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것은 편지꽂이 제일 위 구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듯이 꽂혀 있었네.”

  

포우의 도난당한 편지한 대목이에요. 편지를 훔친 D장관은 너무 평범하여 아무도 관심두지 않을 곳에 훔친 편지를 놓아두죠. 귀중한 것은 은밀한 곳에 감출 거라는 일반인의 인식을 뒤집은 거예요. 그의 예측대로 총감은 D장관 집의 은밀한 곳만 관심 깊게 수색하고 저 편지꽂이의 편지는 간과하고 말죠. 그러나 뒤팡의 눈은 피해갈 수 없었어요. 도난당한 편지는 추리소설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요즘의 한자 표기는도난당한 편지와 반대 모습을 보여줘요. ‘도난당한 편지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감춘 경우라면, ‘한자 표기는 비범함 속에 평범함을 감춘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 문맹을 길러낸 우리 교육의 웃고픈 현실이에요. 경험 하나를 소개해요.

  

點心自體解決

  

일요일 아침 등산을 가기 전 아내에게 메모를 남겨 놓았어요. 그날따라 까닭 모르게 한자로 쓰고 싶었어요.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물었어요. “점심 차릴까?” “메모 써놨잖아! 먹고 왔어.” “뭐라고 썼는데?” “점심자체해결.” “그 뜻이었어? 아니, 그걸 꼭 그렇게 한자로 써야 돼?” “그건 아니지만. 그런데 (메모를) 뭐라고 읽은 거야?” “, 마음 심자가 있기에 답답한 마음 해소하러 간다는 걸로 생각했지. 어제 저녁에 답답하다고 했잖아!”

  

50줄에 들어선 아내조차 이러니 이하의 세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예요. 한자 문맹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끔 주변에서 황당한 작품을 만날 때가 있어요. 사진이 그 한 실례예요

  

玉立蕭蕭竹數竿 옥립소소죽수간   깨끗한 모습으로 조용히 서있는 대나무 몇 그루

風枝露葉帶淸寒 풍지노엽대청한   바람과 이슬 맞은 가지와 잎새 맑고 서늘함을 띄었네

美花山房 牛甫 미화산방 우보       미화산방에서 우보(소 같은 사내) 그리고 쓰다

  

이건 대나무에 관한 시예요. 그런데, 이 화제 옆의 그림을 보세요. 대나무가 아닌 난초가 그려져 있어요. 이 작품은 한 음식점의 벽지에 인쇄된 것인데, 음식을 먹다 저 벽지의 시를 본 이들은 대부분 난초에 관한 시일 거라 생각할 거예요. 벽지를 제작하는 이들은 (본인들도 그렇지만) 한자를 모르는 이들이 다수이니 뭐를 그려 넣은들 상관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저 벽지를 제작했을 거예요(우보라는 이가 저 그림과 글씨를 함께 썼을 것 같지는 않아요. 벽지를 제작하는 곳에서 짜깁기 했을 것으로 보여요). 모두가 눈 뜬 장님이 돼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한자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그걸 배우고 가르치지 않아 장님이 되고 장님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어요(앞에서 비범함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그건 그저 댓구를 맞추기 위해 쓴 것일 뿐이에요. 한자는 결코 비범하지 않아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알아볼까요?

  

(풀 초)(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쑥이란 뜻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해요. 쑥 소. 쓸쓸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드문드문 나있는 쑥은 그 모습이 쓸쓸하단 의미로요. 쓸쓸할 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艾蕭(애소, ), 蕭瑟(소슬, 가을바람이 쓸쓸하게 부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칠 복)(성길 루)의 합자예요. 빈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셈을 한다는 뜻이에요. 은 여기서 때리다란 뜻보다 셈을 할 때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하는 모습을 형용한 의미로 사용됐어요. 셀 수. 자주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이때는으로 읽어요.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數學(수학), 頻數(빈삭, 자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竿(대 죽)(방패 간)의 합자예요. 장대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나타내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에는 곧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거든요. 장대 간. 낚싯대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낚싯대 간. 위 시에서는 대나무를 세는 단위의 의미로 사용되었어요. 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竿頭(간두, 장대 끝), 釣竿(조간, 낚싯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풀 초)(잎 섭) 약자의 합자예요. 초목의 잎사귀란 뜻이에요. 잎사귀 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落葉(낙엽), 葉書(엽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옷자락을 겹치게 묶고[llll] 묶고[] 양 끝을 가지런히 늘어뜨린[巾巾] 큰 띠를 그린 거예요. 띠 대.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革帶(혁대), 帶狀疱疹(대상포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가끔 아내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암호[한자 표기]를 사용하는 때가 있어요. 주로 말로 하기 민망한 경우에요. 어느 날 아내가 한의원에 가는데, 저도 단골로 가는 한의원이라 제 약도 지어오라고 부탁하며 최근의 몸 상태를 나타낸 문구를 적어주었어요. 囊濕及小便頻數. 다행히 아내는 암호의 내용을 캐묻지 않았어요. (임들께서도 캐묻지 마시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9-06-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찾아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본문중에 힌트가 있네요. 자주 삭.
아, 그래서 일부러 덧붙이신 일화인가요?

찔레꽃 2019-06-06 13:11   좋아요 0 | URL
약간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