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물의 신 하백의 손자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쫓기고 있다. 도와줄 수 있겠는가?"

 

주몽(고구려의 시조)이 부여군의 추격에 쫓겨 강가에 이르렀을 때 물을 바라보며 한 말이에요. 화급한 처지지만 당당하게 말했어요. 이 말에 물고기와 자라들이 감응하여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어 주몽은 무사히 강을 건너죠. 추격군이 뒤쫓아 왔을 때, 물고기와 자리들은 다시 흩어졌구요.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물고기와 자라들이 주몽의 말에 감응하여 다리를 만든 것은 필경 주몽을 도왔던 그 어떤 세력의 신화적 표현일 거에요. 더불어 그들을 감동시킨 주몽의 비범함을 나타낸 것이기도 할테구요.

 

그런데 이 대목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도 무리 없어요. 주몽의 비범함은 물고기와 자라들을 감동시켜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고요. 주몽의 말이 전하는 기본 메시지는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니, 이 점만 부각시킨다면 어떤 해석이든 무방할 거예요.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魚龍)이 감동하고(誓海魚龍動) /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주네(盟山草木知)"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중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자신의 맹세가 어룡과 초목도 감동시킬만 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장군의 맹세가 실제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켰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맹세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만은 확실해요. 형태는 다르지만 저 주몽의 말 그리고 그에 감응한 어별(魚鼈)의 모습과 대차 없어요. 이순신 장군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의 한자는 '일서해산립강상어백대(一誓海山立綱常於百代)'라고 읽어요. '한 번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 백대에 변치 않을 떳떳한 윤리를 세웠도다.'라고 풀이해요. 현충사 주련(柱聯)중 하나예요. "한 번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는 위에 든 장군의 시 내용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고, "백대에 변치 않을 떳떳한 윤리를 세웠도다."는  시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에요. 어룡과 산천이 감동하고 알아줄 정도의 맹세였기에 백대의(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윤리를 세울 수 있었단 의미로요. 여기 맹세는 당연히 구국진충(救國盡忠, 나라를 구하고 충성을 다함)의 맹세일 거예요.

 

우리도 맹세를 하죠. 그러나 그 맹세가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죠. 아니, 감동시킨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죠.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의 맹세가 일신의 향상을 위한 맹세이지 그것을 넘어선 큰 가치를 지향하는 맹세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맹세는 지켰을 경우 자신에 대한 만족에 그칠 것이고, 지키지 못했을 경우 자신에 대한 불신에 이를터이니 어찌 어룡과 초목을 감동시킬 수 있겠어요? 장군이 자신의 맹세가 초목까지 감동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은 평소 자신에 대한 만족과 신뢰를 구축했음은 물론 이를 넘어 더 큰 가치- 구국진충 -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할 거예요. 이순신, 확실히 비범한 인물이었어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誓는 言(말씀 언)과 折(꺾을 절)의 합자예요. 맹세한다는 의미예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折은 음을 담당하면서(절→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과거에 맹세를 할적엔 약속의 증표로 부절이란 것을 만든 뒤 이를 반으로 쪼개 나눠 가졌어요. 하여 부절을 쪼개 나눠갖는 것은 맹세의 상징이 되었지요. 여기서 折은 이런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맹세할 서. 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誓約(서약), 宣誓(선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綱은 糸(실 사)와 岡(언덕 강)의 합자예요. 벼리(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란 의미예요. 糸로 뜻을 표현했어요.  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언덕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벼리란 의미로요. 벼리 강. 위 시에서 綱은 이차 의미로 사용되었어요. 핵심이 되는 윤리란 의미로요. 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紀綱(기강), 大綱(대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常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예요. 존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내세웠던 깃발이란 의미예요. 巾은 뜻을, 尙은 의미와 음을 담당해요. 지금은 떳떳하다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떳떳할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常規(상규), 正常(정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시각에  전환점을 제공한 작가는 김탁환 씨예요. 그는 자신의 작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을 '칼을 든 사대부'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이전까지 이순신의 모습은 훌륭한 장수인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졌지요. 이는 시대 변화와 상관성이 있어요. 영웅의 모습은 군사정권하에서였고, 칼을 든 사대부의 모습은 문민정부하에서였거든요. 이순신은 우리 역사의 물줄기가 크게 바뀔때마다 구원의 상징처럼 등장하죠. 앞으로 통일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인물로 그려질 지 자못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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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8-06-18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글은 항상 알차고 좋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짧은 글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저 무심은 감동합니다

찔레꽃 2018-06-18 08:42   좋아요 0 | URL
무심 선생님, 격려 감사합니다. ^ ^ 더욱 분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