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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 파리
패신저 편집팀 지음, 박재연 옮김 / Pensel / 2024년 10월
평점 :
나는 운이 좋게도 파리를 몇번 다녀왔다.
내가 처음 파리를 갔을 때 당시 나의 목적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를 하면서 잠시 들르게 될 프랑스 파리를 나는 어떻게 상상하고 있었을까?
텔레비젼에서 잠깐씩 내가 보았던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세느강은 자유 그 자체였다. 답답한 연구실 생활 속에서 꽉 막힌 내 가슴이 그곳에만 가면 뻥 뚫려버릴 것 같았던 상상 속의 나는 어느샌가 유유히 샹제리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 드골 공항으로 들어가는 수속을 밟을 때였던가 입국 수속 심사대의 X-ray 장치는 내 가방 속 조그만 반짓고리를 찾아내어 나의 첫 비행을 참으로 힘들게 했다.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심사관은 바늘을 꺼내어 나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이재킹" 이라는 단어와 함께. :)
나는 앙꼬없는 단팥빵 마냥 바늘없는 반짓고리를 가지고 터덜터덜 비행기를 탔다. 뭐 그런 정도야 파리에 대한 나의 환상을 깰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나의 거대한 환상을 깬 것은 개선문 앞에 드러누워 있는 여러 명의 노숙자들이었다. 그 모습과 함께 나의 코로 밀려드는 그 지독한 냄새는 나의 환상을 그대로 깨버렸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그 더러움 속에 감추어진 노숙자들은 모두 아주 젊었고 외모도 아주 준수했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었을까.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리스 조각상 같은 남자들이 개선문 주위에 즐비했다. 그러다가 그런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내가 자유의 도시 파리에 도착한 게 맞구나 하고 실감을 했다는. :)
나의 첫번째 파리 일정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곳을 구경했지만 나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몽마르뜨 언덕의 소매치기들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새와 새의 똥들.. 생각보다 깨끗한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파리가 이런 곳이었다니.. 하는 그런 생각으로 몇일을 보냈다.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 파리 방문은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두번째 방문이다. 회의 참석 차 들른 이유로 불편한 뾰족 구두를 신고 있었던 나는 발이 온통 까지고 물집이 잡히는 바람에 편한 신발을 사러 도시를 헤매야 했다. 아무리 걸어가도 보이지 않는 신발가게를 찾아 헤매면서도 정말 파리의 진면목을 보았다. 결국은 신발가게를 찾아내고 내 발에 꼭 맞는 낮은 굽의 신발을 사서 신고 나는 다시 자유를 얻게 되었고 신발 가게를 찾아 헤매는 바람에 파리의 골목 골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그 거리를 걷게 된다고 해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패신저, 파리」는 나의 기억들을 소환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 파리에 대한 낭만을 조금은 깨어주는 이 책은 정말 파리를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파리는 그 자체로 낭만과 자유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파리를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책을 권한다. 마치 무언가 인생의 쓴 맛을 본 사람끼리 마주 앉아 인생은 이렇게 쓰지 저렇게 쓸 수도 있지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마지막으로 파리를 들렀을 때 나는 개선문에서부터 신 개선문까지를 걸었다. 꽤나 긴 거리였지만 나에게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고 새들의 움직임, 동물들의 사람과 어우러지는 모습들을 보았다. 바게뜨 빵을 사서 샹제리제 거리를 걸어보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빵과 우유를 사서 먹으며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길가의 벤치에 앉아 빵을 뜯고 있을 때 나의 빵을 노리던 새들도 기억에 남는다.
책의 한 구절인 "도시는 인간의 심장보다 더 빨리 변한다."는 말을 공감한다. 에펠탑 주변을 돌아다니다 혼자 들어간 어느 박물관에서 나는 에펠탑 마그네틱을 구입했다. 박물관의 유리벽에서 보이는 실제 에펠탑을 배경으로 그 마그네틱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기 위해. 하지만 나에게 낭만이었던 파리 어느 박물관의 유리벽은 온통 새똥으로 덮여있었더라는.. 그래서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이 책을 보니 그것 역시 나의 추억이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여행은 낭만이라는 단어로 망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한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라도 없으면 누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 파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