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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개좋음
서민 지음 / 골든타임 / 2019년 8월
평점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의 어느날, 4식구가 살던 우리집에 새로운 식구가 오게 되었다. TV에서나 밖에서 수많은 반려견, 반려묘들을 보며 '다른 세상 사람들이 키우는 생명들'이라고 정의내리곤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반려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도 동물들을 좋아한 두 딸아이 덕분에 가슴 아프지만 우리 집을 거쳐 죽어나간(?) 생명체들이 참 많다. 그 때마다 경비 아저씨 몰래 아파트 화단에 암매장(?)을 하느라 얼마나 눈치를 봤던지....... 병아리로부터 시작해서 햄스터, 장수풍뎅이, 금붕어, 올챙이, 개구리, 고슴도치, 심지어 항아리에 수많은 지렁이들도 키웠던 적이 있을 정도니 우리집은 늘 동물의 세계였다. 사실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키운 이유는 아이들의 최종 로망이었던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어책이기도 했다. '손 많이 가는 강아지 대신 키우기 쉬운 작은 동물들'인 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유기견에 눈을 뜬 둘째 아이가 한 달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유기견에 관해 조사하고 입양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몇날 며칠을 울며 애원하는 바람에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유기견이 아닌 2개월 된 토이푸들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개를 무서워하던 나였던지라 강아지를 만지는 것조차 참 많이 무서웠는데, 1주일만에 나는 강아지에게 푹 빠져버렸다. 어디를 가도 이젠 강아지들만 보이고, TV를 보아도, 마트를 가도 오직 강아지 관련 물품들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는 강아지 홀릭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대한민국 1% 개빠'라고 자부하시는 서민 교수님의 책 '서민의 개좋음'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쬐그만 토이푸들 강아지 한 마리로도 헉헉 거리고 있는데, 이 분은 세상에 개 여섯 마리를 키운다고 하시니 읽기도 전에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무림의 고수같은 흔들림 없는 내공이 말이다.
"내가 미쳤지."
서민 교수님의 아내는 가끔 이런 소리를 한다고 한다. 이제 강아지를 키운지 두 달 남짓 되는 강아지 초보 엄마인 나이지만, "내가 미쳤지."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어떤 마음이 담겼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워킹맘 생활을 하다보니 살림도 겨우겨우 힘겹게 해내고 있는데 여기에 강아지까지 키우다보니 어떨 땐 나역시 마음 속으로 "내가 미쳤지."라는 말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한 마리를 키워도 이런데 여섯 마리를 키우니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생활비와 시간이 필요할지 안봐도 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에 대해 더 욕심이 생기는 듯한 뉘앙스의 글들을 보며 그 마음에 또한 공감이 갔다. 마치 아이를 한 명 낳고 나서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고민하다 둘째를 낳았더니 별 고민 없이 셋째 까지 욕심을 내려는 다둥이 맘의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아침마다 우리 강아지(이름은 '보리')를 혼자 놔두고 출근하려고 하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낑낑거리는데 참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도 서민 교수님 부부처럼 '한 마리 더 키워서 둘이 놀면 덜 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빠지곤 한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하는데, 오직 '강아지의, 강아지에 의한, 강아지를 위한'그런 마음 끝에 현재 여섯 마리의 예쁜 페키니즈를 키우는 저자의 생활모습들을 보며 이제 반려견 초보자로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는 '반려견을 키울거면 제대로 키우고, 그렇지 않을거면 아예 키울 생각을 하지말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서민의 개좋음>은 제목과 달리 개를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이 필요한지 아느냐, 충동적으로 키우지 말고 제발 한 번 생각해보시라는 게 핵심 메시지다. 물론 이건 새로운 얘기는 아니며, 개빠들이라면 늘 하는 말이긴 하다. (중간생략)
이 책은 개를 아직 입양하지 않은 분에겐 샌중하라고 얘기하고, 입양해서 키우는 분에게는 최선을 다해 개를 돌보라고 채찍질하며, 개를 미워하는 분에게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삶의 교훈을 준다. 뜻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 프롤로그 인용 - |
그리고 읽는 중간 중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들에서는 격하게 공감이 되어 든든한 동지를 만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평소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둔다. TV, 스마트폰, 인터넷 등등. 하지만 개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기를 돌봐주는 주인이다. 마루에 개 여섯 마리가 있을 때, 개들은 늘 아내나 내 쪽을 향해 있다. 둘 중 하나가 움직이면 개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따라간다. 오직 주인밖에 모르는 바보, 그게 바로 개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순 있어도, 이왕 기르기로 했다면 개들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하진 말아야지 않겠는가? - 본문 85쪽 인용 - |
정말 그렇다. 우리집 강아지 보리도 우리 가족들이 오갈 때마다 동선을 따라 간절함이 담긴 그 눈빛이 늘 뒤따라다닌다. 아직 아기라 자기만의 공간을 정해두고 울타리를 쳐놓았는데, 그 안에서 울타리 밖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촉촉한 눈빛을 볼 때마다 웬지 가슴이 찡해진다. 심지어 울타리를 앞발로 짚고 서서 가족들이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폴짝폴짝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어디 이뿐이랴? 퇴근하고 현관문을 들고 들어오면 아이들이랑 거실에서 같이 놀다가도 현관쪽으로 어느샌가 바람같이 달려와서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좋아서 난리다. 정말 빛의 속도만큼 빨리 내 주위를 뛰어다니며 반겨주는 모습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릴 정도이다. 이렇게 나를 위해 사랑을 그리고 충성을 다해주는 강아지인데 저자의 말대로 내가 이 강아지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나역시 공감하는 바이고 말이다.
개를 키우는 마인드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반려견을 키움에 있어서 실질적인 정보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료, 배변패드, 간식, 장난감, 개집, 계단, 미용비 등 마치 반려견 동호회에서 경험 많은 선배가 조곤조곤 알짜배기 정보들을 들려주듯 깨알정보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나같은 반려견 초보맘에게는 요긴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았던 내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저자의 나이 몇 살까지 개 입양이 가능할까에 관해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나이에서 개 수명을 뺀 나이 이후로는 새로운 개를 입양해서는 안 된다." 평균 수명을 75세로 잡고, 내가 운 좋게 그때까지 살 수 있다면, 새로운 개 입양이 불가능해지는 나이는 55세다. 우리 집 막내 은곰이 이제 막 돌을 지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개는 이제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개들이 마지막 개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되도록 몸조심하자. 우리 개들이 "아빠는 어디 갔을까?"를 궁금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 본문 127쪽 인용 - |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저자 덕분에 강아지의 건강, 우리 가족의 건강 등에 관해 생각을 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셈이다. 많은 생각 끝에 한 가지 결심을 하며 책을 덮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건강한 엄마, 아빠가 필요하지만 이젠 우리 강아지 보리에게도 건강한 엄마, 아빠가 필요하니 앞으로 더욱 더 건강관리도 잘해야겠다는 각오와 함께 안하던 운동도 하고 잘 챙겨먹지 않던 건강식품도 요즘은 먹고 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다 커서 무료한 40대를 보내려나 했는데, 우리 강아지 덕분에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다. 정말 '개좋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