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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소녀의 이력서 1 - Extreme Novel
카라사와 카즈키 지음, 쿠와시마 레인 그림, 한신남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입니다. 여느 전생물과 다름없는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는데요. 다만 주인공은 남주가 아니라 여주의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군요. 이와 유사한 작품을 찾으라면 책벌레의 하극상이 있습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히로인이 전생해서 눈 떠보니 꾀죄죄한 집안의 딸이었고, 살아가기 위해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지혜를 짜내 주변 상황을 개혁하면서 알락 한 삶을 영위한다는, 소환되어 나라를 구하는 게 아닌 자신의 보신을 위해 필사적인 면이 많이 유사합니다.
'료'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부모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두 부모는 외도에 정신이 팔려 딸을 도외시했고 딸은 부모의 관심을 얻고자 필사적으로 공부와 스포츠에 매진하여 전국 상위를 휩쓸었지만 그럴수록, 딸이 커갈수록 부모의 관심은 더욱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 가던 길에 신호를 무시한 차량에 치여 사망하게 되고 눈을 떠보니 판타지에서나 볼 수 있는 산간 개척마을에 위로 오빠가 다섯이나 있는 막내딸로 태어나는 기구한 인생을 맞이합니다.
전생한 집이 워낙 가난하여 엄마는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다 굶어 죽거나 입을 줄이기 위해 팔려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1살 때부터 필사적으로 농지 개혁에 힘을 쓰고 들풀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는 등 나름대로 끙끙대지만 5살이 되던 해에 결국 팔려가고 맙니다. 그 이면에는 마법사와 정령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태어나면서부터 마법사이냐와 아니냐의 따라 왕족도 평민으로 전락할 만큼 절대적인 지배 구조()에서 그녀가 설파한 농지 개혁에 기대어 그녀의 부모가 혹시 딸이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지만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부모는 거리낌 없이 은화 3개에 어느 귀족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료는 전생에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커왔습니다. 전생후 가난한 농부의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나 살고자 필사적으로 농지 개혁을 도모한 건 부모의 관심을 받고자 했던 것도 컸습니다. 이렇게 장한 딸을 봐 달라고, 이뻐 해달라고, 버리지 말아 달라고, 이미 이 당시에 자신 외의 딸(언니)이 팔려갔다는 걸 오빠에게서 들었던지라... 그러나 돌아온 건 무관심과 배신이었습니다. 1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 채 도착한 곳은 어느 귀족 집이었고 거기서 말썽쟁이 아들 앨렌의 시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료의 나이는 5세때의 일 입니다.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온 원흉과도 만났습니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려보내 주겠다는 그것()의 말에 돌아가지 않겠다 했습니다. 돌아가 봐야 자신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기에, 이쪽 세계에서 있을 곳을 만들어 가고 싶었던 료, 전생 17살과 이세계 와서 5살해서 정신적으로 22살이나 된 료는 귀족의 아들인 말썽쟁이 앨렌을 부하로 만들어 버리고 카인(앨렌의 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기가 어쩌면 자신이 있을 자리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상냥한 주인과 말썽쟁이라도 지내보니 정이 많고 순수한 앨렌과 배려심이 많은 카인과 아웅다웅하며 바쁜 나날을 지내며 또다시 버릇처럼 료는 농지개혁을 꿈꾸면서 그녀의 인생은 삐거덕 거리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마법사들이 농지를 돌며 작물을 키우고 거둬들이는데 뭐 하러 나섰던 것일까, 그것은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귀족 아들 둘에게서 자신을 엿봤기 때문일 겁니다. 앨렌과 카인의 어머니는 마법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고 그런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삐뚤어졌던 앨렌, 그래서 자신이 나서면 앨렌의 어머니의 일이 줄어들고 자연히 자식에게 관심이 갈 것이라는 생각에 했던 행동은 부질없다는 것마냥 료의 마음을 후벼파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가지지 못 했던 가족의 따스함을 보게 된 료, 그리고 그녀는 앨렌의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의 성교육()의 재료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궁창 인생도 이럴 순 없을 겁니다.
망설임 없는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팔려온 곳에서는 아들의 성교육 재로에 쓰일뻔했고, 자신을 매입해 데려왔던 앨렌의 삼촌의 구조로 상황이 좀 나아지나 했더니 똑똑한 그녀를 와이프로 맞아들여서 똑똑한 아이 생산에 쓰겠다는 어이상실의 상황에 벌어지는 등 그녀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관심을 받기 위해 저질렀던 농지 개혁에 있습니다. 모난 돌이 징을 맞는다고 주인공 료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살기 위해 저질렀던 선행이 자기 발을 찍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그렇게 앨렌의 삼촌에게 시집가던 날, 이게 또 무슨 불행인지 산적에게 습격을 받아서 납치되어 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때 료의 나이 6세, 부모에게 버림받고 은근히 자신을 상품 이하로만 취급했던 귀족에게 벗어나 산적에게 붙잡혀 이대로 창관에 팔려가 인생이 끝이 날까 했습니다. 이제 6살, 전생의 나이를 합치면 23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사랑이라는걸, 관심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는 료에게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삶이 하필이면 여기서 산적의 무리 속에서 시작됩니다.
이걸 먼치킨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초반 농법을 알고 있는 료에게서 또 다른 먼치킨이 아닐까 했지만 료보다 더 우수한 마법사의 존재로 인해 그녀의 가치는 크게 어필이 되지 않습니다. 젓가락 쥐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사용방법을 알려 준다고 해서 그게 먼치킨이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 신선함에 종교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태어난 마을에서 자신이 설파한 농법에 감화되어 '료교'라는 신흥종교를 창설한 촌장 아들은 웃음을 자아내는군요. 그것도 전국적으로 내로라하는 학자가 된 촌장 아들 덕분에 료는 뜻밖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근거림의 시작, 이때가 료의 나이 8~9살인가 그럴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차별 없이 대해줬던 료를 잊지 못해 얀데레가 되어버린 앨렌으로인해 료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여기서도 아이러니의 연속인데요. 보통 남들은 꺼리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같이 길을 걸어가 주는 히로인에 감복하여 정신을 차리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클리셰를 정면에 대고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에필로그에서 앨렌의 행동을 료가 봤다면 기겁하고도 남았지 않나 싶습니다.
여튼 이계의 마술사의 사쿠야나 책벌레의 하극상의 마인처럼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여 삶의 질을 바꿔가며 자신이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처럼 이 작품의 히로인 료도 뭔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뭔가를 하면 할수록 행복한 게 아닌 하면 할수록 시궁창으로 빠져드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는 것이군요. 그래도 료는 보답을 수 있는가? 아직은 모릅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돌봐주는 사람을 만났지만 료의 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이거든요.
1살짜리가 지혜를 짜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등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픽션에서 고증을 철저히 하라는 건 좀 심한 대우일 테니 너그러이 넘어가기로 하고요. 여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감정이 어두운 쪽으로 치우 처지지 않고 좋게 말하면 모든 걸 긍정적이 되어 아이의 모습이지만 어른으로 있으려는 료, 관심받기 위해 행한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가고, 자신은 얻지 못한 화목한 가정에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그러면서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산적의 무리 속에서 필사적이 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많이 애처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아온의 엘리시제이션의 세계를 보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물고기조차 잡지 못하는 사람들, 마법사가 작물을 키워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생활, 거기에 키리토의 등장으로 세계가 일변하는 것처럼 료의 등장으로 세계가 조금식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스트레스 테스트처럼 뭔가를 소환하려는 그것()으로 인해 머지않은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복선 등 약간은 치밀한 구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료의 마음과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간략하게 갈무리 해놓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군요.
- 1, 지배구조라고 표현 하였지만 딱히 노예 제도나 그런건 아니고 잘 사느냐 못 사느냐로 나뉘게 됨
- 2, 복선 입니다. 아마도 뭔가를 소환하기 위해 실험 형식으로 꾸준히 다른 세계의 사람을 불러 들이고 있나본데 자세한건 나오지 않고 있군요.
- 3, 자료를 놓고 단편적으로 교육 시키는 것이 아닌 실제적으로 그 행위까지 시키는 교육
- 4, 이름이 안나옵니다. 마녀 같기도한데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아 그것으로 지칭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