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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김인숙 지음 / 브릭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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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있었다. 바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뉴스였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역시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도 참 다른 배포다 싶었다.
국토의 85%가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겨우 2%에 불과한 오지와도 같은 그린란드는 희토류를 비롯하여 풍부한 전연자원의 보고라 더욱 가치가 있는 곳이도 하다. 그러하기에 셈이 빠른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가만히 둘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린란드 현지 주민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사고 파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행보를 보며 내심 불쾌했을 것이다. 그 뉴스를 들은 이후로 그린란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세계 뉴스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며칠 전 뉴스를 보니 트럼프의 입김으로 인해 오히려 그린란드는 경제적 가치가 상승한 모양이다. 그린란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여행객 뿐만 아니라 그곳에 집을 사두려는 실거래자들의 발길 또한 잦아졌다는 것이다. 외부인의 방문이 극히 드물던 한적한 그린란드가 이로 인해 점점 북적거리게 되었다는데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한 편으로 반가운 일일수도 있겠다 싶다.
이처럼 그린란드라는 나라는 세계지도에서나 보거나 뉴스 혹은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볼 수 있는 나라이고 웬지 모르게 이 세상 제일 끝에나 있을 법한 나라로 여겨진다.(순전히 내 입장에서의 생각이다). 그랬던 나라인데 이 나라에 대한민국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것도 그린란드 대학교 개교 이래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저자에게 퍽 호기심이 갔다. 그 뿐 아니라 그린란드 남자와 결혼하여 2015년 이후로 그린란드에서 살고 있다니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린란드 남자를 만나 그린란드에서 정착하고 나서도, 매일매일 여행하는 듯한 기분으로 산다. 내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택한 것 같기는 하다. 그린란드 생활 4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어디든 떠나지 못해 안달하던 내가 런던도 도쿄도 아닌 그린란드에 정착하고자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가 뭘까. 이곳에 온 뒤로는 더 이상 여행을 하고 싶은 곳이 없어졌다. 이제 정착해도 좋을 것 같다. - 본문 288쪽 인용 - |
저자는 아마 '안빈낙도'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자기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는 '안빈낙도'의 삶...... 그러하기에 저자는 더이상 욕심도 바람도 없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그리던 세모난 지붕아래 네모난 건물, 그 가운데 창문과 문이 달린 집들이 있는 그린란드, 사랑하는 남자가 태어난 그린란드에서 저자는 '휘게'를 제대로 느끼는 것 같다.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라더니 역시 그린란드에도 '휘게'는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나보다.
그린란드는 우리나라와 같은 식민지 국가의 경험이 있는 곳이기에 더 마음이 가기도 했다. 오랜 시간 덴마크의 식민지였다가 현재도 역시 덴마크령의 자치정부이니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 것처럼 그린란드 사람들 역시 덴마크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꿈꿀 것이다.
그린란드는 독립을 꿈꾼다. 언제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질지 저마다 예상은 다르지만 대다수의 그린란드 사람들이 독립을 지지한다. 하지만 뿌리 깊이 얽히고설킨 덴마크와의 관계가 현재로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식민지 시대와 비교해 독립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것은 확실하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그린란드 사람들도 점점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 본문 122쪽 인용 - |
그러나 독립을 하게 되면 덴마크 정부로부터 매년 4억 7천만 유로(한화로 6천억 원)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끊기기 때문에 실제 독립은 경제적 자립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보니 몰랐던 사실들을 알 수 있어서 재밌었다. 특히나 깜짝 놀란 것은 웬지 '그린란드'라고 하면 하얀 눈이 덮인 깨끗한 청정지역의 이미지가 강한데 어쩐 일로 이곳에서는 분리수거 제도가 없단다. 그렇기에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종이, 유리 등을 쓰레기봉투 하나에 버리고 소각 처린한단다. 이유인즉, 그린란드에 사는 인구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린란드의 수돗물은 바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란다. 그러하기에 그린란드 사람들은 슈퍼에서 플라스틱 병에 생수를 담아 팔아도 물을 사먹지 않고 수돗물을 바로 먹는다고 한다. 참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동네이다.
저자는 상당히 간결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말투로 시종일관 차분하게 책을 써나가고 있다. 읽다보니 감성이 폴폴 풍기기 보다는 다소 건조해보이기까지 하여 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계속 읽다보니 저자의 말투가 그린란드의 깔끔하고 시원함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 또한 이렇게 간결하고 깔끔하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살짝 해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여행을 하고 싶은 곳이 없고, 그린란드에 정착하고 싶다는 그녀...... 그린란드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