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위치 3 - 침묵의 마녀의 비밀, ROSY
이소라 마츠리 지음, 후지미 난나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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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3권을 다 읽고 느낀 점은, 여주 '모니카(이하 여주 혹은 그녀)'를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결계의 마술사 '루이스 밀러'는 아마 곱게 죽지 못 하겠다였군요. 여주가 어릴 적, 그녀의 아버지가 금기를 범했다며 화형 시킨 자들, 시키라고 광분한 사람들, 그녀에게 학대를 일삼았던 삼촌, 학원에서 그녀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괴롭힘을 자행했던 귀족 학생들, 그녀가 칠현인이 되던 날 자신을 배신했다며 매도의 말을 쏟아냈던 친구.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그녀를 후천적 대인 기피증으로 만들었습니다. 친구의 매도의 말에 섞여 있었던 대로 그녀는 산속 오두막에 숨어살기로 했죠. 그런 그녀를 끄집어 내어 억지로 제2왕자의 호위로 붙인 '루이스'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번 3권 후반을 보면 그는 그녀의 가정사를 비롯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듯했습니다. 이런 그라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면서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죠. 그녀는 "인간을 무서워하기에 무자비해질 수 있다, 생각 이상으로 뒤틀렸고 무감정한 마녀다".

이번 3권에서 if 하나가 던져집니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생활에 대한 내공을 키우고, 자신의 전문분야(수학과 마법)의 경험을 축적한다면? 당대 내로라하는 학원 3곳이 체스 대회를 엽니다. 그녀는 선수로 선발되죠. 당연히 극도의 낯가림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만 발버둥 처봐야 자중하지 않고 실력을 뽐낸 죄를 치러야만 하죠. 그녀는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쥡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학생회 동료의 독백이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녀는 낭비 없는 수를 두고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자비하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게 될 때, 그녀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학생회 동료 왈: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것이다. 루이스는 이런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봤기에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것일까. 이놈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입니다.

2권 리뷰에 어느 분이 댓글로 제2왕자의 복선에 대해 알려 주셨는데, 사실 제2왕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필자였지만 말씀을 듣고 복선을 찾아봤습니다. 3권을 읽기 전이었던지라 꽤나 충격을 받았군요. 덕분에 3권에서 제2왕자에 대한 복선이 더욱 두드러지게 알게 되어서 중화되었긴 합니다만. 본편에서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섣불리 언급은 안 하겠습니다. 이걸 빼고 작중 상황을 보자면, 정치적으로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크록포드 공작'이 있다는 것이고, 제2왕자는 공작의 외손자라는 것이죠. 공작은 손자를 차기 왕으로 만들어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중이고, 이걸 막으려는 불순분자들이 암살을 시도 중입니다. 여주는 왕자를 호위 중이고요. 그러다 2권에서 제2왕자의 암살을 저지했을 때 공작의 꿍꿍이도 일부 밝혀집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여주 모니카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제2왕자의 편에 서게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인기피증은 조금씩 치료가 되는 중이죠. 친구는 나날이 늘어가고, 윽박지르던 학생회 동료들은 어느새 그녀를 새침하게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드레스를 챙겨주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고, 괴롭힘 당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 여주를 감싸주는 일이 늘었습니다. 자기주장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유도된 것이지만 제2왕자와 축제에 가기 위한 잠행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줍니다. 어느새 형태를 가지지 못했던 말이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친구들 한정이지만 이제 낯가림도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동인지 제2왕자에 대한 암살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그에 대처할수록 그녀의 정체는 발각될 위기에 빠져가죠. 이번 3권에서는 이전 학원에서 여주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던 옛 친구가 등장하여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는 바람에 그녀는 더욱 위기에 빠집니다. 그녀의 정체가 칠현인이라는 게 발각되면 더 이상 왕자 호위는 할 수 없게 되니까요.

친구를, 우정을 소중히.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괴로움, 친구가 암살에 연루되어 잡혀갔을 때의 안타까움과 내막을 알리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 남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여주는 끝끝내 오열하고 말았죠. 남들에게 괴롭힘 당해도 내가 못나서 그렇다는 소심함, 상대가 날 속여도 내가 똑 부러지지 않았기에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비굴함, 이 작품은 속이는 사람이 나쁜가, 속는 사람이 잘못인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그렇기에 집착을 보인 끝에 매도의 말을 퍼부어 여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옛 친구를 이번 체스 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여주는 때때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매도의 말을 퍼붓는데 왜 되받아치지 못하는가. 그녀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믿어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보상받지 못하고, 체스 대회에서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발라 버리죠.

별을 읽는 마녀는 3권을 기점으로 그녀의 운명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주변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제2왕자에 대한 암살의 수위는 더욱 높아집니다. 축제 때 주지육림(이게 압권이란 말이죠.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을 즐기며 이제 낯가림하지 않게 된 왕자와 접점을 크게 만들어버린 그녀가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서게 될까. 공작은 손자의 목숨 따위 게이치 않으려 합니다. 왕자는 정해진 자신의 미래를 부수기 위해 무언갈 준비 중에 있죠. 어떻게 보면 학대받던 여주가 개천에서 용이 나듯 신데렐라 계열을 표방하고 있으나 세계가 요동치는 혼돈 속에서, 만약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여주가 대인 기피증을 고쳤을 때의 폭발력은,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재주가 좋습니다.

맺으며: 뭔가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주의 사역마 네로(고양이)와 루이스의 계약 정령 린의 개그 코미디가 자칫 짓눌릴 거 같은 내용을 밝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들이라는 역설적인 면도 보여줍니다. 학대받았던 아이가 비굴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몰입감이 꽤 높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자기 잘못인 양.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은 학대의 반동이겠지요. 이런 모습들을 매우 안타깝게 비춥니다. 그렇다고 학대의 주범들이 처벌을 받느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더욱 현실미를 띕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상당히 궁금해지는 작품이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 경험을 더욱 쌓게 되어 자신을 괴롭히고 나아가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하게 될지. 그 편린이 이번 체스 대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밟아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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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의 버퍼 화술사인 나는 세계 최강 클랜을 이끈다 1 - S Novel+
쟈키 지음, fame 그림, 박정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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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벌써 3권까지 나와 있으니 신작 아닌 신작입니다. 세계관은 '보이드'라는 이계와 연결된 판타지 세계로서 그 연결로 인해 세계 곳곳에 어비스라 불리는 침식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비스트라는 마물이 등장하여 인류를 위협하는 세상입니다. 어비스를 정화하려면 그 중심에 있는 로드(대충 보스급)를 물리쳐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게 '시커(대충 모험가)'입니다. 시커는 모험가처럼 직업군이 있는데 그중에서 전사를 제1로 쳐주며 검사 등 나름대로 쓸만한 직업군이 존재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이유는 대충 눈치 해셨겠지만 주인공은 그 직업군 중에 가장 쓸모없다는 [화술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술사는 '화술'에서 의미하는 것 그대로 쉽게 말해서 말빨로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버프를 걸어 능력치를 올려주는 역할이죠.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직업일 수 있으나 힐러보다도 못한 방어력에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도 못하는 주제에 지켜줘야 하는지라 한마디로 짐짝 취급 당하기 일 수입니다.

주인공은 당대 최강이자 시커의 정점에 올랐던 할아버지의, 최강이 되라는 유지를 받들어 세계 최강이 되고자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쓰레기 취급받는 화술사란 말이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주인공을 특수부대 뺨칠 정도로 혹사 시켜 대인전(1 : 다수 포함)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얕보이지 말라"는 유언도 남깁니다. 그러나 이 유언으로 인해 손자의 성격이 파탄 날 거라는 건 그땐 예상 못 했겠죠. 어비스화된 마을에서 로드를 쓰러트리다 동귀어진하여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품에 안고서 유일하게 남은 혈육(부모는 일찍이 사고로 사망)이자 부모 대신 길러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주인공이 지키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최강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만큼은 진짜 눈물 날 만큼 흥미로우나 얕보이지 말라는 말까지 충실히 지키려 하는 주인공은 조금이라도 얕보였다 생각되면 1년 넘게 같이 지낸 동료라도 죽여버릴지도 모를 냉혹한 성격이 되어 버렸죠.

냉혹함이야 몸뚱아리 하나로 마물과 싸워야 하니 냉혹해질 수밖에 없다곤 치더라도요. 문제는 주인공 성격입니다. 언쟁을 벌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보다 어린애 떼쟁이 같은 비아냥을 내뱉고, 행색이 꾀죄죄하다고 사회 낙오자로 깔보고, 실력이 자기보다 아래라 여겨지면 얕보고, 자기가 당하면 몇 배로 되갚아줄 일을 주인공은 서슴없이 해대죠. 동료와의 의견 조율에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기 보다 내 말을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식. 그러다 자기 말 안 들어주면 파티에서 빠지겠다는 협박. 사실 이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노골적인 주인공 보정, 이런 성격 파탄자라도 정의는 주인공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성격을 덮어줄 소재로, 작가는 그의 동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게 함으로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철퇴를 내리게 하죠. 그리고 마을 촌장을 거짓말 좀 했다고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눈을 파내버리는 행위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촌장 사건은 후반에도 이어지는데, 결국 주인공은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촌장의 재산을 몰수했고, 그러해서 빚을 못 갚은 촌장은 사채꾼에게 끔찍하게 죽어야만 했죠. 거기에 그 촌장의 어린 딸까지 사채꾼들에게 희생되었는데도 주인공은 일말의 가책도 없습니다. 필자가 살다 살다 이런 뭐 같은 주인공은 처음이군요. 물론 촌장이 주인공에게 거짓말을 했고(하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헤쳐나가지 못할 거짓말은 아니었음), 사채꾼에게도 중상모략은 했을지언정 그것조차 뛰어넘지 못할 주인공은 아니었단 말이죠. 결국은 얕보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은 손자의 성격을 파탄 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하나 남은 파티원은 시커에 염증을 느끼고 탈퇴해서 고향으로 가버렸고, 동료를 노예로 팔아버린 극악무도한 (위 철퇴 내린 대목) 놈으로 찍혀 주변은 그와의 접점을 피하는 지경까지 왔는데도 되레 그들을 폄하하기 바쁩니다. 동료 모은다는 공고를 내놨지만 누구 하나 거들더도 안 보죠.

...까지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고, 결국 읽다 보면 주인공이 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클리셰이긴 합니다만, 얕보이지 말라는 의미는 주인공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작중 현실에서 찾아야만 하죠. 본 작품은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동화가 절대 아닙니다. 강x과 음습한 괴롭힘과 살인이 횡행하고, 어떻게 하면 상대 뒤통수 칠 수 있을까 같은 약육강식 같은 세상이죠. 여자를 납치해와서 아이를 낳게 하는 등 상당히 다크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자신의 실력을 보충하려 정보꾼에게서 정보를 모아 대처하고, 대처 불가능일 때는 폭력단(조폭)을 끌어들이는 걸 마다하지 않죠. 주변을 얕보는 것도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휘어잡지 않으면 먹히기 때문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얕보이면 끝이라는 강박증 비슷한 걸 보여준다도 할까요. 불쌍하기도 하지만 표현 방식이 철저한 일방통행식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상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맺으며: 그렇다곤 해도 도가 지나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최강이 되기 위해선 누구라도 이용하려 들죠. 동료의 마음조차 하찮게 여깁니다. 그렇다 보니 주변은 주인공을 외면하고, 결국 동료로 들어오는 건 어딘가 망가진 캐릭터일 수밖에 없게 되죠. 하지만 요기서도 짜증 나는 게 결국은 주인공은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나쁜 짓 한 동료를 노예로 파는 부분에서 동료가 왜 나쁜 짓을 했는지에 따른 근원을 없애기보다는 그냥 동료가 나쁜 짓을 했으니 너, 노예 이러니까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을 폄하하고 깎아내리고, 자신이 그렇게 당하면 무슨 일이 있어서 반드시 죽이려 드는 주인공이 제정신인가 싶더라고요. 19금 빠진 회복술사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결국은 회복술사처럼 동료로 들어오는 건 머리가 불쌍한 캐릭터뿐이죠. 그리고 더 참지 못하는 건, 이런 주인공이라도 히로인들이 들러붙는다는 것이고, 마치 그의 내면은 착해빠진 소년이라는 것처럼 행동하니 이질감이 장난 아닙니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복선을 밑바탕에 깔고는 있습니다. 세상이 썩었고, 믿을 놈 없는 세상이자 눈뜨고 코베이는 세계니까요. 그런데 평상시에는 애들에게도 거지에게도 자상한 일면을 보여줍니다. 도시에 안 좋은 약이 퍼질 때 신경 써주고, 결국 그 근원을 뽑아 버리기도 해서 정의의 편인건 맞습니다. 라는게 주인공 보정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그런데 첫인상이 성격 파탄자로 각인되다 보니 끝까지 색안경 끼고 보게 되더군요. 어느 등장인물이 이런 표현을 합니다. "자비 없고 교활한 놈". 주변에서 욕먹는 최흉이 되더라도 최강이 되어 주겠다는 게 주인공의 마인드죠. 사실 이때까지 이런 주인공은 못 만나온 주인공으로서 짜증도 짜증이지만 나름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죠. 정상적인 사람들은 주인공을 외면하고(물론 여관 주인이나 상점 주인은 잘 대해주지만), 결국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어딘가 불편하고(주로 머리가) 사회에서 동떨어진 사람밖에 없거든요. 일단 2권까지 보고 계속 볼지 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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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 여신의 화신 4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정규 옮김 / 길찾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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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베로니카(현 영주의 어머니, 마인의 약혼자 빌프리트에겐 할머니)'가 실각하면서 세를 잃었던 베로니카 파벌이 또다시 암약하며 위험한 존재로 부각되자 영주(마인의 양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너 님들 숙청." 결국 겨울이 시작되기 전 베로니카 파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집니다. 본 작품은 제목과 다르게 계층 간 위계질서가 철저히 지켜지는 중세 시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너, 역모 꾸몄지?라는 의심만 받아도 그걸로 가문은 끝이 나는 세상이죠. 친족도, 이복 가정도 예외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베로니카 파벌은 연좌제까지 덮어써서 영지 귀족 태반이 갈려 나가버립니다. 여기서 극단적이라는 표현을 한 이유를 써보자면, 영지 중추를 보살피는 문관들과 자신들(영주 일족 등등)을 지켜주는 호위 기사들까지 연좌제로 다 갈아 버리면서 영지 운영은 사면초가에 빠지고, 영주 일족은 호위해 줄 기사가 없어서 성(城)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 영주는 베로니카의 아들이고, 그 아들인 빌프리트는 손자라는 것인데요. 연좌제까지 해서 베로니카 파벌을 다 쓸어버렸는데 정작 자신들은 무사? 베로니카 파벌이 숙청되면서 그동안 탄압받아왔던 라이제강계 귀족들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득세하기 시작했다.라고 하면 현 영주가 맞닥트릴 정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상이 될 테죠. 자신들을 탄압하고 못살게 굴던 베로니카 파벌이 없어졌으니 이제 베로니카의 피를 이은 현 영주와 차기 영주 후보인 '빌프리트'가 곱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라이제강계의 피를 잇고 있는(그렇게 조작됨) '마인'을 '차기 영주'로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이렇게 상황이 험악하게 흘러가면서 마인의 조카(공식 친가족인 오빠의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양어머니가 회임을 했는데도 발표를 못하는 지경까지 오게 됩니다. 참고로 마인의 조카를 낳은 엄마(마인에겐 새언니)는 아렌스바흐(베로니카 파벌) 출신이고, 양어머니는 영지 상황상...

이번 5부 4권에서는 그래서 차기 영주 후보이자 베로니카 피를 이은 빌프리트를 암살해서라도 마인을 영주로 옹립 시키겠다는 라이제강계 귀족들을 어찌해야 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또 베로니카 파벌의 꼬드김에 넘어간 듯한 빌프리트의 폭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베로니카 파벌을 숙청하면서 일손이 부족해지고, 출신 때문에 라이제강계에 큰 소리를 못 치는 영주와 빌프리트는 그들에게 마구 휘둘리기만 하죠. 나아가 영주의 가족들을 흔들어 분열 시키고 대립하게 하려는 획책까지 꾸며지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되는 상황까지 오고 맙니다. 사실 마인에게 있어서 책과 도서실만 무사하면 이런 정치 싸움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책이 있는 신전 노래를 해서 약간 발암. 그러나 라이제강계의 입김으로 그동안 귀족원에서 영지 순위를 올리고 성적을 올리던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신전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책과 도서실에 빠져 살고 싶었던 자신을 자꾸 꼬드겨 영주가 되라고 하니 슬슬 빡침이 몰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죠.

그런 와중에 빌프리트는 결국 사춘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출생을 알고 있던 그는 한때 정신 차리고 영주 후보라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 숙청으로 인해 차기 영주로서 가치를 증명하라는 라이제강계 귀족들이 낸 숙제 때문에 결국 마음에 병이 생기고 맙니다. 애초에 1차원적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속 깊은 마음을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베로니카(할머니)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가정교육을 못 받아 마인과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죠. 그래도 마인과 지내며 어느 정도 교육이 되어 인간다운 모습을 갖춰 갔으나 근본이 베로니카에 물들어 있다 보니 생각도 그러한 경향이 많았죠. 측근들도 베로니카 파벌 위주였고요. 그래서 숙청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는데, 결국 꼬드김에 넘어가 라이제강계 귀족들이 바라는 가족들 간 불화를 일으키고, 그럴수록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할머니가 했던 폐악질을 저지르기 시작하죠. 결국 마인이 자신을 안 도와줘서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헛소리까지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맺으며: 이번에 의미를 가지는 큰 복선이 두 개 나왔습니다. 중대 스포일러가 언급은 힘들지만, 마인이 자신의 약혼자인 빌프리트보다 페르디난드를 더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엎드려 절받듯 줄기차게 요구하여 쟁취한 칭찬의 말(마술구에 녹음된 것)을 듣는 마인의 일러스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아무튼 여전히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마인의 행동 때문에 주변이 골치 아파지고, 자신이 일을 저질러 놓고 남에게 떠넘기는 파렴치도 여전합니다. 세치 혀로 상대방을 구슬리는데 거기에 넘어갈 어른들이 아니지만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들이 흥미 포인트죠. 뒤치다꺼리는 언제나 어른들의 몫. 그런 와중에 마인이 벌이는 사업은 척척 진행되어 갑니다. 마인이 오랜만에 진짜 친가족을 만나는 장면은 약간 뭉클하게도 하고요. 그러나 여전히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는 애틋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지를 이만큼이나 이끌어주고 잘 살게 해주었더니 악담이나 퍼붓는 빌프리트는 스스로 무덤을 파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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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드 월드 4 - 현세계와 구세계의 투쟁, Novel Engine
나후세 지음, 긴 그림, JYH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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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판타지에서 으레 등장하는 던전의 입장이 되어 보자. 오랜 시간을 거쳐 던전을 생성하고 몬스터를 배치하고, 보물 상자도 이곳저곳 배치하는 등, 집 인테리어 꾸미듯 이제 좀 아가 자기 하게 꾸며 놨더니 이넘의 인간들이 쳐들어와서 몬스터를 다 죽이고 보물 상자도 다 쓸어가네? 던전을 인간들의 세계로 빗대어 보자면 던전은 도시이고, 몬스터는 시민이고, 보물 상자는 인테리어쯤? 인간도 보석을 인테리어나 액세서리로 사용하잖아요. 자, 이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악은 과연 누구일까. 이기는 놈이 장땡? 던전 마스터 입장에서 침략자(인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쎈 몬스터를 배치하고, 던전 구조를 복잡하게 하는 등 난이도를 올리면 되나? 그럴수록 인간도 더 강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던전 마스터는 생각합니다. 독은 독으로 없애면 되지 않을까?

3권에서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정도로 무지막지한 보스급 몬스터를 처치하고 일확천금을 손에 넣은 주인공은 치료하고 무장하는데 돈이 다 나가버렸습니다. 그래도 뭐 그동안의 활약으로 살 집도 구했고, 굶어 죽을 일도 없게 되었으니 만족해야겠죠. 하지만 앞으로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헌터 일을 해야 하고, 경쟁이 심한 이 업계에서 남들이 가는 유적에 가봐야 얻는 건 푼돈. 그래서 미발견 유적이나 구역을 찾아 오늘도 열심히 황야를 달립니다. 기기를 이용해 마치 포켓몬 GO를 하듯 미발견 유적을 찾아다니기는 하는데 이게 쉽게 발견될 리가 없죠. 그러던 어느 날 미발견 유적을 찾던 중 두 명의 여성 헌터와 조우하는 주인공, 오늘의 이야기는 뒤처리를 확실하게 하자, 던전의 입장이 되어 보자, 사람을 의심하자, 나쁜 사람은 때려주자. 참고로 주인공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두 명의 여성 헌터는 지도상(廂)으로 유적의 구조를 파악해 지도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죠. 캐럴과 모니카. <- 이 두 명이 이번 4번의 메인 히로인이 되겠는데, 그러해서 스포일러를 어디까지 해야 될지 난감하다고 할까요. 일단 캐럴은 주인공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위험한 유적을 돌파하는 입장이고, 모니카는 어째선지 그 주변을 맴돌다 실종된 후 구조대에 의해 구출이 되죠. 아무튼 작가는 전재를 미리 깔아 둡니다. 흔히 판타지에서 던전에 비유할 수 있는 유적의 입장에서는 유적을 지키는 기계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보물 상자에 비유할 수 있는 유물을 훔쳐 가는 인간은 도적인가? 아닌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걸 주인공과 캐럴의 시각으로 풀어놓습니다. 근데 사실 주인공과 캐럴은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자기들 태어나기 이전부터 유적이 있었고 유물을 수집해왔으니까요.

유적은 멸망한 구시대 도시를 말하는 것이고, 유물은 그 구시대를 풍미했던 물건들이죠. 그리고 구시대 인간들은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 방위 기계들을 만들었습니다. 구시대 인간이 멸종하고도 기계는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충실히 하기 위해 이제는 유적이 된 도시를 방어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번영을 이룬 인간들은 다시 옛 영광을 위해 유적에서 유물을 찾아다닙니다. 당연히 유적을 지키던 기계들은 침입한 인간들을 도적으로 간주하고 제거에 나서게 되죠. 자, 그러면 누가 나쁜 것인가. 사실 본 작품에서는 누가 악이고, 나쁘다는 설정도 없고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저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기계는 명령에 충실히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뿐이죠. 하지만 갈수록 인간의 세가 불어나고 무기가 진화하면서 유적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학습을 통해 인간들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그게 이번 4권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독으로 규정한 유적 시스템이 독을 없애려면 같은 독을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리죠. 그리고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이 일은, 유적 시스템이 상정한 그대로 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일행도 휘말려서 이번에야말로 그동안의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위협과 마주하게 되고요. 자, 경쟁 관계라도 돈을 내면 의뢰를 들어주는 헌터들의 세계에서 의뢰를 받아 조난당한 헌터들을 구하기 위해 파견 나갔는데 그게 함정이라면? 구조 현장에 도착해 있어야 할 헌터들은 보이지 않고, 핏자국만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데도 구조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상황을 주인공 일행을 이용해 SF 공포물처럼 풀어놓는 작가의 능력에 제법 좋습니다.

그리고 마주합니다.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0과 1밖에 모르는 유적 시스템이 어떤 학습을 했으면 헌터를 고용해 헌터들을 몰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헌터는 주인공 일행이 잘 아는 인물? 그렇기에 방심했고, 알던 사람이이기에 위화감을 알게 되어 순간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은 몰입감 최상이었군요.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복선을 깔고, 알기 쉽게 풀어 놓아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만, 이런 점은 오히려 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어 읽기 쉽게 해주는 요소가 아닌가 했습니다. 자, 유적은 도적(인간)을 퇴치하려 하고, 인간은 살기 위해 유물을 강탈하려 합니다. 선악의 구분을 선을 그어 딱 매듭을 짓는 게 아닌, 서로가 사활을 걸고 미래를 지키려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인간미가 넘친다고 할까요.

맺으며: 사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 같은 느낌이 없지는 않습니다. 선한 이미지였던 사람이 사실은 악당이었고, 주인공 일행은 속았다. 함정에 빠지고 나서야 깨닫고, 그 함정을 돌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 끝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지만 군더더기 없이, 복잡함 없이 풀어내고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롭긴 합니다. 그리고 캐럴과 같이 다니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그녀와 마음을 트는 장면도 흥미롭죠. 주인공은 살아온 환경 탓에 자기 이외에는 무관심하고 타인을 신뢰하지 않아 타인과의 교류를 피하던 주인공이 어째서 캐럴과는 죽이 잘 맞는가 하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게 좀 흥미로운데, 어떤 트러블에서 캐럴이 주인공을 달래는 장면이 있습니다. 캐럴은 생긴 거와는 반대로 어머니와 같이 자상하게 주인공을 달래죠. 주인공은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이때 주인공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고 할까요. 아닌 게 아니라 캐럴은 늘 주인공 뒤에서 받쳐주듯 행동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캐럴이 판타지의 성녀 같은 이미지인가? 라면 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살기 위해 자신의 가치(미모)를 100% 살려 살아가고 있죠.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세계에서 여자 혼자 살아가려면 어떤 일도 마다하면 안 되는 비참함도 좀 섞여 있습니다. 아무튼 주인공의 내비게이터 알파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더 밝혀집니다. 아직은 주인공을 이용해 무엇을 하려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요. 사실은 그 연장선을 이번 4권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유적 시스템에 고용된 헌터라 할 수 있습니다. 알파는 구시대 유물의 시스템 중 하나거든요. 그 알파의 서포트를 받아 날로 강해지는 주인공이지만, 그 알파가 없어졌을 때 주인공은 어떤 일을 당하나 같은 것도 보여주기에 이번 4권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습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아무렇지 않게 기계 몬스터를 쓰러트려가는 주인공을 보고 신인 헌터들이 자극받아 강해지려는 것도 흥미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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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12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김예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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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뭔가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 시찰 명목으로 서도에 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도적들의 습격도 받고,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는 영주와 기싸움도 하고, 황해(메뚜기 떼) 재난을 예견한 '마오마오'가 동분서주하며 재난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 식량은 궤멸적 상황에 빠지고 말았죠. 아직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라한네 형(마오마오에겐 사촌 오래비쯤)이 주도하는 식량 부활 프로젝트는 근근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서도를 다스리는 영주가 서커스단(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속 사자(호랑이던가)에게 물려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졸지에 '진시'가 사면초가에 빠져가는 형국이 되어 버리는데요. 왕도에서 쩌리로 지내는 왕제(왕의 동생, 진시)가 서도에 와서 영주를 죽이고 자기가 영주가 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중상모략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오마오는 이 멀고 먼 서도에까지 끌려와 여러 사건을 해결하고, 진시를 보살피며 나름 억척스럽게 살아가고는 있었습니다만.

1권부터 마오마오에게 한 가지 따라다니는 게 있습니다. 납치와 감금.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팔려간 끝에 후궁에서 2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했고, 멸망한 줄 알았던 어떤 일족들에게 납치&감금되는 등 그녀의 수난은 끝이 없었죠. 근데 이번 12권에서도 또다시 그녀는 납치&감금되는 사태와 직면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사망한 영주 뒤를 이을 차기 영주 자리를 놓고 집안싸움에 진시와 마오마오는 휘말려 가죠. 당연히 장남이 이으면 되겠지만 자기 멋대로 살겠다고 뛰쳐나간 상태고, 둘째와 셋째는 정치학을 배우지 않아 자격 미달. 딸내미는 논 외. 근데 민심은 장남에게 쏠려 있고, 둘째는 평범남, 셋째는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등 진시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합니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있지만 진시 보고 영주가 되라는 여론도 있어서, 이곳은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던 중 장남이 독화살을 맞는 사건이 터지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다 읽고 나면 별것 아닌 내용들입니다. 근데 별것 아닌 내용이지만 그 과정을 그리며 눈을 못 떼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한데요. 이쯤 서도에 비밀로 이웃 나라 왕자가 망명해오고, 하필 장남이 거기에 관련이 되면서 독화살 맞은 그를 치료한 마오마오 때문에 진시가 이웃 나라 왕자를 납치에 관련된 거 아니냐는 오해를 살 위기에 빠지죠. 마오마오는 진시 직속 시녀(표면상)거든요. 그러니까 장남이 이웃나라 왕자를 납치했고, 그를 마오마오가 치료했으니 그녀를 부하로 부리는 진시도 한 패 아니냐는 누명. 그러던 중 아직 누명 사건을 몰랐던 마오마오는 누군가에게 납치&감금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마오마오를 납치했고, 납치한 이유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누가 진시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가입니다. 사실 작중에서 누가 납치했는지 밝히긴 했습니다만, 작가는 현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보다 무슨 사태가 벌어졌다는 듯 진지하게 만듦으로써 집중력을 높이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킵니다.

이제 문제는 누가 그녀를 왜 감금했느냐겠죠. 그래서 작가는 그 사람(마오마오를 납치한)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오마오를 지키려 납치한 거 아니냐는 추리를 하게 함으로서 집중도를 높이는 재주가 좋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흘러가지만 마오마오에겐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채 그녀(독자 포함)에게 추리를 해보라는 듯한 장면들을 넣어 더욱 집중 시키게 합니다. 이로써 마오마오는 또다시 감금&납치되는 일이 벌어지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끌려가다 산간 오지에서 도적들에게 또 납치되는 수난을 겪게 되죠. 사실 이 작품처럼 여주인공을 험하게 굴리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도적들 마을에서 정조의 위기도 찾아오고 인질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며 나름대로 사태 파악을 하는 등 어쨌거나 살기 위해 노력은 하는데 약과 독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마오마오로서는 진시가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근데 구하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맺으며: 영주의 저택을 밭으로 다 갈아엎어 버리고(정확히는 그리하라고 사주), 온실을 약초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관리인들에게 피눈물 흘리게 하는 마오마오의 만행(?)은 여전합니다. 납치되는 와중에 약초를 던져주자 덥석 물어 버리고, 혹시나 돌림병이 아닐까 실험한다며 양조장 가서 술 퍼먹고 꽐라 되는 등 그녀의 기행 또한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번 12권에서 최대 흥미 포인트를 꼽으라면 죽은 영주의 손녀 '샤오홍'과 마오마오의 관계가 되겠습니다. 이제 7~8살인 샤오홍은 마오마오가 납치될 때 동반 납치되어 고생을 많이 하죠. 엄마에게서 별다른 관심을 못 받는 거 같고, 아빠는 일찍이 사망한 듯해서 정을 갈구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꽤나 안타까운 캐릭터죠. 거기에 원래 소심한 성격으로 영주의 손자(장남 아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고도 이렇다 할 반항조차 못했었던 그 아이가 마오마오와 지내며 강단을 키워 미니 마오마오로 각성해서 그 손자를 혼내주는 장면은 이번 12권에서 최대 백미가 아닐까 했습니다.

12권까지 오면서 마오마오와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캐릭터는 진시를 제외하고 없었는데 샤오홍은 약사 제자로 받아들여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군요. 그만큼 마오마오와 캐미가 잘 맞는다고 할까요. 작가도 그런 복선을 띄웠기도 하고요. 마오마오가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 게 일품이죠. 그러고 보면 의외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다고 할까요. 그녀의 교육방식은 말 안 듣는 아이에겐 주먹이 먼저 나가지만 착한 아이에겐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죠. 처음엔 귀찮아 하면서도 정이 들었는지 서서히 샤오홍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게 나중에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태가 일단락되고 진시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맺어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이전부터 계속 그런 느낌인데). 어쨌거나 서도 편은 이걸로 끝이고 다시 왕도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작가가 인간성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인 12권입니다. 사람에게 가치를 매기고, 그 가치에 따라 배 아파 낳은 자식일지라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다는 냉혹한 인간성을 마오마오 측근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군요. 그에 반해 도적에게 쫓길 때 샤오홍을 버리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는 마오마오의 인간성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놓으니 마오마오 곁에 찰떡같이 붙어 있으려 하고, 미니 마오마오가 되는 샤오홍도 꽤나 인상적이죠. 어쨌거나 영주 자리를 놓고 자중지란을 펼쳤던 집안싸움은 싱겁게 막을 내립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여러 복선을 넣음으로써 누가 범인이고, 이 캐릭터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를 유추하게 하는 능력이 좋아서 결과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중간 과정이 매우 흥미로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후반, 이제 대놓고 손을 잡고 쪽쪽 하는 진시와 마오마오를 보고 있으면 어쨌거나 응원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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