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월드
백승화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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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로 세상을 구하는 여고생, 깜빡이는 쌍둥이 엄마, 오이를 먹고 좀비가 된 사람들까지. 백승화 감독의 소설 《레시피 월드》는, ‘평범한 일상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상상으로 끌어올려 폭발시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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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방귀 전사 볼빨간>에서는 말 그대로 방귀로 세상을 구한다.
하지만 단순한 웃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이 ‘방아일체 — 방귀와 내가 하나 되는 경지’를 깨닫는 장면에서는 영화 <소림축구>의 한 장면처럼 황당하고도 통쾌한 쾌감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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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이는 쌍둥이 엄마>는 현실의 피로와 모성의 균열을 형광등처럼 깜빡이는 리듬으로 표현한다. 무너질 듯 "나는 엄마니까." 버티고 버티는 반복되는 삶이 너무 슬퍼 책을 덮기 어려웠다. 어떤 이는 엄마는 강하다고 하던데... 내가 해보니까,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엿보니까 엄마도 그저 하루하루를 고쳐 켜는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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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살아있는 오이들의 밤>에서는 좀비가 된 사람들과, 오이를 먹지 않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오이를 먹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어느 순간 생존의 경계가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인간의 ‘기호’와 ‘공포’는 전염처럼 번진다. 나는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공감되는 그 불합리를 웃음과 전율 사이에서 읽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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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이야기를 이어주는 ‘여담’은 각각의 이야기 사이 틈을 메우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 조합의 레시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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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화 감독은 영화감독답게 ‘컷과 컷 사이의 공기’를 소설 속에 남겨둔것 같다. 그 틈새에서 우리는 웃고, 생각하고, 때로는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상상이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깨닫는다. 《레시피 월드》는 코믹 판타지의 옷을 입은, 이 시대 가장 유쾌한 현실 소설이다. “쓸데없음”으로 세계를 구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읽고 나면, 당신도 일상의 레시피를 조금 다르게 섞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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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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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전히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를 ‘다르다’고 말한다.
TJ 클룬의 《벼랑 위의 집》은 그 기준 밖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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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적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 한가운데에서 규정된 규칙대로만 살아가던 공무원 라이너스 베이커는 4급 기밀 업무로 ‘마르시아스 섬’의 고아원에 파견된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특별한 아이들을 만나는데, 상부는 그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라이너스는 그곳에서 세상의 편견보다 훨씬 더 크고 온화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을 품고 지키는 원장 아서 패너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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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깨달음의 순간마다 속삭인다. 누구나,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존재의 이유를 타인이 정한 기준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단순히 위로를 넘어,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묵직한 제안처럼 다가왔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로 찾아야 할 집은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머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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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주어 몇 번이나 책을 내려 놓았다가 생각하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다. 이 소설을 꼭 우리 아이에게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에서 전달하는 질문들에 함께 답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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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까진 필요 없어 ㅣ 바일라 25
김윤진 지음 / 서유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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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단톡방 인원이 한 명 더 많았어.”
그 한 문장으로 시작된 의심과 불안, 그리고 용기.
《용기까진 필요없어》는 디지털 세대의 그림자 속에서 고통받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주인공 강루이는 딥페이크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반 단톡방에 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존엄이 짓밟히는 시대,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한 소년과 친구들의 서사다. 루이와 친구들이 진실을 좇는 과정은 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관계의 용기’를 배우는 성장의 여정이다.

나 역시 요즘 뉴스에서 딥페이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 속에서 비롯된 폭력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실감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현실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장난처럼 오가는 합성 이미지와 영상, 그로 인해 무너지는 마음의 벽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루이와 친구들이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서툴지만 서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회복의 가능성을 보았다.

책을 덮으며 문득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진짜 용기는 ‘참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 멈춰달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용기까진 필요없어》는 그 작고 단단한 용기의 이름을 우리 모두의 일상 속으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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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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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의 신작 《캐리커처》는 청소년 소설이자 성장 소설의 자리에 선명하게 서 있다.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정체성의 혼란과 시선을 견뎌야 했던 ‘주현’, 호주 유학을 다녀왔지만 그 곳에서 소외를 경험한 ‘승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한국 청소년들의 관계와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 책이 요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곧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주현이 겪는 낯섦, 승윤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은 특별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가까운 현실 속에 늘 존재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읽는 내내 마음속에 오래 맴돈 문장이 있다.
“세상에는 주현을, 승윤을, 요한을, 노아를 닮은 청소년이, 이 중 누구도 닮지 않은 청소년이 있을 것이다.”
인물들의 서사는 특정 누군가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경험이 각기 다르듯, 독자의 마음에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작가가 말했듯 원인이 결과를 면책하거나, 결과가 원인을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인과는 이어지고, 우리는 모두 그 연쇄 속에 묶여 살아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슬에 점수를 매기며 바깥에 서는 태도가 아니라, 기꺼이 뛰어들고자 하는 용기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법일 것이다.

《캐리커처》는 단지 청소년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고민, 그리고 관계 맺음에 대한 태도를 다시 묻는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마음이 아리고, 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느낀 바가 이미 작가의 말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울림이야말로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오래 간직할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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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 읽는 카페
문혜정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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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작가의 소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타로’라는 신비로운 도구를 빌려 우리의 삶과 마음을 비추어 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세련은 소설가의 꿈을 접고 타로 리더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에게 웹툰 작가와의 뜻밖의 협업이 찾아오고, 그 계기는 다시금 자신이 놓아두었던 꿈과 마주하게 만드는 순간이 된다. 타인에게 마음을 열며 조금씩 변해가는 세련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내밀한 이야기를 비춘 거울 같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특히 <선택의 결과>라는 챕터에서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내가 꿈꾸던 일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삶일까?”라는 질문은 한때 나 역시 깊이 붙들었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련을 통해 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선택을 통해 우리가 맞닥뜨리는 두려움과 희망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세련이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안은 마음이 서서히 치유되어 가는 모습이 나의 고민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십여 년 전, 나도 대학교 앞 작은 천막에서 타로를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의 운세’를 가볍게 확인하듯 카드 한 장만 뽑을 줄 알았다. 하지만 타로 마스터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카드가 보여주는 그림은 구체적이고 선명해진다고 했다. 그때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결국 모호한 카드의 의미만 듣고 돌아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 속에서 대신 털어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련의 상담 장면을 따라가며 내 안의 오래된 질문에도 조심스러운 답이 내려앉았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단순히 타로를 매개로 한 성장담이 아니다. 꿈과 현실, 사랑과 상처 사이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멈춰도 괜찮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곧 나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소설은 따뜻하게 일러준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이 울리는 건, 그 안에서 ‘세련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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