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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소녀의 살아가는 길 3 - S Novel+
사토 마토 지음, 니리츠 그림,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5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2권 이후 오랜만이라 다시 설정을 설명할까 했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생략하고, 대신 이번 분기에서 애니메이션화되어 방영되고 있으니 그쪽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3권은 2권에서 간신히 물러나게 한 4대 인재(人災) '만마전'과 더불어 최악의 인재로 일컬어지는 '꼭두각시 세상 [그릇]'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여주 '메노우(이하 여주)'는 '아카리(히로인)'를 죽이기 위해 소금검(劍)을 찾아 지금은 멸망해버린 서쪽 소금 대륙으로 발길을 서두르고 있으나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며 그녀의 발을 붙잡기만 합니다. 이번엔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아카리'가 납치되어 버리고 찾으러 갔더니 어릴 적, 같은 수도원에서 자란 '사하라(히로인)'도 붙잡혀 있지 뭡니까. 그래서 구출하여 대리고 나왔더니 하는 말이 '나를 처형해 줘', 뜬금없던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이 이번 3권의 핵심이 됩니다.라고 했지만 리뷰에선 많이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측은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도 그럴게 이세계 전이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세계로 전이 당하거나 차원의 틈에 끼여 이세계로 끌려 들어간 것도 모자라 낯선 환경에 놓여 천애 고아나 다름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되니까요. 그 고통은 얼마나 클지는 가늠할 수가 없죠.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애틋한 마음을 안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발현된 능력을 쓰다 보면 망가지는 건 자신. 능력 발현의 반동으로 기억을 잃고 있을 자리를 잃고, 인간성을 잃고 껍데기만 남아 능력의 그릇이 되어 폭주하고 위험시 되어 배척 당한 끝에 살해당하는 미래밖에 없는 지구인. 1천 년 전 이세계 전이로 이 세계에 도착한 지구인 4명(5명)에 의해 이세계의 문명은 붕괴하였고, 간신히 문명을 재구축한 이세계인에게 지구인들은 제일 먼저 없애야 될 적일 뿐이죠. 그 선봉이 여주 같은 처형인. '아카리'는 지구인이고, 여주는 자신의 본분에 따라 아카리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런 여행이긴 한데, 보통 이런 여행에 있어서 결국 클리셰가 되는 건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서로의 마음이 통해버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건 처형인이 본분을 잊고 죄수에게 정을 느끼게 되어 보호하게 되는 시추에이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이런 행위가 배신이 되고 이단이 되어 이세계는 여주를 죽이려 들죠. 그러고 보니 마법 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내 능력은 시간 회귀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아 있는 시간대로 넘어가 상황을 재구축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카리'의 능력은 시간 회귀이고, 그녀에게 있어서 여주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1~2권에서 아카리는 몇 번이나 마마마의 '호무라'처럼 시간 회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복선이 투하되었고, 3권에서 회수되며 여주가 아카리를 죽이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아카리가 여주를 살리기 위한 여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 회귀는 천하무적 만능은 아니었고, 회귀할수록 인과 관계가 틀어져 내가(아카리) 알고 있는 미래와 어긋나는 등, 그로 인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해서 4대 인재 '만마전'의 봉인이 풀린다거나, 사실 2권에서 어떻게 '만마전'의 봉인이 풀려 그녀가 인간계로 나올 수 있었나를 곱씹어 보면 이번 3권에서 아카리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이 부분은 2권에서 언급이 되었는지 지금에서야 기억은 안 납니다만. 여주는 아마도 모르고 있고, 물러나게는 했지만 여전히 인간계에 있는 만마전은 겉모습이 어린 소녀라도 인간성을 잃은 그녀에게 있어서 세상은 어찌 되어도 좋은 상황이죠. 비단 만마전만이 아니라 나머지 3대 인재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그래서 여주에게 빨리 아카리를 죽이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보호하고 세상과 맞설 건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합니다.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카리는 알고 있습니다.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을 정면으로 비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이세계로 넘어와 치트를 받고 능력을 구사하는데도 몸에 무리가 안 가나? 같은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거든요. 모든 행위에는 댓가가 따르기 마련이라는걸, 엔터테인먼트에 비유하자면 강철의 연금술사가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등가교환이라고, 불을 때는데도 볼 쏘시개와 발화체가 필요하듯 능력을 쓰는 데 있어서 단순히 마력만이 아닌 무언가, 대포를 쏘는데 포탄도 포탄이지만 추진 화약도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죠. 이 작품에서 댓가는 기억이고 기억이 소실되면 인간성을 잃게 된다는 다소 시리어스적인 설정을 잡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인간성을 잃게 된다는 건 트리거가 잡아 당겨진 채 고장 난 총알이 가득 찬 총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세계인들은 지구인을 척결 대상으로 보고 있고, 여주는 그런 일을 하고 있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표면적보다는 내면적으로 들어가 보면, 오히려 이세계인들이 지구인들을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등 피해자는 이세계인들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지구인들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새로 등장하는 '사하라(히로인)'의 '나를 처형해 줘'는 3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것도 수도녀라면 궁극의 목표인 처형인으로서 잘나가는 여주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클리셰 범주에 들어가서 언급 안 하려 했습니다만, 처형인으로서 주변의 인정을 받고 있는 여주가 못마땅한,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나는 도달하지 못한 결승점. 현실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저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는데 같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거라는 걸 표현한 게 아닐까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노력을 통해 저 자리를 꿰찰 것인지 질투에 사로잡혀 눈이 멀 것인지는 본인 행동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카리가 여주에게 보내는 감정은 순애라 할 수 있고, 그동안 리뷰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주 보좌관인 모모가 이번 3권에서 여주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이라 할 수 있었군요. 여주를 위해서라면 방해되는 건 무엇이 되었든 목숨까지 바쳐서 없애려 드는 광기는 솔직히 좀 발암이긴 합니다만. 여주를 위한다는 합리적인 부분도 있어서 미워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3권 히로인 사하라가 보여주는 여주에 대한 집착은 결국 언니의 뒤를 쫓아 똑같은 길을 걷고 싶었던 동생의 감정과도 비슷했습니다. 또는 언니만 부모에게 이쁨 받는다는 질투에 언니만 사라지면 내가 이쁨을 받을 텐데 같은 일그러진 애정을 보여줬다고 할까요. 그래서 금기된 능력에 손을 대고, 결국 말로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이런 식으로 이 작품의 인간 관계는 좀 특이하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