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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읽다 - 실감나게 읽는 성경 속 광야 이야기 ㅣ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만나다...
최희준 선생님의 노래 중에 ‘하숙생’이란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라는 말이 나온다. 약간은 자조적인 노랫말이다...인생의 무상함과 유한함, 더 나아가 불확실한 인생을 노래한다.
주님을 만난 감격도 잠시 그리스도인들도 그런 하숙생의 노래처럼 나그네 길을 걸어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불신자의 인생길은 정처 없이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나그네길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본향을 향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례자의 길은 낭만여행을 약속하는 고급패키지가 아니라는 것에 그리스도인들은 당황한다.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우리 앞에 놓은 순례자의 길은 정밀한 지도를 창작한 네비게이션이 아닌 갈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어진 나침반이 달랑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어떠한가? 좋은 경치에 이정표라도 자세하게 만들어진 길이라면 쉬엄쉬엄 콧노래를 부르며 가면 좋겠지만 절대로 그런 길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때론 길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때론 아예 길이 아닌 곳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길이 아닌 인생의 광야를 걷는다고 말한다.
광야! 생각만 해도 먹먹한 단어가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봥황과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 다윗의 광야의 도피생활 등등 광야는 성경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대가 아닌가? 광야가 성경의 무대로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도 오지 말라고 해도 꼭 와서 우리의 친구처럼 다가오는 것이 광야가 아닌가? 우리의 인생이 산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걷는 것이라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빨리 건너가는 것이 올바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러기에 우리는 광야를 걷는 사람과 건너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광야를 걷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희 목사님의 ‘광야를 읽다’는 광야를 걷는 사람의 모습과 이미 건너간 사람들의 지혜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고 걷게 하신 뜻을 쉬우면서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마치 노련한 여행가이드처럼 우리가 서 있는 곳과 봐야 할 곳과 주의사항 그리고 지킬 것과 피해야 할 것을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으로 말해준다.
14개의 주제단어를 중심으로 광야를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성경의 핵심메시지와 저자가 이스라엘과 삶에서 경험한 지혜들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단순히 광야의 축복을 이야기 하거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니 믿기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도 제법 자세히 알려준다. 많은 것을 소유할려고 하지 말라, 로프가 아닌 광야에서 필요한 낙타를 구입하라 등등 말이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낙타의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다. 낙타는 자기 짐을 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주인의 짐을 지고 간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져야 할 짐을 지는 것이 순례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생가운데 자기의 짐을 과도하게 져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욕심 때문에 말이다....예수님은 내짐은 가볍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갈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광야에서 아무리 금은 보화라고 해도 많은 짐을 지고 걷다가는 얼마 못가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내가 힘든 이유는 혹시 하나님이 주신 짐이 아닌 나의 욕심의 짐을 지고 가기에 기진맥진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았다...
주제마다 저자의 경험과 사색 속에서 우러나오는 쉽고도 알찬 내용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지만 책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오아시스를 다룬 곳이었다..
광야에는 잘 정리된 길은 없지만 암시적인 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길이다. 정해진 루트는 아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오아시스이다. 광야를 건너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오아시스를 지나쳐 버리면 얼마 못가서 주저앉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죽을 수도 있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신 광야의 길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욕심이 많지만 오아시스에서 다음 오아시스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과 생수를 구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아시스가 기도일 수도 말씀일 수도 아니면 교회일 수도 있지만 공통점은 오아시스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안식과 회복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오아시스를 거쳐 갔다고 자부했는데 저자의 글을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나 역시 오아시스에 머무르긴 했지만 재충전의 시간과 순례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비축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좀 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 영혼의 강건함을 비축해야 함을 결심하게 되었다. 순간의 갈증을 해결하는 오아시스가 아닌 더디 가더라도 광야를 기쁨으로 걸어갈 수 힘을 얻는 오아시스의 머무름을 기대한다. 그래서 광야의 길속에서 매일 새벽마다 아니 틈틈이 오아시스에 머무는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