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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언니가 신녀로 거둬지고, 나는 버림받았지만 아마도 내가 신녀다 3 - ROSY
이케나카 오리나 지음, 컷 그림, 송재희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3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여주가 버림받고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주가 처음 다다랐던 수인 마을은 인간들의 습격으로 많은 이가 죽고 많은 이가 노예로 잡혀갔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수인들을 모아 다시 길을 떠난 여주는 엘프의 마을에 도착했지만 그곳의 생활도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죠. 다시 살아남은 엘프들을 모아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실 필자는 본 작품의 제목 때문에 선입견이 좀 있었습니다. 원작의 제목은 "双子の姉が神子として引き取られて, 私は捨てられたけど多分私が神子である"로서 여기서 신자(神子)는 신의 자식을 의미할 테고, 우리나라에 정발 되면서 신녀(神女)가 되었는데, 신녀는 신을 받드는 여인쯤 될 것입니다. 설마 불교에서 출가하지 않은 여인을 뜻하는 信女는 아닐 거잖아요. 어찌 되었든 여주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신(神)에 가까운 존재고, 이 의미에서 찾을 수 있는 일본인들이 우상으로 떠받드는 일본의 신화(아마테라스)가 더해져 마치 일본인들은 특별하다 뭐 그런 느낌이 전해졌었습니다만.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 영웅 '모세'와 비슷한 여정을 그려간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태생은 다르지만, 사람들을 이끌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죠. 여기엔 나와 모습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모아 기나긴 여행길을 떠납니다. 여주가 가진 신의 가호 덕분에 악의를 가진 자(사람이든 마물이든)들에게 위협은 받지 않지만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 않은 건 사실이죠. 아이들도 있고, 노인들도 있고, 악의를 가진 사람은 접근을 하지 못한다지만 이건 여주가 의식(인식)을 하고 있어야 가능하기에 만능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린아이 눈으로 진행되면서 힘든 여정이지만 다들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다른 미개척지 숲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수인이 있고, 엘프가 있고, 적지만 인간들이 있고, 여주와 계약한 마물과 정령이 다투지 않고 어우러 살아가는 마을.
...라고 생각했던 여주는 자신을 저주하게 되는 일과 마주합니다. 그 숲에 이웃 나라에서 박해를 받다 도망쳐 온 어떤 민족을 구해주면서 또다시 인간들에게 악의를 받는 일이 벌어지죠. 그 민족은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여주와 여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일궈놓은 마을을 탐내기 시작하면서 여주는 위기를 맞아갑니다. 여주도 고생을 많이 했기에 여기까지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십분 이해한 여주는 그 민족을 받아들일지 내쫓아야 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일궈 놓은 삶의 터전에 모르는 사람들을 들이는 위험성, 여주의 마을을 빼앗아야 된다는 급진파의 대두, 급기야 인질까지 잡히면서 여주는 사면초가에 빠집니다. 성급하게 그 민족을 위험에서 구해준 여주는 자신의 불찰을 뼈저리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는 선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배워가죠. 그래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모른척해야 했을까 같은 철학적인 물음도 던집니다.
친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은 불러주지 않던 이름,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마물에게 사랑받는 아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거둬지지 않고 밖에서 생활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도 펼쳐집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녀를 거둔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전설과 반대로 가는 상황이 펼쳐지자 결국 국가는 언니가 신녀가 아님을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언니가 특별하니 신녀가 틀림없다며 동생을 버리고 대신전에 들어간 엄마는 병을 앓다 죽은 거 같고, 아버지는 투옥. 그 틈에 왕위를 둘러싼 치졸한 내분이 터지면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된 언니는 그동안 우월감에 젖어 남을 깔보던 생활에서 이제 자신이 업신 여겨지는 상황에 처해집니다.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언니를 사형에 처하고, 진짜 신녀를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에게서 여주는 사람으로 대해지는 것이 아닌 그저 이용하기 좋은 물건에 지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죠. 그래서 여정은 힘들지만 마물과 수인과 엘프들과 같이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맺으며: 신녀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병치레를 막아주고, 풍년을 들게 해주고, 악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죠. 그래서 여주가 떠난 마을은 황폐화가 진행됩니다. 이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범위(기껏해야 나라 한 개 정도)는 그리 넓지 않은 듯합니다. 마법은 배우지만 신벌 같은 건 내리지 않습니다. 신은 존재하지만, 들어내지는 않고요. 그저 모두가 잘 살수 있도록 노력하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을 하는 등 이제 9살이건만 생각은 어른 못지않게 성장해가죠. 다르게 말하면 아이를 이렇게 내모는 주변 상황이 안타깝게 하기도 합니다.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어떤 민족들에 의해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여주의 소망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그 민족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에 구하고 싶은 마음과 마을을 지켜야 된다는, 어떻게 해야 될지 갈등하는 장면들에서는 인생의 교훈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죠. 바란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요.
아무튼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본인들의 신(神)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 가령 우린 신으로 인해 우월하고 특별해 같은 게 이 작품에서도 이어지나 했습니다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신이 언급되지만 어디까지나 제3자 형식의 방관자이고, 신은 인간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지만 간절히 바라면 실낱같은 구원을 내리는 그런 느낌입니다. 오히려 특별하다고 여긴 사람들에겐 좋지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죠. 그 예로 여주의 언니가 차가운 감방에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 가는 장면을 들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설정에 다소 구멍이 보이고 마을 짓는 게 애들 장난도 아닐 텐데 뚝딱 해내는 것에서 현실미가 떨어지지만 특별함이 무엇인지 보여줘서 이것만 놓고 보면 높은 점수를 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