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법 조어선이 우리 해경 단속정을 침몰시켰는데도 정부는 고작 '유감'과 '재발 방지'만을 요청했다고 하죠? 고개를 숙여야 할 중국 정부는 되려 한국 정부가 '이성적'으로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고 큰소리(?) 쳤구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어가 한 두해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왜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미워요' '하지 마세요'류의 유감과 재발 방지만을 요청하는 걸까요? 힘없는 70대 시위 농민을 가혹한 살수로 죽게 할 만큼 자국민에게는 강한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말이지요.
혹 기득권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닐까요? 우리와 이해 관계가 밀접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중국과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 관계가 얽힌 기득권에 - 대기업같은 -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요.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주권 침해 행위에 '유감' 운운하는 나약한 태도를 취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기극권 지키기에 급급하여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체면을 도외시한 대표적인 행태가 바로 친일파들의 소행이죠.
사진은 한 친일파의 시예요. 비록 시 한 수이긴 하지만 이 시를 읽어보면 친일파의 행태가 어떠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春翁七十氣昻然 춘옹[이토 히로부미]은 칠십 노인이면서도 기세가 높아
活佛身兼到上仙 살아있는 부처요 하늘에 오른 신선이라
誰識平生勞苦意 평생 수고한 뜻을 누가 알리요
只憂西勢漸東邊 다만 근심하는 것은 서양의 세력이 동쪽으로 몰려 옴이라
時 隆熙三年 七月 융희 3년 7월
於京城翠雲亭 경성의 취운정에서
賦別伊藤公爵一絶 이토공과 이별하며 절구 한수를 지었다
書爲井上君雅囑 이노우에군께서 부탁하여 썼다
韓國從一品 農商 한국 종 1품 농상공 대신
趙重應 조중응
이 시는 취운정에서 열렸던 이토 히로부미 송별연에서 지은 거예요. 지은이는 놀랍게도 대한제국의 농상공대신 권중응이에요. 이토를 살아있는 부처와 신선에 비유하는, 자국 일본인이 읊조리기에도 낯부끄러운, 이 시를 대한 제국의 - 거의 주권을 잃어가는 처지이긴 했지만 - 대신이 지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힐 노릇은, 위 시의 내용을 보면, 일본이 내세우는 서세동점의 논리에 도취되어 제 나라를 일본에 맡기려는 것에 자긍심마저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일본이 있기에 서양 오랑캐에 넘어가지 않게 됐다는 감사의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이 시는 경술국치(1910) 한 해 전인 1909년 7월에 지어졌어요). (한동안 논란이 됐던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런 권중응의 인식과 괘를 같이 하는 거겠죠.)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체면은 오간데 없고 오로지 강자에 빌붙어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이런 친일파의 행태는 해방 후 청산되어야 할 역사적 과제였어요. 그러나 미군정이후 친일파의 재등용으로 이들이 기득권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게 됨에 따라 우리 현대사에는 '생존'만이 난무하고 '명예와 권위'는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었지요.
모든 구악(舊惡)이 친일파에게 있다고만은 할 수 없죠. 그러나 상당 부분 친일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역사적으로라도 반드시 청산을 해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사대(事大)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나라에 한걸음 더 다가설 거예요.
※ 사진과 번역은『'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민족문제연구소 편, 2010) 58-59쪽에서 인용했어요.
한시의 한자만 한 번 읽어 볼까요?
春翁七十氣昻然 봄 춘/ 늙은이 옹/ 일곱 칠/ 열 십/ 기운 기/ 우러를 앙/ 그럴 연
活佛身兼到上仙 살 활/ 부처 불/ 몸 심/ 겸할 겸/ 이를 도/ 위 상/ 신선 선
誰識平生勞苦意 누구 수/ 알 식/ 평평 할 평/ 날 생/ 수고로울 로/ 쓸 고/ 뜻 의
只憂西勢漸東邊 다만 지/ 근심 우/ 서녘 서/ 세력 세/ 차차 점/ 동녘 동/ 가 변
昻, 憂, 漸이 좀 낯설어 보이죠?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죠.
昻은 日(날 일)과 卬(우러를 앙)의 합자예요. 높이 들어 올리다란 의미예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해이기에 日로 뜻을 표현했어요. 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높은 곳에 있는 존재는 우러러보게 된다는 의미로요. 들 앙, 우러를 앙. 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昻貴(앙귀, 물건 값이 많이 오름), 昻聳(앙용, 높이 솟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憂는 心(마음 심)과 頁(머리 혈)의 합자예요. 얼굴[頁]에 수심이 가득할 정도로 마음 속 근심이 많다는 의미예요. 근심 우. 憂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憂患(우환), 憂鬱(우울)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漸은 氵(물 수)와 斬(벨 참)의 합자예요. 물 이름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斬은 음을 담당해요(참→점). '차차'라는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수량이 차츰 불어난다는 의미로요. 물이름 점. 차차 점. 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漸次(점차), 漸進(점진)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점수(漸水)는 지금의 안휘성 선성현에서 발원한 물을 가리키던 명칭이었어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昻 높을 앙 憂 근심 우 漸 차차 점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鬱 ( )貴 ( )次
3. 친일 문인의 작품을 하나 소개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