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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ㅣ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평점 :
책의 제목이 너무 특이해서 읽게 된 이 책은
어느 20대 여성이 장례를 치르는 화장터로
취업 후 6년 동안 장의사일을 하며 겪었던 생생한
경험이 담겨있다. 8살이 되던 해에 쇼핑몰에
놀러 갔다가 어떤 아기의 죽음을 목격한 그녀는
그때부터 죽음이란 주제에 사로잡히게 되어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하고 죽음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화장터 업체에서 6년간 시체를
다룬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장례문화를 만들어가고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상담해 주는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장례식장에서 생기는 흥미로운
사실을 가감 없이 전한다. 사실 장례식장이나 화장터는
생각만 해도 무섭고 슬프고 두렵다. 장례식장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정신적으로 힘든데 매일 수차례
알아보기도 힘든 형태의 훼손된 시체를 다루는
그녀가 대단하기도 하고 그녀가 써 내려간 글들을
읽다 보니 화장터가 그리 무섭게만 느껴지진
않기도 했다. 그녀와 하루 일과를 함께 하며
화장터의 곳곳을 누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첫 출근하는 날 면도를 해주게 된 남자에 관한
이야기, 등에 축구공만 한 염증이 있던 흑인 할머니..
뜨거운 뼛조각을 밟아 장화가 뚫린 일, 시체 보관
장소의 냄새 등등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신랄한
어조로 그녀의 일과를 무겁지 않게 풀어간다.
잘못된 장례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고
죽음 앞에서 굳이 가족들에게 보이려 이쁘게 치장
하는 시체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한때는 이 세상에 크디크게 존재했던 한 인간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 몇 시간 후면 재가 되고
그렇게 소멸된다는 게 너무도 허망하기까지 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일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죽음을 떠올리기도 싫고 그 언젠가 올 날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상상했다. 한 가지 바란다면
나의 죽음이 모두를 안타깝게 하는 죽음이 아니길
빌어본다. 축복 속에 떠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죽음
아닐까.. 가볍게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책은 생각보다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저자는 추후 자신의 화장장을 기존
화장장과는 다르게 탁 트인 곳에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나의 반려묘의 화장장이
떠오른다. 훗날 날 맞이할 그곳도 우리 부모님을
맞이할 그곳도 밝고 탁 트이고 긍정적인 곳이길
바란다. 다만 그날이 아주 오래 먼 훗날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