 인한 출구도 없는 이세계 전이 광풍이 불고 있었더랬죠. 그  한가운데에 떨어진 용사와 그의 여동생 마이, 그리고 친구 유토는 광기가 몰아치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 현실 세계에 계속 있어봐야 이세계 전이에 목숨 거는 날파리들에게 시달릴 거라는 자명한 것. 용사는 이세계에 아직 못다 이룬 복수와 남겨진 미나리스와 슈리아를 외면하지 못해 다시 이세계로 전이할 것을 선택합니다. 이번엔 여동생 마이와 친구 유토와 함께.까지가 6권의 이야기이고요. 7권은 이세계로 다시 전이해와서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복수자를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엔 직접적인 대상자는 아니고 1회차 때 마왕이자 연인인 '레티시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자 수인과 레티시아 언니(이하 언니)가 그 대상자들인데요. 참고로 여기서 설정 파괴가 있습니다. 초반(1권)때 분명 용사가 동료들과 함께 마왕(레티시아)을 무찔렀다고 그래놓곤 이번엔 레티시아의 죽음을 다르게 표현 해놨더군요.


아무튼 용사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1회차 기억이 있을 리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상자들을 찾아내고 1회차 때 기억을 심어줘서 대의명분을 얻어 고문 끝에 세상 하직하게 만들죠.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용사는 복수에 눈이 멀어 고문의 강도가 상당히 악랄하다는 것인데요. 서로 연인 사이인 대상자들에게 용사는 둘 중 하나가 희생하면 다른 한쪽을 살려준다는 감언이설을 내뱉고 대상자들은 그걸 믿어 버리죠. 서로가 희생하려는 장면 장면은 정말 용사와 입장이 바뀐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용사가 악이고, 대상자가 선) 애절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근데 여기서 문제는 대상자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이나 왕녀(알레시아)처럼 순혈주의라는 정의(정의란 사람 수만큼 있다고 생각함)에 입각해 주인공과 레티시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면 주인공(용사)에게 대의명분은 확실했을 거라는 건데요. 하지만 사자 수인과 언니는 옛부터(1회차때부터?) 조사를 통해 이세계의 진실에 다가섰고, 이세계는 곧 파멸할 거라는 걸 알아가죠. 둘은 그걸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부산물로 용사와 레티시아가 희생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었는데요. 문제는 주인공(용사)은 그런 것엔 안중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광기란 무엇인가. 이번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냉혹하고 순수하기에 잔인한 어린애 같은 용사'라 할 수 있습니다. 용사에게 있어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아닌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상대의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오로지 자신과 레티시아가 죽은 것만 억울해 하며 세상 존재하는 모든 고문을 동원하여 사자 수인과 언니를 바로 죽이지도 않고 고문을 해대는 용사와 그 일행의 만행은 사실 도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우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여기에 2회차때는 아직 살아 있는 마왕 레티시아까지 합세하죠. 레티시아도 1회차 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으니, 대상자들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고문을 이겨내며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아 가요. 


하지만 주인공 일행에게 있어서 자비란 찾을 수가 없어요. 살아 있는 상태에서 회를 뜬다는 의미. 어떻게 이런 표현이 정식 발매되는 도서에 실릴 수 있을까 하는 묘사는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옳은 일을 위해, 소위 말하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 시킨다는 것. 세계를 구하기 위해 방법이 틀렸던 것일까. 대화를 통하면 상대는 들어 줬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까. 여기서 굉장히 안타까운 건 보통 자신들이 부조리를 당하면 저주를 퍼붓거나 욕을 하거나 그러잖아요. 책임을 회피하거나, 정당성을 끈질기게 주장하거나, 그런데 이번 대상자들은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안타깝게 하죠.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기에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은 먹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맺으며, 진짜 광기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용사라 하면 절대 선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절대 악이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악랄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줘요. 죽임을 당했으니 되 갚아준다는 대의명분은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항상 다툼에서 '정도'를 따지는 걸 필자는 매우 싫어하지만 이 작품은 정도를 벗어난 게 아닐까 싶은, 용사 일행 모두가 광기에 몸을 맡겨 버리죠. 2회차 레티시아까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레티시아와 재회에 성공한 용사는 1회차 복수 따윈 버려 버리고 2회차 때는 아직 살아있는 레티시아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도 싶지만, 부창부수라고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는 말이 괜히 있지 않다는 것마냥 용사가 광기에 몸을 맡기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함세해서 광기를 보여주니 이놈들 죽을 때 제명에 못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진부한 말이 있죠. 아무리 적군이라도 죽일 때는 고통을 주지 않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기껏 새로운 인생을 얻었는데 복수는 잊고 새로 출발하라는 말은 할 수는 없어요. 이건 피해자의 울분을 헤아리지 못하는 처사라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증오는 새로운 증오를 낳을 뿐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 일행이 저지르는 복수는 새로운 증오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엿보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복수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모두 짓밟는 모습은 새로운 증오를 낳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이것은 곧 주인공은 겁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죠. 미X놈과 미친X이 만만 환상의 콜라보가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연재 중단을 해버렸죠. 일본에서 7권을 끝으로 더 이상 발매가 안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꼽사리: 7권 후반에 급진전되는 이야기가 더 있는데 이건 언젠가 8권이 나오면 언급해보겠습니다. 성녀 포함해서 이야기가 너무 급진전되어서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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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8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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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2천여 명이나 되는 후궁(後宮)을 관리하면서 여자에겐 관심조차 없었던 남자가 별안간 여자에게 관심이 생겼을 때. '진시'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천상에서 내려왔다 할 정도로 타고난 미모와 목소리 때문에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을 자빠트리려고 덤비니 인간 혐오에 빠져 살았더랬어요. 미모도 미모고 목소리도 목소리다 보니 스토커도 대량 양산하였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이 남자에게 집착을 했냐 하면 음모로 자수를 떠서 보낼 정도라 하니 말 다 했죠. 아무리 남자라도 식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특히 여자)을 멀리했건만, 어느 날 궁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면서 어떤 주근깨가 만발한 여자애를 만나. 근데 이 여자애는 다들 자신이 지나가면 다 쓰러지는데(미모에 반해서) 이 여자애는 어디 동네 개가 지나가나 하는 투로 자신을 바라보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죠.


사실 진시는 형(兄)이 난다 긴다 하는 황제이고 자신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다이아 수저랄까요.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자들이 몰려올 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걸 마다하고 있죠. 황제인 형이 중급 비 이하 후궁들(사실상 2천 명)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음에도 여자에게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으니 게이인가 싶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 사실 선제 왕(그러니까 아버지?)의 변태적인 여성 편력 때문에 여자를 기피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런 남자에게 어느 날 세상 모든 걸 버려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여자가 생겨요. 자신을 지나가는 동네 개로 바라봤던 그 여자애 '마오마오'라는 약사가 매우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거죠. 남들은 자신에게 (이성으로써) 접근하지 못해 안달인데 이 여자애는 자신에게 관심은커녕 벌레보듯 하니 이 얼마나 신선하단 말입니까. 요컨대 그는 변태랍니다.


근데 변태답게 접근법이 글러 먹습니다. 처음엔 장난감 취급하듯 꾹꾹 찌르며 괴롭혔더니 동네 개에서 털벌레로 격하 당하고 나아가 밟혀서 말라비틀어진 지렁이까지 격하 당하는 지경까지 오게 돼요. 요컨대 마오마오는 진시가 매우 귀찮을 뿐입니다. 이 여자애는 상대가 누구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양 오로지 약과 독에만 관심을 둘 뿐이죠. 그렇게 밀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나마 진시가 황제의 동생이라는 위치 때문에 마오마오가 그를 쉽사리 내치지 못 했던 게 진시에겐 행운이었다랄까요. 왕족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양아버지가 그렇게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 뒤 권력의 더러움과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마오마오로써는 그저 예예 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독을 먹였을 듯. 그렇게 실패와 오해와 엇갈림 끝에 진시는 마오마오에게 마음을 전하지만 그녀는 현실 도피.


권력이 무어더냐. 진시는 차기 황제가 될 수 있음에도 그는 억압된 삶보다 자유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마오마오를 만나고 나서 자신이 나아가야 될 길을 발견한 것이죠. 사실 그는 선제(아버지?)가 권력 욕심에 눈이 돌아간 여자(후궁)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끝에 반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것과 대신 정치를 펼쳤던 여제(선선대 황후, 할머니?)의 권위에 기가 죽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신물을 낸 것일지도 모르겠고, 왕위 계승 서열이 높다 보니 인간으로써의 삶은 없고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가는 자신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명의 인간이기 보다 권력이라는 톱니에 맞춰져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끔찍할 테죠.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서 인간이 되고 싶다는 그의 대사는 처절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변태란 벌레에서 나비로 우화하는 걸 일컫는 단어라고 했던가요.


처음엔 벌레 같은 그의 모습에 진저리 치며 도망가기 바빴던 마오마오도 조금식 인간의 틀에 맞춰져 가는 진시를 바라보며 싫지만은 않은 감정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벌레에서 나비로 우화하려는 듯 모든 걸 포기하며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봐 주기 시작하는 그를 외면할 수가 없게 되요. 급기야 진시는 형(황제)과의 독대에서 자신은 인간이 되고 싶다며 마오마오를 옆구리에 끼고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선언하고야 말죠. 이러니 마오마오도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게 돼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좋아한다면 칼을 뽑아서 무라도 썰 기개를 보여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황제의 동생이라는 위치에서 평범한 남자로, 마오마오는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물러설 수 없게끔 진시가 함정을 판 것도 있지만요.


그러나 넘어야 될 산이 하나 더 있다는 게 이 둘에게 있어서 매우 불행이 아닐 수가 없어요. 바로 마오마오의 친아버지 괴짜 군사, 마오마오의 친아버지는 우리로 치면 국방장관을 보좌하는 참모쯤 될 겁니다. 요컨대 정치적 발언권은 전혀 없는 위치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군사(軍事)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지라 황제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근데 사실 군사는 표면적인 것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성격인데다 남(타인) 괴롭히는 걸 삶의 낙으로 삼고 있어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인생 쫑난다고 해야겠죠. 그래서 다들 그의 눈치만 살피고 있어요. 그런 그(괴짜 군사)에게 아주 소중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친딸 '마오마오', 호기심에 유곽(창관)의 기녀를 임신 시켜서 태어나게 한 게 그녀인 거죠.


호기심이었을지언정 친아버지는 기녀와 딸을 책임지려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에서 그를 다른 곳으로 파견을 보냈고, 바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어요. 돌아오니 기녀는 병을 얻어서 오늘내일하고 있고, 친딸은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었죠. 또한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저주한답시고 자신(마오마오)의 손가락을 잘라버리자 어머니마저 증오하고 있었고요. 사실은 친아버지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렇게 얽힌 실타래를 풀지도 못하고 마오마오는 성인이 되어서도 친아버지를 혐오 그 자체로 대하고만 있을 뿐인게 안타깝게 합니다. 하지만 친아버지는 딸이 그러거나 말거나 딸바보가 되어 하루 종일 해바라기가 되어 딸을 찾아 댕기는통에 이게 더욱 혐오에 +가 되어 버리죠. 금남의 집인 후궁에서 일하는 딸을 보기 위해 담벼락을 부수질 않나.


자, 진시는 그런 괴짜 아빠에게서 마오마오를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괴짜 아빠는 마오마오와 친한 진시를 죽도록 싫어하는지라 귀추가 주목되죠. 마오마오는 친아빠를 죽도록 싫어하고요. 그런 친아빠(아주 무서운 사람)를 둔 마오마오가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권력의 판도가 바뀐다고 하니. 일이 아주 재미있어집니다. 정작 마오마오는 모든 게 다 귀찮고 오로지 약과 독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 겉몸이 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라는 게 매우 웃기기도 합니다. 


맺으며, 여전히 약과 독에 환장해서는 눈이 돌아가는 마오마오가 압권입니다. 황제를 앞에 두고도 약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거기에 친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찮은 일에 부르지 말라며 의붓 오빠 발을 밟아 버리지 않나. 의붓 오빠의 입을 주둥이라고 하질 않나. 모처럼 마오마오에게서 선물이 왔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친아빠가 보낸 책을 진저리(혐오) 치며 자신에게 보냈을 거라며 풀이 죽는 진시등, 여전히 사람 웃음 짓게 하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까요. 마오마오의 마음을 얻는데 조바심이 난 진시가 그녀의 친아빠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대목도 눈여겨볼만하죠. 아무튼 진시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왕족으로써의 길도 포기하면서, 그런 진시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오마오. 정말 다음권이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군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을 다 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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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 약사의 이세계 여행 4 - S Novel
아카유키 토나 지음, 우에다 유메히토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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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 세상 어디에도 내가 있을 곳 따위 없다고 해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가리라. 하프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세상에서 낳아준 부모를 원망해볼만 하겠건만, 그래도 얼굴 정도는 보고 싶었어요. 가는 곳마다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여행길에 오른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토록 찾고 싶었던 부모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게 된 현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견디며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세상에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땅이 있을까. 안주할 땅이 있을까. 하프 엘프 세리에, <- 사실 절반 정도만 맞고, 위의 표현은 작중엔 없습니다. 아니 생각이 안 난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발매 텀이 워낙 길어서 앞의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나요. 그저 작가가 이렇게 표현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필자의 망상에 가깝다고 할까요.


자, 심연의 숲에 도착해서 고블린들과 폭싱(아마 여우인 듯)들에게 받아들여진 주인공 유지로와 히로인 세리에 그리고 마왕 마카벨은 여기서 살기로 작정합니다. 정들면 고향이라고 했던가요. 인간들에게 그토록 괴롭힘을 당했던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에게 배척받는 마물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유지로는 다친 마물들을 고쳐주고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전수해주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돼요. 첫눈에 반해 어디든 쫓아갔던 세리에와의 진도는 순항 중이고,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이곳까지 흘러든 마왕 마카벨(참고로 10살 소녀)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평온한 나날(오다야카나 히비)이라는 단어를 간혹 접하곤 하는데요. 이들에게도 그런 나날이 흘러갑니다.


인간의 군대가 쳐들어오기 전까진 말이죠. 유지로 일행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서 쳐들어온 건 아닌데 운이 없었다고 할까요. 인간의 군대나 유지로에게 있어서나, 그저 인간들은 자원을 얻기 위해 심연의 숲을 개간하려고 했을 뿐인데 왜 하필 여기에 유지로 일행이 있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지로와 세리에 그리고 마왕은 인간 불신을 넘어 증오를 안고 있거든요. 이 3명이 뭉쳐 있는 곳에 지금 거기 빼앗으러 갑니다라고 하면 이들이 잘도 어서 오세요 하겠습니다. 이것들이 끝끝내 여기마저 빼앗으려는 거냐라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겠죠. 게다가 마왕 마카벨을 뒤쫓아온 용사 일행까지 쳐들어와서 마왕을 내놓으라고 윽박 지르니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미쳤구나 했을 겁니다. 마왕이라 지칭되는 마카벨은 고작 10살짜리 소녀라고요? 


약자의 반란이 시작된다.


마카벨이 인간들을 해한 것도 아니고, 10살짜리 여자애가 괴롭힘당한 끝에 도망치고 쳐서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심연의 숲까지 왔건만, 그저 마왕이라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을 뿐인데, 마왕 퇴치라는 업적이 필요했던 어떤 왕의 이기심 때문에 왜 10살짜리 소녀가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가. 유지로는 화냅니다. 우린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2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심연의 숲으로 쳐들어온 인간의 군대와 마왕을 퇴치하는데 특화된 용사 일행을 맞이하여 그와 세리에는 무모한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또한 유지로와 세리에 그리고 마왕을 받아들여준 고블린과 폭싱들도 자신들을 토벌하고 숲을 개간하려는 인간의 군대를 맞이하여 그저 부조리한 상황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겠다는 것마냥 밟힌 지렁이가 되어 꿈틀 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 싹튼다.


세리에는 그동안 마음 한켠에 답답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유지로를 보면 가슴이 뛰는 듯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였었죠. 이 감정이 무얼까. 세상 모든 인간들이 그녀를 차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반면에 그(유지로)는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봐 주며 일편단심 좋아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었습니다. 아플 때나, 배고플 때나 언제나 도움을 받았고, 어머니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더랬죠. 그 어머니가 없는 지금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며 여전히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같이 걸어가 주는 그에게 드디어 좋아한다는 감정을 깨달아 갑니다. 한번 무너진 둑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마냥 그에게 다가가려 무진장 애쓰지만 인간의 군대를 맞아 그럴 경황이 없는 게 안타깝게 합니다.


맺으며, 뭐랄까. 작가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도망쳐온 곳에서 다시 인간들의 침략을 받아 물리친다는 이야기 자체는 뻔한 전개이긴 한데, 이걸 어떻게 풀어가며 흥미를 유발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이야기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 유지로가 마물 군세와 힘을 합쳤다고 해도 수백에 지나지 않는 병력으로 2만이라는 인간의 군세를 맞이해서 찌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요행이 아니라 작가의 능력 부족이라고 해야겠죠. 당나라 군대라도 이렇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 유지로가 마카벨(마왕)의 힘을 빌렸다곤 해도요. 용사라는 놈들도 5명이나 파티 맺어서 쳐들어 와서는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고놈(유지로등등)참 강하네 이러고 있으니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죠.


포션빨의 카오루처럼 포션으로 못하는 게 없다면 사는데 있어서 편하겠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능력 상승 약 등 자기 좋을 대로 갖다 붙인 이름의 포션을 먹고 인간의 군대를 유린하긴 해요. 하지만 포션빨의 카오루는 허세로 흥미진진하게라도 해줬지 이 작품의 유지로는 그런 립 서비스가 없어서 간이 싱겁다고 할까요. 스포일러라 언급은 못합니다만. 분명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무슨 마실 가듯 가서 그만 놀고 집에 가자는 투다 보니 반찬의 간은 싱겁고 국은 밋밋하다고 할까요. 예로 세리에의 위기 때라든지. 주인공이 무슨 극대 광역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인간의 군대는 수천이 죽어 나가고,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허무맹랑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후... 리뷰는 포장을 좀 해서 쓰긴 했습니다만. 1권은 별로였고, 2~3권은 읽을만했던 거 같은데, 4권이 또 별로가 되어 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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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5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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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어요. A라 지칭해보죠. 이 A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학원물에서 흔히 나오는 이지메 당하는 학생을 보다 못해 나서서 구해주는 같은 히어로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자, 이걸 다르게 해석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인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힘(혹은 능력)은 개똥도 없으면서 조난자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같이 조난 당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필자 주관적). 순화해서 언급해보자면 흔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발암이라고 하죠. <- 동일인물 A가 있어요. 가지 말라고, 현실을 직시 시켜줘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A는 무작정 나섭니다. 이것은 용기일까 만용일까. 여기서 웃긴 건 자기(A) 힘으로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이중 조난 당할까 봐 옆에서 말리던 사람들이 힘을 보태줘서 조난자를 구하게 되는 경우인데요.


여기서 A의 능력으로 조난자를 구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A의 용기를 찬양하죠. 이게 정녕 올바른 사회관일까? 힘을 빌려달라며 모두를 설득해서 조난자를 구한 거라면 당연히 A의 용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자, 학원물에서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을 구해준 A는, A의 용기에 의해 이지메 당하던 학생이 구해진 걸까? 필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 불량아들은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서 떠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 예로 동인지 등을 보면 참담함으로 이어지는 걸 종종 볼 수가 있죠. 이제 이걸 이 작품에 대입시켜 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슈야 뉴케른'이고, 시점은 주인공 '데닝'이죠. 이번 5권은 여성 히로인들에 이어 처음으로 주인공 이외의 남자 등장인물 '슈야'가 메인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그러니까 이번 발암은 '슈야'라는 소리랄까요. 아무튼 데닝은 초일류 마법사이지만 전면에 나서서 사건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아요(대부분 뒤에서 해결). 하지만 그냥 그저 그런 마법사인 슈야는 그냥 덮어놓고 나섭니다. 자, 여기서 감이 왔을걸요.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힘은 개뿔도 없으면서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슈야와 이걸 또 용기랍시고 포장을 해대는 데닝 포함 주변 인물들. 이번 5권은 앞서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마냥 항암제로는 도저히 치료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어요(필자 주관적). 슈야는 괜스레 데닝을 라이벌로 인식하고 그의 업적(무려 드래곤 슬레이어)에 조바심을 내며 나도 강해지겠다고 다짐합니다. 사실은 어릴 적부터 그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겠다는 둥 강해지려는 동기가 조금 불순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에겐 힘이 없어요. 능력도 없고요. 이상만 높을 뿐이죠. 그래도 뭐, 억척같이 노력해서 성장하는 거라면 칭찬받아 마땅할 겁니다. 하지만 그(슈야)는 자신 스스로 강해지기보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슈야)과 함께하고 있는 '엘드레드'라는 불의 대정령의 힘을 이용해 모험가 생활을 이어가죠. 여기서 또 갈리는 게 불의 대정령이 슈야의 용기에 감명해 힘을 빌려주는 거라면 어느 정도 슈야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명 개연성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불의 대정령은 슈야가 어찌 되든 상관없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슈야는 자심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죠. 이걸 모두 알고 있는 데닝은 슈야에게 엘드레드(불의 대정령)를 버리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슈야는 라이벌인 데닝의 말을 들을 리가 없어요. 이미 이쯤 오면 슈야는 정신이 딴 데 가 있거든요.


미궁 도시 '제네라우스'가 몬스터 대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데닝은 이 침공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슈야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똑똑히 알고 있고요. 그래서 미궁 도시 방어전과 슈야를 구하기 위해 데닝도 미궁 도시로 오죠. 슈야는 침공 받는 도시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힘은 개뿔도 없으면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이 도시는 나를 필요로 한다며 착각하고, 강해지려 찾아와서, 강한 파티에 가입도 하는데, 웃긴 게 강한 파티를 이끌 정도면 눈썰미 정도는 있을 텐데 자신들이 끌어들인 놈의 미숙한 점도 눈치 못 챈 건지 그냥 재미로 끌어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슈야를 부추기기만 하니 그가 기고만장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을 테죠. 그래서 그 대가(슈야를 부추긴)는 죽음으로 갚아라라는 복선은 초장에 나왔고 결국 회수되고 마니 희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데닝은 슈야를 말리려 했죠. 하지만 스포일러(1)는 할 수가 없는지라 대놓고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통에 오히려 슈야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슈야는 적선 받는다고 마음 상했는지 몬스터 대군 속으로 욱 나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망각하고, 자신 때문에 눈물짓는 여자(알레시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주변보다 오로지 앞만 보고, 강해지겠다며 노력이라기보다 방종을 해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힘이 없더라도 주변을 이끄는 카리스마까지는 아니어도 그의 행동으로 인해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진정한 영웅물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독선이라고 하죠? 주변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도래하는지 안중에도 없는, 결국 늪에 조난자 구하러 갔다가 같이 빠져요.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으로 움직인 결과는 비참할 따름입니다.


결국은 데닝이 우려하던 대로 흘러가버립니다. 이번 이야기에는 시사하는 게 세 개가 있어요. 상대편이 뭔가를 호소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라. 그리고 용기와 만용을 헷갈려 하지 말자. 마지막 하나는 만용을 용기라 포장하지 마라. 앞뒤, 똥오줌도 못 가리면서 나대면 고통받는 건 주변 사람이다. 4개네. 울부짖는 슈야의 일러스트는 왜 이리 꼴불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 죽고 나서야 자신의 미숙함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랄까요. 하지만 버스 떠난 뒤에 손들어봐야 노빠구입니다. 이런 놈을 미래에는 구국의 구세주라고 칭하니 얼척이 없어요. 그리고 더 얼척이 없는 일도 일어나요. 작가가 줏대가 없는 게 악으로 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가던가 알고 보면 착한 놈은 또 뭔지 사람을 무진장 죽인 적 우두머리 정체는 사실... 보고 있자니 뭐 어쩌라는 심정.


맺으며, 이 작품도 하차합니다. 필자 주관적이지만, 온통 발암 천지입니다. 이렇게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그리는 것도 참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죠. 데닝은 이런 발암 종자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살이 쪽 빠져서 더 이상 돼지가 아니게 되어버렸군요. 역설적이게도 살이 빠지니 훈남(이 작품 기준)이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놈의 '나는 알고 있다'라고 자꾸 스포일러를 해대는 것도 꼴불견이고 알고 있으면 빠릿하게 해결을 하던가 속으로 지껄인다고 상대가 알아주나? 상대가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데닝이 속으로 지껄이는 걸 어찌 알고 수궁해준단 말인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발암입니다. 그나마 고급 발암이라면 참고 보겠는데 이건 뭐...


  1. 1,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속이라는 설정입니다.
    데닝은 애니메이션을 현실에서 다 봤기에 앞 일을 다 알 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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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22 - J Novel
카와하라 레키 지음, abec 그림, 박용국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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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이야기는 BD와 DVD에 첨부되었던 특전 부록을 서적화한 것입니다. 요컨대 외전이라는 소리죠. 총 4화로 구성되어 있고요. 데스게임 SAO 시절 키리토와 아스나가 결혼 직전에 있었던 로그 하우스 관련과, 아스나가 변태에게서 구출된 직후의 ALO 시절, ALO에서 숨겨진 퀘스트 '무지개 다리'를 모두와 진행하던 나날, 그리고 본편 통틀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마더스 로자리오'에 등장했던 유우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특징은 본편에서 못다 한 이야기랄지 보충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순서대로 언급해보자면 우선 키리토의 경우 그는 어릴 적 부모와 사별하고 이모 댁에 얹어 살면서 정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살았더랬죠. 이모는 나름대로 키리토를 잘 키웠던 모양이지만 친부모에 대해 숨긴거라든지에서 본인은 사랑(혹은 사람의 정)이라는 감정에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자신은 타인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요컨대 모작품의 누구처럼 마음에 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까요. 이 감정의 발로가 SAO가 데스 게임이 되었을 때 혼자 다른 마을로 가게 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또한 아스나를 만나 깊은 관계가 되지 않은 채, 늘 그녀(아스나)는 보다 높은 곳에 올라 사람들을 이끌어야 된다며 자신의 감정에 아스나가 들어오지 못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줄곧 보여 왔더랬습니다. 여담이지만 외전인 프로그레시브에서는 보다 친밀한 관계로 발전은 합니다만. 외전은 외전이니. 그러던 것이 데스게임이 되고 1년하고도 반이 지났을 무렵에 또다시 아스나를 만나 어쩌고 저쩌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아스나에게 프러포즈를, 숲속에서 발견한 로그 하우스 앞에서 하려고 했는데 그 로그 하우스가 어디로 간겨같은 상황이 벌어지죠.


상대를 믿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집이 있었는데 없어요.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미심쩍어 하는 게 보통이죠. 숲속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꾸밀 아담한 집이라는,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날 놀리나 싶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아스나의 반응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고, 전적으로 그의 말을 믿는 모습에서 배려란 무엇인가를 보여줘요.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주 보는 거라 하죠. 마주 보고 진실된 마음을 전하는 것. 집이 없어진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밝은 햇살이 내리비치는 로그 하우스 앞에서 그녀와 마주 보며 그토록 찾고 싶었던 것을 그녀를 통해 얻게 됩니다. 마음을, 이렇게 하나의 감정은 정립이 되었으나 여전히 또 하나 해결해야 될 감정이 남아 있는데요.


키리토가 아스나와 해어지고 27층에서 만난 검은고양이단과 그 단에 소속된 사치라는 여성 플레이어. 사치는 어쩌면 키리토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정에 굶주리고 사랑에 의구심을 품고 살았던 그가 사치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렸던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 테죠. 그래서 레벨을 속이고 같이 다녔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런 키리토에게 천벌을 내리듯 검은고양이단과 사치는 얼마 뒤, 그 사건은 키리토의 마음에 삶과 죽음이라는 각인을 새겨주고 더욱 마음을 닫아 버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결국 검은 고양이단과 '사치'의 죽음은 그를 솔로 플레이어로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버렸죠. 키리토가 타인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어쩌면 사치의 죽음이 원인이었을 테죠.


데스 게임에서 벗어나 ALO에서 살아가던 키리토와 아스나, 어느 날 아스나에게 이상 현상이 일어나요. 유체이탈 같은 정신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듯한 현상을 겪죠. 프로그램상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이 현상을 추적하면서 그 끝에 사치가 있다는 걸 알아가요. 키리토가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사치의 죽음, 응어리 맺힌 한을 풀길 없이 살아왔던 세월,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죠. 삶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면서 본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욕먹고 있는 키리토 입장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가슴 먹먹하게도 합니다. 어쩌면 사치는 키리토의 마음에 아스나보다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할까요.


세 번째 에피소드는 무난하게 흘러가니 패스하고 네 번째 에피소드는 마더스 로자리오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비기닝 같은 이야기입니다. 미리 언급하자면 마더스 로자리오를 읽기 전에 이 외전을 먼저 읽는 걸 추천한다고 할까요. 그러면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 아직은 유우키의 언니 '란'이 살아 있고, 슬리핑 나이츠의 리더 '메리다'가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에이즈가 발병하기 전에 학교를 다니던 유우키가 소문으로 인해 절망을 안게 되고 그로 인해 병이 발명함으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어 버리는 안타까운 이야기. 하지만 그에 지지 않고 모두가 나를 멀리해도 언니와 함께 가상 세계에서 힘껏 살아가는 걸 선택한 유우키의 용기가 구구절절하게 흐릅니다.


본편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유우키는 아스나에게 용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 인물이라 할 수 있죠. 인생에 방향점을 제시해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런 유우키도 사실 마음의 벽을 쌓고 타인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활 속에서 어느 날 매사 적극적이고 활달한 메리다를 만나 타인과 부딪혀서 마음을 여는 게 무엇인지 자신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 장면 장면들은 마음을 울리게 합니다. 또한 똑똑하고 야무지게 행동하는 언니에게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자 마음을 터놓고 있는 언니와 함께, 언니와 함께라면라는 부분은 본편(마더스 로자리오) 시점에서 본다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하죠. 


본편에서 언니는 이미... 촛불은 마지막으로 타오를 때 가장 빛을 낸다고 하죠. 유우키가 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언니와 메리다를 먼저 보냈으면서도 본편에서 활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얼까. 본편 유우키의 마지막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웃으면서 갈 수 있다고, 이 외전은 그 편린을 보여줍니다. 단란했던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도 같은 병으로 먼저 보내고, 언니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길잡이를 해줬던 메리다까지.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 나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맺으며, 조금은 마음이 먹먹해지는 에피소드였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22권으로 하차를 결정했군요. 이유로는 번역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쉼표 남발로 맥을 끊기 일쑤였고, 엔터를 처서 줄 바꾸기가 싫었는지 상황이라던가 대사를 이어 붙이다 보니 문맥이 요상하게 되어 버렸더군요. 요컨대 '어쩌고 저쩌고 되었고, 어쩌고 저쩌고 되었고,' 같은 문맥이 더러 보인다고 할까요. 보통은 어쩌고 저쩌고 되었다. 하고 나서 다시 어쩌고 저쩌고 되었다 같이 이야기를 붙이던지 엔터를 처서 다음 줄에 쓰든지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고소당할 각오로 써보자면 2류 소설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예전 한창 인터넷 아마추어 소설이 도서로 나왔을 때를 보는 듯한. 대체 왜 역자를 바꿨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래서 역자 바꿀 때 신중해야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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