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버지는 길을 떠나기 앞서 곤히 잠든 어린 자식들과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이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그들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순간 그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장원했던 자신의 시를 떠올렸다.
不朽名聲士氣明(불후명성사기명) 썩지 않을 이름으로 선비 기개 밝으니
士氣明明萬古晴(사기명명만고청) 선비 기개 밝고 밝아 만고에 해맑도다
萬古晴心都在學(만고청심도재학) 만고에 맑은 마음 배움에 달렸으니
都在學行不朽聲(도재학행불후성) 배워 행함 속에 썩지 않을 이름 있네. (번역: 정민, '한시 미학 산책' 304쪽)
"그래, 나는 나의 배움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아이들아 그리고 아내여, 너무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나 미안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언젠가는 나를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젊은 아버지는 마음을 추스리고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밖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사진의 시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인 충의사에서 찍은 거예요. 그가 서당을 다닐 때 지은 시라고 하더군요. 웬지 홍구우 공원 의거 전조를 알리는 듯한 느낌이에요. 언어는 주술성을 띈다고 하잖아요?
윤봉길 의사가 돌아간 나이는 25살 이에요. 그에게는 이미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두고 집을 떠날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신이야 대의(大義)를 위해 집을 떠난다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몹쓸 짓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들에게 가해질 생활고와 일제의 탄압을 생각하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때 문득 떠올린 것이 이 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여 가상의 이별 장면을 그려 봤네요.
윤봉길 의사의 시는 첩자시(疊字詩)예요. 각 구절의 끝 세 글자가 다음 구절에 그대로 반복되고 있죠. 얼핏보면 쉬워 보이지만 운과 내용의 완성도를 고려하면서 반복 구절을 써야 하기에 결코 쉬운 형식의 시가 아녜요. 윤봉길 의사의 시문 실력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朽는 木(나무 목)과 丂(공교할 교)의 합자예요. (나무가) 썪었다란 의미예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丂은 음을 담당하면서(교→후)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丂는 본래 기운이 올라가다 위에서(一) 막힌 것을 표현한 글자였어요. 여기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죠. 즉 기운이 올라가다 위에서 막힌 것과 같이 성장이 막힌 것이 썩은 나무란 의미로요. 썪을 후. 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不朽(불후), 朽廢(후폐, 썩어서 쓸모없게 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聲은 耳(귀 이)와 磬(경쇠 경)의 약자가 합쳐진 거예요. 경쇠가 울릴 때 나는 것처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귀를 통해 들리는 그 무엇이란 뜻이에요. 그게 무엇이겠어요? 소리지요!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音聲(음성), 聲量(성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晴은 본래 夝으로 표기했어요. 夝은 夕(저녁 석)과 生(星의 약자, 별 성)의 합자예요. 비가 개인 후 저녁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의미예요. 이 의미를 줄여 '개다'로 사용했어요. 갤 청. 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晴天(청천), 快晴(쾌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都는 阝(邑의 약자, 고을 읍)과 者(渚의 약자, 물가 저)의 합자예요. 수도란 의미예요. 阝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者는 음을 담당하면서(저→도)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수도는 물가를 띠고 형성된다는 의미로요. 도읍 도. 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都市(도시), 都農(도농)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朽 썩을 후 聲 소리 성 晴 갤 청 都 도읍 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音( ) ( )農 快( ) 不( )
3. 다음 시를 읽고 풀이해 보시오.
不朽名聲士氣明 士氣明明萬古晴 萬古晴心都在學 都在學行不朽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