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교실 1 - L Book
타케마치 지음, 토마리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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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에 있어서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정보'를 손에 쥐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픽션이다.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그래서 10대 여자애들을 스파이로 교육해 다른 나라에 잠입 시키는 것이 허용된다. 간혹 영화라든가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스파이는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죽어도 없는 사람 취급받거나 영웅으로 추앙받지도 못할뿐더러 사람들에게 기억되지도 못한다. 불가능한 미션을 부여받아 사지로 떠나고, 그렇게 해마다 죽는 요원이 현실에서도 생긴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스파이전을 다루고 있다. 비록 10대 여자애들을 동원해 서브컬처로서의 흥미 위주로 그려가고 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것은 픽션이나 현실이나 똑같다는 설정이다.


근데 사실 이 작품은 스파이라는 첩보물이라기 보다 이능력 배틀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이세계 전생 치트와 무능력 치트를 결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우선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주인공인 '릴리'는 스파이 양성 기관에서 낙오자다. 머리도 좋고 인물도 훤한데 어째서인지 실기에선 괴멸적인 평가를 얻어 아슬아슬하게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 숨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이다. 아마 이것 덕분에 쫓겨나지 않은 듯한데, 요점은 이미 시작부터 그녀에겐 '어드벤티지'가 있었던 샘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요소요소에 기믹을 숨겨둔다. 등장인물들을 능력이 없는 것처럼 꾸며놓고 실상은 능력자라는 거다.


어느날 릴리는 어떤 임무를 부여받는다. 양성 기관에서 퇴출되다시피 임시 졸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등불]이라는 급조된 팀에 배속되는데, 이 팀은 불가능한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하니 '6명'​의 소녀가 이미 와 있다. 앞으로 릴리는 이 소녀들과 한 달 뒤 사망률 90%에 달하는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야만 한다. 팀의 보스는 '클라우스', 클라우스의 지도를 받아 정예 스파이들도 이루지 못한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알고 봤더니 여기에 모인 릴리를 포함 '7명' ​모두가 낙오자들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들은 버림말로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그런 처지다.


이런 낙오자 애들을 한 달 만에 교육해 불가능 미션에 도전 하라니 미친 거냐고 소리 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그녀들을 교육해야 될 클라우스에게 지도력은 없다. 여러분은 밥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행동을 말로 설명할 수 있나? 하는 질문을 던진다. 행동이 아니라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답할 수 있을까. 클라우스는 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로 그에겐 스파이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행동은 가르쳐도 원리는 가르치지 못한다. 즉, 이 [등불]이라는 팀은 전부 낙오자만 모인 집단이다. 릴리는 이런 팀에서 도망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를 납치해서 팀을 해체하라며 협박하는 등 애가 정신 나간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이 흥미요소다. 스파이로서 능력을 보이며 적을 농락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릴리는 죽는 것보다 사는 쫓을 택한다. 능력을 펼치기도 전에 죽어버리면 뭔 소용이냐며 아득바득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도망갈 구멍은 없다. 클라우스를 협박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 한 달 뒤 찾아오는 클리어 불가능 미션에 도전해 성공 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라우스의 지도 방법을 바꿔 어떻게든 실력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클라우스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7명의 소녀들을 교육하기로 하는데.


여기까지 오면 뭐 정말로 영화처럼 어떻게든 실력을 키워서 비장한 각오로 적지에 뛰어들어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반전을 이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7명의 소녀들도 클라우스의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가긴 간다. 이렇게 이 작품은 사망률 90% 미션이라는 요소에 중점을 맞추며 진행이 된다. 하지만 초반에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엔 기믹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사실 픽션이라고 해도 한 달 만에 낙오자들을 교육한다고 손오공이 초사이언 되듯 될 리는 없다. 손오공은 순간이동 하나 배우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한 달간 교육 끝에 7명의 소녀와 클라우스는 적지에 잠입하게 된다.


스파이를 하려면 모두를 속여라라는 말이 있다. 영화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영화에서 가족들을 속이기도 했잖은가. 이런 점이 기믹이라는 것이다. 실력이 되지 않으면 기교를 부릴 수밖에 없고 적이 이 기교에 속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부터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기믹에 빠져들게끔 설정이 잡혀 있다.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기교를 부린다. 그녀들이 왜 불가능 미션에서 도망가지 않고 도전하게 되었는지 조금식 풀어간다. 졸지에 추리물이 되고 괜찮은 흐름을 보여주긴 한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을 속이려 든다. 사망률 90%라는 요소를 넣어 적국은 상당히 강할 거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래서 그 사망률 90%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왜 이리 허망한지 필자 자신도 모르겠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 적지에 도착한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을 맞이한 건 사망률 90%라는 진실이다. 사실 필자는 중반까진 제법 괜찮은 흐름이라고 봤다. 하지만 적지에 침투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뭐 이딴 게 있나 싶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임무가 힘들어서 사망률 90%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우스와 7명의 소녀들은 처음부터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했다는 전형적인 능력자 클리셰를 보여준다. 결론은 연극이었고, 독자는 연극에 놀아난 꼴이다.


정말 한숨이 제대로 나왔다. 죽음을 각고하고 임무에 종사하는 엘리트 스파이들을 우롱하듯 자기중심적 성격을 보여주는 릴리부터 답이 없다. 쌀 배달하는 사람도,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비행기 조종하는 사람도 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일에 매진한다. 하물며 스파이라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죽기 싫다는 어리광은 어떻게 받아줘야 할까. 포부라도 당차면 모르겠는데 그저 나라를 구하고 싶다는 두리뭉실한 이상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개화하지 못한 건 양성 기관과 교관이 실력이 없다는 마인드. 여기에 쇄기로 능력이 없다면서 독 면역이라는 특이 체질과 독 만들기는 수준급에 엘리트 못지않은 움직임은 어떻게 봐줘야 할까. 이런 릴리가 낙오자라면 엘리트는 대체 어떤 능력을 보이는가.


필자는 위에서 이 작품은 이능력 배틀물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무술을 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듯이 이 작품도 그에 못지않은,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라는 건 대체 뭘까 싶다. 와이어 액션신은 이세계 전생물처럼 이능력이 없다면 표현 불가능한 영역 수준이다. 어떤 소녀는 [불행]이라는 체질로 주변의 불행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연이 아니라 미래 예측하듯 이능력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스파이물이 아니라 이능력 배틀에 가깝다. 낙오자라면서 능력은 있는, 이세계 전생에서 흔히 보는 무능력자가 치트를 써서 능력자가 되는 그런 요소가 잔뜩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스파이를 가장한 이세계 먼치킨이다.


맺으며: 온통 기믹 밖에 없다. 릴리를 낙오자들만 모인 [등불]이라는 팀에 합류를 지시하는 시점부터 이미 기믹이 시작된다. 스파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대성공이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라는 격언도 성공적이다. 적은 결국 속아 넘어갔으니까. 하지만 이능력을 넣기 시작하고 사망률 90%라는 진실이 드러나면서 분위기는 고꾸라진다. 이러려고 애들을 교육한 것인가. 이쯤 되면 왜 낙오자들로 이 미션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결론은 엘리트들을 쓸 필요도 없었다. 엔딩을 접하면 작중에 언급되는 소녀들의 성장 '가능성'의 의미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은 낙오자들의 갱생 프로그램이라랄까. 스파이로서 전통적인 첩보물을 바라고 이 작품을 찾는다면 분명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배틀물로서 성장물로서 찾는다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현실을 대입하고 읽었던 필자는 괴리감에 몇 번이고 책을 덮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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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쉽 랜드 - Novel Engine
바바 오키나 지음, 키류 츠카사 그림, ruleeZ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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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의 작가가 집필한 단편집입니다. '거미입니다만'이라는 작품이 국내에 13권까지 정발 되어 있고 애니화까지 되는 등 나름 잘 나가는 작가라서 이 작품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느낌에 덥석 구입은 했습니다만. 시놉시스도 유원지에 갇힌 사람들이 7일 동안 자신들을 노리는 늑대 탈을 쓴 살인자를 피해 살아남는 서바이벌 즉 데스 게임이라는 꽤나 흥미진진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왔었죠. 광기에 찬 표지도 그에 못지않은 시리어스를 보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흥미로웠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뭔가를 구입할 땐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고 구입하자,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같은 작가가 집필했다고 꼭 흥미진진한 건 아니더라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영화 배틀 로얄과 유사한 흐름을 보입니다. 일정한 숫자의 사람들을 잡아다 어느 한 구역에 집어넣고 살아남으라고 하죠. 여기엔 빚에 쪼들려 팔려온 사람,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살아남으면 상금이 나옴), 게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타의에 떠밀려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을 노리는 늑대를 피해 7일간 살아 남아야만 합니다. 또한 팀을 나눠 살아남은 사람이 많은 쪽이 이기게 되는데, 이 말은 상대 팀을 줄일수록 우리 쪽이 유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로 서로 죽이는 것도 장려가 된다는 것이죠. 사회 부적응자들을 모아다 데스 게임에서 이런 설정을 들이밀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거기에 둘을 한 조로해서 파트너가 죽으면 다른 파트너도 죽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행동에 제약을 걸기도 합니다. 자신들을 노리는 늑대와 상대팀 피해 파트너를 지켜가며 7일간 생존해야 되는 서바이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몰려 주인공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인데 엄청 기대 되잖아요? 주인공 '다이고'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폭력을 먹고 자랍니다. 엄마는 이 남자 저 남자 마구 만나면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멋진 인생(반어법)을 살아가고 있었죠. 남자들 등을 치며 돈을 쪽쪽 빨아먹다가 아이(주인공)까지 팔아가며 남자들에게서 돈을 뜯어냅니다.


하지만 인생사 공수래라고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까지 딸려 있으니 언제까지고 장밋빛 인생이 계속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게 돼요. 주인공 다이고는 커갈수록 주변에 엄마의 폭력과 행위를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엄마의 거짓 연극에 속아 주변은 엄마를 두둔할 뿐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인간 불신에 빠집니다. 이게 이 작품의 키워드인데 쩝... 아무튼 결국 엄마는 마지막 선까지 넘게 되고, 빚을 엄청 지게 된 엄마는 자식을 서바이벌 게임에 팔아버리는 짓까지 서슴지 않게 되죠. 주인공은 엄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어쩐 일인지 저녁을 해주며 살갑게 대해주는 엄마에게 경계심을 누그러트린 게 화근이었다고 할까요.


엄마는 자식을 제대로 키울 마음이 없었죠. 그저 남자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한 재료고, 주변에 한 부모로서 힘들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선량한 사람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식이 필요했을 뿐, 자식으로서의 정은 없었어요. 주인공은 자라면서 늘 엄마에게 맞는 게 일이었죠. 이유 없이 맞고,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맞고, 그런 나날을 견디며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지금, 주인공은 파트너 '유우(히로인)'와 함께 7일간 목숨을 건 서바이벌을 치러야 합니다. 이쯤 되면 엄마를 죽이고 나도 죽고하는 인생사 막장 테크를 탈 법도 한데 주인공은 그러지 못합니다. 결국은 폭력에 노출되었어도 자식은 용서한다는 클리셰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죠.


그렇다면 주인공은 게임을 치르면서 인간 불신을 치료하고 닫힌 마음을 열어가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럴 경황도 없고, 그런 시간도 없어요. 사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없습니다.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가기엔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은 이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만 알릴뿐이죠. 게임에 참가한 여러 사람에게 장면들을 할애하며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이 데스 게임의 목적과 그 뒷배경 등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활약은 미약하고 결국 그도 한 사람의 참가자일 뿐이라고 역설하죠.


사실 필자가 최악이라고 혹평을 해도 다른 분들의 입장에서는 좋게 보는 경우가 있어서 근래에 들어와 말 조심하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솔직히 근본이 없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삶이 망가지다시피한 주인공이 데스 게임에 참가하여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역경을 그리는 걸까 했지만 그런 건 거의 없어요. 몸부림치는 건 그의 파트너 '유우'일 뿐이죠. 그런데 유우와의 만남도 인위적이고, 주인공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며 얀데레로 돌변해서 나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이쪽이 더 흥미진진할 지경입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투입해서 저마다 사연을 풀어 놓다 보니 이야기는 중구난방식이 되어 가죠.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맺으며: 정말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이야기는 지리멸렬하고, 하나를 놓고 설명을 2~3페이지식 하는 읽는 사람 지키게 만드는 진행 방식하며, 데스 게임 서바이벌을 모토로 했으면 비중을 높이던가 참가자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왜 풀어 놓는지 의미를 모르겠더군요. 이것도 의미 있는 풀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역설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나 본데 단권으로 끝나는 작품에서 지면을 그렇게 할애해도 되나 싶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비중은 묻혀버리게 되죠. 유우의 얀데레끼도 뜬금없이 다가오게 되고요. 데스 게임에서 사람 죽어 나가는 것도 숫자로 짤막하게 만 끝내버리는 등, 결국 근본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엄마에 대한 복수라도 시원하게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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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역 SF - S Novel+
이스카리 유바 지음, 타나카 타츠유키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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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법 심한 스포일러 주의







자,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세계가 있다. 폭력은 금지되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 노력에 따라 장소만 잘 찾아내면 부를 쌓을 수도 있다(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다). 이런 모든 삶을 정부가 보장해서 빼앗고 빼앗기는 살벌한 세상은 인정되지 않는 평화 그 자체다. 하지만 누구나 다 혜택을 보는 건 아니고 살아가려면 소정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사람은 6살이 넘어가면 정부에 돈을 지불해서 살아갈 권리를 획득해야만 한다. 지불하지 않을 경우 추방된다. 폭력은 이유고하를 막론하고 추방된다. 기물을 파손해도 추방된다. 사람의 몸에 칩(스이카)이 심어져 통제되는 사회다. 얼핏 사회주의 국가 같은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끔찍한 곳일 것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뱀은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했으니까. 


이 작품은 AI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겨울 전쟁(아마도 3차 대전)이 한창 치열하게 전개 중이던 시절, 일본은 전략 병기로서 고도의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하지만 적국의 공격으로 서버를 분산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JR 철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통합지성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서버(역)가 철도를 따라 전국에 퍼져 있어서 과반수 이상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한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통합지성체에 제어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날로 격해지는 전쟁으로 인해 역의 파괴가 늘어났고, 이에 인간의 수리로는 복구되지 못한다는 결정을 내린 통합 지성체는 한가지 대안을 내놓는다. "내가 알아서 수리할게" 역은 자가증식을 시작한다.


통합지성체의 결정에 따라 그 첫 번째로 자가 수리에 들어간 역이 요코하마 역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요코하마 역은 파손된 부분만 복구하는 게 아닌 개축을 맘대로 하더니, 끝끝내 세포가 분열하듯 증식을 시작해 전쟁이 끝나고도 증식은 멈추지 않게 된다. 일본 혼슈(후쿠오카, 혼슈, 시코쿠, 훗카이도중 제일 큰 섬) 지방 대부분을 침식, 일본 정부는 대응하다 와해, 살아남은 인간은 훗카이도와 후쿠오카에서 방어전을 치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에 대항하는 인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과는 반대로 요코하마 역은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반에 언급한 풍족하진 않지만 살아갈 수 있고 폭력이 금지된 세상이다. 역 내부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개축되었고, 삶에 필요한 물자도 역이 인간의 옛 지식을 빨아들여 복제를 통해 생산 중이다.


어쩌면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지에서 이보다 축복받은 땅은 없을 것이다. 증식하면서 공포영화처럼 인간을 깔아뭉갠다든지, 흡수한다던지 그런 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200년을 살아오게 된다. 하지만 통제받는 세상이 좋을 리 없다. 사소한 폭력이라도 일으키면 죽음뿐인 장소로 추방되는 가혹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역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6살이 되기 전에 스이카 인증을 심지 않으면 알짤없이 역 밖으로 추방된다. 바닷가 같은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심지어 역 대합실 만한 공간에 버려지기 일쑤라 추방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쨌거나 자유를 갈망한다.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도 통제된 사회 보다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역내에서는 저마다 세력이 존재하며 역에 충성하는 사람과 역을 파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게 된다.


주인공 '히로토'는 바닷가 99계단 아래에서 살아간다. 그에겐 스이카라는 인증이 없다. 그래서 역내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역 밖으로 배출되는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 상당수가 이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적응을 못해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히로토의 부모는 몇 세대 전 추방된 '아이들'이다. 이 작품은 잔혹한 동화를 그리고 있다. 역내에서는 6살이 넘기 전에 스이카 인증을 몸에 심지 않으면 추방된다. 여기엔 돈이 들어간다. 역 안이라고 모든 사람이 잘 살지 못한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는 반드시 발각되고, 역 순찰기구에게 아이를 빼앗긴다. 그렇게 빼앗긴 아이는 바닷가로 추방되면 살아가는데 일말의 희망은 있다. 하지만 산간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추방되면 며칠 못 간다. 요코하마 역은 사람을 역의 일부로만 치부하고 판단한다. 6살이 넘으면 이물질로 판단한다. 스이카 인증은 역의 일부라는 증표다.


이 작품은 세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에서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다행이 아닐까?라는 것과 자유 없이 그저 던져지는 먹이만 받아먹고 살아간다면 돼지와 뭐가 다른가다. 히로토에게 어느 날 어떤 단체에 속한 사람이 찾아온다. 역내를 해방하고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단체의 그 사람은 히로토에게 한가지 부탁을 한다. 역에게 쫓기고 있는 단체의 리더를 찾아내 도와달라는, 히로토는 5일간 쓸 수 있는 역내 여행권을 얻어 그 리더라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훗카이도에서 파견된 공작원을 만나면서 요코하마 역이 가진 본질을 알아가게 된다. 요코하마 역의 증식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맡게 되면서 5일간의 여정을 그리게 된다. 참고로 마지막 세 번째 메시지는 진 엔딩과 연결되어 있어서 언급은 힘들다.


통제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보여준다. 역 밖의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필사적이다. 약탈이 횡행하고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간다. 아이라니 하게도 증식하는 역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들끼리 남은 물자를 빼앗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것이다. 역의 증식으로 농사지을 땅은 거의 없다. 농사짓는 방법도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 듯하다. 그러해서 안전한 역내라면 살아가는데 불편해도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서 요코하마 역이 악이면서도 악으로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밖은 역이 증식할수록 그나마 남아 있던 땅이 침식되어 스이카 인증이 없는 사람들은 몰리고 몰려 바다에 빠져 죽을 판이다. 그래서 훗카이도와 후쿠오카는 역의 침식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시코쿠는 무정부 상태가 되어 버려서 아비규환이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참으로 적나라하게 던진다고 할까.(써 놓고 보니 시사하는 메시지가 네 개네)


맺으며: 단권이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넣는 바람에 독해력을 상당히 요구한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나오고. 한 3권까지 늘려서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히로토의 결사적인 여행이라던지 어느 병사와 인조인간의 만남 같은 현실적이면서도 직설적인 이야기 등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아무튼 이 작품은 자유 없이 풍족하게 살 것이냐, 살기 위해 필사적인 자유를 원하느냐를 다루고 있다. 그 외에 설정으로 요코하마 역내를 표현한 SF적인 요소는 나름대로 큰 점수를 줄만 하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활약은 그렇게 많지 않은, 이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하는 설명이 주가 되고 인연은 크게 다루지 않는다. 여느 라노벨처럼 히로인이 나와 주인공과 연을 만들어가고 영웅이 되어 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년이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본질에 도착하는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이라고 힘이 있는 게 아니고 지혜롭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다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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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전하는 화가 나셨나 봅니다 1 - L Novel
야츠하시 코우 지음, 나기시로 미토 그림, 이진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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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가 있다. 집오리 둥지에서 태어난 백조는 오리들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다. 이를 말리고 보호해줘야 할 부모나 형제 자매는 못 본척한다. 백조는 그렇게 홀로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우아한 날개를 펼치고 상공으로 날아오른다. 조류계에서 선망의 대상인 백조의 우아한 날갯짓, 미운 오리 새끼가 보여주는 '다름'이란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인 물음에 필자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낙동강 오리알", 남은 오리들은 날지도 못하는 그저 먹이를 받아먹고 알이나 낳다가 잡아먹히는 운명을 타고났다면 백조는 자신의 발로, 날개로 상공을 날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이 작품에서 미운 오리 새끼는 히로인이자 주인공인 "레티시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줄곧 그런 면을 보인다. 그녀는 전생에서 마술에 관해서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모두가 전쟁에 미쳐사는 격동의 시기에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실력을 가졌어도 제대로 빛을 받을 일 없이 그녀는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작품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부모를 잃고, 나라를 잃고, 그렇게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한 끝에 공작가 영애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왕녀의 이야기다. 자, 여기서 키워드는 "마술과 미운 오리 새끼다." 그녀가 전생한 세계에서 '마술'은 찾아 볼 수 없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력'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마력량이 곧 그 사람의 가치가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레티시아가 있던 전생 전의 세계에서 마력량은 무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이렇듯 얼핏 같은 뜻일 거 같은 능력이 상반되는 세계를 그린다고 할까.


여기서 중요한 설정이 마술은 마력량이 높을수록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생 후의 세계는 마법(마력량)을 제일로 친다. 결과적으로 표출되는 능력은 비슷한데 요구되는 스텟치는 다른 세계라 보면 된다. 이런 세계에서 마력이 없는 레티시엘은 지극히 당연히 미운 오리 새끼가 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마술은 마력이 적을 수록 빛을 보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마력이 거의 없다. 전생 전의 세계에서 마술에 관해서는 톱클래스 실력을 자랑하던 그녀가 마법(마력)을 제일로 치는 세계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겉만 보고 판단하는 부류에 의해 그녀는 무능력자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복선이 투하된다. 그녀는 전생 후 0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 이미 준비된 16세의 몸부터 시작한다는 것이고, 그녀가 깃들기 전에 이미 그녀의 몸에 마력은 쥐뿔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레티시아를 위한 그릇?


이 말은 그녀는 그녀가 깃들기 전부터 이미 마력 0(제로)인 상태로 미운 오리 새끼로 취급받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집안 누구도 그녀의 편은 없으며 심지어 시녀들조차 비아냥 거리는 그런 세계에 전생하고 만다. 여기서 이미 느낌이 오는데 백조가 레티시엘이라면 낙동강 오리알은 그녀의 주변이 된다. 왜냐면 그녀는 이 세계에서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보통 이런 설정이면 마법은 못 써도 마술로 무능력 먼치킨이 되는 전형적인 이고깽물의 한 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겠는데 사실 반은 맞다. 비효율적인 마법에 기대어 발전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마술로 마법을 펑펑 써대니 이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능력 먼치킨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력이 있다고 뽐내지 않으며 나서지도 않는다. 다만 너무 뒤떨어진 이 세계 마법 사상에 질려서 보다 효율적으로 어떻게 하면 마법을 잘 쓰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며 보편화 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아무튼 이 작품은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레티시엘이 깃들기 전의 이름은 '도로셀'이라는 극히 평범한 공작가 영애였다. 왕의 명령으로 제1왕자와 약혼한 사이지만 왕자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여보란 듯 왕자와 여동생은 둘이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가족은 그녀를 버리다시피 했고, 태어날 때부터 무능력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누구도 내 편이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홀로 지내와야 했다. 레티시엘이 깃들고 나서도 그런 삶은 계속 이어진다. 밥을 먹을 때도 연회를 열어도 그녀를 부르는 일은 없다. 그만큼 마력이 가지는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마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에 전생하게 된 레티시아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되는 걸까가 이 작품의 핵심적인 이야기다.


자, 마력은 없지만 마법을 못 쓴다고 하지 않았다. 여기서 두 번째로 눈여겨볼 것은 그녀의 성격이다. 학교에 가서도 그녀는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오리 신세다. 보통 이쯤 되면 정신이 꺾일 만도 하겠지만 이미 전생에서 전쟁이라는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거친 그녀에게 있어서 주변의 비아냥은 애들 장난 수준이다. 오히려 그녀는 주변을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 주변에서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편할 대로 살 수 있다는 합리적인 어쩌면 좀 불쌍할 정도의 사고관을 보인다. 특히 왕자와 여동생의 불륜을 보고도 그러던지 말던지하는, 여기서 세 번째 눈여겨볼 것이 그녀의 약혼자인 왕자와 여동생의 관계다. 왕자의 성격은 전형적인 귀족 사상의 개양아치이고 여동생은 콩깍지가 껴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왕자가 멋있다고 하는 이상한 행동하며, 어딘가 일그러진 세계를 보여준다는 거다.


아무튼 끼리끼리 모인다고 마법에 유능한 사람만 모인 세계는 아니다. 어디에나 못 따라가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은 좋은 먹잇감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는 건 이런 작품들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다. 레티시아는 이런 아이들을 구원해 친해지며 '다름'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던진다. 특히 '지크'의 등장은 묘한 복선을 느끼게 하는데 전생 전의 레티시엘의 남편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이세계 전생물의 클리셰인 신문물을 만드는 것등 지크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덜떨어진 애들을 규합해 레티시엘의 강의로 어중이떠중이도 다듬으면 보석이 된다는 그런 클리셰적인 이야기도 있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직설적인 성격의 레티시엘의 언동에서 조금은 웃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도 들어 있다.


맺으며: 전체적인 느낌으로 보자면 무능력자의 먼치킨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레티시엘이 자각도 없이 내뱉는 독설과 약혼자인 왕자와의 관계가 흥미진진한 작품이라 하겠다. 대놓고 왕자 자신은 약혼자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면서 정작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건 죽어도 못 보는 졸렬한 성격하며 말빨에서 밀리자 폭주해 일 저지르는 것등 무능력 먼치킨 소재보다 이런 일상생활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있다. 레티시아의 여동생도 언니를 언니로 안 보고 언니의 약혼자를 빼앗았다는 자각도 없이 라이벌을 넘어 되레 내 남자를 빼앗는다는 거의 부모의 원수마냥 취급하는 거 하며. 레티시아도 엄마를 엄마로 안 부르는 등 혼돈의 도가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욱 흥미진진한 건 학원 탐험 중 만난 '지크'와의 관계다. 전생에서 남편과 많이 닮은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 빛. 그리고 지크의 정체는 지구에서 전생해온 지구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등 복선이 제법 충실하게 깔려 있다. 레티시아의 여동생도 뭔가 있는 거 같고. 작가가 짜임새 있게 요소요소에 이야기 배치를 잘 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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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낙원 - JM 노벨
미즈시로 미즈키 지음, 김하연 옮김, 나마니에 일러스트 / 제우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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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일란트 대미굴' 이름 그대로 광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던전을 의미한다. 강력한 마수가 서식하고, 각종 약초가 자생하며, 빈곤한 모험가들에게 일확천금을 선사하는 곳이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동반하고, 언제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주인공 '윌'은 동료들과 심층에 내려간다. 돈을 벌기보단 모험의 호기심으로 남들은 가지 않은 심층 영역에서 새로운 발견을 꿈꿔 봤을 것이다. 자만이나 오만은 없다. 다들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불합리하고 갑작스럽다. 심층에서 맞닥트린 강력한 마수에 의해 하나둘씩 동료들은 유명을 달리하고 주인공 또한 삶의 의지가 꺾인다. 실력이 있는 동료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마수를 맞이해 주인공은 그저 무력하다. 이렇게 한낱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을 거 같던 주인공이 피웅덩이에서 죽어가던 그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었으니, 이 작품은 이렇게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이 술에 빠져 지내다 다시 던전에 들어가 과거를 청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재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옛 동료를 그리워하고, 주인공만 살아온 것에 주변의 지탄을 받다가 과거 주인공이 겪었던 것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게 되는 구국의 영웅을 그리는 거 같다. 근데 사실 아니다. 물론 죽어버린 옛 동료들을 그리워하긴 한다. 하지만 죽어버린 건 죽어버린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나 싶다. 이야기는 2년 전 던전에서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준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술집에서 들려오는 탐굴가(모험가 부류)들의 노가리성 이야기에 언뜻 들리는 소문, "상반신은 소녀이고 하반신은 거미"의 목격담이 탐굴가 사이에 회자되면서 주인공 귀에도 들어오게 되는데. 2년 전 죽어가던 자신을 살려준 인물은 누굴까. 사실 이 작품은 인트로부터 그게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던전에 다시 내려가고자 했을 때 이미 눈치를 채게 된다. 이 작품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마수 소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내려가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의 앞길을 막고자 교도소에서 탈주한 죄수들이라는 스파이스를 가미한다. 흉악범들의 탈주는 많은 현상범 사냥꾼들을 불러들이고, 현상금에 눈이 멀어버린 탐굴가들의 자만들이 한데 어우러져 피의 바다를 연출하게 된다. 죄수들은 대미굴(던전)에 잠입하게 된다. 대미굴은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다. 그래서 추격자들을 뿌리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많은 죄수들이 대미굴로 잠입하게 되고 주인공의 앞 길을 막게 된다. "마수 소녀, 아라네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주인공은 이런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미굴은 강력한 마수로 인해 만만한 곳이 아니다. 거기에 흉악범들까지 득실 거리게 되었으니 난이도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결국 누군가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착해빠진 주인공은 그걸 돕겠다고 나섰다가 바짓가랑이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또다시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윌'은 교도소의 '개'이자 탈주한 죄인들을 잡아 죽이는 [처형인] '미저리(히로인중 하나)'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미저리와 그녀를 관리 감독하는 간수 '시스카'와 같이 심층을 향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처형인으로서 죄인을 말살하는 미저리를 안내하는 대미굴 가이드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죄수들은 하나같이 살인에 있어서 국보급 실력을 자랑하는 흉악범들이다. 강력한 마수만해도 벅찬데 죄수까지 득시글 거리는 대미굴에서 주인공은 사실 혼자 행동하기엔 제약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미저리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교도소를 탈주한 죄수들의 구구절절한 과거가 드러나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선인지 헷갈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애초에 이렇게 강력한 죄수들을 가둬놓은 감옥은 대체 뭐 하는 곳일까.


그리고 죄수들과 주인공이 가고자 하는 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생겨난다. 어쩌다 주인공이 대미굴로 내려가는 시기와 죄수들이 탈주한 시기가 겹친 것뿐일까? 미저리와 죄수들을 처리하며 조금식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교도소와 국가가 저질렀던 추악한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죄수들이 왜 탈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하는 현실이 들이밀어지면서 결국 악의 관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 윌은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하고, 이 둘(교도소와 아라네아)의 관계는 이어졌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내포하기 시작한다. 심층 영역에 발을 들인 주인공과 미저리에게 들이닥치는 위기. 그리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1년 전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라네아가 등장한다. 대미굴에서 이들은 1년이나 같이 지냈고, 1년 동안 애달프게 연심을 키워갔던 이들의 만남. 인간과 마수의 애틋한 만남. 그러나 세상은 이들을 시기하고, 미저리의 진실이 들이밀어진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살아왔던 '미저리'와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지키려 애쓰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구해주고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의 만남. 일그러진 이 만남의 결과는 파국뿐이다. 미저리는 교도소의 '개'다. 교도소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원한다. 심층에서 홀로 지내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아라네아. 하지만 아라네아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순수한 감정을 가졌다. 주인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순진무구한 소녀. 그녀에게 홀딱 빠지게 된 소년은 그녀를 구하기로 한다 한다. 1년 전에는 못했던 일그의 앞을 가로막는 미저리는 누구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그녀 또한 순수한 감정을 타고났다. 주인공 윌과 짧은 시간이나마 대미굴을 탐험하며 유대를 쌓았다. 하지만 교도소의 명령을 들어야만 하는 그녀는 주인공 윌에게 칼을 들이밀 수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은 교도소의 개 미저리를 상대로 마수 소녀 아라네아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에서 포인트는 마수 소녀 아라네아와 주인공 윌의 관계다. 2년 전 심층에서 동료들을 잃고 빈사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준 아라네아와 그로부터 1년간 같이 지내며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을 같이 했던 이들이 1년 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 그리고 다시 만나는 애틋한 이야기.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깨부수려는 미저리의 난입은 흥미진진하기에 이를 데 없다. 아라네아보다 더 강한 미저리를 상대로 주인공 윌이 아라네아를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미저리와 윌의 관계는 그저 고용인과 피고용인일 뿐이라고 이야기 내내 표현이 된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고 태어나서도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미저리의 과거는 또 한 명의 '마수 소녀'를 만들게 된다. 즉, 순수함은 아라네아 못지않다. 그런 사람을 죽이는 삶 밖에 없는 길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주인공의 또 다른 몸부림은 아라네아와의 관계와 더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맺으며: 작가가 후기에서 다음 권에서 만나요 하는 걸 보면 2권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표지에 1권이라는 글이 없는 걸로 보아 단권으로 끝 날 거 같다. 아무튼 이 작품은 뼈와 살이 분리되는 호러물이다. 사람 몸이 잘리고 내장이 흩날리는 고어라고 할까.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친구가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의 아라네아를 잊지 못해 다시 대미굴로 발을 들이는 로맨스이기도 하다아라네아의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작가의 표현력이 좋아 흉악한 마수로서와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어서 기억에 잘 남는 편이다. 주인공은 힘은 없으면서 정의감은 강해 언제나 고생하는 타입이랄까. 하지만 여느 하렘 작품과 다르게 아라네아 일편단심이라는 모습을 보인다. 죄수들과 마수들은 견우와 직녀처럼 이들을 갈라놓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뛰어넘어 좋아하는 소녀에게 달려가는 주인공이라는 이야기. 감수성이 뛰어난 분들이라면 감정이입하기에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뿐인 조금은 식상하고 클리셰적인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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