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공자의 이른바 정명론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행동을 할 때 세상의 질서가 잡힐 것이란 주장이다. 원칙상으론 흠잡을 데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원칙대로만 움직이던가. 공자가 당시 유세하던 나라들에서 홀대받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상은 명실이 상부하기보다는 불상부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신유학이라 불리는 이른바 성리학의 주 텍스트인 『대학』의 첫 구절이다. 『대학』은 원래 『예기』의 한 편이었는데, 신유학의 주 텍스트가 되면서 독립된 경전이 되었다. 그런데 이 경전의 성립 자체가 사실은 유학의 종주인 공자의 정명론을 거스른 행위이다. 대학은 본시 제왕의 학문인데 성리학은 이를 사대부의 학문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이런 면에서 나는 성리학을 희화화하여 신유학이라 부른다). “명덕을 밝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백성을 새롭게”하거나 “(세상을)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분명히 제왕의 목표이자 임무이지 사대부의 목표나 임무는 아니다.      


위 테제의 핵심은 “백성을 새롭게”라는 내용이다. “명덕을 밝히는” 것은 “백성을 새롭게”하기 위한 출발점이고 “(세상을)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백성을 새롭게”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성을 새롭게”라는 말에는 사대부의 장대한 이상이 담겨있다. 그런 만큼 계몽적이기도 하다.     


사진의 한자는 ‘신민회(新民會)’라고 읽는다. 여기 ‘신민’은 바로 『대학』의 첫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신민회’를 굳이 번역한다면 ‘백성을 새롭게 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7년에 설립된 신민회는 비밀결사의 항일단체였다. 그런데 이 명칭에서 나는 당시 이 조직을 만든 이들이 사대부 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민(民)을 주체로 보지 못하고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그러나 이해는 된다. 비록 근대라고는 하나 왕조시대와 그리 시간 간격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조시대의 조선은 사대부의 학문인 성리학을 기치로 내건 국가였지 않았던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명칭이 현대에 와서도 사용됐다는 것이다. 신민당(新民黨)이 바로 그것. 박정희 정권하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대항마였던 야당의 명칭이다. 적어도 명칭만으로 보면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짖었던 야당이 겉으로는 민주(民主)를 외쳤지만 속으로는 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봤다고 볼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여당의 민주공화당이란 명칭이다. 민주공화당에서 ‘민주’와 ‘공화’는 그야말로 민을 주인으로 보고 민과 함께 숙의한다는 명칭인데, 민주공화당의 행태는 이와 반대였기 때문이다. 두 명칭 모두 명실이 불상부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여당의 명칭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주공화당’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을 내건 정당이 적폐의 뿌리라 할 ‘민주공화당’의 다른 버전을 사용한다는 것 역시 명실이 불상부한 경우이다.)


예나 이제나 세상에는 명실이 불상부한 경우가 상부한 경우보다 훨씬 많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을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공자가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정명론을 견지했던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에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런 우직한 면모 때문에 그의 이름이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군산에서 찍었다. 카페 이름이다. 근대 문화를 테마로 한 거리의 건물이라 이 명칭을 사용한 것 같은데, 그 굴레를 벗고 ‘새로운 사람들’이란 명칭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훨씬 산뜻하지 않은가? ‘신민’은 ‘백성을 새롭게’란 뜻으로도 풀 수 있지만, ‘새로운 백성(사람들)’이란 뜻으로도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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