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 토요일


꿈속에서 이브와 술래잡기를 했다. 이브를 붙잡으려는 순간, 잠이 깼다. 그러면 그렇지, 언감생심 이브는. 시계를 보니 5시다. 앱을 켜고 무주 버스 터미널까지의 거리를 살펴보니 52km에 도보로 14시간 48분 걸린다고 나온다. 이런, 꾸물거릴 시간이 없구나. 벌떡 일어났다. 제반 아침 의식을 마치고 거울을 보며 모자를 썼다. 그런데 거울 한쪽에 수줍은 새색시처럼 붙어있는 뭔가가 있다. 쳐다보고 어이없어 웃었다.


숙박시설 문화시민 에티켓

1. 옆방 손님에게 피해주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2. 혐오스런 옷차림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3.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둡니다.

4. 물과 전기를 아껴 씁니다.

5. 침구 등 물건을 깨끗하게 사용합니다.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대한숙박업중앙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되, 어이없는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본인(숙박업소)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 손님에게만 이것저것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흡사 제5공화국의 모토, ‘정의 사회 구현을 대하는 느낌이다. 가장 비정의적인 정권이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다니, 얼마나 모순되고 웃긴 일이었던가! 그나저나 저 라벨은 2002년에 붙인 것 같다. ‘월드컵시민협의회에서 제공한 걸 보니. 그렇다면 이 모텔의 나이는 최소한 21년이 된다는 것. 모텔이 21년 됐다면, 정말 낙후된 시설이다. 물론 리모델링을 했다면 관계없겠지만,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그간 태초의 천국 에덴이란 이름을 미끼로 얼마나 나같이 어벙한 아담과 이브를 속여왔던 것일까? 에이, 괘씸토다! 출입문을 나서며 침을 퉤퉤 뱉었다(속으로).



오늘은 고통스럽게 많이 걸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니(나왔으니) 당연한 일. 앱을 켜고 읍내를 빠져나가는데, 예의 그 상세한 안내 때문에 또 애를 먹었다. 그런데 또 그놈의 임실이 문제였다. 앱에서 임실 N 치즈피자에서 방향을 틀라고 나왔는데, 영 찾을 수가 없어 엉뚱한 곳으로 갔던 것이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놈의 임실 N 치즈피자를 찾아냈고, 무주 쪽 방향을 잡아 읍내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읍내를 벗어나 뒤돌아보니 아주 쉬운 경로인데, 괜스레 복잡하게 안내하여 헤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과도한 친절은 불친절과 매한가지, 아니 외려 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임실에 대해 불쾌한 말을 했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구사한 표현이니, 임실 관련 분들은 절대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날이 청명하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아침 녘의 잠시 주름졌던 마음이 일거에 펴진다. 역시,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인가보다. 우울증 치료에 햇볕을 쬐라는 처방도 있다던데, 그게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날이 청명해서일까, 신록이 한결 더 싱그러워 보인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자꾸 찍게 된다. (저녁에 가족 단톡방에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딸아이가 감탄사를 댓글로 달았다. 벨기에에 머물고 있는데, 맑은 날 보기가 여기만 못한 것 같다. 그나저나, 딸내미야, 언제 유학 생활 끝내느냐? 애비는 이제 퇴직했는데. 물론 생활비만 보내 미국 쪽 비싼 물가의 유학보다는 낫다만서도 벌써 7년이 돼가는데 아직도 학상이니, 걱정이로다).



진안에서 무주로 가는 도로에 대해 감탄했다. 인도(人道)가 넉넉했던 것. 내 발이 265mm인데 이 길이로 다섯 걸음 되는 길이의 인도였다. 얼마나 여유 있겠는가(수로는 한걸음 반 정도였다)! 물론 차들이 이 인도를 무시로 침범할 터이지만, 인도로 일단 확보를 해놨기에 걷는 사람이 있다면 편안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그 덕을 보고 있잖은가(이런 걷기 편한 도로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도로는 모두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드디어, 터널을 지난다. ‘드디어라는 부사에 주목하시라. 앞으로 내가 지나야 할 터널은 총 6개이다. 구간이 짧은 것도 있지만 긴 것도 있다. 평지의 도로와 달리 터널의 도로는 공명 현상 때문에 소음이 어마어마하다. 귀를 막고 지나지 않으면 귓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도로를 6개 지나왔기에, 그 시작점에 앞서 드디어란 부사를 쓴 것이다. 좌우지간, 1터널을 지나게 됐는데... 터널 이름이 수동 터널이다. 아니, 뭐여, 그럼, 자동 터널도 있는 겨.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이니 터널도 자동 터널이 있는데, 여기는 옛날에 만들어 수동 터널인가 보구먼. 사람들, ,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바꿔 놓을 것이지(수동 터널의 수동은 원래 한자어인데, 한자의 형태와 뜻은 떼버리고 음으로만 표기한 것이다. 음으로만 표기하다 보니 이런 농담거리를 제공케 된 것이다. 급격히 한글 전용화된 우리 어문 현실에서 한자어들로 빚어지는 오류와 오해가 많다. 원론적인 해결은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서 한글 전용으로 가는 거지만, 그간 경험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 같다. 오류와 오해를 무릅쓰면서 그냥 한글 전용으로 갈 것 같다. 한자어들이 차지했던 공간은 영어에게 넘겨주고. ‘수동의 한자 표기는 水東이다). 시답잖은 아재 개그를 혼자 즐기며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아재 개그에 도취해 그만 귀를 막지 않았다. 덕분에, 귀청이 찢어질 뻔했다. 일반 차보다 소음이 배 이상 큰 오토바이 폭주족이 지나갔기 때문. 아이, 저 씨부럴 X!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가녀린 욕이 가진 자의 엄한 위세에 무슨 효력을 발휘하랴. 애라, X들아, 가다가 빵구나 나라! (해선 안 될 저주를 퍼부었다. 저 인간들도 누구의 아빠 누구의 아들일 텐데, 저것들이 사고 나면 그 누구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터널을 나와 한참을 가는데 아름답고 넓은 강이 펼쳐진다. 지리에 무식해 무슨 강 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앱을 켜보니 금강이다! 오호라, 비단 강이라니, 저래서 붙여진 것이로구나. 절로 강과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강을 끼고 있는 산들의 신록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강 다리를 건너는데(다리 이름을 잊었다), 거대하고 길다. 그런데 바람이 몹시 세다. 날아가 버릴 듯하다. , 이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은데. 긴장과 불안에 휩싸였지만, 안간힘으로 똘똘 무장하고 돌진, 마침내 적진(敵陣)을 돌파했다. 후유~~. 다리 끝 지점, 아래를 보니, 저 멀리서 보였던 그 아름다운 산의 정경을 무색케하는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제 셰익스피어가 원경과 근경의 차이를 보고 그것을 인생에 대입시켜 그럴 듯한 명언을 만들어 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오늘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어쩌자고 비단에 오물을 묻힌 것이냐!


유기농 밸리 노채마을이란 홍보판이 보인다. 포도가 주 생산물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간판이 영 시원찮다. 유기농 사업이 잘되면 간판이 저리 시원찮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잘됐으면 좋겠다(어쩌면 잘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플래카드들이 보인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역사적 기념물로. 오잉, 무슨 역사적 기념물? , 지금이야 별거 아니지만, 세월 지나 봐, 역사적인 기념물이 돼지. 안 그려? 그렇네~! 그런데 플래카드들 하단에 유독 눈에 띄는 플래카드가 있다. “친일 매국, 굴종 외교 반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굥의 방일 외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 3자 변제안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발표에 대한 질타일 터이다. 세상에 피해자가 가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법이 어딨나. , 법조인 출신 맞어? 우리나라 대통령 맞어? 참 챙피스럽구만. 맹자님이 그러셨어. 인필자모이후(人必自侮而後)에 인모지(人侮之)라고.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 남에게 모욕당하는 법이라고. 개인만 그러겄어? 국가도 마찬가지지. 허구헌 날 멀쩡한 역사 왜곡하는 이들에게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셈법인 겨. 저것들이 월매나 우리를 얕보겄어. 짤막한 플래카드 속에 들어있을 긴 사연을 들어본다. , 아무 데서나 화끈하면 안뎌. 그런 건 마누라하고 거시기 할 때나 쓰도록 혀!



마땅히 점심 먹을 곳이 없어 잠시 길가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들렸다. 소규모 매장이다. 구운 계란과 매실 물을 샀다. 카드를 내고 계산하려는데 포인트 적립금이 눈에 띈다. 결제할 금액보다 높다. 혹시 포인트 결재가 가능하냐고 하니, 결재를 안 눌러 가능하단다. 횡재한 느낌이다. 포인트, 요거 고도의 상술이다. 물건이야 거기서 거기이건만 몇 푼 안 되는 포인트 쌓으려 한 매장만 찾게 만든다. 가만 생각해 보면 포인트라는 것도 어찌 보면 제 살 깎아먹기이다. 상품에 내재된 비용을 살짝 포인트란 명목으로 돌려놓았을 뿐일 터이니 말이다. 밑지고 장사하는 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을 알면서도 한 매장만 찾고 자꾸 물건을 산다는 것. , 교묘한 자본주의의 사슬이여! 너무 나갔나?


하나로 마트를 나와 농협 계단(토요일이라 문을 닫았다)에 앉아 계란을 까먹었다. 시선을 들어 맞은 편을 쳐다보는데 희한한(?) 간판이 보인다. 안천 초 중 고등학교. 초와 중이 혹은 중과 고가 통합된 것은 봤어도 이것이 전부 통합된 것은 처음 보았다. 앱을 켜 살펴보니 전국 최초이다. 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19232월 졸업생이 초는 6명 중은 9명 고는 5명이라고 나온다. 원론적으로만 봤을 때, 튼실한 교육과정과 넉넉한 재정 우수한 교사만 갖춰졌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면, 저런 통합형 학교는 교육의 연계성 차원에서 초중등 교육의 모델이 될 만도 하다. 그러나, 공교육에서(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직된) 저런 초중고 통합 학교는, 글쎄.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혹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보고(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오해하시지 말기를. 그냥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 나는 다시 무주를 향하야~!



또 터널을 지난다. 이후 무주까지 다섯 개를 더 지났다. 마지막 터널은 가림 터널이었다. 귓청 찢어지지 않고 지나온 곳에 천신에게 감사드릴 뿐이다. 그 거대한 암굴들을 개미 같은 존재가 천둥 같은 소음을 견디고 귀 멀쩡하게 나왔으니, 어이 천신의 덕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무주에 들어섰다. 그런데, 토요일이건만 왜 이리 사람이 없냐. 반딧불 조상(彫像)이 있는데, 방긋 웃는 표정이건만 왠지 슬픔이 묻어나는 웃음이다. 어서 여름이 와 저 애들 얼굴에 슬픈 그늘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때는 너희들 구경하러(반딧불 축제) 사람들이 붐비겠지.



배가 몹시 고프다. 숙소를 구하기 전에 저녁부터 먹어야겠다. 모처럼 만에 영양 보충 겸 탕수육을 먹기로 했다. 중화 요리점을 검색해 보니 진강원이라는 데가 나온다. 왠지 끌린다(‘왠지가 적중했다). 무주천을 건너 중심지에 들어가 진강원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른 대꼬챙이 같은 70대 가까운 아저씨가 앉아 있다. 60대 중반쯤 되는 아주머니가 서빙을 본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잠시 후 내 뒤로 3명이 들어왔다).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을 보니 탕수육이 25천 원으로 돼있다. 최근에 인상한 듯 매직으로 거칠게 써놨다. 오잉, 이건, . 요즘 웬만한 중국집에선 탕수육을 크기별로 달리해 가격을 차별화하고 있는데, 여기는 통으로 저거 하나밖에 없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다 먹을 수 있다면 그냥 시키겠는데, 도저히 소화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서빙하는 아주머니에게 과감하게 트라이를 해봤다. “혹시 2만 원어치 안 될까요?” 아주머니가 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주방에 들어갔다. 의사를 전달한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더니 해주겠단다. 마른 대꼬챙이 아저씨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대꼬챙이 아저씨가 주방장이었다. 잠시 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묻는다. “소스를 부을까요? 따로 낼까요?” 아무래도 남길 것 같아, 따로 달라고 했다. 탕수육을 내오며 주인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이렇게는 안 하는데, 너무 드시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오호라, 참으로 훌륭한 여인이로다! 어찌 이리 후덕하신고. 전생에 선녀였는데 잠시 현장 체험 학습하느라 지상에 내려오셨나 보다. 웃으며 화답했다. “, 죄송하긴 한데,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녜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 최선을 다해 먹었지만, 역시 남았다. 아주머니께 싸달라고 부탁하며(서빙 아주머니는 어느 순간 퇴근했다) 너스레를 떨었다. “최선을 다해 먹었는데,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네요.” “양이 좀 많죠?” 아주머니가 웃으며 화답한다. 현금으로 값을 지불하고 문을 나서며 립서비스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이제 숙소를 향하야~!


숙소를 검색하는데, ‘이리스 모텔이라는 데가 나온다. 후기를 읽어보니 괜찮다(이전까지는 후기 같은 것을 읽지 않았는데, 이제 후기까지 읽게 됐다. 쓰라린 경험 탓일 터). 망설임 없이 향했다. 가격을 물으니, 5만 원이란다. 안내하는 이가 남주인인데, 맹맹이 콧구멍같은 인상이다. 혹시 현금 내면 깎아주시냐니, 되레 면박을 준다. 10년 전 가격이고, 연료비도 안 나온단다. 찍소리 못하고 가격을 지불했다. 현금으로! 그런데, 시설이, 후기와 다르다. 기본인 봉지 커피도 없다(당연히 커피포트도 없다. 다음 날 이곳을 나오며 알았는데, 봉지 커피와 정수기가 프론트 한 구석에 있었다. 비용 절약 차원에서 중앙에 하나만 설치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에덴?). 다행히 TV는 나온다. 냉장고에 성에도 끼어있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온 처지이니 이만도 양반이지만, 그래도 좀 본전 생각이 난다. , ‘에서는 5만 원 내고 화려하게(?) 지냈는데, 똑같은 비용 내고 쿠사리까지 먹고 이게 뭣이다냐. 지방의 모텔들은 악순환인 것 같다. 손님이 없으니, 현상 유지를 위해 비싸게 받고(주인은 싸다지만 손님 입장에선 비싸다. 하루 숙박이 4~5만 원이면), 이를 꺼려 손님들은 비슷하거나 약간 비싼 가격대의 시설 좋은 무인텔로 가니 손님은 더욱 줄고. 여행하면서 지방의 모텔을 지자체가 지원해 주면서 저가의 여행자 숙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해봤다. 자전거 여행과 도보 여행이 좀 더 활성화되고 경기도 좀 살아나면 가능하지 않을까.


모든 저녁 의식을 끝내고,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내일은 영동까지 간다. 그런데 아까 무주로 들어올 때 머루 와인 동굴이정표를 봤는데, 거기를 못 들린 게 좀 아쉽다. 내일 가볼까? 경로를 찾아보니 갔다고 오면 애초 일정에 지장을 줄 것 같다. , 오늘 일정은 끝났으니, 내일 일은 내일 다시. 메모장에 간단히 오늘 소회를 쓴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밤엔 이리스(무지개의 여신)를 만나려나? 어제는 이브를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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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금요일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시계를 본다. 6. 좀 늦게 일어났다. 갑자기 무반주 첼로를 켜고 싶다. 기왕 켜는 거 세게 한 번. ~! 앱을 켜고 정읍 버스터미널에서 진안 마이산까지의 경로를 누르니, 기대하지 않은 엉뚱한 내용이 나온다. “출발지와 도착지 간의 직선거리가 50km 이내인 경우만 도보 길찾기를 제공합니다.” 걸어가긴 불가능한 거리란 말씀이다. 그러면, 버스로는 얼마 걸릴까? 버스로 경로를 누르니, 4시간 18분이라고 나온다(중간 텀을 빼고 실제 시간은 3시간 30분가량 걸렸다. 네이버 지도 앱의 내용이 절대적인 내용은 아니다). 경유지를 보니, 광주 장계 진안으로 돼 있다. 광주, 세 번씩이나 들리게 되네? 거 참. 카스테라와 초코 우유로 아침을 먹었다(어떤 이는 일어나서 바로 뭐 먹기가 불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게 밥이 됐든, 빵이 됐든, 고기가 됐든. 아침을 꼭 먹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지 않은가 싶다). 아침 제반 의식을 끝내고(이제고문진보읽기는 아침 의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남들에게 선비 운운의 소리를 들어, 나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아니올시다인 것을 절감했다. 내가 나를 몰랐던 것이다), 모텔을 나섰다.


8시 조금 넘어 광주행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걸려 광주에 도착, 아니 중간 하차했다. 터미널에서 안 내리고 시내 어중간한 데서 내렸다. 넘들이 다 내리니 내려야 하나 보다 생각하고 내린 것. 넘들은 굳이 터미널까지 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게 시내 어중간한 데서 내려줄 때 내린 것인데, 이 등신이 그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내린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광주 시내 짧은 관광을 마치고 터미널에 도착(‘길찾기앱으로 효험을 못 봐, 끝내 어떤 멋진 분한테 터미널을 물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여간, 방향 감각은).


장계 가는 버스 시간을 보니 11시 넘어서 밖에 없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잘됐다, 터미널 구경도 하고 이른 점심도 먹자! 터미널 시설물들은 거기가 거기인지라, 여기도 특별한 것은 없는데...아니,특별한 것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길고양이를 보살펴 달라는 대형 화보. 애처로운 눈빛의 고양이를 중앙에 놓고 좌우로 부탁의 메시지가 띠처럼 둘려있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이웃입니다.” 고양이 밑에 1/10 정도 크기의 글씨로 부연 메시지가 쓰여 있다. “어떤 환영도 없이 태어나 누구 배웅도 없이 떠나는 삶, 길고양이 함께 살아요. 살고 있어요.” 하단엔 깨알 같은 글씨로 후원자 명단이 쓰여 있다. 생명의 도시, 광주에 어울리는 화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외곽에서 접했던 불쾌했던 경험이 일거에 사라지고, 다시 광주에 대한 애정이 샘 솟는다. 아이 러브 유, 광주! (하여간, 변덕 하곤.) 그럴듯한 식당들이 눈에 보이는데, 우리네에겐 그저 백반이 최고. 1만 원 내외의 저가(?) 메뉴가 즐비한 식당가에서 순두부찌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나오면서 가급적 현금 결제 부탁 드립니다란 애처로운 호소문을 써놓은 식당을 봤다. 카드 수수료 때문일 터. 뭐 떼고 뭐 떼면 남는 게 없으니 저럴 것이다. 후유~. ‘편리라는 카드 결제 뒤에 숨은 수탈이란 그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가급적 소액은 현금 결제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어 조금 전 식당에서도 현금 결제를 했다)?



어찌어찌하야 진안에 도착했다. 2시가 좀 넘었다. 마이산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앱을 켜 살펴보니, 13km3시간 21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2시가 넘어가는데 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리면, 5시가 넘어 도착하는데, 입산할 수 있을까? 살짝 고민된다. 그렇다고 벌써 숙소를 잡고 들어갈 수도 없고. 버스 시간을 보니 차도 많지 않고, 앱으로 살펴보니 최적 시간이 1시간 50분 걸린다고 나온다. 고민이 된다. 택시를 한 번 타보자. 택시 기사에게 마이산 가는데 얼마냐니, 시큰둥하다. 저기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란다. 아니, 이건 뭔 시츄에이션? ‘그냥 걸어가자.’ 생각하고 혹시?’ 하는 마음에 택시 옆 모종 판매를 하는 젊은 주인한테 여기서 마이산까지 얼마 걸리냐니, 놀라운(!) 대답을 해준다. 40분 걸린단다. 40분이면 4~5km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택시로 간다면 4분여 정도 걸릴 거리.아니, 이게 뭔 일이다냐! 앱이 가르쳐 준 거 하고 너무 차이가 나지 않어? 어떻게 된 거지? 젊은 주인은 현지 사람이니 이 주인의 말이 맞을 것이다. 횡재한 기분이면서도 약간 떨떠름하다. 젊은 주인에게 고개를 130° 정도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하고, 주인이 덧붙여 안내해 준 경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택시 기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 불친절하기는. 댁이야 짜증 나는 질문이었겠지만 낯선 사람에겐 간절한 질문이었는데 좀 친절하게 말해주면 어디 덧나시나?


버스로 1시간 50분 걸릴 거리를(돌고 돌아가며 사람을 내리고 태워주니 그럴 것이다) 축지법을 사용하야 40분 만에 주파, 마이산 입구에 도달했다. 오다가 중간에 에덴 모텔이란 데를 찜 찍어 놓았다. 하산하여 인근에서 저녁 먹으면 딱 들어가기 좋은 시간대에 있는 모텔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에덴이라니. 오늘은 태초의 천국에서 잠을 자게 됐다. 이브까지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과한 기대이다(이따 말하겠지만, 이 에덴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받아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기 직전의 에덴이었다).



마이산은 세 번째이다. 대학교 때 한 번 왔고, 근처를 차로 지나면서 한 번 봤고, 이번에 또 오게 된 것. 앞의 두 번은 진지하지 않은 겉핥기 방문이라고 봐도 좋다. 이번은 진국을 맛보리라!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아 오르기가 편하다. 7시간 도보 후 명산 월출산까지 일거에 오른 건각(健脚)에겐 너무너무 편한 등산로였다. 정상. 말의 귀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마이산(馬耳山). 한쪽은 숫, 한쪽은 암마이산으로 부른다. 둘 다 오르기는 불가하여 한쪽만 올랐다. 어느 쪽으로 올랐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이 마이산, 멀리서 볼 때와는 완전 딴판인 산이다. 멀리서 볼 때는 나무와 풀들이 푸른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다. 거무튀튀한 돌산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다는데, 그이는 이런 원경과 근경의 다른 풍경을 보고 그것을 인생에 대입시켜 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원경과 근경이 너무 딴판이라, 의외를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산을 내려가 마이산의 그 유명한 돌탑을 보러 간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탑이다. 어이 저렇게 쌓아 올렸으며, 어이 저렇게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뭔가 과학적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저것을 쌓은 이갑룡 도사는 순전히 영감에 의지해 돌탑을 쌓았을 터, 인간의 신비로운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람들이 붐빈다. 어떤 외국인 내외를 안내하는 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어렵지 않죠! 그런데 이 외국인 내외, 포즈를 취하면서 잠시 뽀뽀를 한다. 워매, 남살시려운 거. 그런 건 밤에나 허고, 이 신성한 장소에선 좀 삼가셔! 가이드 양반, 그런 주의사항도 얘기 안 해준 겨. 그럼, 내가. 그건 주제 파악 못 하는 거고. 살짝 마뜩잖은 기분으로 사진을 찍어 줬다. 외국인 내외가 사진을 확인하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원더풀~’이라고 한다. 그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먼. 그나저나 앞으로 한국 유명 사찰 같은 데를 다닐 때는 함부로 뽀뽀하지 말어(마음속으로 훈계했다)!



다시 반대로 마이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야겠다. 산 정상에서 탑사로 내려올 때는 힘들지 않았는데, 다시 올라가려니 좀 힘에 부친다. 시선을 들어 데크 계단을 올려다 보니 까마득하다. 이럴 때 방법은 위를 보는 게 아니라 발밑만 보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선다. 목표 달성도 그렇지 않을까? 목표만 쳐다보면 아득해 보인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도달해 있다. 정상에 올랐다. 다시 하산 길. 하산이야 쉽지~. 그래도 방심은 금물. 다리가 풀려 자칫하다간 등산 시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목표 달성 후 방심하다 일거에 성취한 결과를 다 잃어버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지 않던가. 되먹잖은 개똥철학에 취해 혼자 흐뭇해하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다시 산 초입에 도착했다. 5시가 다 돼간다. 입구에 가위 박물관이 있다. 뭔가 산과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 그냥 갈까 하다 무료라는 말이 있어 잠깐 들렸다. 출입구에 있던 안내하시는 분이 마감시간인데...” 하면서 보고 가라고 한다. 땡큐~. 세상에, 가위가 이렇게 다종다양했던가! 서양 동양 우리나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다종다양한 가위가 전시돼 있다. 누가 이런 컬렉션을 했을까, 그냥 지나쳤으면 너무 아쉬울 뻔했다. 인형 작가인 아내에게 가위는 필수품. 아내에게 선물이 될까 싶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박물관을 나왔다.

하산하여 얼마 안 가니 음식점들이 있는데, 불은 훤하지만, 파장 분위기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 표고버섯 영양밥을 시켰다. 그런데 나온 밥은 무늬만 표고버섯 영양밥이었다. 표고버섯이 3개 은행이 2개 들어 있었다. 애고, 이나마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배고픈 김에 맛있게 먹었다. , 이제 에덴동산으로 가보자.



에덴 모텔에 도착했는데, 외관이 영 아니올시다다. 순창에서 숙박했던 멘하탄보다 더하다. 줄지어 나오는 뻘건색 문자 광고에는 최상의 서비스 최고의 시설이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요란한 빈 수레 광고 같다. 그나저나 묵기로 작정했으니. 안내실에 방을 달라니 5만 원이란다. ~! 5만 원? 금요일이라, 관광지 바가지성 요금을 감안한다 해도, 이건 영 아니다. 5천 원 깎자니, “내일 전국 노래자랑이 있어 방값이.” 하는데 영 자신 없어 하는 말투다. 자신도 자신의 숙소 처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거니, 틈이 보이는구나.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한 영악하고 사악한 본성이 불끈 일어난다. “그래도, 좀 깎아 주셔요!” 주인이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45천 원만 내셔요.” 한다. 승리!


방으로 올라가는데, 지금 그 문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외국인 근로 노동자들에게 뭔가를 당부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렇구나. 여기는 관광객보다, 흔히 망해가는 모텔이 마지막으로 밟는 수순 월방 있어요를 내거는 그런 수준의 모텔이구나. 여기서 무슨 태초의 천국을 맛볼 수 있으랴. 어이쿠, 이놈의 안목하곤. 방에 들어가니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시설이 낡은 것은 당연, 기본적으로 모텔에 있는 커피포트도 없고(그런데 봉지 커피는 있었다), TV도 나오지 않았다(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할까 하다 그만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성애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그래도 다행히 물 두 병은 있었다). 한 마디로 꽝이었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하긴 뭘 어쪄! 그냥 머무는 거지. 예의 마음 한쪽에서 음양론 철학이 고개를 든다. ‘이 사람아, 커피포트 없으니 봉지 커피 안 먹어도 되고, TV 안 나오니 음심에 휘둘릴 필요 없고 좀 좋아. 수양한다 생각하고 그냥 하룻밤 잘 묵어. 이브는 꿈속에서 만나고.’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친 뒤 8시가 못 되어 과감히 잠을 청했다. 내일은 무주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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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일 목요일


다시 곰의 자손으로 돌아와 때아닌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뜨니, 5시다. 12시간을 잤다. 중간중간 잠이 깨긴 했지만, 겨울잠은 계속 이어졌다. 곰도 겨울잠을 자며 가끔씩 깨나 모르겠다. 모든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치고 정확히 6시에 모텔 현관문을 나섰다. 마당에 발을 내딛는데, 여주인이 나와 있다. 인사를 했더니, “일찍 출발하시네요?” 하면서 웃는다. 일찍 방을 비워주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더 기분 좋게 해줬다. “방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면서 또 웃음을 짓는데 비릿한 냄새가 묻어난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임실 공용 터미널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37km에 도보로 9시간 59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전 오후 5시간씩 나눠 걷고 중간에 간식이든 매식이든 점심을 먹으면 될 것 같다(간식으로 때웠다). 완전히 빗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비가 지속해 올 것 같진 않다. , 출발~!


청정원에서 운영하는 순창 고추장 공장을 지난다. 고추장 공장이라어렸을 때 고추장 된장은 집에서 담근 것만 먹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부지기수로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년 시절의 체험 탓도 있지만 건강염려 탓도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유통하는 식품엔 아무래도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체에 유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부지기수로 먹어 왔고, 앞으로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걱정일 뿐이다. 그저 유해한 화학 첨가물을 덜 넣고 생산하기만을 바랄 뿐. 그나저나 청정원사장님네는 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추장을 드실랑가 모르겄네?



1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이상하게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인다. 대신 보성 이정표가 보인다. , 이거 이상한데? 앱을 켜고 확인하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출발할 때 잘 확인했는데. 방향을 돌려 다시 출발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책이 들었지만 애써 자위했다.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잖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단추도 계속 잘못 끼우게 된다. 옷 입을 때만 그럴까, 개인사도 그렇고 사회사도 그렇지 않을까? 해결 방법은,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늦어서 어쩔 수 없다고 무시하고 방치하면 더 악화될 뿐이다. 실수를 통해 대단한 교훈까지 얻은 양 스스로 대견해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원점으로 돌아와 앱을 켜고 살피니, 순창 읍내를 외곽으로 돌아가게 안내해 준다. 그런데 눈앞에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임실 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앱을 따를 것인가, 저 이정표를 따를 것인가? 이정표를 따라도 별 무리 없을 것 같다. 앱의 안내를 포기하고 이정표를 따라 임실 쪽으로 걸었다. 이번엔 틀리지 않았다. 순창 읍내를 빠르면서도(?) 순조롭게 벗어나 임실 이정표가 보이는 큰 도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저 이정표만 보고 걸으면 된다. ~.


날이 개어 화창하다. 한참을 걸으니, 덥다. 큰 도로 옆으로 구도로인 것 같은 데가 나오는데, 잘못하다 길을 잃을 것 같아 그냥 큰 도로로 계속 걸었다. 산 중턱에 요양원이 보인다. 요즘 농촌 지역에 부쩍 늘어난 시설이 태양광과 요양원 시설이다. 그런데 뭔가 계획적으로 들어서기보다 우후죽순 중구난방 격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 필요한 시설들인데 그런 식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대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저 요양원도 그래 보인다(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내외가 공통으로 바라는 생애 마지막 소원은 요양원 안 가고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예수님 빽 믿고 구하면 얻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날이 더워 자꾸 물을 들이킨다. 아껴 마셔야 하는데. 한 번만 더 마시고! 임실까지 2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저만치 터널이 보인다. , 저 터널을걱정하던 차 신의 계시인지 버림인지(결과적으론 둘 다였다) 옆을 보니 구도로가 있고 임실 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그래! 구도로로 가는 거얏! 때마침 작은 볼일도 급해 망설임 없이 구도로로 갈아탔다. 얼마간 가다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작은 볼일을 봤다. 오매, 시원한 거! 그간 한 번도 큰일 작은 일로 자연을 오염시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부득이 오염을 시켰다. 자연, 미안허이, 용서해 주시게나!

터널을 지난 차들이 고가도로 위로 쌩쌩 달린다. 그 아래 구도로를 따라 걸으며, 다시 한번 구도로로 노선 변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걷는데 김용택 시인 생가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오잉? 생각지 않은 횡재다! 그런데 저 김용택 시인이 그 김용택 시인 맞나? 혹 동명이인 아녀? 요즘엔 자기 자랑하는 문인도 많은디. 길가 동네 분인 듯한 분에게 물어보니, 뜨악한 표정으로(김용택 시인을 모른다 말여?) 나를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맞지라.” 생가까지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으니, 얼마 안 가면 있다며 김 시인이 거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을 찾아가 사진 한 장 찍으면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다 싶어, 가던 노정을 잠시 멈추고 김 시인 집으로 향했다.


김 시인이 섬진강의 시인으로 유명한 것은 알지만, 정작 그 시 전편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단편으로 한 두 편 읽었을 뿐. 내게 김 시인은 그 여자네 집의 시인이다. ‘그 여자네 집은 유치환의 행복과 함께 아슴아슴한 연애 감정을 잘 그려 읽을 때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로 보면 정다웠던 집


, 내가 그 시인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이건 신의 계시로다! 그런데 조금만 가면 있다던 김 시인의 집은 꽤 걸었는데도 안 보인다. ~ 신의 계시가 아닌가 보다. 이러다가 지난번처럼 숙소를 못 찾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냥 가던 길 빨리 가자. 발길을 돌리는데 섬진강 자전거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김 시인 집 언저리를 다녀갔다는 표시나 남기자. 김 시인이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섬진강 사진이나 한 장 찍자(그런데 왜 이리 강이 쪼그만 하냐? 착각이었다. 길을 가며 거대한 섬진강을 만나게 됐다). 사진을 찍고 방향을 틀었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임실을 향해 출발했다.



조금 갔는데 김 시인이 근무했다는 마암 분교를 연상시키는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다. 평일이니 아이들이 등교했을 터, 아이들이 보일 법도 한데 전부 교실에서 수업받는지 운동장엔 적막만이 감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발길을 옮겼다.



조금 가다 보니 방치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옛 건물이 나온다. 근대 건축 유산 같은 느낌을 준다.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에 대해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어린이 성경 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성장해서는 이곳에서 주장하는 채식과 현미식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이다(성경 공부나 교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지금도 실천은 미미하지만, 여전히 이곳의 주장인 채식과 현미식에 공감하고 있다. 애틋한 감정을 사진 속에 담았다. 찰칵.



갈수록 거대한 강이 나타난다. 섬진강이다! 구도로라 그런가, 인적도 차량도 드물다. 한적한 강변을 걸으니, 다시 한번 구도로로 갈아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만 보면 안 돼, 옆도 봐야지. 아까 정면만 보고 갔어 봐. 이런 한적한 강변 풍경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겠어.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듯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옮긴다. 가끔 셀카도 찍었다.



무루마을이란 데를 지난다. 쓸쓸함을 넘어 스산함까지 느껴진다. 시골 산자락 동네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도 왠지 아쉽다. 스위스는 오늘날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됐지만, 사실 그 나라 땅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땅이다. 그런데도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된 것은 천연의 풍경을 잘 유지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골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까? 모두가 도회지를 동경하게 만들어 시골은 버림받은 곳으로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시골은 시골답게 도회지는 도회지답게 만들어 상생할 수 있는 틀을 짜야 하지 않을까?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섬진강 댐이 보인다. , 역시 댐이라 위용이 돋보이는군. 사진 한 장 찰칵.



그런데 이거 왜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이는 거냐? 앱을 켜고 현 위치에서 임실까지의 길찾기를 누르니 25km라고 나온다. ? 아까 구도로로 바꿔탈 때 임실까지 25km라는 이정표를 봤는데,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얼만데 25km 남았다는 겨? 이상해서 다시 살펴보니, 아뿔싸, ‘현 위치가 이미 임실을 지나 임실과 반대 방향인 정읍시 주소로 나온다. 그러니 여기서 임실까지의 거리를 눌렀을 때 25km라고 나올 수밖에. 시간은 4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임실 가기는 글렀다. 그러면 부지런히 정읍시로 가서 숙소를 구할 수밖에. 안 되면 중간 어디서라도 숙소를 구해 1박을. , 어디서부터 사단이 생긴걸까? 갑자기 강변 풍경을 즐기던 여유롭던 마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후회가 밀려온다. 정도를 벗어나서 그렇지! 아니, 언제는 옆길도 보며 가야 한다고 좋아하더니? 서로 아웅다웅 다툰다. , 그만~.



이따금 펜션이 눈에 띄는데 내게 어울리는 숙박지는 아니다. 패스. 5. 이젠 펜션도 안 보인다. 조금 가니 칠보면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래, 저기서 1박 하자. 뭐라도 있겠지. 가만, 지난번 북일에서 낭패를 봤는데. 아녀, 있을 겨. 530. 날이 어두워진다. 6. 아직 칠보면은 멀었다. 630. 어둑하다. 칠보야, 아직도 멀었냐? 7. 깜깜하다. 도로변에 인가도 없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만 있을 뿐.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711. 도로를 벗어난 곳에 마을 불빛이 보인다. 반갑다! 교회 십자가가 반짝인다! 그래, 저기 가서 부탁해 보자! 도로를 벗어나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십자가만 번쩍인다. 목사관도 교육관도 깜깜하다. 다시 큰 도로로 나가려는데, 도무지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인도로 보이는 데를 따라 걷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로 마트네온사인이 보인다. 아니 저것이 보일 상황이 아닌데? 큰 도로를 벗어나 이리로 들어왔고 다시 나가면 큰 도로와 만날 터인데, 어째 저것이 보이지? 그러나, 반갑다(지금도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른다)! 하나로 마트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하나로 마트가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이 있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다는 것 아닌가!


도착하고 보니(여기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칠보면 중심가였다), 모든 것이 파장 분위기다. 하나로 마트도 문을 닫았다. 숙소할 만한 데가 없다. 어이할꼬? 그런데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농촌 무슨 무슨 사무소라는데다. 귀농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 같다. 가면 왠지 숙소를 안내해 줄 것 같다. 노크하고 들어가 사정 얘기를 하는데, ‘웬 미친 놈여?’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숙소는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하고, 정읍 가는 막차가 있으니, 그것을 타란다. 730분인데, 막차가 있을까? 정말 있냐니, 있단다. 차부가 가까이 있으니 가보란다. 친절하진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말은 다 해줬다. 감사허유~.


차부. 컴컴하기만 하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맞은 편에 불빛 환한 카페가 있다. '카페 고현.' 막차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아까 알려준 사람이 영 미덥지 않아서). 그랬더니 가게에 붙여 놓은 버스 시간표를 보며 금방 올 거라고 알려준다. 나같이 차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시간표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혹시 이 근처에 숙박할 데가 있냐고 물으니, 없다면서, 한번 알아는 보겠다고 어딘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서 우선 밖에 나가서 차를 기다리란다. 사람이 없으면 그냥 간다고. 카페 주인은 하얀 얼굴의 가녀린 몸매를 한 도회지 풍의 여성인데, 생각보다, 친절했다. 카페 문을 나서는데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급히 카페 문을 열고 소리쳤다. “사장님, 버스가 와요. 감사합니다!” 힘차게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고 올라탔다. 손님이 몇 안 된다. 자리에 앉았다. 살았다! 시계를 보니, 744분이었다.



820. 정읍 시외버스 터미널 간이 승강장에 내렸다. ()라 그런지 사람들이 붐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사람 없는 칠흑 같은 곳에서 헤맸다가 붐비는 사람들을 만나니, 왜 이리 좋으냐! 평소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랐다를 읊었는데, 한계 상황에 부딪혀 보니, 나는 그런 곳에선 살 위인이 못 된다는 걸 절감했다.


터미널 근처라, 숙소가 즐비하다. ‘첼로 모텔을 선택했다. 무슨 무슨 좋은 숙박지로 선정된 곳이라고 내건 광고에 혹한 것. 4만원이란다. 비싸지 않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다. 똑같은 가격인데, 어제 묵었던 모텔과 현격히 대조된다. 일체의 저녁 의식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TV를 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많이 피곤하다. 14시간 이상을 걷지 않았는가. 거기다 심적 고통까지.


엎드려 가족 단톡방에 간단히 소식을 올리고 수첩에 오늘의 소회를 썼다. “, 임실! 피곤, 고통! 임실임시임질. 발음 슷비. 중도 이탈+순간 쾌락=피곤! 고통! 그러면, 정면/정도만?” 메모장을 내던지고, 불을 껐다. 빨리 자야 한다. 내일은 진안까지 간다.


*임실과 관련 있는 분들, 글 마지막 부분에 대해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으로 쓴 저급한 소회일 뿐입니다. 임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길치인 본인이 잘못이지. 그냥 약간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드러낸 것뿐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웃어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임실을 찾아 관광할 시간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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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수요일


힘들게 눈을 떴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걸 보니, 밤새 비가 내린 듯하다. 시계를 보니, 530분이다. 어제 앱으로 순창읍 까지의 거리를 살펴봤는데 20km밖에 안 되고 시간은 5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중간에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에서 시간을 보낸다 해도 제아무리 길어봐야 2시간을 넘기지 않을 테니, 7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평소보다 좀 늦게 출발해도 될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복식 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들숨과 날숨을 같은 간격으로 들이쉬고 내뱉다가 어느 순간 들숨이 최대한으로 마셔지며 배가 산만해졌다 꺼지면 몸이 개운하다. 컨디션이 좋으면 배가 산만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리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늘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계를 보니, 6시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살짝 걷어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불린 누룽지와 소시지 모닝빵 그리고 사과 한 알로 아침 식사를 했다. 샤워하고 옷을 입은 뒤 짐 정리와 주변 정리를 마치고 억지로(!) 고문진보한 소금까지 읽어 출발 전 의식행사를 모두 마쳤다. 시간이 꽤 남는다. 가만, 오늘은 점심을 점심답게 한 번 먹어보자!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노정에 나와 있는 음식점을 찾는데, ‘해밀 찰보리 국수라는데가 나온다. 오우, 맛있겠는데! 숙소에서 이곳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살피니 7.9km2시간 3분이라고 나온다. 8시쯤 출발하면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을 거쳐 점심 타임 시작인 11시에 충분히 도착할 것 같다. 그래, 오늘은 꼭 해밀 찰보리 국수로 점심다운 점심을 먹어 보자!


그런데 멍하니 8시까지 기다리기가 답답하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결국, 5분을 남겨두고 모텔을 나섰다. 아무래도 나는 곰의 자손이 아니고, 호랑이의 자손인가 보다. 비는 살짝 내리지만, 환한 아침을 대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간밤의 뒤숭숭했던 기분이 싹 가신다(염불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조금 걸었는데,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산책길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거리가 얼마 안 된다.


담양 유럽 마을 Engelberg 신축공사란 입간판이 보인다. 관광단지를 만드는 걸까, 유럽풍의 정착촌을 만드는 걸까?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 선비의 고장인데 유럽풍의 건축물을 짓는다니 뭔가 어색하다. 지자체가 돈에 환장했구나.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전통 시설물이라고 하는 것도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라, 엄밀하게 말하면, 전통 시설물이라고 할 수가 없다. 껍데기만 전통 시설물일 뿐이다. 우리 전통 시설물은 한국전쟁 통에 대부분 파괴됐다. 유럽은 세계대전을 치렀어도 시설물들이 돌로 된 것들이라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비록 형체뿐일지라도), 우리 시설물은 나무로 된 것들이라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 지어지는 시설물은 전통 시설물이 아니라, 신축 시설물이다. 그렇다면, 담양 유럽 마을공사와 다를 바가 뭐 있으랴. 껍데기만 우리식으로 한 것뿐이지. 이렇게 보면 굳이 저 담양 유럽 마을을 백안시할 게 뭐 있으랴. 저것은 껍데기만 외국 거지, ()은 우리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렇지만 저런 건축물의 원조는 유럽 것인데, 그걸 어떻게 우리꺼라고... 이 사람아, 원조가 뭐 그리 중요한가. 그것을 꽃 피우는 게 더 중요하지. 내가 생각하기엔 제아무리 유럽식으로 짓는다 해도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의식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시설물은 우리 것이여. 우리 사상에 우리만의 것이 어디 있냐고 볼멘소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다 어리석은 소리여. 유교, 불교, 기독교다 원조는 외래 것이지. 허지만 그건 발신일 뿐이고,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유교, 불교, 기독교는 다 우리 것이여. , 다 그것들 저류에 우리 의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생각혀. 굳이 무속신앙 동학 등을 운운하며 우리 고유 사상을 내세울 필요 없다고 생각혀. 어떤 것이 들어와도, 이 땅에 들어오면 다 우리 것이여. 다시 말하지만, 발신을 너무 강조할 필요 없어. 주눅들 필요도 없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꽃 피우느냐여. 이 땅의 유교, 불교, 기독교 등에 대해 신채호 선생은 유교, 불교, 기독교의 조선이 됐다고 한탄하셨지만, 나는 조선의 유교, 불교, 기독교가 됐다고 생각혀. 그러면 그것이 왜 조선의 유교, 불교, 기독교냐고? 세상에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큰 마찰 없이 조화돼 유지되는 국가가 어디 있어? 읎어! 이것이 우리 의식의 특징이여. 비빔밥 의식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럴듯한 말로 원융(圓融)의식이라고나 할까? 어떤 것이 들어와도 좋아, 우리는 능히 그것들을 다 소화해 낼 의식이 있는 민족이여. 듣자 허니, K팝의 특징이 바로 이런 다양성의 조화라고 하던디, 딱 맞는 거여! 간판 신축공사 입간판을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만~~!



죽녹원에 들어선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매표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냥 들어섰다. 오늘은 평일인데다 밤사이 비까지 내려 손님이 많지 않을 듯하다. 죽녹원은 일종의 대나무 테마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사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성된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이곳에(메타세콰이어 산책길도 그렇고) 들를 생각도 없었다. 어제 가족 단톡방에 오늘 일정을 알렸더니, 처가 이 두 곳에 가보고 싶은 듯한 문구를 남겼기에 선물로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들른 것뿐이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대나무 산책길과 조경들을 감상하자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뭔가 독차지했다는 뿌듯함도 든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풍경을 몇 컷 찍고, 잠시 한옥 건물 추녀마루에 앉아 셀카도 한 장 찍었다. 화창한 날에 찍는 것도 멋있겠지만 실비 내리는 우중에 찍는 것도 운치가 있다. 더구나 한옥에서 찍으니 더. 죽녹원을 나서려 매표소를 지나치는데 문이 열려있다. 그냥 가기가 무서워(?) 사실을 말했더니, 그냥 가란다! 고맙습니다~~. 다시 메타세콰이어 산책길로 출발~.



장쾌한 메타세콰이어가 눈에 들어온다. 한여름에 봤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다. 봄철, 그것도 우중의 메타세콰이어는 낙심하여 어깨 쳐진 거인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산책길로 들어서려는데, 아이고, 여기도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 이놈의 입장료. 2천 원인데, 왠지 비싼 느낌이다. 매표소 아가씨한테 농으로 "그냥 보내주시면 안돼요?" 할까 싶어 얼굴을 쳐다봤는데, 잘못하면 뺨 때릴 듯한 인상이다. 아무 소리 않고 입장료를 냈다. 오래전 기억. 집에서 출퇴근하며 군 생활할 때(나는 군부대 방위 출신이다. 아내가 방위 출신이라고 어쩌다 놀리는데, 뭐 현역만큼은 아니래도 나도 고생할 만큼은 고생했다. 군부대 방위는 면 단위 방위와 달라, 근무 기간이 짧고 출퇴근만 한다 뿐이지, 현역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여보, 앞으로, 놀리지 말아 주세용~) 한 번은 차비가 부족해 매표소 아가씨한테 차비 좀 깎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는 매표소 아가씨 얼굴도 안 쳐다보고 그랬는데,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무시하는 방위에다 사정이 다급하니 나도 모르게 그런 용기를 낸 것은 아닌지? 그런데, 이 아가씨, 푯값을 깎아줬다! 다음 날, 표를 살 때 고마웠다며 작은 선물을 줬다(소설 같으면 그다음 무슨 사연이 이어졌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 하여,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이런 경험 한 사람 거의 없을 것 같다. 무임승차면 무임승차지 푯값을 깎아서 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푯값을 깎고 차를 탄 적이 있다. 모든 게 자동화되는 세상엔 이런 맛(?)이 없다. 허허, 역시 나는 아날로그 세대인개벼.



표를 받는 아주머니(내 나잇대보다 조금 아래로 보였다)에게 표를 내미니, 살짝 놀라는 눈치다. 평일 이른 시간에 그것도 비가 오는데 혼자서. 눈치를 보고, “도보 여행 중입니다.” 했더니, “좋은 때 오셨네요. 고독을 씹으며 걷는 게 제맛이죠.” 하신다. 그런가? 조금 걷다가 왠지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어 뒤돌아서는데, 묘하게 검표하는 아주머니가 내 쪽으로 온다.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러잖아도 찍어드리려 했는데.” 하신다. 이런 걸 이심전심이라고 하나? 여러 포즈를 잡아 보라며 성의껏 찍어주시는데, 포즈 잡는 데는 영 젬병이라. 조심해서 가라고 당부하신다. 감사합니다~. 중간중간에 아기자기한 빵집 찻집이 있는데 잘 어울려 보인다. 천천히 걸으면 꽤 긴 느낌이 들만한 산책길인데, 갈 길 바쁜 나그네에겐 그렇게 긴 길이 아니다. 더구나 간밤에 내린 비로 도로가 축축해 걷기도 불편하다. 아름다운 낭만일랑 접어두고, 오로지 점심다운 점심을 위하야 해밀 찰보리 국수집으로 다시 출발!


이게 국도냐, 지방도냐, 걷는 길이 너무 불편하다. 인도(人道)가 없다시피 하고, 풀이 무성한데, 간밤에 내린 비로 축축하기까지 하여 걷기가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 차라도 안 다니면 차도를 사용해 걷겠는데, 그도 어렵고. 이따금 배려심 없이 지나가는 차 때문에 빗물도 튕긴다(나는 앞으로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얼마쯤 걷다 보니 금성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농협 건물도 보인다. 현금을 좀 인출할 생각으로 들어가 현금을 찾아 나오는데, 길 건너편에 비단 밥상이란 한식부페 식당이 보인다. , 저기서. 시계를 보니 11시에 육박한다. 아녀, 애초 목표했던 식당에서 먹어야지. 다시 도로로 나와 걸으려다 생각을 바꿨다. 우중인 데다 인도 상황이 너무 불편해 잘못하다 황천길 갈 염려도 있다. 저기서 점심을 먹고, 오늘은 버스를 타고 순창으로 이동하자.


식당에 들어서니, 갓 세팅을 끝낸 것 같다. 내가 첫 손님인 듯싶다. 눈앞에 보이는 다양한 반찬들. 우와, 이게 얼마 만이냐! 사장으로 보이는 젊은 분한테 선불이죠?” 했더니, 그렇단다. 대금(1만 원)을 지불하고, 혹시 여기서 순창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었더니, 있을 거라며 물어보고(아버지께) 알려 주겠단다. 후덕한 인상답게 친절하다. 이것저것 맘에 드는 것을 담는데, 식단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것 같다. 이곳 매력은 본인이 프라이를 해 먹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주인으로 보이는 노부인께 남는 것 있으시냐?”고 했더니, 웃으며 그냥 인건비 정도만 건진다고 하신다. 예전에도 식당으로 운영했던 듯 밥 먹는 장소는 방으로 돼 있고 전부 입식으로 바꿔놓았다. 혹 신발을 벗고 들어갈까 봐 염려했는지, 그냥 신발 신고 들어가면 된다고 안내문이 쓰여 있다. 친절하구나. 생각 같아선 배불리 먹고 싶었지만, 경험상 배부르면 되레 걷기 힘들어(오늘은 더 이상 안 걸을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애써 식욕을 절제하며 먹었다. 젊은 사장이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표 파는 데가 있고, 순창 가는 직통도 있어요.”라고 알려준다. ‘비단 밥상은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인 듯싶다. 처음에는 부모가 운영하다, 아들 내외(젊은 사장의 처인 듯한 젊은 여인네가 있었다)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특하다. 부디 번창하시길! 잘 먹은 데다 작은 친절이 고마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한다. 내 글을 볼 사람이 많지 않아 이곳을 알린다고 하여 올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홍보로나마 친절에 보답코자 사진을 찍었다(지금 글을 쓰며, 앱으로 식당 이름을 검색해보니, 주소가 '담양군 금성면 석현길 6'으로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벗들이여,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을 들렸다면 점심은 이곳에서 한 끼 드시라. 입 짧고 쫀쫀한 소생이 추천하는 곳이니, 후회하지 않을 터.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더구나 차를 타고 왔다면 더더욱!).



차표 파는 곳에 가서 표를 사며 주인에게 차가 몇 시에 오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른단다. 오잉? 그러고 보니 차표에 승차 시간이 없다. 매표소에 승차 시간도 부착 돼 있지 않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청년이(마실 온 듯한) 좀 전에 담양 쪽으로 차가 들어갔는데, 1240분쯤이면 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아이고, 차만 탈 수 있다면야). 그러면서 길 건너편 헙수룩한 집 추녀 밑에서 기다리란다(따로 승강장이 없다. 담양 가는 쪽에는 승강장이 있는데). 거기서 기다려야 차를 타지, 안 그러면 차가 그냥 지나친단다. 또 작은 친절. 감사합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 길 가 헙수룩한 집 추녀 밑 돌 의자(?)에 앉아 있자니, 쓸쓸하고 무료하다. 셀카를 찍어봤다. 아이고, 입술이 부르텄네, 눈도 힘들어 게슴츠레하고. 그간 거울을 자세히 안 봤는데, 내가 봐도 몰골이 좀 불쌍해 보인다. 이거, 처한테 사진을 보내면 그 감수성 많은 사람이 걱정할 것 같다(가족 단톡방 사진에서 뺐어야 하는데 , 정신 놓고 그냥 올려, 처한테 걱정을 들었다. 여보,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요. 씽씽합니닷~).



드디어 차가 왔다. 그냥 갈까 봐,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따뜻한 버스 안의 온기. 너무 기쁘다, 아니 황홀하다. 민폐를 끼칠까 봐 뒷자리로 가 공손히 앉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우중 풍경을 여유 있게 바라본다. 걸어갔으면 쳐다볼 엄두도 못 냈을 풍경. 시선을 돌려 차 안을 보는데 차 시트에 애 키우기 좋은운운의 홍보 문구가 붙어있다. 지방의 인구 감소 문제를 또 실감한다. 사진을 찍을까 하다, 오해받을 것 같아 그만뒀다.


순창 버스터미널에 도착, 숙소로 점찍은 곳을 찾으러 갔다. 오늘은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어야겠다. 도중에 하나로 마트가 있어 간식거리를 사고(좋아하는 금귤도 샀다), 숙소를 향해 전진하는데, 이거 날씨가 보통이 아니다. 비가 오는 데다 바람까지 드세다. 우산이 뒤집히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숙소가 안보이냐,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거 아녀? 천변 중간에 있는 정자에 올라 다시 숙소를 확인하고 출발했다. 저 멀리 점찍은 숙소가 보인다. '멘하탄 모텔'. 아이고 고마워라. 이곳을 숙소로 점찍은 건 2시부터 입실이 가능해서였다. 그런데 숙소 이름이 너무 어색하다. 뭐여, 순창은 뉴욕이고, 중앙의 물길은 허드슨 강이란 말이여? 아이고, 차라리 고추장 모텔이라고 이름 붙이면 낫지 않았을까? 촌스럽지만 사람들 뇌리엔 콱 박힐 텐데.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곳 아니던가!


드디어 숙소 입구에 도착. 그런데, 좀 을씨년스럽다. 청소 상태도 불량하고. 객실 밖으로 나온 에어컨을 보니 많이 낡았다. 내부 시설도 형편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이른 시간이라 그럴까, 출입문 안에 들어서니 객실 점검 중이란 안내문과 함께 필요하면 벨을 누르라고 돼 있다. 벨을 누르니,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 인간들의 저급한 욕구를 상대하면서 오랜 세월 살아온 인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눈빛의 아주머니가 나온다. 갑자기 벌꿀 호텔의 그 선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숙박료를 물으니, 4만 원이란다. 혹 현금 내면 깎아 주시냐고 물으니, 묵묵부답. 더 말해봐야 효과 별무일 것 같다. 어덕이 있어야 비비지. 역시 인상 값 하신다. 비용을 지불하는데, 뜻밖의 소리를 한다. “미안해요~.” 그러면서 아직 보일러 가동 시간이 아니니 추우면 침대 전기장판을 틀란다. 오잉? 방안에 들어서니, 강진읍 모란 모텔과 비슷하다. 아이고, 이 사람아 우중에 이렇게 일찍 숙소에 들어온 것만도 감사해야지! 비에 젖은 옷을 옷걸이에 걸고 배낭 속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꺼내 바닥에 널어놓았다. 샤워하러 들어갔다. 혼시 온수가 안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온수는 나온다. 속옷을 갈아입고 속옷과 양말 그리고 스포츠 티셔츠까지 빨래하여 널은 뒤 침대에 들어갔다. 요가 기모로 돼 있어 따뜻해 굳이 전기 요를 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왠지 청결감엔 의심이 간다. 커튼을 열어보니 길가를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소음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TV를 켜고, 또 음심(淫心)이 발동하여 야한 영상을 볼까 해 리모콘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누르는데, 안 나온다. 잘됐다! 하하. 시덥잖은 프로 이것저것을 보다, 누룽지와 빵 오이와 금귤로 식사를 하고 간단한 메모를 한 뒤 가족 단톡방에 일찌감치 소식을 전했다. 오늘 저녁엔 다시 곰의 후손으로 되돌아 가야겠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한무 형한테 전화가 왔다. 이 인정 많은 형(그러나 선()도 확실한) , 한 번은 전화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이다. 너무 무리하지 말란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허허~. 일본엔 잘 다녀오셨냐니, 좋았단다. 귀가하면 경험담 좀 들어야겠다. 저녁 6시가 못 되어 커튼을 굳게 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특기도 있지만 잠 많이 자는 특기도 있다.


내일은 임실까지(그 말썽 많은 임실. 하하. 내일 치를 기대하시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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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 화요일


4, 눈을 떴다. 일어나기 싫었지만, 용기를 내어 몸을 일으켰다. 어제 확인한 나주에서 담양 버스 터미널까지의 거리가 50km12시간 53분으로 돼 있어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저녁 6시에는 숙소에 들어가야 하니 아침 6시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중간에 경로 변화가 생기면 예정 시간보다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것인지, 예정 시간보다 더 걸었고 목표 지점까지도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오후에 비 예보도 있다. 샤워한 뒤 누룽지와 모닝빵 딸기 약간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봉지 커피 한잔을 타 마셨다. 역시, 불끈 힘이 솟는다! 그런데 종이컵에 쓰인 문구가 정겹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당신을 응원해요.” 흡사 나를 위해 특별 제작한 종이컵 같다. 문자 디자인도 앙증맞다. 달콤한 컵, ‘벌꿀호텔에 어울리는 종이컵일세~.



5시 반경 호텔을 나섰다. 앱으로 경로 확인을 하고 이정표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는데 영산강을 따라 천변에 형성된 벚꽃길이 눈에 띈다. 저쪽으로 한 번 걸어볼까? 그러다, 길 잃으면? 앱으로 다시 찾으면 되지! 큰길을 벗어나 작은 길로 접어들어 천변의 벚꽃길을 걸었다. 날씨만 좀 더 화창하면 좋겠는데, 구름 낀 어둑한 하늘 때문에 환한 벚꽃이 약간 빛바래 보인다. 그래도 차 씽씽 달리는 도로 걷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천변 길이 끝나는 즈음 큰 도로로 나가는 길이 있어 아까 걷던 큰 도로와 만날 것 같았는데, 아니다. 이런~! 앱을 켜니, 아까 처음 경로를 바꿨던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니, 걸어온 길이 얼마인데, 다시 그 길을? 방법이 없을까? 앱을 무시하고 저 멀리(?) 보이는 큰 도로로 들어설 수 있는 길을 대충 헤아려 전진했다. 결국, 성공! 무식하고 용감한 자 앞에 장사 없다!



큰 도로에 다시 들어서기 전 작은 길을 지날 때 미나리 채취하는 분들을 보았다. 바로 사진을 찍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아 얼마간 간 뒤 사진을 찍었다. 굳이 사진을 찍은 건 동남아에서 온 듯한 젊은 분들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농촌 지역에서 이분들을 보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돼버렸지만, 미나리꽝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최 교수가 감소하는 인구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미 어느 정도는 그런 단계에 들어선 것도 같다. 잠시 와서 일하는 분도 있지만, 정착하는 분도 많기 때문. 문제는 우리의 위화감과 그분들의 소외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 같다. 외적인 지원과 배려보다, 내적인 거리감의 극복이 더 중요해 보이는 것.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이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반말은 예사고, 팔기 싫은 물건을 억지로 파는 듯한 태도로 그분들을 대했다. 공짜로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매상 올려주는 손님을 왜 그렇게 대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분들이 백인이었다면 그렇게 대했을까? , 생각은 그만하고, 부지런히 걸어야지? 갈 길이 멀어!



광주와 담양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광주에 들어서면서, 큰 도로로 가는 게 살짝 무서워 앱을 켜고 안전한 도로를 안내받아 경로를 바꿨다. , 그런데, 이게 사단을 일으켰다. 광주 외곽을 돌아가게 안내하여 시간을 너무 낭비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담양 이정표도 찾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까 봤던 이정표를 따라 목숨 걸고(?) 걸었으면 이런 사단이 안 생겼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광주 외곽은 우중충했다. 도시 외곽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흠모했던 지역이라 그런지 실망이 컸다. 지저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도 관리가 안 돼 엉망이고 헙수룩한 공장도 많고.




이리저리 헤매다 드디어 담양 가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그런데, 물경 36km나 더 가야 한다. 오후 3시인데. 하지만 거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야 할 길을 찾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 옆을 걷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길이 보이지 않기에 힘든 것이지, 길이 확실하게 보인다면 닥쳐오는 난관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330.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양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냥 맞았지만 계속 맞다 보니 잠바가 축축해져, 할수없이 우산을 꺼내 들었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차량 운전자들은 속으로 욕했을 것 같다. ‘아니, 어둑한 날씨, 비도 오는데, 저 웬 미친놈이 우산까지 쓰고 도로 한 곁을 걷는 겨. 되질라고 환장했나!’



얼마나 걸었을까, 편도 1차의 도로로 접어들어 걷는데 죽녹원, 메타세콰이어 산책길, 담양등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드디어 담양 가까이 온 거구낫! 그런데 이정표에서 봤던 킬로 수의 담양에 왔는데 왜 이리 숙소 같은 것이 안 보이냐? 이제 사방은 캄캄하고 빗발은 점점 굵어진다. 신발은 물에 젖어 물컹거린다. 미치겠다! (뒤늦게 안 것인데, 이정표에 나온 행정구역에 들어섰다 하여 바로 무슨 시설이 있는 게 아니다. 이정표는 단지 그 행정 구역의 도입 지역을 안내해주는 것뿐. 시설이 있는 곳에는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넘들은 다 아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안 것이다. 바보~.)


부지런히 담양 읍내를 향해 걷는데 길 건너편에 해피 타임이란 무인텔이 보인다. 저기서 하룻밤? 아녀, 목적지까지 가야지!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네. 조금 걷다보니, 국밥집이 나온다. 오매, 반가운 거! 문을 여는데, 왠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혹시. 주인으로 보이는 사장이 먼저 묻는다. “주문하신 거 찾으러 오셨나요?” “그게 아니고, 식사하려고.” “죄송합니다. 마감돼서.”


가게 옆에 ‘CU 편의점이 있어 뭘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아녀, 식사다운 식사를 해야지.’ 발길을 옮기는데, 얼마 안 가 갈등이 생긴다. 이 사람아, 담양 읍내에 언제 들어설 줄 알어. 시방 비가 이렇게 오고 사방이 깜깜한디. 가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려. 결단을 내려. 아까 그 무인텔서 자고, ‘CU’에서 그냥 요깃거리 사도록 혀. 그래,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짓자! 발길을 되돌려, ‘CU’를 향하는데, 왜 이렇게 ‘CU’가 반가운지. 정말, Nice to see you ! 만약, 저 편의점이 없었다면 나는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잖은가. 평소 24시 편의점에 대해 그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힘든 상황에서 24시 편의점을 대하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함부로 나의 잣대를 들이대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CU’에 들러 인스턴트 떡국과 내일 아침에 먹을 모닝빵을 샀다. 그리고 초코 우유도 하나. 그리고, ‘해피 타임'으로!



간판이 번쩍거려 입구를 찾기 쉬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뭐여~. 겨우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니 다행히 두어 군데 차단막이 아직 내려있지 않았다. 그런데, 평일 숙박 가격치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 6만 원짜리도 있고 7만 원짜리도 있다. 5만 원짜리도 있긴 한데 이미 차단막이 다 내려져 있다. 아이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나? 6만 원짜리를 결재하고 방에 들어섰다. 예의 그 넓고 깨끗함. 하루 내내 쌓였던 게다가 비까지 맞아 힘들었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고맙게 스타일러도 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선, 초코 우유를 벌컥벌컥. 그리고 떡국을 먹었다. 조미료 냄새가 다소 느끼했지만, 더운 국물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여 넌 뒤, 평소 빨래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잠바와 기모 바지를 스타일러에 넣어 건조시켰다. 비까지 맞아 더 부담스럽게 된 옷을 말릴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그런데, 순간, 신발도. 사장이 알면 질겁을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발을 최대한 깨끗하게 한 뒤 옷걸이에 끼우고 스타일러를 가동시켰다. ~. 사장님, 죄송합니다~~.


침대에 들었다. 늦은 시간(10시가 넘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또 색심(色心)이 들어 리모컨을 들고 야한 영상을 볼까 하여 여기저기 눌러보는데, 다행히(?) 걸리는 게 있다. VIKI. 일본 거시기 채널이다. 으흐흠, 좋아요, 좀 더 세게. 조금 보다보니 괜히 욕이 나온다. 에라, 시부럴 X. 좀 해도, 인간적으로 하면 안되냐. 왜 그리 가학적이고 피학적이냐. 그러니 전대미문의 위안소를 설치해 운영했겄지. 하여간 종자들 참. 응큼한 마음을 만족시켜 줬으니 감지덕지해야는데, 욕이라니. 이 사람, 정신 약간 이상한 거 아녀. 그런지도 모르제. 그렇지만 즐겁기보단 욕지기 나는게 사실이여. 애이, 잠자리만 뒤숭숭하겄다. TV를 껐다.


가족 단톡방에 6신을 올리고, 세심(洗心)을 위해 억지로(!) 고문진보한 소금을 읽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제발 꿈자리 뒤숭숭하지 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내일은 순창읍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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