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 도로 남이 되는...


대중가요 '도로 남'의 한 대목. 점 하나로 그 의미가 현격히 달라지는 우리 글의 묘미(?)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남'과 '님'은 그 의미가 얼마나 다른가!


어제 우연히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문'을 읽다 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일 선전 포고문은 한문으로 돼있어 번역문을 참조해(국사편찬위원회 자료실) 읽었는데 마지막 항목 풀이가 황당했다(위 사진).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로 번역할 것을 '만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로 풀이해 놓았던 것. 전자의 풀이대로라면 연합군의 대일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후자의 풀이대로라면 만주군(일본의 괴뢰 정부)의 대연합군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는 의미가 되어, 완전히 상반된 의미가 된다. '점'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큰 의미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 글의 묘한 특성을 새삼 실감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은 이런 우리 글의 묘한 특성을 말로 바꿔 표현한 속담일 터이다. 말과 글을 쓸 때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됐다. 그나저나 국사편찬위원회 자료가 저리 부실해서야...'오류 신고'가 있긴 하다만서도(어제 오류 신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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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리에 있는 햄버거 가게, 인생 버거(사진). 미식가인 아내가 칭찬을 해서 해변길 걷기 중 들렸는데(수요일, 10:40) 문을 열지 않아 그 맛을 못 보았다. 그런데 가게 이름이 참 재미있다. '인생 버거'라, 직유법으로 보면 '인생 같은 버거'가 되겠고, 은유법으로 보면 '인생은 버거다'가 되겠고, 우스개로 읽으면 '인생 별거 있어'가 되겠다. 


'인생 같은 버거'라면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것이 삶이니 이 집 버거는 그런 달콤 쌉쌀한 맛이 난다는 것일 터이다. '인생은 버거다'라면 인생은 천지간에 살아가는 존재이니 이 집 버거는 그런 우주론적 의미를 지닌 존엄한(?) 버거라는 것일 터이다. '인생 별거 있어'라면 삶이 꿀꿀할 때 한 잔 마시며 꿀꿀함을 풀듯 이 집 버거를 먹으면 그런 효과가 난다는 것일 터이다. 날이 꿀꿀한 오늘, 마지막 의미로 '인생 버거'집 의미를 풀이하고 싶다. 하하. 재미있는 가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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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지명을 갖는 곳이 종종 있다. 내가 사는 지역(서태안)의 한 지명이 다른 곳에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모항. 모항은 전북 부안에도 있었다. 한자 표기도 동일하다. 茅項. 茅는 띠 모, 項은 목덜미 항이다. 그런데 두 지명에 대한 설명이 약간 상이하다.


부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띠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띠 모(茅) 자, 배가 지나가는 목이라 하여 목 항(項) 자를 써서 ‘모항’이라 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태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모(茅)는 불모지(不毛地)를, 항(項)은 물을 건너가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 모항항 입간판, 위 사진)


어느 것이 적절한 설명일까? 부안의 설명이 적절한 것 같고, 태안의 설명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소 지나치게 의역된 설명 같다.


식자우환이라고, 한 자 몇 자 알다 보니, 가끔씩 한자가 들어간 간판에 딴지를 걸고 싶은 때가 있다. 모항항에서 본 입간판이 그랬다. 


그나저나 전에는 '모항'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한자 표기가 수반된 입간판을 통해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모항의 의미를 알고 모항을 대하니 모항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왠지 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지명의 의미를 알고 모르고는 그 지역을 대했을 때 갖는 생각과 느낌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의미가 사라진 채 단지 표식으로만 사용된 한글 지명 표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설혹 생긴다해도 그릇된 생각과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 지명에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데 그것을 알 길 없게 만드는 한글 전용 지명 표기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모항항의 설명 입간판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모항의 의미를 전달해줬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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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기적이로다! 참으로 신.비.하도다! 

AI? 에라이, 너 같은 애가 어디 여기에 한 줌이나 상대가 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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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시고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난 문득 소순((1009~1066)의 '목가산기(木假山記)'가 생각났다.


산 모양으로 된 나무(일종의 분재)를 '목가산'이라 하는데, 소순은 중심이 높고 주변의 두 봉오리(가지)가 중심을 향하는 형태의 목가산을 얻었다. 소순은 목가산을 보면서 나무의 일생을 먼저 말한다. 싹이 나자 바로 죽는 것이 있고, 조금 자라다 죽는 것이 있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재목으로 잘려 죽고, 그렇지 않으면 풍우에 시달려 쓰러지거나 썩어서 죽는 것이 대부분 나무의 생이다. 그러나 목가산 나무는 여울진 물속에서 성장하여 이런 나무의 불우한 생을 피하기에 온전히 살아남아, 호사가의 눈에 띄어 산 모양으로 다듬어져 남은 생을 온전히 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호사가의 눈에 띄지 못하면 초부들에게 땔감으로 전락될 수 있다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목가산은 그야말로 나무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목가산이 단순히 이렇게 살아남았기에 대견한 것만이 아니고 중심은 의연하고 주변의 두 봉오리(가지)는 근엄한 자세로 중심을 섬기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주견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소순과 그의 두 아들 소식과 소철은 이른바 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명문장가였다. 목가산의 세 봉우리는 자신과 두 아들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물속에 잠긴 나무를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것 같다. 혹자는 수몰민을 생각하며 실향의 슬픔을 생각키도 할 것이고, 혹자는 무슨 공포나 괴물 영화를 연상하기도 할 터이고... 내가 목가산기를 떠올린 건 아무래도 내가 가진 배경 지식 때문일 터이다.


세상을 편견 없이 보라고 많이들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외려 편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라는 건, 내게는, 몹시 위험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를 전쟁터에 내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편견을 가져야만 한다. 다만 편견을 갖되, 자기 만을 생각하는 편견보다는 상생을 위한 편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한다. 목하 윤 대통령이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건 상생보다 위아(爲我)의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공부도 경험도 미흡하다). 그렇지 않은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다양한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단순한 감상의 편견을 넘어 옛과 지금을 연결하며 삶의 가치와 세상사를 판단하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편견이 더 높은 편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본의 아니게 자랑하는 말이 됐다. 용서하시라). 하물며 세상의 큰 일을 대하는 편견에 있어서야 어떤 편견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는 말해 무엇하랴.


하여, 결론을 내리면(?), '우리 모두 편견을 갖자! 그리고 '당신의 편견을 응원해요!'가 되시겠다. 다만 전제가 있다. '상생을 위한'을 편견 앞에 꼭 놓아야 한다는 점. 때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편견을 갖자!' '편견을 응원해요!'에는 이 보이지 않는 전제가 매우 중요하다. 


사진은 태안의 파도리 어은돌 저수지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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