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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14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박정원 옮김, 퐁칸 ⑧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돌부리에 넘어지고 강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는 러브 코미디, 임금 0(제로)에 도전하는 노가다, 무엇이든 들어 드립니다. 심부름 센터(봉사부), 서러운 1년 비정규직, 사장님(히라츠카 선생)이 야반도주를 하였기에 심부름 센터(봉사부)는 폐업 합니다.
14권 요약: 홀로 떠나는 여행길,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꿈을 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아무도 없는데도,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데도, 그럼에도 연어는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상류에 도착한다면 나는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서. 분명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연어는 길고 긴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났을 때...
14권 줄거리: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걸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서는 유키노는 프롬(학교 축제, 발상지는 미국인 듯)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것은 나의 의지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끝낼 때도 나의 의지로 끝을 낸다. 이 축제를 무사히 끝낸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 분명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을 테지. 그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모른 채.
표지 설명: '또 봐~' 표지가 대놓고 스포질 한다.
14권 집중 포인트: '그녀의 소원을 들어 줘'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읽기 곤란한 분들은 위쪽 부분만 읽으셔도 됩니다. 밑에 내용을 압축해놓은 거라 보시면 돼요.
본 리뷰는 이 글을 읽는 분들과 의견과 생각과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받겠지만 태클은 사양합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사자다. 자기 새끼를 낭떠러지에 떨어트려 올라오는 새끼만 기른다. 고생했다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말로 새끼를 감싸지 않는다. 살아 돌아온 새끼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동물의 새끼는 부모로부터 사냥법을 배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걸까. 유키노는 부모로부터 배우질 못했다. 그저 엄마는 할 수 있을 테니까 해보라고 한다.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서 오기를 부려본다.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못한다는 걸 들키는 게 무엇보다 두렵다. 그래서 도도한 척, 아무도 곁에 오지 못하게 한다. 언니는 방관자다.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언니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사람이다. 언니는 나와 무엇이 다른 걸까. 언니가 걸었던 길을 밟으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는 있다. 저걸 보고 따라간다면 분명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겠지. 하지만 길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야 어디로 가야 할지 배우질 못했으니 길이 보일 리가 없다. '히키가야 하치만'은 호롱 불을 들고 그녀를 지나 걸어간다. 그녀(유키노)의 눈이 호롱 불을 들고 가는 하치만을 비춘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어느덧 유키노는 하치만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하치만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 정말?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에게 있어서 그는 구세주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테지. 그렇게 그녀는 흘러가면 흘러가는 데로 강물에 몸을 맡기는 나뭇잎이 되기로 했다.
유키노가 프롬을 개최하는 것에 못마땅해 했던 학부모회는 불건전하다며 딴지를 걸어온다. 유키노의 엄마는 학부모 대표가 되어 학교에 쳐들어와 그만두라고 한다. 보통 자기 자식이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긴 하다. 그런데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며 아이들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린다. 참견과 관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를 알려주는 것보다 민망하고 남사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못하게 한다. 당연히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유키노는 엄마의 말이라면 거부하지 못한다. 그렇게 커왔으니까. 그녀(유키노)의 의존증은 다름 아닌 부모에 의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자식이 뭘 하든 참견을 하고, 반론은 철저하게 막아버리는 화법을 쓴다. 엄마와 딸 사이엔 토론이란 무의미하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프롬을 무사히 마친다면, 나는 더 이상 하치만의 등을 보고 걷지 않아도 된다. 엄마에게 난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어필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각은 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걸. 의존증을 끊지 않으면 글러먹은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걸. 그래서 그에게 이만 끝내자고, 지난 1년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가 왔다. 빠르든 늦든 언젠가 파탄이 온다면 지금 끝내는 게 좋겠지. 여기서 주저한다면 난 또다시 의존하고 말 테니까. 상냥한 이들에게, 그래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 줘'라고 승부 조건을 걸은 것이리라. 프롬은 무사히 마칠 것이다. 무대 뒤 프롬을 도와주러 온 하치만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본다. 거리는 가깝다. 하지만 그 간격엔 건너지 못하는 낭떠러지가 존재한다.
유이가하마는 이대로가 좋다. 부실에 가면 언제나 그녀(유키노)와 그(하치만)이 있다. 같이 수다를 떨고 의뢰가 들어오면 힘을 합쳐 해결하고, 하굣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이들(둘)이 있어서 좋다. 그녀는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문득 그녀에게 있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유키노와 하치만을 만나 그녀는 매일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유이에게 있어서 친구란 무엇인가. 미우라와 에비나가 사교용이라면 유키노와 하치만은? 어느덧 유이에게도 지난 1년간은 어떤 것보다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그래서 잃는 게 무엇보다 두렵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하치만을 두고 유키노와 대립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하치만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가 나에게 의존하면서부터일까?
알고 있었다. 그녀(유키노)도 하치만을 좋아한다는걸, 그녀(유키노)의 집에서 그와 그녀가 다정히 같이 찍은 사진을 봤을 때보다 이전부터. 그래서 미련은 두지 않으려고 했다. 홀로서기를 하며 혼자 걸어가려는 그녀(유키노)는 나의 친구다.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해보자고 하치만에게 말을 건네본다. 이 대화가 어떤 아픔을 몰고 올지, 하지만 견딜 수 있으리라. 왜냐면,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다시 부실에서 그들과 수다를 떨며 지난 1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코마치 생일 케익 만들기를 빙자해 그를 집으로 끌어들여 이거저거 만들어 가는 그녀(유이)의 모습은 어쩐지 처절하게만 느껴진다. 프롬이 끝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찌그러진 캔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치만은 이대로 끝나는 걸 원한다. 누구에게 휘둘리는 것도, 누군가를 의존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그럴까 유키노가 홀로서기에 나섰을 때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녀가 프롬을 성공 시킨다면 그녀의 병(의존증)은 고쳐질 테니 자신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도 그녀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른 채. 하루노(유키노 언니)는 그런 하치만을 불쌍히 쳐다본다. 그리고 진실을 하나 알려준다. 그녀(유키노)가 프롬을 성공 시켜도 병은 고쳐지지 않는다는걸. 연어는 상류로 올라가지 못한다. 왜냐면, 여기가 상류라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상류라 믿고 웃으려 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 손을 흔드는 유키노를 바라보며 하치만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녀와 나 사이에 펼쳐진 낭떠러지를 건너 그녀에게 다을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녀(유키노)는 여전히 도도한 척 앞을 보며 걸어가려 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앞 길에 호롱 불을 들어 비추어주는 이도 없는 길을,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고서, 그제서야 하치만은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가 다다르고자 했던 상류는 여기가 아님을. 그래서 상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유도를 해줘야만 한다. 혼자 가지 못한다면 내가 같이 가주면 되지 않을까. 웅덩이 속에 움츠려 있는 그녀를 깨워 상류는 여기가 아님을 알려주고 따라오라고, 나랑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어 본다. 연어는 꿈에서 깨어나 앞장서서 가는 다른 연어를 따라간다. 연어는 무사히 상류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거기에 도착한다면 진정한 웃음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맺으며, 대망의 완결입니다. 장장 8년에 걸쳐 이 작품을 읽어온 필자로서는 후련하기 그지없군요. 엔딩도 이에 못지않은 후련함을 선사합니다. 사실 이미 12~3권에서 이런 엔딩은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군요. 단지 등을 누가 떠밀어 주느냐만 남았었죠. 이번 14권 후반은 분위기가 갑자기 많이 바뀌어 적응이 힘들었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사실 13권(혹은 이전)에서 유키노와 하치만의 관계를 보자면 오히려 이번 14권 후반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흘러갈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리고 유키노의 성격이 180도 바뀌는데, 이건 바뀌었다기보다 껍질을 벗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전 13권 리뷰에서 유키노를 '말하지 않는 아픔'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성격이 변하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 테죠.
그건 그렇고, 그동안 이 작품에 관심을 뒀던 분들은 궁금해하시는 게 하나 있을 텐데요. 그래서 누가 누구와 맺어지는가, 이게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라 할 수 있죠. 입이 근질근질하긴 합니다만. 이걸 알아버리면 14권 읽을 의미가 없어지는지라 애써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군가와 맺어진다는 것이고, 몰래 사귀는 것이 아닌 소문이 다 날 정도로 작중 공인이 되어 버린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은 분위기가 그냥 달달해서 돌아가실 정도가 되어 버리죠. 그냥 귀여워 죽습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그렇게 고민을 하고 폼을 잡고 그랬는지... 문제는 사람이 세명이라는 것, 둘이 맺어지면 하나는 필연적으로 남게 된다는 것. 이것이 또 가슴을 후벼파죠. 사실 관계도를 따지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답이 나오기도 하고요.
- 1, 아, 참고로 유키노의 엄마는 딸이 싫어서 학대하는게 아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킨다고 보면 됩니다. 길은 알려주지 않고 알아차리길 바라는 타입이죠. 딸이 어떤 길을 선택하면 정말로 그걸로 괜찮겠니?하며 걱정과 질책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