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하루는 제자인 증삼과 대화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앞뒤 설명이 전혀 없는 말이었는데도 증자는 알아들었는지 “예”라고 대답했다. 이쯤 되면 완전히 선문답 수준이다. 공자가 나가자 말귀를 못 알아들은 나머지 제자들이 증자에게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그러자 증자가 답했다.
"우리 선생님의 도는 오로지 '서'일 뿐이다." (이주희, 『생존의 조건』(MID:2017), 57~58쪽)
괜찮은 방송국 피디가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갈무리하여 책으로 낸 내용 중 일부이다. 질문. 인용문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 어디일까?
'옥의 티'라는 말이 있다. 아쉬운 결점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티’는 애써 찾아야 보이는 사소한 결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전체 이미지를 흐릴 수도 있다.
『생존의 조건』은 제자백가를 다룬 프로그램으로 세계 석학들을 인터뷰하여 만든 고품질 교양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압축해 책으로 낸 만큼 책의 품격도 이만 못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의 위 인용 부분을 읽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기초적인 인용도 부정확한데 과연 이 프로그램이나 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 '옥의 티'가 전체 이미지를 흐리게 한 것이다.
아, 질문에 대한 답을 안했다. 인용문의 마지막 부분, 증자의 말로 나온 부분이 틀렸다. 증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충' 한 글자가 빠졌다고 뭐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서는 충과 같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내외(內外) 관계이고 기본과 확장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외, 기본 없는 확장을 공자는 말하지 않는다. 내 안의 중심[충]이 있을 때 확장[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태안 의항에 있는 둘레길인 태배길에서 찍은 것이다.
先生何日去 선생하일거 선생께선 어느 날에 다녀가셨나
後輩探景還 후배탐경환 후진이 승경 보려 다시 찾았네
三月鵑花笑 삼월견화소 3월이라 진달래 활짝 피고
春風滿雲山 춘풍만운산 봄바람은 운산에 한가득
안내판을 보았다. 태배길은 태백길에서 유래한단다. 이태백이 경치에 반하여 걸은 길이란 것. 시는 이태백이 지은 것이란다. 아는 것이 죄라고, 한자를 조금 알다보니 도무지 안내판 내용이 성에 차지 않았다. 태배길이 태백길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민담이나 전설로 친다 해도 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태백이 지은 것 같지 않았던 것.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짐작대로, 이태백의 작품 중에 위 시는 없었다.
사실 검색을 해보지 않아도 위 시를 읽어보면 이태백이 지은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금방 눈에 띈다. 첫째 구와 둘째 구를 보면, 이 시는 사모하는 선생의 자취를 찾아온 후배가 지은 시임이 분명하다. 여기 후배를 이태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태백의 자취를 찾아온 후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시를 이태백이 지은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다.
일개 안내판을 가지고 뭐 그리 흥분하여(?) 말하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왕에 조형물을 만들어 놓을 때는 어느 정도 근거를 갖고 만들어 놓아야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조형물은 ‘옥의 티’ 같다. 옥의 티는 전체 이미지를 흐린다. 태안군의 문화 수준을 낮춰 보게 만든다.
낯선 한자 두어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輩는 車(수레 거)와 非(排의 약자, 늘어설 배)의 합자이다. 수레(전차)가 차례대로 제 위치에 도열해 있다는 의미이다. 많은 전차가 차례대로 도열해 있다는 데서 ‘무리’라는 뜻이 연역되었다. 무리 배. 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謀利輩(모리배), 暴力輩(폭력배) 등을 들 수 있겠다.
探은 扌(手의 약자, 손 수)와 罙(深의 약자, 깊을 심)의 합자이다. 손으로 끌어 당긴다는 의미이다. 扌로 의미를 표현했다. 罙은 음(심→탐)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끌어당기는 것은 먼 곳에 있는 것을 끌어당기는 것이란 의미로. 깊다[罙]에는 멀다란 의미도 내포돼 있다. ‘찾다’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 된 의미이다. 찾을 탐. 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探索(탐색), 探究(탐구) 등을 들 수 있겠다.
鵑은 肙(涓의 약자, 물졸졸흐를 연)과 鳥(새 조)의 합자이다. 졸졸 흐르는 물처럼 지속적으로 서럽게 우는 새란 뜻이다. 두견이 견. 鵑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鵑血滿胸(견혈만흉, 두견의 피가 가슴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 鵑花(견화, 두견화(진달래)의 준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의항은 태안에서 기름 유출 사고(2007년)가 발생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본래 태배길은 차가 다니기 어려운 길이었는데 기름유출 사고 수습 시 차량 진입을 위해 넓히면서 현재처럼 넓게 만들어졌다. 태배길 중간에는 당시 수습 현장을 담은 기념관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태백 조상(彫像)보다는 당시 수습 현장과 관련된 현대시비를 만들어 놓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이태백도 반한 길이라니 과연 어떤 길일까 궁금할 것 같다. 사진을 한 장 올린다. 판단은 님들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