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 - 위기에 처한 현대 기독교 영성의 실체 보고서
박태양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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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아니 중환자실에 들어간 환자 같다. 연일 언론에서는 한국기독교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보여 진다. 이제 세상마저도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아니 심하게 이야기 하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시대상속에서 한 목회자가 한국교회를 향해 눈이 먼 소경임을 주장하며 눈먼 기독교를 조목조목 파헤친다.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정신에 함몰된 교회를 향해서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친다. 차라리 확연히 드러나는 가짜였다면 걱정하지 않겠지만 교묘하고도 치밀하게 들어온 잡탕 영성을 파헤치며 진정한 기독교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저자는 10개의 큰 분류(박애주의부터 신학해체까지)에 중심인물들을 배치하여 그들의 왜곡된 사상들을 설명한다. 다소 산만해 보이지만 때로는 예리하게 일반기독교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잘 설명해준다. 인물의 영향력이 클수록 무방비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부정하며 한사람씩 그들의 잘못된 그리고 위험한 사상들을 파헤친다. 특히 그것이 기독교에 왜 위험한지 우리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때론 놀라기도 하고 이 사람이 정말 이런 위험한 인물이었는지 새롭게 알기도 하였다.

그동안 산발적인 비판을 있었지만 짜임새 있게 비판한 것은 박수를 치고 싶다. 기독교와 관련된 주제와 인물들을 거의 다루어주어서 저자의 노력이 상당했음을 볼 수 있다. 아마 오랜 시간 공들여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리하여서 글을 쓴 것 같다. 그 부분에 응원을 보낸다.

정말 성도들이 바르게 믿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도와주려는 목자의 심정이 느껴진다. 즉 이 책의 장점은 넓은 시야와 다양한 주제를 잘 다루었다는데 있다. 인물들의 분석도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정도 하려면 많은 식견을 갖추어야 하고 인물탐구들도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데 저자의 노력이 고맙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아쉬운 점도 크다.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1. 1차 자료보다 2차 자료를 사용한 것이 많이 있다. 2차 자료를 발췌해서 요약한 부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 부분에 비판한 책을 요약하여 소개한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이 전문성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진정으로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논쟁을 하려면 상대방의 원저를 읽어서 분석해야 하는데 많은 부분 남들이 한 이야기를 그냥 풀어놓은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띄였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날카로운 논리로 공감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주장하면서 인용 출저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했고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첨예한 논쟁거리는 아예 출저가 없다. (예: 세속주의를 말하면서 로버트 슐러 목사는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라고 82페이지 각주 19번에 적어놓았는데 이런 주장은 반드시 출처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만약 사실이라면 슐러 목사는 목사도 아니다.)

 

2.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서 좋았지만 반대로 깊이의 아쉬움이 남는다. 즉 소명감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한 것은 박수 칠만 하지만 답을 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잡탕영성도 위험하지만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위험성은 이단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단의 현실을 신비주의와 섞여서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 보다는 한국기독교가 눈먼 상태이기에 지금의 이단이 더 극성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풀어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또한 개인적으로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부패인 세속주의에 물든 한국기독교의 깊은 성찰을 더 세밀하게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4. 인물들의 평가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가는 곳이 많다. 저자의 확신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마케팅전략인지 책 표지에는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인물 80인의 비성경적 사상을 파헤친다 라고 적어 놓았는데 과연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아니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꽤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석 유영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친한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모른다. 함석헌은 알지만 유영모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론 비성경적인 부분에 있어서 애매모호한 말을 한다. 종교다원주의 부분에서 현각에 대한 이야기 중 톰 목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현각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내린 결론은 톰 목사의 교회가 유니테리언 교회이므로 비성경적인 목사가 있을 수도 있다. 라고 한발 물러선다. 오히려 이 부분에선 단호하게 비성경적인 부분을 지적하며 톰 목사는 비성경적인 목사로 단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비판보다는 너무 주관적인 판단이나 혹은 남들의 판단에 쉽게 동참하는 분위기가 너무 아쉽다.

 

5. 오히려 인물별로 파헤쳤으면 정말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몇 사람을 깊이 연구해서 인물별 접근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인물을 주제별로 섞다보니 겹치거나 아니면 연관성이 부족하거나 깊이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저자의 주장대로(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논지에 상당수를 동의한다-헨리나우웬/ 머튼/함석헌/조엘 오스틴 등등) 정말 정통 기독교인으로 부르기엔 꺼림칙한 부분이 있는 경우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면 솔직히 다석 유영모의 사상은 난해하여서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추종하기엔 너무 무리다. 그러기에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들을 집중연구 했다면 하는 생각이 강하다. 그 외에도 아쉬운 점은 많으나 장점이 더 많기에 이만 갈음하고자 한다.

기대하기는 저자의 수고에 조금씩 의미 있는 작업을 더할 수 있는 저자처럼 깨어있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온다면 지금보다 더 기독교다운 모습을 바뀌어 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도 그 대열에 같이 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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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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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지금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그 구원의 사건이 효력을 발생하여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며 산 아담적 실존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 믿음으로 그 관계 속에 서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그리스도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그들의 칭의는 완성되어 의인으로 확인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84P)

 

 

한국교회에 위기라고 한다.

아니 위기는 오래전부터 감지되었지만 이렇게 심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난 그 이유를 복음의 왜곡된 이해와 설령 복음을 이해했더라도 그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진 것에 대해서 찾았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고 자료들과 책을 통해서 하나씩 공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를 만났다.

어느 정도 이 책은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고 때론 이거다라는 부분도 만났다. 이전의 김세윤교수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 책은 김세윤교수의 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이 책은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른 복음이다. 구원이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으로 여기는 천진난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 속에서 행동은 마치 구원은 천국티켓으로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구원은 단순히 천국티켓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 흠 없고 거룩한 백성으로 갈 때 까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신앙의 뿌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저자는 그동안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견한 복음의 법정적 의미가 지배한 칭의론을 다시 분석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한다. 즉 법정적의미의 구원론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은 주어졌으나 윤리(혹은 거룩한 삶)와 상관없는 값싼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간과하였던 칭의의 관계적 의미를 되새긴다. 칭의를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등 돌린 죄인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보는 관계적 의미의 칭의를 설명한다. 결국 칭의는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즉 저자는 칭의는 무죄 선언 받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것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올바른 관계에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의인으로서 그런 사람이 최후의 심판 때에 의인으로 확인되는 칭의의 완성까지 칭의로 보는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주장한다.

또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단순히 새관점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에 맞서 이방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 고안한 구원론이며 유대교의 민족주의에 대한 싸움 교리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날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임을 증명한다. 이때 저자는 그동안 로마서1장16-17절에 집중한 구원론적 복음에 덧붙여 로마서1장3-4절에 주목하여 기독론적 복음을 설명하면서 로마서 전체에 나타난 복음의 부연설명을 자세히 주해하여 설명한다. 결국 바울은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의 사탄의 나라에 대한 전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와 생명의 통치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멸하고 죄인 된 우리를 구속해 감의 뜻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가 아닌 하나의 동의어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칭의는 죄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법정적 뉘앙스가 강하다면 성화는 죄를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제의적 뉘앙스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칭의를 그동안 구원의 서정에 따라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단계로 나누어 분리시킴으로서 거룩한 삶의 실종되었음을 지적하고 칭의를 구원의 서정에 의한 이해가 아닌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이해 할 때(진입함/서 있음/구원의 완성을 받기)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가 구조적으로 함축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의 교회 안에서만 신앙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로 정체성에 근거가 된다.

또한 구원의 서정 속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예정과 성도의 견인교리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두 가지의 교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리가 나오게 된 본문의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즉 예정과 견인교리를 집착한 나머지 방종한 삶을 살지 말고 탈락의 교리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의 신실함을 의심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며 얻은 교훈은 칭의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의 통합과 균형적인 해석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거룩한 삶에 대한 도외시는 법정적 의미만을 강조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적의미에 무지한 채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볼수있다. 현재 한국교회에 칭의 이해는 칭의의 관계적의미를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도의 삶에 진지한 성찰이 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의 칭의는 철저히 예수님의 복음과 일치함을 보았고 칭의와 성화는 분리됨이 아닌 하나이며 그것 또한 종말론적 구조에서 봐야만 정확하게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칭의와 성화의 분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칭의로만 머무르는(성경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결과는 초래했다. 구원받았으니 이후의 삶은 어떠하든 천국가지 않느냐?라는 배짱을 얻게하여 진정한 구원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했다. 하지만 구원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로 서야 하는 순간까지 이루어져 가는 것임을 즉 완성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예정과 견인론 그리고 타락의 가능에 대한 경고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권면이다. 조직신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도그마처럼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교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맥속에서 참된 의미를 찾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의도를 존중하여서 논리적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모습임을 알게 해준 것이었다. 그동안 나도 예정과 견인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었지만 다시 한번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의 표현대로 칭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임을 기억한다면 칭의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말씀으로 경험되어 질 것이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지금 보다 한국교회는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고 성도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더 성숙하여서 믿지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될것이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새 관점 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아쉬운 점은 로마서 9-11장에 대한 새관점 주의자들에 대한 해석의 반론이 언급되지 않은 점이다. 이 부분은 김세윤 교수의 다른 저술에서 기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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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 표민수 감독의 드라마 제작론
표민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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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야기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 드라마를 통해서 주인공의 삶을 꿈꾸기도 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과 자신을 일치시켜서 흉내 내기도 한다. 뻔한 내용이라면서도 아침드라마에 주부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드라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드라마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밤을 새서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겨있는 드라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다가 표민수님의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제작론 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라서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그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물론 알기 힘든 전문용어들이 있어서 애먹기도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 한편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드라마를 기획하는 일부터 어떻게 제작하고 투자가 이루어지는 지 그리고 드라마 작가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작가의 대본을 가지고 연출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연기자들의 모습과 역할 그리고 또 하나의 창작인 편집과 드라마에서 감동을 배가 시키는 음악과 음향 등등 방송국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실제적인 모습들을 한권의 책을 알 수 있었다. 중간 중간 각주처럼 처리한 전문용어들은 상식을 배가 시켰고 인순이는 예쁘다를 중심으로 예시한 대본과 설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를 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준비되어지고 만들어 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연기자이다. 그러다보니 연기를 설명한 부분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모두가 고생하고 다들 힘들지만 연기자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 발연기한다고 시청자나 비평가들이 책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화려해 보이지만 연기자가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대로 좋은 연기는 연출가와 작가 그리고 배우 본인의 생각까지 일치시켜서 표현해야 하기에 그런 것 같다. 좋은 대본과 좋은 연출가가 있어도 그것에 맞게 표현하지 못하면 드라마의 감동은 반감되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작환경과 탁월한 연출가와 좋은 대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잘 소화하여 표현할 줄 아는 진정한 연기자 등등이 모여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인 것 같다. 우리는 쉽게 드라마를 보고 좋다 나쁘다 하지만 그 뒷면의 수고가 이렇게 어려운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직 책의 내용가운데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이제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정도 분석하고 느끼면서 더 깊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는 드라마제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신비를 어느 정도 알게 하는 교양서로 충분하고 드라마작가나 연출가나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참고서처럼 읽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책으로 적합한 것 같다. 단순히 이론 중심으로 되었다면 자칫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아주 유익한 입문서로 보여 진다. 특히 방송계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읽고 미리 준비했으면 한다. 요즘은 청소년들도 이 정도의 내용들을 소화할 수 있고 어쩌면 자신들의 수준에서 짧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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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좋은 일이다 - 탁정언의 손바닥 이야기, 두번째
탁정언 지음 / 문예마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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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좋은 일이다'라는 아이러니한 책제목이 궁금했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은 분명 반대말인데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인생에 나쁜 일도 상황과 사람에 따라 좋은 일이 될 수 있음을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의 강점은 단순히 좋은 문장과 화려한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이다. 거의 대부분이 저자가 지금까지 회사와 일상에서 경험한 일 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다. 제목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였고 제목만 봐도 공감이 많이 간다.

저자의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다. 회사나 사회생활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특히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질문으로 자책하지 말고 그 일을 통해서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다. 나쁜 일이 가져다주는 사건보다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 도 있고 나쁜 일이 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마다 그것을 기회삼아 자신을 준비하고 성장시키는 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나쁜 일이 올 때는 그때가 변화의 기회이다. 변화를 부담스럽게 생각 말고 오히려 즐기는 것이 나쁜 일을 기회로 전환시키고 결국에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 가지로 어떤 일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 하느냐에 달려있다. 어차피 인생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햇빛만이 있기를 바란다. 장마 비와 거친 바람은 되도록 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햇빛만 비추이면 사막이 되고 만다. 비오면 우산 쓰면 되고 바람이 심하면 잠시 오두막에서 쉬었다 가면 된다.

저자의 경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패의 답은 오답노트에 있다’ 라는 글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오답노트를 통해 그의 성장한 부분을 적은 것을 보았을 때는 아! 나도 그래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저자의 말대로 ‘성공은 말 그대로 성공해서 좋았고, 실패는 성장 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주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성공은 기분 좋은 일이고 실패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것이라는 태도가 인생에 필요하지 않은가?

 많은 부분 불확실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나쁜 일을 붙잡고 신세한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통해서 배우고 익혀서 기회로 삼는다면 신나는 인생이 될 것이다. 특히 사회에 뛰어들어 조금씩 조직의 쓴맛과 절망을 보기 시작한 젊은 세대가 읽는다면 예방주사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지금 나쁜 일을 겪고 있는가? 속단하지 말자. 그것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도전하자. 어차피 인생은 도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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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딱 걸린 날 ㅣ 읽기의 즐거움 15
다니엘르 시마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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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기는 곳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잘 때가 많이 있다. 한국과는 달리 캠프문화가 발달한 외국의 아이들에게 캠프는 일상적인 추억이다. 그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일어난 아이들의 좌충우돌 장난기를 중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갈등하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의 내면의 양심을 통한 우정을 아름답게 풀어놓은 재미있는 책이다.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덜컥 낮선 캠프장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경험과 교훈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 줄리앙과 해마다 캠프에 참석하는 악동 세드릭과 얌전한 범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앙토넹 그리고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거미도 무서워하지 않는 두니아를 중심으로 펴쳐지는 이야기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장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 다른 반응과 모습을 보이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앙토넹의 목걸이를 숨기면서 골탕먹이려는 줄리앙과 세드릭의 장난이 앙토넹을 골탕먹이려는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되었만 그 목걸이가 앙토넹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 반응하는 줄리앙의 양심의 소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세드릭의 반응은 서로 대치된다. 아마 이 부분이 저자의 메시지와 독자들의 생각을 교류하는 장면인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와 자신들의 만의 세계에서도 왕따나 서로를 깎아 내리는 장난속에서도 장난이 아닌 한 아이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을 수 있는데 이때 아이들이 무엇을 통해서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타인과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자기의 욕심과 행동이 중심이 아닌 양심에 따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더불어 함께 우정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용기임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잘못된 영향력을 준다면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양심이며 용기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한편 세드릭의 장난이 단순한 악동의 모습이 아닌 상처 입은 아이가 그 상처의 고통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강한 척 더 악한 척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오히려 잘못된 의연함을 보여주는 것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세드릭 역시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 잡으려고만 하지 그 아이의 상처와 마음의 어려움을 살펴보지 않는다. 세드릭도 처음부터 악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세드릭으로 하여금 잘못된 악동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뉘우치는 미소를 보면서 세드릭도 아이의 순순함이 있다는 것은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평소의 생활에서 이탈된 상황과 사건은 줄리앙으로 하여금 새로운 신세계였지만 결정적인 순간과 사건 앞에서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선한 모습일까?라는 양심의 갈등을 경험하면서 결단하는 줄리앙의 모습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보게 된다.

마지막 앙토넹과 줄리앙이 세드릭이 앙토넹의 상자를 감춘 곳에 세드릭의 상자를 숨겨두고 찾게 한 장면에서 무언의 눈빛 교환에서 서로의 감정을 해소하는 장면과 차안에서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장면은 서로에게 친구로서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임을 보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사건을 통해 우정이 쌓이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게 된다.

아이들의 심리묘사와 상황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통해서 뻔한 교훈을 이야기하지 않고 진정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마음을 소리를 듣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스토리를 통해 잘 이야기 해준 책이다. 현재의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때로는 잔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이런 좋은 책들을 읽도록 권면한다면 그리고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면 더불어 살며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들로 성장할 것이다. 경험이 가장 좋지만 책을 통한 간접경험도 아이들에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부모가 같이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면(이때 주입식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는 명령이 아닌 철저히 아이들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대화) 좋을 것 같다.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님들의 필독을 권한다.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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