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된 자가 인간 성품의 근원을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찰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그것의 공효를 천하 국가에 펼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경전과 사서일 뿐이다. 이 밖에 다른 책을 구하게 되면 오도(유학의 도)를 버리고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천하의 이치는 무궁하고 사물의 변화 또한 이와 더불어 무궁하기에 경전과 사서 외에도 다른 책들이 있다. 다양한 사상과 기예를 가진 자들이 각자가 터득한 소견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책을 지었으니, 이들의 주장과 책의 내용이 비록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과 부합되지 않는다 해도 나름의 볼만한 부분이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하여 이들의 주장과 책의 내용은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어 도는 지극히 크기에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한다. 하여 고래로 선비 된 자들이 이러한 주장과 책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태평광기』도 이러한 연유로 지어진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담느라 내용이 너무 많고 지리하다. 물경 500권에 달하여 이 책을 다 읽은 이들은 극히 드물다. 나의 벗 성임은 옛것을 좋아하는 해박하고 단아한 군자이다. 일찍이 이 거질의 책을 독파하고 이 글이 갖는 풍부함과 화려함 그리고 신비하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주는 놀라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압도적 양과 요점의 미비함에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그 지리하고 지나치게 황탄한 내용들은 빼고 50권으로 축약하여 읽기 좋은 판본으로 만들었다.
완성된 책을 내게 가져와 서문을 요청하기에 받아서 읽어보았다. 진(晉)의 온교가 우저가에서 쇠뿔에 불을 담아 물아래를 비췄더니 온갖 신이한 것들이 다 보였다는 것처럼 『태평광기』의 주요 신이한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진시황의 여산릉을 발굴할 때 팔수록 진기한 패물이 나온 것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점입가경의 내용이 나오게 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에는 수천 년간의 귀신과 인간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는바, 기쁘고 놀랍고 받들고 버려야 할 것들이 모두 한 상에 빠짐없이 차려져 있다. 하여 다섯 수레의 많은 책을 읽지 않고도 이 책만 충실히 읽으면 좁고 고루한 식견을 탈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임이 얼마나 이 책에 공력을 들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성임이 내게 책을 건네며 한 말이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괴력난신(怪力亂神)은 공자께서 언급하길 꺼리신 바일세. 후세 사람들이 이 책을 지목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그르치는 책이라고 할까 좀 걱정되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역경에도 하도가 있고 서경에도 낙서가 있으며 시경에도 ‘현조’와 ‘무민’ 같은 시가 있으며 예기에서도 네 영물(기린, 봉황, 거북, 용)의 응답을 언급하고 있고 역사서에서도 여섯 비익조에 관한 일을 기록하고 있네. 성인께서 경을 정비하실 때 이러한 일들을 모두 그대로 둔 것은 무슨 뜻이었겠는가? 천하의 이치란 무궁하고 사물의 변화 또한 이와 더불어 무궁하기에 하나의 생각이나 사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신 것이 아니겠는가! 성인께서 괴력난신을 언급하길 꺼리신 것은 사람들이 육경의 이치엔 어두우면서 색은행괴(索隱行怪)의 설에 매몰될까 걱정하셨기에 그리하셨다고 보네. 만약 먼저 육경의 도를 분명히 궁구하여 학문의 경지가 정대하고 고명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비록 저잣거리의 비루한 말도 모두 나름의 이치가 있기에 나를 성장시키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걸세. 하물며 한적하고 답답할 때 이 책을 보면 흡사 옛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즐겁게 담소하며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료하고 답답한 기운이 얼음 녹듯 사라져 가슴이 시원해지니 그 가치가 어떠하겠는가? 이런 것이 예기에서 이르는 “한 번 긴장하면 한 번 이완해야 한다”는 이치 아니겠는가! 옛사람도 이런 것을 알았기에 패관을 두었고 소설가라는 이들의 글도 전해지게 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것이 존재하고 전해 졌겠는가!” 성임은 나의 말에 동조의 뜻을 보였다. 이에 이 서문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약태평광기서(『略太平廣記』序)
*『태평광기』는 송 태종(939-997) 연간에 이임 등이 편찬한 설화집으로 송대 이전까지의 거의 모든 설화가 집대성된 책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기는 고려 고종(1192-1259) 이전으로 보며, 최근에는 나말여초로 보려는 입장도 있다. 비교적 일찍 도입된 설화집으로 우리나라의 소설 발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신은 이 책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태평광기'의 장점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육조에서 송초까지의 소설이 거의 전부 그 안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만약 대략적인 연구를 한다면 많은 책을 따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괴·귀신·화상·도사 등을 한 부류씩 매우 분명하게 분류하고 아주 많은 고사를 모아 놓았으므로 물리도록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윗글에서도, 관점은 약간 다르지만, 이런 『태평광기』의 장점을 언급하고 있다.
*도덕과 재미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가치이다(윗글에서는 둘 다 ‘도’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예교가 지배하던 과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윗글 마지막에 성임이 애써 책을 만들고도 걱정스러운 말을 한 것이나 서문을 써 준 이승소가 글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 『태평광기』가 갖는 가치를 애써 변론한 점은 이런 양립이 쉽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무리 도덕을 강조해도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초만 해도 성리학이 강고하지 않고 도학보다 사장의 전통이 강했던 고려의 영향이 남아 재미를 지닌 책을 옹호하는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성리학이 난숙한 조선 중기 이후엔 이렇게 패사소품의 글을 옹호하는 글을 쓰기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이 서문은 『약태평광기』란 책에 써준 서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이다. 어느 책명이 맞는 걸까? 서문으로 본다면 『약태평광기』가 맞을 것 같다. 『태평광기상절』이란 책을 갖고 와 서문을 요청했다면 『태평광기상절서』라고 하지 굳이 『약태평광기서』라고 할 리가 없겠기 때문이다. 후에 책 제목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