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환상의 그림갈 15 - 강하고 덧없는 뉴 게임,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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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 강한 스포일러 주의







하루히로등 여러 아이들이 그림갈에 떨어진지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느 이세계물과 다르게 이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가혹했던 세계. 기억을 잃은 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가기엔 그림갈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끼리끼리 모여 어떻게든 발버둥을 처봤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블린 한 마리를 대여섯 명이 모여 때려잡아도 힘에 부쳐 실패하는 날이 많았다.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매일 저녁에 하나뿐인 속옷을 빨아 널어 놓고 지푸라기 침대에 몸을 맡겨 잠들기를,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그땐 기약조차 하질 못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동료 하나둘씩 잃어가고, 슬픔을 채 털어내기도 전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레슬리 캠프를 통해 '파라노'로 들어가게 된 '하루히로' 일행은 많은 고초를 격은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이제 꿈에도 그리던 오르타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딜 던져 놓아도 정들면 고향이고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거길 그리워하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는 이들의 고향은 따로 있건만 기억에는 없다. 그렇게 알에서 깨어난 생물이 처음 본 생물을 어미로 기억하듯 오르타나를 그리워하며 파라노를 탈출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어떻게든 발버둥 처봐야 시궁창뿐이라는 현실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그림갈로 던져질 때마다 기억이 소실되는 이유는 뭘까. 이번 15권에서 그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하루히로 일행은 파라노에서 다시 그림갈로 넘어왔다. 처음 보는 탑, 그러나 낯설지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소실되었다?꿈에도 그리던 도시, 헤어진 유메와 다시 만나기로 했던 도시,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줬던 도시,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이 있는 도시. 그런 기억이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루히로 일행에게 던져진다. 그림갈에 던져지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축했던 싸움의 기술과 지식은 한순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토록 처절했던 삶은 대체 무엇이었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메리' 만큼은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거나 오르타나로 돌아왔고, 돌아왔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메리의 기억에 의존하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유메와 란타는 외전에서 이미 오르타나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기억이 날아가 버린 하루히로 머리엔 이들은 없다. 눈물 나는 상봉을 기대했건만 약간은 쓸쓸한. 그리고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건 오르타라의  현재 상황이다. 이세계엔 '제왕 연합'이라는 게 있다. 불사족 노 라이프 킹을 주축으로 한 마물 군세다. 언데드, 오크, 고블린등 온갖 마물이 군세를 이뤄 인간을 공격한다. 그래서 아라바키아 왕국은 저 멀리 남쪽으로 터를 옮기게 되었고, 인간은 원래의 땅을 되찾기 위해 오르타나를 세웠다. 더불어 데드 캠프, 적야의 기지, 리버사이드 요새도 오르타나와 더불어 인간들이 제왕 연합에 맞서기 위해 세운 요새다. 


즉, 오르타나는 전초기지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포격을 맞고 갈려나가는 포지션이다. 다른 요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간은 약하다는 것이다. 덧없이 약하다. 고블린 한 마리 잡는데 대여섯이 붙어도 못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크는 사신이다. 몇 년 전 데드 캠프를 탈환하기 위해 많은 의용병(하루히로 같은 애들)을 갈아 넣어 간신히 되찾은 데드 캠프는 다시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작야의 기지는 황무지로, 리버사이드는 코볼트에게, 그리고 오르타나는 고블린에게 점령 당하고 만다. 의용병 및 주둔군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끝끝내 점령 당하고 만다. 그렇담 그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히로 일행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또다시 떠도는 신세가 된다. 기억을 잃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 온곳이 마물로 가득하다. 편히 지낼만한 곳은 없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또 고생을 강요 당한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루히로는 이들을 이끌고 또다시 여정에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이다. 고블린의 추적과 불사자들의 습격, 먹을 것은 변변찮고 구출될 거라는 기약은 없다. 그럼에도 살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이들 앞에 드디어 아라바키아에서 파견한 원군이 도착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적의 수중에 떨어진 오르타나 탈환을 그리고 있다. 기억이 없어도 몸에 밴 습관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는 찌끄레기들이 고기 방패가 되어 또다시 사지로 내몰리는 불합리를 그리고 있다. 오르타나는 궤멸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루히로는 척후병으로서 오르타나로 보내진다. 사람들은 없다. 도망간 게 아니라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어딘가 몽환적이고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있을 거 같았던 분위기는 단숨에 한치 앞도 모르는 사선을 그리게 된다. 고블린은 약하지 않다. 모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블린들처럼 이 작품에 나오는 고블린들도 약하지 않다.


하루히로 일행에게는 오르타나 탈환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치고 졸도할 일이지만 힘이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을 리 없다. 과연 하루히로는 기억을 잃은 채 오르타나를 탈환할 수 있을까. 비록 고블린이라고는 하나 수천의 군세가 운집해 있다. 오르타나 주둔군은 이들에게 궤멸되어 버렸다. 즉, 훈련을 받은 군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하루히로 일행이 해내야만 한다. 아라바키아에서 파견된 원군은 오합지졸이다. 한마디로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르타나로 잠입한 하루히로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강해질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동료를 잃을 때마다 하루히로는 강해져 왔다. 하루히로라는 그가 가진 근본적이고 본질을 깨우쳐준 '스승'의 만남은 어둠 속에서 광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슬픈 이별을 예고하는 거라는 복선이었다는 것을 하루히로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이뤄지지 않는다. 스승은 오르타나가 점령되었어도 도망가지 않았다. 4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해후. 이것은 슬픈 결말을 향해가는 전주곡이다. 그래서 스승은 졸업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었나 보다. 정작 그 제자는 스승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짧은 만남이 있은 후 오르타나 탈환 계획 시기가 확정된다. 스승은 척후로서 다시 오르타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루히로가 스승을 다시 만났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참 먹먹하게 만든다.


14권에서 등장했던 '히요코(혹은 히요무)'라는 소녀의 탈을 쓴 아줌마의 복선이 어느 정도 풀린다. 이제 와 생각났는데 1권에서 하루히로등 그림갈로 넘어온 아이들을 인도했던 여자가 히요코였나 보다. 그 히요코가 파라노에서 그림갈로 넘어올 때 하루히로 일행과 같이 온다. 이로서 현실에서 그림갈로 넘어오는 구조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그림갈로 던져진 아이들이 기억을 잃게 되는 원인도 대충 밝혀진다. 파라노는 사람의 기억을 풍화 시킨다. 그리고 그 기억을 없애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밝혀진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하루히로 일행에겐 힘이 없으니까 그저 던져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맺으며: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거라는 영화 명언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이세계는 강한자부터 갈려 나간다. 일부는 그걸 극복하고 잘 나가고 있지만 자주 언급이 되지 않으니 일단 논외로 치고. 아무튼 이번 이야기도 어쨌거나 알게 모르게 강해졌지만, 강한 것은 이 작품과 맞지 않다는 듯 애들 기억을 또다시 말소 시켜 버린다. 하지만 기억을 잃음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하루히로는 잡생각을 많이 줄었다. 그럼으로써 강해진다는, 굼벵이가 구르고 굴러 결국 나비가 되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히로인들이 하루히로에게 기대는 빈도가 높아졌다. 마치 어미새를 기다리는 새끼 새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는 듯 하루히로를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섬뜩하다고 해야 할지. 계속해서 이야기는 16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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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3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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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취향으로 인해 이세계의 주민은 미남, 미녀만이 존재한다. 주인공 '마코토'는 이세계 여신 기준으로 추남이다. 부모가 미남, 미녀다 보니 여신은 선입견을 가진 게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마코토의 부모와 한 약속으로 자식 중 하나를 넘겨받았는데 첫 대면에서 하필이면 추남일게 뭐냐는 반응을 보인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지만 알게 무냐는 식이다. 여신은 그를 꼴 보기 싫다며 이세계 끄트머리에 던져 버린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외모와 마음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세계 전이물의 공통점인 이세계 언어(이 작품에서는 공통어)를 주인공은 받지 못한다. 그로 인해 세계 끄트머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길을 물어볼 수가 없었고, 이세계 기준으로 추남인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오크급으로 차별을 받아 간신히 찾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 떨어진다면, 이런 주제로 이 작품은 초반부터 굉장히 난이도 높은 세계관을 주인공에게 들이민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어종 중 하나, 가시가 많아 먹기 힘들지만 맛은 있다)라고 마물과 아인(수인?)과의 소통은 가능하다. 이 말은 결국 주인공은 인간에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거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여신에게서 변변찮은 치트 하나 못 받은 그에겐 마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 이 마력 덕분에 신(神)급으로 추앙받는 드래곤(토모에)과 걸어 다니는 재앙으로 신화급 취급을 받는 검은 거미(미오, 글자 그대로 거미다.)를 종자로 들이게 되면서 개똥밖에 없는 세계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된다.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여신에게 팔려가 이세계 끄트머리에 떨어진 주인공, 이 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는 보겠다고 추남을 거부하면 가면을 써서 정체를 숨기고, 말이 안 통하면 마력으로 공중에 글자를 쓰면 되지 같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금은 어느 도시에 정착했다. 중간에 위기에 빠진 '토아'라는 모험가 파티를 구해줘서 친구로 들이고,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해 지금은 도시 귀퉁이에 상점 터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이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시에서 제일 가는 유력 상인을 도와 뒷배로 뒀고, 토모에의 능력 중 하나인 아공(이공간)을 개선해 살 곳을 마련했다.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 씨앗이 말라죽지 않고 싹을 틔워 언젠가 오아시스를 만들듯 주인공이 뿌린 씨앗은 이렇게 조금식 발아하여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미남, 미녀만이 있는 이세계에서 추남인 주인공으로서는 언제나 이물질이다. 공중에 대사를 띄워 소통은 한다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 지나가는 거지도 미남, 미녀인 세계에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는 조급증은 마음에 틈을 만들어간다. 도시에서 부쩍 두각을 나타내는 그와 그의 종자 둘을 이용하기 위한 주변의 음흉한 시선들. 토모에와 미오라는 힘이 있으니 당연히 자신들을 도와 야 된다는 쓰레기 같은 가치관. 날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주인공 마코토는 살아가는 데만도 벅차다. 그래도 바보는 아니기에 조심은 한다지만 작정하고 덤벼오는 놈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주인공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자신의 뒤를 밟는 모험가 파티를 처음부터 내쳤더라면, 그러지 않은 우유부단함과 무신경은 주인공 마코토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겪게 한다.


인간은 잃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안다고 했던가. 이번 에피소드는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세계는 인간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이미 여신이 미남, 미녀만으로 구성한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이세계는 제대로 된 세계가 아님을 반증하는 거와 같았다. 그런 세계에서 마물과 아인(드워프와 엘프등등)들은 중세 시대 노예만도 못한 차별을 받는다. 주인공은 인간들과 소통은 불가능해도 이런 마물과 아인들과는 소통이 가능하다. 이 말은 그의 주변엔 마물과 아인들이 주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리다. 토모에가 만든 아공(이공간)에 터를 잡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어디서든 차별을 받는 그들과 주인공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마물과 아인은 가족과도 같다. 그런 가족이 모험가들에 의해 유린 당한다면, 그것도 주인공이 이세계 질서를 간과한 것에서 시작된 비극이라면? 


본질적으로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이 본질적으로 마물과 아인과 어울린다는 의미는 매우 깊다. 보통 이세계 전이물이 현실성이 없는 것 중 하나가, 현실에서 사람은 고사하고 벌레 하나 못 죽일 거 같던 주인공이 이세계에 오자마자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간혹 수사 드라마를 볼 때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을 검시하면서 주저흔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뜻은 글자 그대로 찌를 때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주인공 마코토는 처음으로 사람을 헤치게 된다. 죽을 위기에서 구해줘 아공(이공간)에 피난 시켜놨던 모험가 파티들이 벌인 잔혹한 짓. 이세계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외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주인공을 대해줬던 하이랜드 오크의 희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음의 브레이크를 망가트리게 한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죽였다곤 해도 살인은 살인이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성이라는 것이다. 살인으로 인한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무서움과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두려움. 그런 고뇌와 번민을 보여주는 대목은 소름이 다 돋는다. 인간으로서 있기 위한 최저의 조건, 그 길을 벗어나게 된다면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은 현실에 두고 온 친구들에게 묻는다. 필자가 살면서 이렇게 마음을 움켜지는 묵직한 라노벨은 처음 본다. 사실 가볍게 보고 가볍게 구입한 작품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접할 때의 기분은, 이런 느낌 때문에 필자는 라노벨을 끊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운 3번째 종자인 '리치'를 들이면서 아공(이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주인공의 마력에 반응해 아공이 더욱 확장하면서 세계를 창조하는 클래스로 발전하는 등 한편으로는 이세계 먼치킨이라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에서 눈여겨볼 것은 위의 경우도 있지만 주인공이 거느리고 있는 종자들이다. 토모에와 미오, 인간의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마물로서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 통에 주인공 머리를 대머리로 만들뻔했던 이들이 이번엔 주인공을 도와 아공을 조사하고, 상점을 내는데 발품을 팔고, 아인들을 돌보는 등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배움에 적극적이고, 주인공에게 모든 걸 받치는 모습에서 섬뜩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세계 사람들이 배척하는 마물에게 사랑받는다는 아이러니.


맺으며: 여러 가지 복선이 나왔지만 이건 차차 앞으로 언급하기로 하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이세계에서 붕 떠있는 감각 때문에 일에 집중을 못하면서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서 겪는 고뇌는 정말 애절하기 짝이 없다. 이로써 주인공은 인간을 차별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래도 뭐 기본적으로 개그를 깔고 가다 보니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여전히 자신의 욕망대로 사무라이와 쌀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는 토모에와 어째서인지 얀데레가 되어 가는 미오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아무튼 인간과 마물로 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고 할까. 필자에게 있어서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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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7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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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게 돈이다. 한자리에 머물러 살아도 들어가는 게 돈인데 하물며 여행 중일 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마녀니까 모험가처럼 의뢰를 받아 처리해주면 어느 정도 돈벌이는 될 테지만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거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동화 한 개짜리 조화(가짜 꽃)를 도매점에서 떼와 금화 1개에 내다 파는 사기꾼 같은 짓을 저질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야 건강을 챙기는 것이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일레이나'는 마녀가 된 이후 줄곧 세상을 여행하며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자선 사업으로는 살아가지 못한다. 일을 했으면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기에 공짜 노동은 누구보다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돈을 가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보면 도와 달라고 한다. 하지만 돈에 깐깐한 일레이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하고, 끈질긴 사람은 척추를 접어 버릴까 보다 하며 흉흉한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이전 이야기에서 그녀의 어록 중 하나가 "반으로 접히고 싶으세요?"다. 그런 그녀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자선 사업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래도 뒤에서 칼 맞기는 싫었겠지. 짝퉁 마녀를 만나 도적들을 소통하러 가서 짝퉁에게 엄청 휘둘리는 모습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보통 같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일을 왜 도와주는 걸까. 마녀를 동경하는 어떤 소녀의 우쭐한 모습에 그만 흥미가 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만하게 조수로 써주겠다느니 날 도와줄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느니 허무맹랑한 소녀의 행동에 일레이나는 늪에 빠지듯 휘둘려 가는데, 일레이나는 마녀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소녀가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녀를 동경하는 소녀는 마법에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마녀를 동경해서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기 주제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소녀는 도적을 퇴치하면서 자기 주제가 뭔지 알아간다.


때론 돈을 위해 아무렇게나 의뢰를 받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세상의 진실 따윈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알아가게 된다.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아 폐촌으로 향했던 일레이나는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된다. 평화적으로 이용하겠다며 마법사들을 속여 전쟁에 이용했던 의뢰주는 전쟁이 끝나자 마법사들을 내쫓아 버린다. 토사구팽이라는 거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전쟁이 발발하자 이 마법사들을 불러들이려고 하는, 이 작품은 동화 같으면서도 때때로 잔혹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마법사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의뢰주는 강경책까지 준비하던 차에 일레이나에게 이들의 소환을 의뢰한다.


여기서 시사하는 건 일레이나는 의뢰주를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눈 감고 의뢰주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냐다. 이것은 업계의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레이나는 마법사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듣게 된다. 마법사들은 선량한 사람들로 자기들의 능력이 전쟁이 이용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없애면 의뢰주는 다시는 자신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다. 일레이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신뢰를 해치지 않고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일레이나는 이런 번거로운 일은 싫어한다.


그리고 이번 7권의 최대 하이라이트, 잠에서 깨어난 고룡(古龍)의 이야기다. 400년간 봉인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고룡이 자신이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무리에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있을 곳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겁에 질린 사람들로 인해 배척 당하고 마녀에 의해 쓸쓸히 봉인되어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렇게 400년간 봉인의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있을 곳은 없다. 일레이나는 고룡과 마주한다. 고룡은 배가 고파 쓰러진다. 그렇게 일레이나는 고룡에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일레이나는 이번 이야기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 그냥 언제나처럼 내버려 두고 가면 될 일을 마지못해 손을 내민다. 수전노 일레이나가 어쩐 일인지 고룡이 입을 옷을 사주고 밥을 먹여 준다. 아마도 혼자라는 쓸쓸함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활달한 고룡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봉인한 마녀를 찾는다. 하지만 마녀는 400년이나 살지 못한다. 마녀의 흔적을 쫓으며 여전히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는 걸 고룡은 깨달아 간다. 그저 나는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에게서도 인간들에게서도 배척을 당하는 모습이 여간 짠한 게 아니다.


고룡은 왜 마녀를 찾고자 했고, 마녀는 왜 400년 전에 고룡을 봉인할 수밖에 없었는가. 인연은 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잔잔하고 개그스럽게 엮어간다. 모습이 다르다고, 나와 다르다고 배척 당한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저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모두에게서 배척 당하고 있던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마녀와 고룡은 서로의 본질을 본 것일까 하는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진다. 400년 후 인간의 모습이 된 고룡은 인간의 틈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몰라서 일레이나에게 기대기만 했던 고룡. 그런 고룡을 이끌고 일레이나는 어떤 도시의 고서점에 들린다. 그 고서점의 주인은...


이렇게 이 작품은 옴니버스식으로 진행이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야기를 여러 개 엮여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와 기묘한 이야기도 있고, 때론 가슴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머리와 정신이 사차원인 사람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레이나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엮이고 엮여 일레이나와도 인연이 닿는 그런 이야기다. 자기애가 강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못 본척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지만 어쨌거나 결국 도와주고 마는 심성 착한 마녀의 이야기다. 


맺으며: 백합이 횡행하는 작품이다. 이전부터 그냥 대놓고 백합의 길로 가는 작가의 능력이 좋다고 할까. 아무튼 권선징악형이라기보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가는 그런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때론 섬뜩한 시리어스가 있다. 이번에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일레이나는 당분간 고기를 못 먹는 거 같았고. 은근히 패러디도 있다. 명탐정 코x 같은 거라든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라든지. 돈만 되면 뭐든지 파는 일본 엔터테인먼트를 교묘히 비꼬는 듯한 그런 이야기도 들어 있는 게 입에 착착 맞다. 아무튼 개그물에 어울리지 않게 고룡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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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 2 - V+
파르나르 지음, 아야미 그림 / 길찾기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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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시간을 이세계에서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보냈다. 이세계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유유자적 혹은 신이 나서 살아갔을 시간이지만 이세계에 소환되는 멍청이는 사회 부적응자들 뿐이라고 여기는 이 작품의 주인공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생사람 잡아와서 고생 시키는데 지원이라던지 우대를 해줬다면 덜 억울할 테지. 그딴 거 없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위생이라곤 땅바닥에 널린 게 똥 천지인 이세계에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료들에게 휘둘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다녔으니 그 원한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어렵게 가서 개고생 시키지, 정의롭게 나서서 사건을 해결해줘놓고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하는 통에 가령 범죄자에게서 사람 구해줬으면 보복 안 당하게 범죄자를 격리 시키거나 없애거나 해야 함에도 하지 않아 보복 당하는 걸 주인공이 다 해결해줘야 하는 그런 세계라면 부처라도 수라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왕을 무찌르면 세계가 평화로워지나? 주인공은 2회차에서 이세계의 시스템을 알게 된다. 정상적인 세계가 아닌 인위적인 설계로 자칭 교육위원회의 교사들에 의해 입맛대로 세계가 재편된다는걸. 요컨대 이거다. "실미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교사(교관)의 마음에 들어야 졸업(제대)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세계는 똥으로 가득 차 있다. 이세계 소환되는 사람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고(이게 참 현실적임) 이세계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주인공으로서는 시키는 데로 곱게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삐뚤어질 테다. 그래서 1회차 때 마왕 목전에서 동료들을 도륙하고 마왕을 혼자 무찔렀더니 인성 F 떠서 유급된다. 교사(교관)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우리(교사)들이 시키는 데로 해라. 교사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랑과 우정을 그대에게" 마지못해 2회차 때부터 시키는 대로 했다? 인성이 최소 A등급 뜨게 나름대로 날조도 하고 선동도 하고 해서 왕국을 내 편으로 만들었고, 제비 다리 부러트려 치료해주고 박 씨까지 물어오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건 여전히 인성 등급은 F, 유급


난, 언제 집(지구)으로 가나?가 테마가 된다. 내 10년은 보상받지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하고 동료란 놈들은 인종 차별에 돌다리 놔두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강 건너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라는 사전적 단어를 오해해서 백성들을 도와주는 게 아닌 살육하고 다니는 그들에게 치여 개고생 하고(1회차 이후부터는 상종 안 한다), 교사들은 걸핏하면 재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회귀 시켜서 인생을 리셋해버리니 나라면 어떤 감정을 가질게 될까. 어차피 리셋되는 거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게 되는 건 당연해진다. 사람을 이름은 ABCD가 되고 거슬리는 놈들은 경추 부러지고 허리가 접힌다. 2회차였나 3회차였나 때는 대륙 절반을 초토화 시켜 버리기도 했다. 어차피 리셋되는데 사람 좀 죽었다고 대수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 2권에서는 특히 더 악랄해지는데 용사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최종 3인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을 노리게 되는데 어차피 이세계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주인공 입장에서 용사들이라고 대수랴.


참고로 이세계에서 용사는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닌 천치삐까리로 널렸다. 실미도에 관광 온 사람들 마냥 지천에 널린 게 용사고, 특징은 다들 졸업해서 무사히 지구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한수'는 더욱 배알이 꼬인다. 난 한다고 했는데도 유급이고, 설렁설렁하는 놈들은 금방 지구로 귀환하고 그러니 차별도 이런 차별도 없다. 그런 연놈들이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하하 호호하고 있으니, 게다가 다들 대신전을 통해 초대되는데 나만 동굴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초대된다면 이건 악의가 개입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무튼 교사들의 본심은 용사들끼리 배틀로얄 찍는 것이다. 말이 페스티벌이고 죽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지만, 그래서 더 악랄한 것이다. 주인공 한수는 죽어도 못 가니까. 그렇담 남은 건 뭐겠는가. 사실 교사들도 한수가 여느 용사들처럼 어리바리하게 대충 살다가 마왕 쓰러트리고 교사들 입맛대로 살았더라면 지구로 갈 수 있었겠지. 그러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 싫었던 주인공으로서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교사는 물론이고 이세계로 소환한 신(神)에게 악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지. 그래서 온 을 돌아다니며 스킬이란 스킬은 다 주워 먹고 다니고 성검도 주웠다. 그래서 그런가 회귀하면 원래 능력까지 몽땅 리셋되어야 하나 주인공은 그러지 않는다. 회귀 때마다 무쌍을 찍지만 어째 친구는 생기지 않는다. 동료는 생기지만 리셋되면 동료도 사라진다. 지구로 돌아가는 건 더욱 요원해지기만 한다. 그렇게 살다 당도한 용사 페스티벌에서 조차 드디어 인성 FFF급을 달성하고야 만다. 이제 29살 고교생이다. 패러디가 아니라 10대 고교생일 때 소환되었고 1차 10년에 2차부터 지금까지 1년이 흘렀으니 대충 29살 맞을 거다. 아무튼 FFF를 받았으니 다시 회귀를 해야지? 6회차에 접어든다. 이번엔 현지민이라는 콘셉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세계는 교사들의 입맛대로 설계되는 세계다. 이제 이세계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교사들이 바라는 게 뭔지 알아가는 주인공으로써는 더 이상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야말로 졸업을 해야 하는데... 교사 혹은 신(神)을 만나면 비 오는 날 개 패듯 패려고 스킬 등 능력을 잔뜩 올린 게 화근일까. 회귀 때도 레벨은 리셋 돼도 스킬은 리셋되지 않다 보니(온라인 게임 마X노기가 이런 시스템이었지) 레벨이 받쳐주지 않아도 충분히 괴물이 된다. 그렇담 바로 마왕을 무찌르면 인성이 고과에 반영될 틈도 없이 졸업 커트라인에 성공하는 거 아닐까? 바라는 대로 인성이 C가 되면서 커트라인 통과가 되었다. 4회차 땐가 이렇게 바로 마왕성에 쳐들어가 마왕을 무찔렀고 C를 받았다. 그렇담? 결과는 이렇게 6회차에 접어들었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뭐 어쩌라고?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제 희망은 절망이 된다. 주인공이나 독자들에게나. 


주인공 가는 길을 막을 자는 이제 없다. 스킬을 있는 데로 주워 먹어서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매우 한정적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특징이 위에는 위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인공이 강해져도 위는 반드시 있고, 주인공이 강해지면 적도 강해진다는 시스템이다. 그만큼 떨거지들은 개미만도 못하는 파워 인플레가 일어나지만 주인공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아무리 강해도 주인공이 몇 번 휘두르면 개그물 답지 않게 시리어스적으로 물리적으로 적은 목이 부러진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진짜 적은 교사와 신(神) 뿐이다. 지상에 대적할 상대가 없는 천사조차 상대가 되지 않고 주인공에게 빨대가 꼽혀 마치 드래곤볼의 셀이 사람 빨아먹듯이 쪽쪽 빨릴 뿐이다. 여러 작품 패러디가 들어가 있다더니만 유독 드래곤 볼의 셀처럼 빨대 꼽아 빨아먹는 장면들은 인상에 많이 남는다. 주인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걸까. 


딴말이지만 라누벨이라는 히로인이 나온다. 처음엔 주인공을 소환한 무녀 역을 맡아 몇 회차까지 주인공을 맞이했고, 1회차 때는 주인공 동료가 되어 마왕 퇴치에 나서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늘 듣는 말은 '귀여운 척하지 마', 이후 회귀 때마다 5회차 빼고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따라다니게 되면서 얘가 뭔가 복선의 줄기인가 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야 줄곧 소환의 원흉인데다 1회차 때 주인공이 10년 동안 고생한 원인의 90%가 라누벨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일 먼저 죽여야 될 원수임에도, 이세계에서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주인공이 유독 라누벨 만큼은 어찌하지 못한다는 거다. 걸핏하면 상대의 목을 부러트리는 주인공이 그녀에게 손하나 대지 못한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번엔 동생의 포지션이 되어 졸졸 따라다니게 되는데 역시나 대륙을 또 초토화 시키면서도 라누벨 만큼은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확신에 가까운 뭔가를 느끼게 해준다. 진짜 정체는 아직 모르겠지만...


맺으며: 1권 때보다는 말빨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한글 특유의 말장난이 재미있다. 알게 모르게 여러 작품들의 패러디가 들어가 있어서 찾는 재미도 있고, 가령 드래곤 볼의 셀이 빨대 꼽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라든지. 영화 불가사리처럼 사람을 잡아먹는다던지, 조금은 섬뜩한 장면이 다수 있다. 개그물이면서 공포물에 먼치킨을 결합하면서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될뻔함에도 작가가 조합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다고 할까. 전혀 위화감이 없다. 거기에 적당한 섹드립도 조미료 역할을 해준다. 한편으로는 먼치킨으로서 대적할 상대가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재미있나? 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먼치킨은 주가 아닌 부재료일 뿐이고 부조리한 삶을 강요 당하며 그걸 타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명경시 부분도 사실 주인공이 좋아서 하는 것보다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고.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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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가 되고 싶다며 도시로 떠났던 딸이 S랭크가 되었다 7 - L Books
모지 카키야 지음, toi8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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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느 모험물이라면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성장하여 세계를 주름잡는 영웅호걸이 되어 있어야 되는 게 정석이잖아요. 하지만 여행을 떠난 모두가 영웅호걸이 될까? 예전에 어떤 작품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마왕의 출현에 용사가 동료들을 모아 마왕성에 쳐들어 갔더니 이미 마왕은 퇴치되고 끝나버린. 사실 용사가 한 명뿐이라면 위험부담이 상당히 큰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용사가 여행 중에 죽어버리면 그 세계는 끝장나 버릴 테니까요. 이에 우리가 흔히 보는 모험물의 용사는 그 세계에 오직 한 명뿐인 용사가 아닌 많고 많은 용사들 중 하나이고, 그 많은 용사들 중 운 좋게도 한 명이 마왕 퇴치에 성공해 부와 명예를 거머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그렇담 마왕 퇴치에 실패한 나머지 용사들은 어떻게 될까. 가전제품을 파는 점원이 되었을 수 있고, 콜센터에서 상담원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이 작품에서 마왕 퇴치에 실패한 용사는 '벨그리프'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딱히 마을을 떠날 때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들 젊었을 적 치기로 도시로 나가 모험가가 되고자 하는 소년 중에 한 명일 뿐이었죠. 그렇게 도시로 나가 동료들을 만나 파티를 꾸리고 던전에 들어가서 모험을 하는 인생을 살아가나 했습니다. 다들 실력과 용기가 있어서 나름대로 승승장구하는 편이었죠.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다 성공하면 세상은 참 살기 편해졌을 테죠. 벨그리프는 마왕을 퇴치하진 못했습니다. 동료들은 실력을 키워 저만치 앞서가는데. 마왕성에는 근처도 못 가게 되죠. 어느 날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그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람은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고 했던가요. 한쪽 다리로는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없게 되어 벨그리프는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에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분명 어린 나이에 나만 이 꼴이라는 것에, 더 이상 모험을 못하는 자신에 화가 났을 수도 있고, 멀쩡한 동료들에게 질투를 했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없이 그는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숲에 버려진 딸을 거둬서 키우며 그렇게 불혹의 나이가 되어 갔더랬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의 마음에 남은 건 그날 아무 말없이 떠나온 죄책감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자신의 옹졸한 마음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지. 그러한 마음이 자꾸만 커져갔던 그는 늙어버린 몸을 채찍질을 하며 동료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벨그리프가 어릴 적 모험을 떠나 자신이 지켜줬던 '퍼시벌'이라는 동료를 찾는 여행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닥친 위험을 간파하고 몸을 던져 지켜준 대가로 다리를 잃어버린. 사이가 좋았던 이들 파티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대단히 큰 트라우마로 다가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렇기에 말도 없이 떠났던 벨그리프에게 못내 아쉬운 마음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된 퍼시벌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흐르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대지의 배꼽]이라는 마수가 창궐하는 곳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자신을 혹사 시키는 퍼시벌. 자신을 혹사 시키는 이유가 참으로 절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벨그리프는 퍼시벌이 거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기로 하죠. 딸, 안젤린과 딸의 동료들 그리고 이전 사건에서 상봉에 성공한 어릴 적 파티원 카심과 엘프 왕녀 마르그리트도 함께 하기로 합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설렘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청산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를 하고 있어서 설렘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안젤린은 아빠와 같이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레는 것에서 이것만으로도 조금은 흐뭇해지기도 합니다. 약간은 깔보는 무리로 인해 정석적인 전개도 펼쳐지고, 과거에 두고 온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는 듯 조금은 나잇값 못하는 풋풋함도 벌어집니다. 약간은 모험 다운 일도 벌어지고, 작가 특유의 표현적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여행하는 이들 눈앞에 아른거리는 산맥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거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옵니다. 폐촌에서의 하룻밤은 여행의 낭만을 불러오고요. 마적떼에게 쫓길 때는 긴박함이 묻어납니다.


그렇게 긴 여정을 거치며 일행은 드디어 [대지의 배꼽]에 도착합니다.


맺으며: 뭐랄까 몽한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며 보는 저 멀리 아른거리는 산맥이라든지, 야영하는 분위기라든지, 작가 특유의 자연을 표현하는 부분이라든지, 마치 거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하여 기분을 고양 시키는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큰 이야기는 없음에도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랄까요. 거기에 고양이 수인 밀리엄에 이어 록(Rock, 음악)을 사랑하는 개 수인 '루실'의 등장은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죠. 대사도 록에 비유해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딸 안젤린이 주인공임에도 이번 이야기는 아빠 벨그리프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어릴 적 동료 퍼시벌을 만나 그날 있었던 일들을 청산하고 아직도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를 다시 양지로 끌어내는 장면들은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역동적이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게 인상적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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