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한국 대중 음악의 판도를 바꾼 뮤지션이죠. 그런데 이 뮤지션의 등장을 단순히 그들의 개인적 음악 관심만으로 설명한다면 설득력이 있을까요? 아마도 거의 공감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모든 문화 현상은 시대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죠.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후의 관련 시대 상황을 설명할 때 이 뮤지션의 등장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고 나오면서 뭔가 허전한 점을 지울 수 없었어요.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시대와의 관련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였어요. 이 영화에서는 '시대'를 단순히 김정호를 핍박하는 환경으로만 그렸을 뿐 그가 지도에 몰입하게 만든 요인으로는 그리지 않았어요. 김정호가 지도에 몰입하게 된 요인으로 그린 것은 오로지 그의 개인사 - 잘못 만든 지도 때문에 돌아간 아버지와 지도 제작시 느끼는 희열 - 뿐 이에요.
그러나 김정호가 지도를 만드는데 열중한 것을 단순히 개인사로만 돌리는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을 단순히 그들의 개인적 음악 관심만으로 설명하려는 것과 다름없어요. 설득력이 떨어지죠.
김정호가 지도 제작에 몰입하게된 시대적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전(前) 세대 새롭게 일었던 실학이라는 학풍과 당대의 천주학으로 대변되는 서양 과학 기술의 전래가 아닌가 싶어요. 실학의 '우리 것 찾기'와 서양 과학 기술의 '정밀성'이 김정호의 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이런 시대 배경으로 그의 지도 제작 몰입을 설명했다면 관람객에게 설득력을 줬을 거예요.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어요. 적어도 제게는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영화라 해도 설득력이 있어야 감동을 더하지 않을까 싶어요. (당연히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제게 감동을 주지 못했어요.)
사진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포스터 일부예요. 가운데 있는 주요 내용은 조선에 관한 것이 아니고 만주 지역에 관한 것이에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후춘부락(後春部落). 자후춘북지영고탑오백리(自後春北至寧古塔五百里) 자영고탑서지오모야리삼백리(自寧古塔西至吾毛耶里三百里) 오라성오백리(烏喇城五百里) 성경칠백리(盛京七百里). 이런 의미예요. 후춘부락. 후춘으로부터 북쪽으로 영고탑까지는 오백리이며, 영고탑으로부터 서쪽으로 오모야리까지는 삼백리이며, 오라성까지는 오백리, 성경까지는 칠백리이다. 자(自)는 여기서 '~부터'라는 뜻이고, 지(至)는 '~까지'라는 뜻이에요.
대동여지도의 이 내용은 김정호가 실제로 답사하여 그린 것이 아니고 전(前)대의 기술(記述)을 그대로 옮겨온 거예요. 이것으로 봐도 김정호의 지도 제작에 전대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전대의 기술은 무엇일까요? 이계 홍량호의 <강외기문>이 아닐까 싶어요. 홍량호는 바로 김정호의 직전 세대 사람이고 실학풍의 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강외기문>에는 만주 지역에 관한 상세한 지리 내용이 나오는데, 대동여지도의 위 내용은 그 내용 일부를 어순만 바꿔 그대로 인용했어요.
그렇다면 김정호는 왜 대동여지도를 그리면서 만주 지역의 지리도 표시한 것일까요? 위 내용에 나오는 만주의 지리 내용에서 핵심은 '영고탑'이에요. 영고탑은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을 때 중요 거점지로 삼았던 지역이지요. 이로 미루어보면 비록 당대의 조선 영토는 아니지만 과거 우리 영토였던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점은 유득공의 '발해고'나 정약용의 '아방강역고'같은 우리 영토에 대한 재인식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끝으로 여담.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로 4m 세로 7m에 달하는 대형지도예요. 물론 이것은 전체를 펼쳤을 때의 얘기이고, 평소에는 책처럼 접혀있지요. 휴대용 접이식으로 편리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대동/여지/도'라고 끊어 읽어야 해요. '대동'은 우리 나라라는 의미이고, '여지'는 물건을 실은 수레처럼 만물을 싣고 있는 땅이란 의미이고, '도'는 그림이란 의미이거든요. '대동/여/지도' 혹은 '대동여/지도'라고 끊어 읽으면 안돼죠.
* 위 글의 논지는 대부분 추측성이에요. 그리고 서양 과학 기술의 '정밀성'과 김정호의 지도 제작 관련성 설명도 빠졌구요. 죄송합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부드럽게 질책해 주셔요. 꾸벅.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寧은 丁(끌고 나가다란 의미)과 寍(편안할 녕)의 합자예요. 처음 먹었던 마음을 그대로 지속하여[丁]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는 의미예요. 寍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목표한 바를 달성해서 마음이 편안하다는 의미로요. 지금은 본래의 의미보다는 음을 담당한 寍의 뜻으로만 사용해요. 편안할 녕. 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安寧(안녕), 康寧(강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塔은 본래 산스크리트어 Sutpa를 음역한 것이에요. 처음에는 卒塔婆(졸탑파, 중국어 발음으로는 추따퍼) 혹은 塔婆(탑파, 따퍼)로 번역했다가 나중에 塔(탑, 따)로으로만 쓰게 됐어요. 塔은 본래 예불하는 장소라는 뜻이었는데 뒤에 사리를 보관하는 건축물이란 의미로 사용하게 됐어요. 토석(土石)의 의미를 함유한 土(흙 토)로 뜻을 표현하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탑 탑. 塔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石塔(석탑), 木塔(목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耶는 阝(邑의 변형, 고을 읍)과 耳(牙의 변형, 어금니 아)의 합자예요. 고을 이름이에요. 阝로 뜻을 표현했어요. 耳는 음을 담당해요(아→야). 지금은 주로 어조사의 의미로 사용해요. 동음 관계로 형태를 차용하여 뜻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어요. 고을이름 야. 어조사 야. 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是耶非耶(시야비야), 琅耶郡(냥야군, 지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喇는 口(입 구)와 刺(찌를 자)의 합자예요. 나팔이라는 뜻이에요. 口로 뜻을 표현했어요(나팔을 분다는 의미지요). 刺는 음을 담당해요(자→라). 나팔 라. 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喇叭(나팔), 喇嘛敎(나마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寧 편안할 녕 塔 탑 탑 耶 어조사 야 喇 나팔 라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石 ( ) 是 ( )非 ( ) ( )叭 安( )
3. '대동여지도'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