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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3년 8월
평점 :
칭의란 지금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그 구원의 사건이 효력을 발생하여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께 대항하며 산 아담적 실존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 믿음으로 그 관계 속에 서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그리스도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그들의 칭의는 완성되어 의인으로 확인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84P)
한국교회에 위기라고 한다.
아니 위기는 오래전부터 감지되었지만 이렇게 심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난 그 이유를 복음의 왜곡된 이해와 설령 복음을 이해했더라도 그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진 것에 대해서 찾았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고 자료들과 책을 통해서 하나씩 공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를 만났다.
어느 정도 이 책은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고 때론 이거다라는 부분도 만났다. 이전의 김세윤교수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 책은 김세윤교수의 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이 책은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준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른 복음이다. 구원이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으로 여기는 천진난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 속에서 행동은 마치 구원은 천국티켓으로 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구원은 단순히 천국티켓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 흠 없고 거룩한 백성으로 갈 때 까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신앙의 뿌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저자는 그동안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견한 복음의 법정적 의미가 지배한 칭의론을 다시 분석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한다. 즉 법정적의미의 구원론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은 주어졌으나 윤리(혹은 거룩한 삶)와 상관없는 값싼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간과하였던 칭의의 관계적 의미를 되새긴다. 칭의를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등 돌린 죄인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보는 관계적 의미의 칭의를 설명한다. 결국 칭의는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즉 저자는 칭의는 무죄 선언 받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것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올바른 관계에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의인으로서 그런 사람이 최후의 심판 때에 의인으로 확인되는 칭의의 완성까지 칭의로 보는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주장한다.
또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단순히 새관점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에 맞서 이방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 고안한 구원론이며 유대교의 민족주의에 대한 싸움 교리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날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임을 증명한다. 이때 저자는 그동안 로마서1장16-17절에 집중한 구원론적 복음에 덧붙여 로마서1장3-4절에 주목하여 기독론적 복음을 설명하면서 로마서 전체에 나타난 복음의 부연설명을 자세히 주해하여 설명한다. 결국 바울은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의 사탄의 나라에 대한 전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와 생명의 통치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멸하고 죄인 된 우리를 구속해 감의 뜻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가 아닌 하나의 동의어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칭의는 죄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법정적 뉘앙스가 강하다면 성화는 죄를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제의적 뉘앙스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칭의를 그동안 구원의 서정에 따라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단계로 나누어 분리시킴으로서 거룩한 삶의 실종되었음을 지적하고 칭의를 구원의 서정에 의한 이해가 아닌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이해 할 때(진입함/서 있음/구원의 완성을 받기)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가 구조적으로 함축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복음주의자들의 교회 안에서만 신앙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로 정체성에 근거가 된다.
또한 구원의 서정 속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예정과 성도의 견인교리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두 가지의 교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리가 나오게 된 본문의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즉 예정과 견인교리를 집착한 나머지 방종한 삶을 살지 말고 탈락의 교리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의 신실함을 의심 하지 말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며 얻은 교훈은 칭의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의 통합과 균형적인 해석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거룩한 삶에 대한 도외시는 법정적 의미만을 강조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적의미에 무지한 채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볼수있다. 현재 한국교회에 칭의 이해는 칭의의 관계적의미를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도의 삶에 진지한 성찰이 있을 것이다.
또한 바울의 칭의는 철저히 예수님의 복음과 일치함을 보았고 칭의와 성화는 분리됨이 아닌 하나이며 그것 또한 종말론적 구조에서 봐야만 정확하게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칭의와 성화의 분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칭의로만 머무르는(성경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결과는 초래했다. 구원받았으니 이후의 삶은 어떠하든 천국가지 않느냐?라는 배짱을 얻게하여 진정한 구원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했다. 하지만 구원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로 서야 하는 순간까지 이루어져 가는 것임을 즉 완성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예정과 견인론 그리고 타락의 가능에 대한 경고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권면이다. 조직신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도그마처럼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교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맥속에서 참된 의미를 찾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의도를 존중하여서 논리적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모습임을 알게 해준 것이었다. 그동안 나도 예정과 견인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었지만 다시 한번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의 표현대로 칭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임을 기억한다면 칭의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말씀으로 경험되어 질 것이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지금 보다 한국교회는 세상에 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고 성도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더 성숙하여서 믿지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게 될것이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새 관점 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아쉬운 점은 로마서 9-11장에 대한 새관점 주의자들에 대한 해석의 반론이 언급되지 않은 점이다. 이 부분은 김세윤 교수의 다른 저술에서 기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