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대학 다닐 때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정의론 적인 관점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살펴보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에 관련된 논의의 배경이 되는 보라매병원 사건이라든가,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등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 연명의료결정법의 세부 조항 등 여러 가지 내용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 또한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연명의료라는 것이 결국 나의 가족 혹은 나와 관련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 절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을 때 쉽게 연명의료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다만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기'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죽으면 결국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말 텐데 그의 심장이 정말로 멈추는 순간 의료진을 향해서 뭐라도 제발 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후 그가 의미 없는 생존을 이어가며 끝없이 고통받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을 아는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기에 가깝다. 그 끝에는 수십 개의 관에 연결된 몸과 심폐소생술로 피멍이 든 가슴, 피로 얼룩진 얼굴이 남는다. 가족들은 그제야 "이런 모습일 줄 몰랐어요"라고 말한다…(중략)…그렇게 환자는 가족과 철저히 분리된 채, 낯선 의료진에게 둘러싸인 채 마지막을 맞는다. 이것은 단지 의사의 잘못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사람이 늙고 병들어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인 '자연사'는 오히려 낯설고 드물어져 부자연스러운 죽음이 되었다. 죽기 직전까지 뭔가를 해야 한다. 아니, 심장이 멈춰도 포기하면 안 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42.

✔ 한국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관련된 논쟁은 주로 법적 분쟁 속에서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곤 했는데, 크게 두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한 환자가 1997년 12월 4일 오후 3시경 술에 취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보라매 병원으로 후송되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환자의 상태를 경막외출혈로 진단하고 레지던트와 함께 혈종 제거 수술을 시행했다. 환자는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환자의 부인이 치료비 부담 때문에 환자를 퇴원시켜줄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으며 수술을 했던 담당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성을 높이며 계속 퇴원을 요구했고 결국 담당 의사는 퇴원을 시키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병원의 인턴이 환자를 집으로 이송해 부인의 동의 아래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환자는 호흡정지로 사망하였다.

이에 1심은 환자의 부인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을 인정하였고, 신경외과 전문의와 레지던트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의 성립을 인정하였으나 환자를 이송했던 인턴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항소심은 신경외과 전문의와 레지던트에게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의 성립을 인정하였고 환자를 이송했던 인턴의 무죄를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 의사들과 검사의 각 상고를 기각하여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 판결은 의료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환자 가족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키던 의료계의 관행이 살인방조죄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1심 법원인 서울남부 지방법원 공보판사는 보도 자료에서 이 판결은 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한 것임을 밝혔다. 이 판결을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이 판결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의료지원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생명 존중 메시지를 담은 판결이었다(박경숙 외 2015).

하지만 환자의 소생 가능성은 0%에서 100%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상에 있는 문제이며 어느 선을 기준으로 소생 가능성이 있다 혹은 없다고 판단해야 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소생 가능성 판단의 절차적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 혹은 절차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계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환자를 함부로 퇴원시키면 살인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환자 가족의 퇴원 요청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환자 가족과 의료계의 갈등은 깊어져갔다. 보라매병원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법적 혹은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준 첫 번째 사건이었다(박형욱, 2017).

“보라매병원 사건은 하나의 판결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판결은 한국인의 죽음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이 사건 이후, 의사가 강력하게 치료를 권했으나 환자나 보호자의 뜻에 따라 퇴원하며, 퇴원에 따른 결과에 대해 의료진과 병원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나 '자의퇴원각서'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의사와 병원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각 병원의 중환자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로 마비되었다…(중략)…의사는 환자를 집으로 보내고 싶어도 법적 책임을 떠올렸고, 보호자는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혹시 자신이 가족을 포기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 사이에서 환자의 뜻은 자주 뒤로 밀려났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28.

연명의료 중단에 관련된 논쟁 두 번째는 ‘김 할머니 판결’이다. 76세였던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16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가족들이 병원 측을 상대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하였고, 2009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할머니는 7개월 더 생명을 유지하였다(박경숙, 2015; 김은철, 2013).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최초의 사법적 기준을 제시하였으나 사법적 해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고 결국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이후 국회에 이와 관련한 다양한 입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이 판시한 연명 의료 중단의 기준들(의학적으로 명백한 회생 불가능성의 소견과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 표현, 그 의사 존중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경우 등)은 법, 윤리, 의료, 종교계와 시민들 사이에서 논란을 증폭시켰다(박경숙 외, 2015; 김은철 외, 2013). 특히 사전의료지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후속 논의를 촉발시켰다. 법원이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자기결정에 따라 비록 생명 단축이 초래되더라도 인위적인 신체 침해행위(무의미한 연명의료)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생명을 자연적인 상태에 맡기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하는 행위로 그 권리의 보호는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국회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연명의료중단관련 법률의 제정을 원하는 측에게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고,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연명의료관련 TFT가 입법을 권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한다)」이 제정되었지만(이석배, 2017),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담고 있다.

내가 논문을 썼을 때가 2017년이었고 그때는 막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였다. 2026년 현재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관련 법이 제정되었으니까 9년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는 연명의료에 관한 문제가 많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보니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아직도 너무 까다롭고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점이 있으며 연명의료 중간에서 의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법이 이를 명확히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법적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어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점이 많은 것이다.

“김영석 씨는 자신이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뜻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는 법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81.

✔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도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다른 나라에는 환자나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료조력사망'이나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는 경우가 꽤 있다. '안락사'라고 하면 내 친구 중 한 명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꼭 나중에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음이란 언제나 갑작스러운 것이라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 가능성이 크다. 그 친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본인이 원하는 날 죽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친구의 이야기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면 죽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게 얼마나 슬플까. 하물며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 곧 죽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는 고통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의식이 또렷하고 덜 아플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하고 고통 없이 떠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많이 사랑했던 막내 이모는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이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서 어머니와 이모들도 잘 못 알아보셨다고 했다. 의식이 없거나 흐릿할 때가 많았고 깨어 있을 때는 너무 아프다는 말만 계속하셨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지금 100세를 훌쩍 넘기셨다.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리시고 눈도 잘 안 보여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신다. 얼마 전까지는 뉴스도 보고 신문도 읽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다고 하신다. 우리 가족이 찾아가면 항상 죽어야 하는데 안 죽는다는 말씀을 하신다. 죽으면 모두 끝이다. 살아있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너무 고통스러운 삶,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삶은 힘들 것 같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만약에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의료조력사망이나 적극적 안락사라는 선택의 의미는 죽음을 앞당긴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고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확실한 순간'으로 바꾸는 데 있다. 죽음의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함으로써 사람들은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정된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머물며 특별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병실을 가득 채운 날카로운 기계음이나 고통스러운 신음 대시, 가족이 곁에 있는 가운데 마치 잠든 듯 고요하게 생을 마감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118.

✔ 죽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렵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죽음이 많이 두려웠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긴 잠을 자는 것과 같겠지?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소멸되는 걸까? 영혼은 정말 있을까? 영혼이 있다면 끝이 없는 건데 그러면 무한히 사는 걸까? 죽음이 끝이어도 두렵고 무한한 다른 삶이어도 두렵다. 그래서 항상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떨쳐내버렸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든 100%의 확률로 이 일은 일어난다. 나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든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쉽게 결정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대비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결국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테니 지금부터 고민해 보는 것이 맞겠지.

“우리는 작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비교하고 고민하면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외면하게 된다. 그러나 외면은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 준비하지 않은 죽음은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찾아온다…(중략)…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나부터 시작해서 가족으로, 그리고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죽음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183.

#연명치료는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7 대한민국 트렌드 - 과연 그 트렌드는 진짜 트렌드가 됐을까? AI와 인간이 함께 읽어낸 사람·소비·일의 8가지 키워드
조성호 지음 / 길벗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①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점

내가 생각했을 때 2026년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AI의 일상화가 아닐까 싶다. 요즘 보면 모두들 일할 때는 기본이고 개인적인 상담까지 AI를 활용하는 것 같다. 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챗GPT한테 의견을 물어보는데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당장 해결해야 하는 감정이거나 계속해서 찡찡거려야 할 때는 인간에게 할 수 없으니 온라인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처럼 챗GPT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일할 때도 물론 AI를 활용하는데 갈수록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넓어지고 많아지다 보니 이게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다. 막상 AI가 보편화되니까 그전에 사람들이 예측했던 것들 중에 틀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계속해서 AI가 더더욱 일상화가 된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워서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027 대한민국 트렌드>>를 읽기 전에 궁금했던 점은 AI가 더더욱 일상화될 2027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점이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늦게 시작하거나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뒤처진다는 생각과 미리 알고 있어야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② 가장 인상 깊었던 트렌드 키워드

책에서는 2027년 트렌드를 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사람인 양치기라는 뜻의 SHEPHERD라는 단어로 압축했는데 올바른 방향이 필요한 시대에 적절한 키워드 압축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Shiftism(자산전환), Human-in-Command(주도권 설계), Emotion Asset(감정자산), Personal Vneture(자기경영), Human Touch(인간가치), Essential Down(본질 회복), Recology(맥락독해), Deep Check(신뢰검증) 이렇게 8가지의 키워드 중 아무래도 AI와 관련된 Human-in-Command라든가, Human Touch 이런 키워드가 좀 인상 깊었던 것 같다. Human-in-Command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내 업무와 내 일상에서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남겼고 한편으로는 AI가 일상화되면서 여러 업무가 효율적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면서 해야 할 업무는 늘어나는 것 같다는 불만도 좀 생겼다. 그리고 Human touch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AI가 발전한다고 해도 AI가 진정한 인간의 영역까지는 침범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아서 좀 안심되는 느낌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남기도 했다.

③ 기존 트렌드 전망서와 달랐던 점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트렌드 전망서라고 하면 <<트렌드 코리아>>가 아닐까 싶다. 기존에 트렌드 코리아를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읽었는데 이번에 <<2027 대한민국 트렌드>>를 읽으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사실 트렌드라고 하는 것이 어쨌든 어떠한 흐름일 건데 1년씩 딱딱 떨어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존의 트렌드 전망서는 올해의 트렌드가 이랬고 내년의 트렌드는 이럴 것이다 하는 방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올해와 내년의 트렌드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까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27 대한민국 트렌드>> 같은 경우에는 올해의 트렌드는 이랬고 그렇기 때문에 내년의 이런 트렌드와 이렇게 연결이 된다 하는 점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올해 이랬으니까 내년에는 이렇게 될 것 같고 그럼 이런 점을 미리 준비하면 좋겠다 하는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④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
사실 이 책은 2027년을 맞이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업이든 트렌드와 무관할 수 없는 데다가 더더욱 AI가 일상화되고 업무와 개인적인 영역까지 AI를 활용하게 될 2027년에는 더더욱 이런 트렌드 전망서를 미리 읽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특히나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의 종사자라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는 진짜 말이 안 통해. 너랑 내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있을까? 너는 왜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해?”

✔ 이건 내가 전에 만나던 사람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여성 인권 등에 대한 대화를 할 때 하던 말들이다. 내가 얘기하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않아? 네 말이 꼭 맞는 건 아니지. 하면서 반문하거나 반박하던 그. 항상 이런 얘기를 꺼내면 나 혼자 상처받고 나 혼자 가슴을 퍽퍽 치며 답답해할 걸 알면서도 나는 항상 이런 얘기를 꺼냈고 끝은 항상 저런 말들로 끝나곤 했다. 결국 그와는 다른 이유로 헤어지긴 했지만 우리가 싸우던 이유는 항상 사회적 소수자 혹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나에게 상처만 남기는 이런 대화를 포기하지 못했다. 만약에 이 책이 그때 나왔더라면 나는 날 좀 더 지키는 방향으로 그와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그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부제는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이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이다. 대부분은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는데 이 책은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진짜 진짜 내게 필요하던 책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더 일찍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책이다. 내가 왜 그렇게 전에 만나던 사람과의 대화에 목을 매고 집착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이 책에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합니다. 그런데 간절히 이해받고 싶고, 타인과 대화를 원하고, 자기 삶을 해명해야 하는 쪽은 대개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일치하지만,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는 그 두 가지가 불일치한다는 것. 그렇다면 사회구조적 약자든 인간관계에서의 약자든(예를 들어 사랑하는 관계에서) 누가 더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까요? 어려움을 겪을수록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할 말이 많은 이들은 누구일까요?”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2.

내가 그와의 대화에 집착하고 간절히 이해받고 싶어 하던 이유가 바로 사회구조적 약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배제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불일치하고 그 때문에 더더욱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소통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대화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소통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소통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소통 전략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언어는 정치·경제·문화·사회를 통칭하는 담론입니다. 말과 글의 개념과 정의는 모두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지요. 이처럼 언어의 세계를 파헤쳐 보면, "소통이란 언제나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이다"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심을 갖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속에 숨겨진 폭력과 배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9.

언어는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며 우리도 모르게 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거나 혐오하는 언어를 쓰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매우 동감한다. 전에 만나던 저 사람과 싸웠던 내용 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쩌다 '꽃뱀'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내가 그 단어는 여성 혐오가 담긴 표현이니까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왜 그런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범죄자는 그냥 살인범, 강간범, 사기범 등 죄를 지칭하는 단어와 함께 성별 중립적으로 불리는데 유독 사기범 중에서 여성만을 '꽃뱀'으로 지칭하는 것은 여성차별적이고 그 때문에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나는 주장했고 상대방은 본인 친구 중에서 실제로 '꽃뱀'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다며 전혀 다른 논점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정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지만 그러한 단어가 왜 여성 혐오적인지 설명하는 칼럼까지 찾아서 보내주었고 그러면 내 앞에서만이라도 그런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답은 나를 더 절망에 빠뜨렸다. "그럼 내가 이 칼럼 쓴 사람한테 메일로 왜 꽃뱀이라는 단어가 여성차별이 아닌지 설명해서 이 사람이 내 말이 맞다고 인정하면 써도 돼?" 지금 그 답을 그에게 얘기하고 싶다. "네 맘대로 해."

✔ 사실 우리 삶에 '보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모든 사람은 고유한 본인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각자의 사회적 위치도 다를 수 있고 셋째,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이해관계이자 권력관계이기 때문에 언어는 중립적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소통은 힘든 것이다. 또한 넷째,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불안정하며 유동적이다. 예를 들면 '자유'라는 단어만 해도 예전에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던 시대에는 진보 세력이 주로 추구하던 가치이지만 요즘 보면 표현의 자유(라고 하지만 사실상 혐오의 자유) 또는 총기를 소지할 자유 등 오히려 극우세력들이 이 단어를 더 많이 가져다 쓰는 것 같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소통이 되겠는가. 마지막으로, 사실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지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에 상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대화의 목표가 설득이라고 믿으며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내 말 몇 마디로 상대방의 생각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특히 내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라면 상처받고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경험은 온전히 나의 몫일 것이다. 나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남들에게 내 가치관이나 생각을 말하는 게 더 부담스러워졌을 뿐.

✔ 그렇다면 이 소통의 불가능성 속에서 내가 나를 지키며 대화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저자는 6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침묵, 무응답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고정관념을 뒤집는 솔직한 말하기, 완벽한 소통 대신 중간 지점을 찾는 협상적 말하기, 굳이 타인을 설득하지 않기, 나에게 대화 종료의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기가 그 방법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나에게 대화 종료의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저자는 나를 갉아먹기만 하는 대화는 이겨도 지는 게임이므로 소모적인 싸움을 오래 끄는 것이 절대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나 또한 과거의 경험을 기억해 보면 상대와 결판나지 않는 대화를 질질 끌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의 온전한 이해는 얼마나 달콤할까 생각하면서 나는 소통이 불가능한 상대를 붙잡고 그의 이해를 갈망하면서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지만 멈출 수 없는 기분. 애초에 이긴 적도 없지만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렇게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강자가 선점한 주제, 강자가 만든 언어 그리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규칙 안에서 아무리 훌륭하게 칼을 휘두른들 판 전체를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강자의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 '내가 싸울 자리'를 새롭게 확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굴레 같은 논쟁을 이어가는 대신, 그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의 건강과 독립된 삶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기
▶▶▶ 온라인의 혐오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며 감정을 낭비하기 보다, 나의 언어가 안전하게 흐를 수 있는 다른 해방구를 찾아내기
▶▶▶ 나를 끊임없이 소모시키고 유령으로 만드는 관계를 '관계 종료'라는 이름으로 마침표 찍을 용기를 갖기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창비, 2026, p186.

결국 저자는 소통의 목표를 설득이 아닌 생존으로 옮겨오는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내 영혼을 갈아 넣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찰해 보고 대화 종료의 권리를 가짐으로써 내가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너의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그렇다고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널 지키고 아껴둔 그 힘으로 이 세상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말이다.

#정희진 #당신과내가대화할수있을까 #소통법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는 진짜 말이 안 통해. 너랑 내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있을까?“ 이건 내가 전에 만나던 사람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여성 인권 등에 대한 대화를 할 때 하던 말들이다. 만약에 이 책이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나는 날 좀 더 지키는 방향으로 그와 대화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과 (위픽 에디션)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미출간


파쇄 보려면 파과부터 읽어야 한다고 해서 위픽 에디션으로 구매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